Inside An Adult Game As A Former Hero RAW - Chapter (237)
한참을 비명 지른 끝에 나무줄기는 힘을 잃고 축 처졌다. 마치 평범한 나무줄기로 돌아간 것 같았다.
그 모습을 지켜본 용왕이 떨리는 눈으로 물었다.
“요정왕에게 무얼 했지..?”
“그건 직접 겪어봐. 얘가 엄살을 부려서 그렇지 너무 아프진 않으니까 걱정은 하지 말… 으에엑!?”
레아는 돌연 하늘에서 떨어진 벼락을 맞고 날아갔다. 바닥을 여러 번 뒹군 끝에 깊은 구덩이를 만들며 엎어진 그녀는 세 왕과 싸울 때는 느끼지 못했던 얼얼함을 느끼곤 힘없이 중얼거렸다.
“하아, 진짜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정말이지, 나만큼 주인 위하는 에고소드가 또 어디 있을까.
‘주인님이 이런 걸 좀 알아줘야 되는데.’
투덜거리며 몸을 일으킨 그녀가 외쳤다.
“주인님, 기다리던 연놈들 왔어요. 그러니 빨랑 나와요!”
“연놈이라, 말이 지나치네요.”
청아한 목소리와 함께 먹구름 낀 하늘이 개였다. 태양빛을 후광 삼아 순백색의 드레스를 입은 한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여인은 은청색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하늘을 부유하고 있었는데, 아름답고 기품 있는 그 외모는 가히 여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한낱 도구 주제에 말이죠.”
그와 별개로 그녀로부터 흘러나오는 기운은 심상치 않았다.
“주제를 모르고 까분 대가를 치러야겠죠?”
파지직-!
그녀의 오른쪽에 성스럽게 빛나는 거대한 창이 생겨났다. 창은 곧바로 쏘아졌고 레아는 미간을 찌푸렸다.
저런 덩치만 크고 속도는 느려터진 맞으라고 쏜 건가?
뭐지.
검이라고 무시하는 거?
레아가 창을 피하려고 발을 뗄 때였다. 순간 강력한 중력이 그녀를 짓눌렀고 몸이 비틀거린 탓에 피할 타이밍을 놓쳤다.
“… 어머나?”
맞으라고 쏜 게 맞구나.
콰앙!
충격음이 크게 울려 퍼지며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이 정도면 교훈이 되었겠죠?”
여인은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 모습을 보며 용왕은 고통도 잊고 감탄을 흘렸다.
‘우리 셋이 덤벼도 어찌 못했던 것을 저리 간단히…’
직접 얼굴을 비친 지 꽤 오래되었기에 혹시나 쇠약해지기라도 했나 싶었더니 아니었다.
그녀는 여전히 정정했다.
아쉬운 마음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녀가 정정한 덕분에 살았으니 그거면 됐다.
용왕이 그렇게 안도하려던 때였다.
주변을 살피던 이리에스의 눈길에 용왕이 들어왔다. 그녀는 웃음기를 지우더니 한심한 것을 쳐다보는 눈빛으로 용왕을 내려다보았다.
“카이슬란. 제가 분명 경거망동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요.”
“…예?”
“모른 척하지 마세요. 예전이지만 저는 분명히 말했었어요. 그런데 당신은 제 말을 어겼네요?”
“아니…”
용왕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는 이리에스의 저 냉담한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처음부터 개입하면 되었지 않나? 한데 개입하기는커녕 구경만 하다가 상황이 심각해지니까 나타나선 대뜸 하는 말이 저거라니.
몹시 억울한 기분이 들었지만 참기로 했다.
을은 언제나 카이슬란이었으니.
“변명은 듣지 않겠어요. 이번 일에 대한 처분은… 응?”
흙먼지가 흩어지며 드러난 광경에 이리에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가 열심히 싸우는 동안 뭐하시다가 이제 오셨어요?”
불만 가득한 눈초리로 클라우드를 노려보는 레아.
분명 이리에스는 성스러운 창을 거대화 시켜서 쏘았고 레아는 그걸 맞았을 텐데, 그런 것치고는 너무 멀쩡했다.
“오랜만에 날뛰고 싶어 하는 거 아니었어? 그런 줄 알고 가만히 있었는데.”
“그건 맞지만! 제가 고생하고 있는데 주인님은 편히 쉬고 있으면 뭔가 억울해요!”
“뭐야 그게.”
거기에 어느 순간부터 존재를 잊고 있었던 클라우드까지 나타나 레아와 떠들었다.
이리에스는 안중에도 없는 무례한 모습이었으나 그녀는 기분 나빠하기보다는 신기해했다.
‘한낱 검이 그걸 막았다고요?’
성스러운 창을 작게 하나 더 만들어 또 쏴보았다. 레아는 날아온 창을 거슬린다는 듯이 팔로 쳐내곤 이리에스를 향해 버럭 소리 질렀다.
“지금 대화중인 거 안 보여요!? 매너는 좀 지킵시다!”
“어… 음… 미안해요?”
“알면 됐고요!”
레아는 다시 클라우드와 투닥거리기 시작했고 이리에스는 매너를 지키기 위해 얌전히 기다렸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둘의 대화가 끝날 것 같지 않았다.
“아직 더 기다려야 하나요?”
“아, 좀 기다려봐요! 내가 오늘은 이 양반이랑 끝을 봐야겠으니!”
“네에…”
시무룩해진 이리에스가 공중에서 쪼그려 앉았다. 그렇게 세월아 네월아 멍을 때리고 있자니 그녀의 옆 공간이 검게 일렁거리며 한 남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얀 장발에 검고 날카로운 갑옷을 입은 남자.
르베우스.
대륙에서는 악신으로 여겨지나 실제로는 이리에스와 함께 세상을 만들었고 다스리는 신이다.
“도가 지나치군.”
분노한 그로부터 어두운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그 기운이 어찌나 독했는지 비록 상처 입었다지만 용왕과 혈왕은 닿는 것만으로 고통스러워했다.
“르베우스? 전 괜찮은데요.”
이리에스의 생뚱맞은 말에 르베우스가 멈칫했다. 이내 미간을 찌푸리며 반문했다.
“처음에는 건방지다면서 본때를 보여준다고 하지 않았어?”
“아, 그때는 그럴 가치가 없는 놈인 줄 알아서요. 지금은 괜찮아요.”
“무슨…”
어이가 없어진 르베우스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네가 괜찮아도 내가 안 괜찮아. 감히 주제도 모르고 널 능멸한 놈들은 영겁의 시간 동안 고통받아 마땅해.”
내가 그렇게 맹세했으니까.
르베우스가 손을 뻗자 허공에서 검고 화려한 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검을 잡자 검은 알갱이 같은 것들이 그의 주변에서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클라우드는 헛웃음을 흘렸다.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하네. 레아, 내 몸 가지고 있지?”
“네. 꺼낼까요?”
“꺼내줘.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몸으로는 무리일 것 같아.”
레아의 가벼운 장난에 팔이 부러지는 몸이다. 그에 반해 상대는 필멸의 굴레를 벗어나다 못해 초월한 초월자. 경험과 기술로 극복 가능한 것도 한계가 있다.
레아는 클라우드의 말에 따라 그녀의 아공간에 손을 집어넣었다. 손을 잠시 휘적휘적거리더니 이내 검은 머리카락의 건장한 남성을 꺼내 바닥에 눕혔다.
클라우드는 본래의 몸, 한지수의 신체에 손을 얹었다.
그릇을 잇고 이어진 그릇 사이로 내용물을 흘려보낸다.
본래의 몸이었기에 혼을 옮기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고 몸을 옮기는 행위에서 느껴지는 반발 또한 없었다.
클라우드… 아니, 이제는 한지수가 된 남자가 몸을 일으켜 스트레칭을 했다.
“몸이 조금 굳었네. 그래도 이 정도면 크게 문제 되진 않겠다.”
뚜둑 거리며 목을 푸는 한지수를 보며 이리에스와 르베우스가 당혹을 감추지 못했다.
필멸자가 혼이 담길 그릇을 자의로 바꾼 것만 해도 기묘한데 거기에 신체가 바뀌자마자 그로부터 느껴지는 기운이 확 달라졌기 때문이다.
초월자인 그들에게 있어 파리 같았던 그가 돌연 그들과 비슷한 존재감을 내뿜고 있었다.
그에 그의 에고소드인 레아의 기운이 강해진 것은 더 말할 것도 없었고.
이리에스는 한지수와 레아가 신기했다.
‘저들은 어디서 온 걸까요?’
당연하게도 그녀가 만들어낸 존재는 아니었다.
그녀의 피조물이었다면 강제력을 행사할 수 있었을 테니까. 하지만 저 검은 물론이고 한지수에게조차 강제력이 행사되지 않았다.
그렇다는 것은 이 차원이 아닌 이계의 존재라는 건데…
‘다른 초월자는 또 아닌 것 같고요.’
정말 막 나가는 놈이 아닌 이상 다른 이의 차원에 무단 침입하는 초월자는 없다. 그런 매너 없는 행위를 했다간 다른 초월자들로부터 배척당하므로. 물론 그런 걸 신경 쓰지 않을 정도의 압도적인 존재라면 또 다르겠지만, 저들이 그런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결국 한지수는 인간이고 저 레아라는 아이는 평범한 에고소드라는 건데…
‘평범한 인간이 저런 수준까지 도달하다니. 개체 한계값을 도대체 얼마나 높인 걸까요?’
아니, 그것보다 저런 걸 대체 누가 만들어 낸 거죠?
한 번 만나보고 싶은데요!
이리에스의 가슴이 두근거리는 한편 르베우스는 살짝 긴장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이내 필멸자를 상대로 긴장했다는 사실에 경악하며 자괴감을 느꼈다.
이를 으득 간 르베우스가 권능을 발현했다.
주근깨처럼 퍼져 있던 검은 알갱이들이 우수수 생겨났다. 검은 연기와 함께 일그러진 차원은 거대한 문으로 변화했다.
끼이익-
문이 열리며 그 안에서 시끄럽게 웃어대는 임프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런 임프들을 밀어내며 한 존재가 문 안에서 팔을 내밀었다.
-키에엑!!!
뜨거운 열기를 내뿜는 갑각에 닿은 임프들이 녹아내렸다.
그것은 임프들이 녹아내리든 말든 신경 쓰지 않은 채 문틀을 잡고 문밖으로 나와 모습을 드러냈다.
용암에 뒤덮인 갑각류 갑옷의 몸을 지닌 악마는 양손에 지옥불로 이루어진 채찍을 들고 있었다.
그를 보며 용왕은 신음했다.
‘지옥의 간수장 다이볼그.’
죄질이 나쁜 영혼을 가두어 놓는 지옥의 한 구역을 담당하는 고위 악마.
지옥을 담당하는 만큼 지닌 힘은 당연하게도 인세를 초월한다.
오랜 세월 동안 대륙을 관리해온 용왕조차 그와 싸워 승리를 확신할 수 없을 정도로.
그리고 그런 다이볼그의 뒤를 따라 그와 비슷한 신화적 존재들이 줄줄이 문에서 걸어 나왔다. 그들이 존재하는 것만으로 공기가 뒤바뀌고 인세의 법칙이 일그러졌다.
마계에 지옥이 도래했다.
이 순간 이후부터 마계는 생명이 살 수 없는 땅으로 변모하리라.
한데 그들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르베우스도 참… 어쩔 수 없죠. 나의 아이들은 이곳에 집결하세요.”
하늘이 열렸다.
열린 하늘 너머로 드러난 것은 화려함과 사치로 점칠된 백색의 궁전.
고귀한 자들의 공간, 천상.
그 천상에서 수천의 천사들이 하얀 날개를 펄럭이며 하강했다.
그들은 이전에 제국에서 흡혈귀에서 패배한 어린 천사들이 아닌 천상의 무구로 무장한 정예 천사들이었다.
선(善)과 악(惡)이 동시에 도래했다.
“이렇게 된 거 붙잡아서 물어보죠. 죽이면 안 돼요. 알겠죠?”
“최대한 노력해보지.”
오로지 한 가지 목적을 위하여.
“레아.”
“예, 주인님.”
레아가 빛에 휩싸이며 검의 형태로 돌아갔다. 하얀 도신에 은빛의 긴 날밑을 지닌 검의 손잡이를 한지수가 잡았다.
그는 그대로 검을 사선으로 휘둘렀다.
서걱-
지옥의 간수장 다이볼그의 몸이 사선으로 갈라졌다.
“너무 무시하지는 마. 이래 봬도 나름 열심히 살아왔거든.”
그러나 그런 것들에 움츠러들기엔 그와 그녀는 너무 많은 것을 겪었다.
“헛소리를… 나의 권속들이여. 저 건방진 자를 죽여라!”
르베우스의 명령에 그의 권속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은 어둠을 먹는 자, 다크니스였다. 실체가 없는 그는 그간 자신이 먹어온 어둠을 펼쳐냈다. 클라우드를 비롯한 마계가 삽시간에 빛을 잃었다.
마계가 어둠에 잠기고 사방에서는 마물들의 고통스러운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굶주린 자, 헝거가 어둠을 배경으로 무한히 증식하는 아가리를 들이밀어 마물들을 동시다발적으로 집어삼키고 있는 탓이다. 그에겐 창조주의 명령보다도 자신의 허기를 달래는 것이 먼저였다.
마물들을 모조리 먹어치운 그의 눈길이 용왕과 혈왕에게로 향했다.
“어허. 그 아이들은 안 돼요. 다소 덜떨어진다고는 해도 제가 만든 아이예요. 죽고 싶지 않다면 그 더러운 아가리 치우세요?”
헝거는 혈왕과 용왕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그러나 감히 저 명령을 거스를 수는 없었기에 끝내 포기했다. 그렇게 되니 남은 먹을 것은 하나였다.
쩌억. 헝거의 아가리가 크게 벌어지며 클라우드의 몸과 한지수를 동시에 삼키려고 들었다.
한지수는 검을 휘둘러 그 더러운 아가리를 찢어버렸다. 그러자 그를 중심으로 수십 개의 벌어진 입이 생겨났다. 한입에 삼키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조각조각이라도 씹어 삼키겠다는 헝거의 강렬한 의지가 엿보였다.
“별…”
검을 쥔 한지수의 손이 잠시 흐릿해졌다.
…촤아악-!
그의 움직임이 낳은 결과는 한 박자 늦게 나타났다. 그를 노리던 헝거의 아가리들이 찢겨나갔다.
그에 더 많은 입들이 한지수를 둘러쌌고 그럴 때마다 그는 그 아가리들을 손수 찢어발겨주었다.
그것을 수차례 반복하자 남은 것은 빌빌 거리는 작은 아가리 하나였다.
한지수는 검을 내리그었다.
서걱.
아가리가 갈라지며 더는 새로운 것이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 어둠은 남아있었다.
한지수는 입을 열었다.
“빛이여.”
다른 미사여구 필요 없이 그 한 마디면 충분했다. 그를 중심으로 퍼져나간 빛이 어둠을 지웠다. 모든 어둠을 잃은 다크니스 또한 그대로 소멸했다.
어둠이 사라지고 빛조차 사그라졌을 때 한지수의 시야를 차지한 것은 도끼를 치켜든 미노타우로스였다.
놈의 덩치는 오우거만 했는데 거기서 끝이었다면 그냥 우량한 미노타우로스라고 여기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놈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색채 변화 없이 새까맸으며 가장 중요한 눈이 없었다.
후웅!
미노타우로스의 도끼가 허공을 가르며 내리찍어졌다. 한지수는 검을 쥐지 않은 손으로 도끼 날을 잡아냈다.
-음모?!
당황한 미노타우로스가 도끼를 빼내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도끼는 미동도 없었다. 한지수는 도끼를 놓지 않은 채 고개를 돌리며 주변을 살폈다.
그의 주위를 미노타우로스처럼 검은 마물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그것도 본래의 개체보다 훨씬 상위인 개체들로. 그는 이것이 그림자로 만들어진 가짜임을 깨달았다.
‘셰디아가 쓰는 그림자 기술보다 훨씬 상위의 기술이네.’
셰디아의 그림자 기술에는 약점이라는 게 있었다.
예를 들면 분신을 만들 경우 본체의 기량이 약화되고 그렇게 만들어진 분신 또한 본체보다 못했다.
그러나 지금 그의 시야를 차지하는 것들은 그렇지 않았다. 저들은 하나하나가 분신이 아닌 본체였고 평범한 그림자의 특성과는 달리 빛에 영향을 받지 않는 기묘한 힘을 지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