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de An Adult Game As A Former Hero RAW - Chapter (68)
“…”
“입 다물고 있는 걸 보면 찔리는 게 있는 모양이지?”
포크를 쥔 손에 힘이 빠져나갔다. 대답을 못 하고 입술만 질겅질겅 씹는 그녀의 얼굴에는 분노 대신 짙은 죄책감이 가득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자벨은 다시 사납게 나를 노려봤다.
“그래, 있긴 해. 하지만 그건 나와 마르스 사이의 문제야. 당신이 끼어들 문제가 아니었다고!”
“너와 마르스 사이의 문제..? 아! 네가 또 하나 착각하고 있는 게 있구나. 마르스는 네 밀당에 질려서 여행을 떠난 게 아니야.”
“뭐?”
“말 그대로야. 아무리 네 밀당이 좆같았어도 그렇지, 마르스가 고작 그걸로 널 포기할 리가 없잖아? 걔가 널 얼마나 좋아했는데.”
“그럼 뭐야. 뭐 때문에 마르스가 날 떠났다는 건데?!”
“그거 말인데… 너 어젯밤에 뭐했냐?”
“어젯밤? 갑자기 그게 무슨…”
갑자기 그걸 왜 묻냐는 듯 표정을 일그러트리던 이자벨이 멈칫했다.
이내 그녀의 동공이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설마… 아니지..?”
현실 부정이라도 하듯 고개를 젓는 이자벨.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나는 싱긋 웃었다.
“마르스와 함께 봤어. 너와 남작의 아들이 즐겁게 대화하는 모습을.”
“아… 아아..!!!”
커다란 충격이라도 받은 듯 이자벨은 순간 휘청거렸다. 내가 손목을 붙잡고 있었기에 넘어지는 일은 없었다. 그녀는 죄인이라도 된 것처럼 바닥을 바라보며 덜덜 떨고 있었다.
“거, 거짓말…”
“진짜야. 그게 아니라면 네 말대로 마르스가 왜 널 두고 여행 따위를 떠났겠어? 이야, 아주 깨가 쏟아지더라? 정말 행복해 보이는 연인같았…”
“날 그딴 새끼랑 엮지 마!!!”
핑챙은 갑자기 고개를 치켜들더니 사납게 소리쳤다.
“뭐야,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 오밤중에 둘이서 만날 정도면 사이좋은 거 아니야?”
“전혀! 그건 그 남자가 자꾸 들러붙는데, 남작의 아들이어서 어쩔 수 없이 몇 번 어울려주는 것일 뿐이야. 그 남자한테는 어떤 관심도 없었다고!”
“그러냐? 하지만 마르스는 다르게 느꼈을걸.”
“그건 둘이서 대화로 오해를 풀면 되는 부분이었어! 당신만 아니었어도…”
“그럼 그 대화라는 거, 진작 좀 하지 그랬어?”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웃음기를 쫙 빼고 말했다. 갑자기 달라진 태도에 핑챙이 당황하는 것이 보였다. 나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왜 그 대화라는 걸 진작 하지 않은 거지? 네가 남작 아들에 관한 일을 미리 말해줬더라면 마르스가 그런 참담한 기분을 느낄 일도 없었을 거 아니야.”
“그, 그건 어쩔 수 없었어. 상대는 남작의 아들이란 말이야. 마르스가 안다고 한들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걱정거리만 늘 거야. 그래서 말 안 한 거라고!”
“그러니까… 마르스를 지키기 위해서 그런 거다?”
“그래!”
내가 확인하듯 묻자 도리어 자신감이 생겼는지 크게 대답하는 이자벨.
나는 혀를 찼다.
“지랄하는군.”
“…뭐?”
“마르스는 막 성인이 된 어엿한 한 명의 남자다. 부모에게서 독립도 할 수 있을 정도지. 그런 녀석을 네가 보호한다고? 네가 뭔데?”
“난..!”
“소꿉친구라고? 그건 어렸을 적부터 친하게 지내온 오랜 친구를 뜻하는 단어 아닌가? 그리고 친구는 동등한 관계이지. 애새끼 돌보는 어머니 같은 게 아니란 말이야.”
“무슨..!”
“물론 네가 왜 그런 사고방식을 가지게 됐는지는 잘 알아. 마르스는 고아 새끼고 너는 마을에서 잘나가는 부모님이 있지. 마르스는 적당히 잘생겼고 넌 존나 예뻐. 마르스는 돈도 친구도 없지만, 넌 용돈도 많이 받고 친구도 많아. 그러니 어느 순간부터 그런 심리가 깔렸을 거야. 아, 쟤는 나보다 급이 낮구나. 내가 보호해줘야 하는 아이구나 하는.”
“말도 안 되는 개소리 하지 마! 난 마르스를 그딴 식으로 여긴 적 없어!”
“개소리라니? 이거 하나면 전부 설명이 가능한데.”
네가 마르스를 보호하겠다며 남작 아들과의 일을 숨기는 것
마르스는 네가 자길 좋아하는 걸 모르는 것. 그에 반해 너는 마르스가 널 좋아하는 걸 아는 것.
그리고 밀당이라는 개짓거리를 한 것까지.
“모든 게 심리적 우월감이 바탕으로 깔려서, 마음에 여유가 있지 않은 이상 불가능한 일이야. 그러니 인정해. 넌 마르스를 너보다 아랫급으로 보았으며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고 있어. 삶의 동반자가 아니라.”
내가 말을 끝마쳤을 때 이자벨이 지은 표정은 처참했다.
사실 내 이야기에는 궤변과 과장이 많이 섞여 있었다. 그런데도 저런 표정인 걸 보면 찔리는 게 많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사실 네 생각이 맞아. 마르스는 보호해줘야 할 존재지.”
이자벨의 눈빛이 이상하게 변했다.
이때까지 실컷 깎아내리다가 갑자기 자기를 옹호해주는 것 같으니 그런 거겠지.
나는 다시 웃음기를 되찾으며 말했다.
“그도 그럴 게 고아잖아? 부모라는 정신적 지주가 없단 말이야. 마음이 강한 애들은 이겨낼지 몰라도 약한 애들은 무너져버려. 내가 보기에 마르스는 후자였는데… 네가 잘 도와줬어. 반으로 쪼개질 뻔한 마음을 이자벨 네가 잘 이어붙였지. 그렇기에 마르스에게 있어 넌 누구보다 소중한 존재였던 거야.”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그런 소중한 사람.
“그런 소중한 사람에게 버려지는 기분… 예상할 수 있겠어?”
이자벨의 몸이 크게 떨렸다. 그녀는 듣고 싶지 않다는 듯 내게서 몸을 빼내려 했지만…
어림없지!
나는 붙잡은 그녀의 손목을 놓아주지 않았다.
“참고로 난 같은 고아 출신이라 잘 알아. 그 기분을 이제 설명해줄게?”
이자벨의 손목을 붙잡고 남은 손으로 내 머리를 가리켰다.
“먼저 머리에 피가 쏠려. 얼굴은 붉어지고 핏줄은 흉하게 튀어나오지. 뜨거운 불이 머리 안에서 끓는 느낌이고 눈알은 뒤집어질 것 같아.”
다음은 눈을 가리켰다.
“눈물이 나오는 건 당연하겠지? 그런데 이게 진짜 멈추지를 않아서 나중에는 아예 눈물이 싹 말라버려. 우는데 눈물이 안 나온다고. 그럼 눈물 대신 뭐가 나오는 줄 알아? 피. 피눈물이 나와. 비유가 아니라 진짜 실핏줄이 끊어져서 핏물이 흘러내려. 그런데 사실 앞엣것들은 별거 아니야.”
마지막으로 가슴을 가리켰다.
“여기에 비하면 말이지. 이거는 어디보자…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날카로운 걸 찾았다. 허리에 찬 검은 너무 크고… 나이프는 안타깝게도 안 보이네.
씁, 어쩔 수 없다.
나는 이자벨에게서 포크를 뺏은 후 그녀의 손을 놓아주었다.
“그래서 가슴은 말인데…”
그녀에게 내 한쪽 손바닥과 포크를 잘 보여준 다음…
그대로 손바닥을 포크로 찍었다.
이자벨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놀랐다.
헙 하고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자벨은 아니고 아침드라마 구경하듯 밥 먹으면서 엿듣던 마을 주민들이다.
나는 그들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조금 더 크게 이야기했다.
“이렇게 커다란 뭔가가 가슴에 박힌다? 이게 엄청 아파. 어느 정도냐면 입을 열어도 말이 안 나올 정도로. 막 성대가 막힌 것 같아. 근데 이게 끝이냐면 그건 또 아니거든.”
손바닥에 꽂은 포크를 마구 휘저었다.
그러자 피 몇 방울이 이자벨의 얼굴에 튀었다.
아, 미안.
사과했지만 이자벨은 뭐라 대꾸하지 않았다. 그저 홀린 듯이 포크에 꿰뚫린 손바닥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이렇게 쑤셔지는 기분이야. 가슴에 있던 소중한 무언가가 무너지는 느낌이지.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
“…”
“마르스의 심정이 어땠을지. 내가 왜 그 녀석에게 여행을 추천했는지 이해가 가냐고.”
이자벨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떨구고서 가만히 있기만 했다. 뚝뚝 떨어져 바닥을 적시는 눈물을 보고 나서야 그녀가 울고 있음을 깨달았다.
저 모습을 보면 너무 괴롭혔다는 느낌이 들기는 하는데, 어쩔 수 없다.
운명이라는 건 자석과도 같아서, 완전히 갈라놓지 않으면 원래대로 돌아가려고 한다.
두 사람의 행복을 빌어주겠답시고 어중간하게 대했다간, 마르스의 비극적인 운명이 다시 돌아올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니 조금의 여지도 주지 않기 위해선 이렇게 완전히 갈라놓을 수밖에 없다.
나는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고 위로하듯 토닥였다.
“너에겐 미안하지만, 마르스를 위해서라도 그 녀석을 잊어줘.”
“….해.”
“당장은 힘들겠지만 언젠가 네게도 좋은 인연이 생길 거야. 어쩌면 지금 만나고 있는 남작의 아들이…”
“…방…말해.”
응?
“뭐라고? 크게 말해봐.”
“마르스가 떠난 방향을 말하라고.”
이자벨이 고개를 떨궜던 고개를 들며 말했다.
일그러지고 난리도 아니었던 전과는 달리 차분한 표정이었다.
“…너 내 말 제대로 이해한 건 맞아?”
“이해했어. 내가 마르스에게 평생 트라우마로 남아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커다란 상처를 줬다는 거잖아?”
“잘 이해했네. 그런데도 그런 소리가 나와?”
“이해했으니까 더더욱 물어봐야지. 마르스가 나 때문에 지금 심적으로 많이 힘들다는 거 아니야. 그럼 내가 찾아가서 사과해야지.”
“…아니, 그러니까 사과로 메워질 상처가 아니라니까? 이거 안 보여?”
나는 포크에 꿰뚫린 내 손바닥을 그녀의 눈앞에서 흔들었다.
그것을 보고서도 이자벨의 눈빛은 변함없었다.
“메워질 만큼 사과할 거야. 마르스가 원한다면 무릎도 꿇을 거고. 만약 평생 트라우마로 남는다면 그 트라우마가 생각도 안 날 만큼 사랑해줄 거야.”
휘이잉.
이자벨을 중심으로 공기가 심상치 않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단순한 바람이 아니다.
날카로운 예기를 띈 바람의 칼날이었다.
“그러니까 어서 마르스가 간 방향을 말해.”
원소술사로 각성한 이자벨이 흩날리는 바람칼날의 중심에서 말했다.
갑자기 각성해버린 이자벨을 보며 나는 이마를 탁! 치고 말았다.
와… 초중반에 하는 각성을 여기서 한다고?
여신, 이 시발년 진짜.
바람칼날을 흉흉하게 내뿜는 이자벨을 보며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저건 말려도 안 되겠지.
“설마 그 꼴로 찾으러 갈 생각은 아니지?”
“뭐?”
무슨 상관이냐는 표정을 보아하니 맞는 모양이다.
손톱이 부러지고 발바닥에서는 피가 줄줄 흐르는 상태에서 여행을 떠나겠다고?
한숨이 나오려는 것을 참으며 손가락으로 2층 계단을 가리켰다.
“아까 내 동료들 봤지? 올라가서 내 이름 대고 오필리아라는 수녀에게 치료받아. 겸사겸사 남는 장비도 받고.”
“무슨 속셈이야?”
“무슨 속셈이긴. 마르스 찾으러 간다며? 죽으러 가는 게 아니라. 그럼 가서 치료받아.”
이자벨이 눈을 가늘게 떴다.
“…진짜 무슨 속셈이야? 지금까지는 나와 마르스를 떨어뜨리지 못해 난리였으면서, 이젠 찾으러 가는 걸 도와준다고?”
“난 여전히 네가 마르스랑 엮이지 않았으면 해. 그런데 넌 내가 말린다고 멈출 것 같지도 않고, 그 꼴로 무작정 나갔다간 죽을 것 같거든. 그리고 네가 죽으면 마르스는 날 원망하겠지. 그건 사양이야. 그러니 올라가서 치료받고 간단한 장비를 받은 다음에 내려와. 마르스가 떠난 방향은 그 후에 알려줄 테니까.”
“…”
이자벨은 미심쩍어하면서도 자기 꼴이 영 아니라는 건 알았는지 2층으로 올라갔다.
잠시 후, 치료를 받고 가죽 갑옷과 레이피어로 가볍게 무장한 이자벨이 내려왔다.
“이제 말해. 마르스는 어디로 갔어?”
“북쪽의 제국. 아마 라이마르 도시로 갔을 거다.”
“…확실해? 혹시나 거짓말은 아니겠지?”
이자벨 주변의 흉흉한 바람이 거세졌다.
“거짓말이면 네가 뭐 어쩔 건데? 날 죽이기라도 하게? 그런 능력이 있는지는 둘째치고 마르스에게 원망 안 받을 자신 있냐?”
이자벨은 입술을 콱 깨물었다.
“…거짓말이면 두고 봐.”
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여관을 떠났다.
나도 여관에서 나와 북쪽으로 떠나는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당연하지만 이자벨에게 알려준 방향은 거짓이다.
마르스는 동쪽의 카르타 왕국으로 향했다.
그 때문에 당분간 두 사람이 만날 일은 없겠지.
당분간은…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만.’
마르스와 이자벨이 각자의 길을 가게 만들려던 내 계획은 이미 비틀어졌다.
이자벨은 적극적으로 마르스를 찾아다닐 것이고, 언젠가 두 사람은 재회하게 될지도 모르지.
그게 마르스에게 있어 행복한 미래라면 괜찮다.
그러나.
‘만약 비극이라면…’
내가 여신님께 조금 많이 화가 날지도 모르겠다.
이자벨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고 나서야 나는 한숨을 쉬며 등을 돌렸다. 그리고 살짝 놀랐다.
안색이 새파래진 네리아가 여관 벽에 기대어 있었으니까.
“네리아, 너였어? 방에 없던데… 여기서 뭐 하고 있어?”
여관 앞에서 누가 엿듣고 있는 건 알고 있었는데, 그게 네리아였다니. 내 물음에 네리아는 크게 당황하더니 말을 더듬었다.
“아, 아니… 그게… 엿들으려 한 게 아니라… 들어갈 상황이 아, 안 돼서…”
“그래? 하긴 상황이 조금 그렇긴 했지. 들어가서 아침 먹자. 식사 후에 바로 출발할 거야.”
“클라우드 그, 그게 말인데… 하루만 더 머물면 안 될까? 나 컨디션이 조금 안 좋아서…”
“컨디션? 그게 무슨…”
뭔 소린가 싶어 의아해하다가 그녀에게서 흘러나온 독한 술 냄새를 맡았다.
미간이 찌푸려졌다.
“설마 밤새 술 마시다가 온 거야? 내가 언제 떠날지 모른다고 말했는데도?”
“아, 아니 그게… 미, 미안해…”
닭똥 같은 눈물이 그녀의 눈가에서 흘러내렸다.
“아니, 뭘 또 울기까지… 하아, 알았어. 내일 출발할 테니까 들어가서 쉬어.”
“미안해…. 미안해…”
몇 번을 괜찮다고 말해도,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도, 그녀의 눈물은 멈출 줄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