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de An Adult Game As A Former Hero RAW - Chapter (26)
그러나 오크들은 살아남았다.
그들이 살아남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있었으니까.
오아시스.
메마른 대지 한 가운데에서 찾을 수 있는 커다란 물웅덩이이다.
그러나 지구의 평범한 오아시스와는 차원이 다르다. 크기도, 효능도. 크기가 생각보다 매우 큰 것은 둘째치더라도 이쪽 세계의 오아시스는 무려 마실 수 있다고 한다.
워낙 수질이 좋아 끓이거나 하지 않아도 그냥 마실 수 있다고.
참 판타지적인 설정이 아닐 수 없지만 이것이 오크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이라고 한다.
오아시스로 농사를 짓고, 식수까지 해결할 수 있으니까.
물론 그것만으로는 부족해서 약탈이나 다니는 거겠지만.
“저, 저기요. 정말 괜찮은 거 맞죠?”
하품을 하고 있자니 누군가 불안이 가득한 얼굴로 내 옷깃을 잡아당겼다.
아무래도 오크들에게 포위당한 상태로 그들의 부족 중앙까지 끌려왔으니 불안이 이만저만이 아니겠지.
나는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진정시켰다.
“괜찮습니다. 저만 믿으십시오.”
“저도 믿고 싶기는 한데…”
그녀는 두려움이 가득한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녀의 시선을 따라 주변을 둘러보니 우리를 포위한 오크 전사들 외에도, 다른 오크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고 있었다.
그러나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있어보이지는 않았다.
오크 전사들에 비해 내뿜는 기운이 형편없었으니까.
그냥 덩치 좀 큰 인간과 다를 바 없었다.
“너희들인가? 겁 없이 우리 부족의 영역을 침범한 인간들이?”
커다란 천막 안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천막에서 나와 모습을 드러낸 오크는 다른 오크들보다 덩치가 커다랬다.
2.5m는 되어 보이는 키에 두툼한 근육.
오른쪽 어깨에는 검은 문신이 새겨져있다.
이 오크가 내뿜는 기운은 다른 오크는 물론 오크 전사들보다도 훨씬 강대했다.
“오, 오크가 우리의 말을?”
“무서워…”
“힉…”
안 그래도 잔뜩 긴장하고 있던 사람들은 커다란 오크의 등장에 크게 겁을 집어먹었다.
나는 그들을 진정시킨 후 오크에게 물었다.
“당신이 이 부족의 족장인가?”
“그렇다. 나는 록사르의 아들 루가르. 늑대 어금니 부족의 족장이다.”
“나는 클라우드. 록사르의 아들 루가르, 네게 결투를 신청한다.”
“나는 클라우드. 록사르의 아들 루가르, 네게 결투를 신청한다.”
클라우드의 갑작스러운 말에 그를 제외한 다른 일행들이 모두 얼어붙었다.
결투라니.
저 강해보이는 오크와 싸우겠다는 뜻인가?
반면 루가르는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클라우드를 바라보았다.
저 인간이 오크의 결투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신기했던 탓이다.
“결투라. 내가 어째서 너와 결투를 해야 하지?”
“오크 전사에게 있어 결투란 자신의 순수한 힘을 보여줄 수 있는 명예로운 싸움 아니었나?”
“그렇지. 그리고 넌 오크가 아니지.”
“오크가 아닌 것이 문제가 되나? 나는 명예로운 전사다. 언제나 명예로운 죽음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있지. 혹 너는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건가? 록사르의 아들 루가르.”
“하찮은 도발 따위에 넘어갈 만큼 족장의 자리는 가볍지 않다. 다시 한 번 묻지. 내 말 한 마디만 하면 죽을 벌레 같은 것과 내가 굳이 결투를 해야 할 필요가 있나?”
클라우드는 품속에 손을 넣었다. 그 순간 그의 곁에 있던 오크가 창을 휘두르려 했으나 루가르가 손을 들어 제지했다.
클라우드가 꺼낸 것은 여섯 개의 묵직해 보이는 주머니였다.
“하나당 50만 골드. 다 합쳐서 300만 골드다. 결투의 조건으로서 이것을 걸겠다. 네가 이길 경우 이 돈을 가져가도 좋다.”
300만 골드라는 단어에 하울을 제외한 사람들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300만 골드는커녕 1만 골드조차 손에 쥐어보지 않은 사람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자작가문의 후계자인 칼리오스 또한 마찬가지였다. 자작가문에 300만 골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현금으로 된 300만 골드는 없다.
현금으로 300만 골드를 준비하려면 노예와 땅을 적지 않게 팔아야 하리라.
그런 것이 클라우드의 손에서 쉽사리 나오니 놀랄 수밖에.
‘젠장, 역시 높으신 분이 맞았어..!’
칼리오스는 괜히 입방정을 떨었던 과거의 자신이 무척이나 원망스러웠다.
그러나 클라우드에게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반응이 아니었다.
“태연한 척은 그만하지? 내가 아무것도 모를 거라 생각하나?”
“무슨 말이지?”
“끝까지 발뺌하기는. 너희 오크들은 부족한 식량을 제국에서 사오고 있잖아.”
“…거기까지 알고 있었나.”
오아시스 주변에 농사를 짓고 왕국들에게서 식량을 약탈한다. 그렇게까지 해도 식량은 늘 부족했다.
농사가 늘 풍작인 것도 아니고, 부족의 세력이 약할수록 약탈이 끝나고 배당받는 식량이 적으니까.
그렇기에 대다수의 오크 부족들은 돈 될 만한 것들을 들고 제국국경에서 식량으로 바꾸어온다.
그런 부족의 상황에서 저 300만 골드라는 거금은 매우 탐스러운 열매나 마찬가지였다.
“결투에서 이겼을 때 원하는 것은?”
“나와 내 일행들의 목숨과 오늘 하루 동안의 음식, 잠자리 제공. 그리고 국경까지의 안내.”
클라우드는 처음부터 자력으로 국경까지 갈 생각은 하지 않았다.
식량도 없고, 길도 모르는 상태에서 국경까지 어떻게 가나?
그 혼자뿐이라면 모를까, 그를 뒤따르는 짐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오크와의 결투를 선택했다. 결투의 결과에 승복한다는 것은 오크의 오랜 전통 중 하나였으니까.
게다가 언젠가 오크 부족에 오긴 해야 했다. 기스가 얻을 기연을 그보다 먼저 얻어야했으니까.
“이렇게 하는 건 어떤가. 그 돈을 준다면 네가 방금 말한 모든 것들을 들어주겠다. 먹을 것과 잘 곳을 주고 국경까지 안내인을 붙여주지. 족장의 이름으로 맹세한다.”
루가르의 제안에 사람들의 안색이 밝아졌다.
쉽게 살아나갈 방법이 생겼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클라우드가 피식 웃으며 하는 말에 그들의 안색은 다시 어두워질 수밖에 없었다.
“진심으로 한 말은 아니겠지? 거기에 300만 골드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나?”
“당장 너를 죽이고 빼앗을 수 있다.”
“그렇게 해. 단 결투로.”
“내가 나서지 않아도 충분하다는 뜻이다.”
“겁먹은 거로군.”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족장의 자리는 네 도발에 움직일 만큼 가벼운 자리가 아니다. 선택해라. 돈을 내놓고 살아나가던가, 혹은 죽어서 돈을 내놓던가.”
루가르의 협박에 사람들의 안색이 전보다 더 어두워졌다.
그들은 클라우드가 300만 골드를 주기를 바랬다.
억 소리가 날 정도로 큰돈이긴 한데 뭐 어떤가?
내 돈도 아닌데.
칼리오스가 클라우드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그, 당신… 슬슬 위험한 것 같은데 그냥 돈을 주는 건 어떤가? 아무리 큰돈이어도 목숨보다는 덜 소중하지 않나.”
“그럼 이 300만 골드는 골덴바움 가문에 달아놓겠습니다?”
“뭐, 뭐?! 그, 그걸 왜 우리 가문에 달아?!”
“그쪽 가문의 적통 후계자님을 구하느라 쓴 돈인데 당연히 달아놔야죠. 왜요, 싫어요?”
“…싫은 건 아닌데… 그런 커다란 금액을 빚으로 가지고 돌아갔다간 후계자 자리가 조금 위태로워져서…”
“그럼 닥치고 얌전히 계십쇼.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300만 골드를 갚으실 수 있는 분만 손드십쇼.”
크라파는 슬쩍 손을 들려다가 참았다.
지금 그는 헤일리의 심복이 아닌, 클라우드의 동료 하울이니까.
사람들이 조용해진 것을 확인하고, 클라우드는 다시 루가르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조난당했다가 사로잡힌 인간들이 한 가닥의 희망이라도 잡아보고자 모든 것을 걸고 족장에게 결투를 걸었다. 그러나 족장은 받아들이지 않았고, 부족민들은 저항조차 못 하는 인간들을 몰살했다. 이것 참 명예로운 오크전사들이로군. 안 그런가?”
“도발은 안 통한다고 했을 텐데?”
“그랬지. 어설픈 도발 따위에 흔들릴 족장의 자리가 아니라고 했었나? 그러나 이제 그렇게 될 것이다.”
“뭐라?”
“네가 부하들에게 몰살을 명해도 난 살아나갈 것이다. 내 한 몸 빼낼 능력은 있으니까. 그리고 이곳을 제외한 모든 오크부족에게 너희의 추태를 알릴 것이다. 그들은 너희를, 그리고 너희의 조상을 조롱하고 업신여기겠지. 그때도 족장의 자리가 무거울지 한 번 보자고.”
“죽고 싶은 거냐?”
루가르에게서 심상치 않은 기운이 흘러나왔다. 그것은 명백한 적의. 강인한 전사에게서 흘러나온 살기에 사람들은 공포에 휩싸이며 몸을 떨었다.
그러나 클라우드의 표정은 여전히 차가웠다.
“말했듯이 나는 이곳에서 죽지 않는다.”
“…다른 부족들은 네 말을 믿어주지 않을 것이다.”
“믿게 만들 것이다. 300만 골드 전부를 사용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럴 바엔 얌전히 300만 골드를 내놓고 안전하게 떠나는 것이 낫지 않나?”
루가르의 말에는 어느새 적의가 사라져 있었다. 그에 클라우드도 표정을 풀고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너희가 명예를 중시하는 것처럼 나도 자존심을 중시하거든.”
클라우드의 능글맞은 웃음을 본 루가르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결투를 받아들이지. 너희 중 누구든 내게 도전하고 싶은 이는 도전해라. 전부 받아주마.”
“내가 먼저 하겠소.”
칼리오스의 호위기사 클락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아저씨가요?”
크라파와 클라우드가 눈을 가늘게 뜨며 그를 바라봤다.
못 미덥다는 표정이다.
클락은 울컥했으나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다스렸다.
“그렇소. 어차피 저 오크는 몇 명이든 상대해주겠다고 하지 않았소?”
“그건 그런데… 꼭 해야겠어요? 저 오크 은근히 세요. 잘못하면 죽을 텐데요.”
“내 비록 하울에게 지기는 했지만 어엿한 골덴바움 가문의 기사요. 죽음을 두려워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소!”
“…맘대로 하세요.”
본인이 하겠다는데 계속 말리기도 뭐하다. 클라우드는 마음대로 하라는 듯 손을 휘저었다. 클락은 자신의 주인인 칼리오스에게 시선을 돌렸다.
“저 오크의 목을 도련님께 바치겠습니다.”
“…그래, 믿겠다.”
고개를 끄덕이는 칼리오스.
누가 봐도 믿는 표정이 아니었다. 클락이 주먹을 꽉 쥐었다.
‘역시 신뢰를 잃었군.’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호위기사라는 인간이 그리 맥없이 당했으니까.
‘괜찮다. 잃어버린 신뢰는 다시 찾으면 되니까.’
우선 저 오크 족장의 멱을 따 안전을 확보해낸다. 그런 다음 몸 상태가 좋을 때 하울에게 다시 도전해 승리한다.
그렇게만 한다면 도련님의 신뢰를 되찾을 수 있다.
가문 내에서 지위가 수직하락 할 일은 없어지리라.
각오를 다지며 클락은 루가르의 앞에 섰다.
“첫 번째는 너인가?”
“그렇다. 골덴바움 가문의 기사 클락이다.”
“록사르의 아들 루가르다. 결투를 시작하지.”
클락은 검을 뽑았다. 반면 결투가 시작되었음에도 루가르는 등에 멘 검을 꺼내지 않았다. 클락이 눈살을 찌푸렸다.
‘날 모욕하겠다는 건가? 상관없다. 지금 중요한 건 자존심이 아니니까!’
“죽어라!”
클락은 앞발을 내딛으며 검을 곧게 뻗었다. 정석적인 찌르기.
그에 반해 루가르는 아무런 움직임도 취하지 않았다. 때문에 클락은 자신의 검이 루가르의 심장을 꿰뚫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뭣?”
그러나 클락의 검은 루가르의 심장에 닿지 못했다.
심장은커녕 살갗을 조금 뚫었을 뿐이다.
“무슨 근육이 돌덩이…”
도저히 믿기지 않는 현실에 클락이 당황하고 있을 때였다.
루갈는 등에 멘 대도의 손잡이를 잡았다.
한 순간이었다.
후웅!
바람 가르는 소리와 함께 허리를 기준으로 클락의 상반신과 하반신이 반으로 갈라졌다.
클락이 뒤늦게 공격을 막으려고 가져다댄 검 또한 반으로 양단되었다.
루가르! 위대한 전사!
루가르의 승리에 흥분한 오크들이 크게 소리치기 시작했다.
오크들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었으나, 그 기세에는 완전히 압도되었다.
클락이 반으로 갈라지는 모습을 막 본 참이다.
움츠러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찌르기가 근육을 못 뚫었다. 레벨 차이 때문인가?’
한편 클라우드는 앞의 결투를 떠올리며 상념에 빠져있었다.
‘저 기사의 실력을 보면 아무리 봐도 정예기사라고 봐주긴 어렵겠고, 그럼 대략 레벨이 28, 29정도 될 거란 말이지.’
루가르는 오크 부족의 족장이니 레벨이 50쯤 될 것이다. 압도적인 레벨 차이다. 기사의 공격이 통하지 않은 것이 납득이 갈 정도로.
‘그런데 단순 레벨차 때문은 또 아닌 것 같고.’
루가르의 어깨에 새겨진 문신을 보며 클라우드는 턱을 긁었다. 그러다 다음 상대를 부르는 루가르의 목소리에 크라파의 등을 떠밀었다.
“..?”
크라파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나..?”
“어. 너.”
“아니, 내가 왜 나갑니까?! 방금 봤잖아요. 나보고 죽으라는 거요?!”
“저 기사의 검은 너도 맨손으로 막았잖아. 그럼 너랑 저놈이랑 비슷한 실력인 거 아니야?”
“뭔 말 같지도 않은 소립니까!”
크라파가 버럭 소리쳤다.
그가 보기에도 저 오크는 만만찮은 상대였다. 몸 상태가 정상일 때 전력으로 싸워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호적수란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혈족인 걸 숨기기 위해 손톱, 송곳니, 혈술을 모두 사용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