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de An Adult Game As A Former Hero RAW - Chapter (71)
“우리는 방금 이곳에 도착했기에 상황을 잘 모른다. 자세한 상황설명을 해주었으면 좋겠군.”
나는 그가 부정적인 생각에 빠져들 시간을 주지 않기로 했다.
“알겠습니다. 이미 어느 정도 듣고 오셨겠지만 현장의 상황은 또 다른 법이니 말입니다. 일단 함께 나가시죠. 용사님과 일행분들이 머물 막사로 가면서 설명해드리겠습니다.”
막사 밖으로 나오자 랜돌프는 우리를 인도하며 설명을 시작했다.
“동원된 병사의 수는 대략 6000명 정도입니다.”
“제법 많군.”
“공작가가 지닌 병력의 절반 이상을 동원했습니다. 그만큼 심상치 않은 사태이니까요. 문제는 숲이 워낙 커서 이 숫자로도 완전히 덮을 수가 없다는 겁니다. 억지로 하려면 할 수야 있겠지만…”
“방어선이 허술해지겠지. 그러면 뚫리는 방어선이 하나둘씩 생겨날 테고, 그게 계속 이어지게 되면.”
“아수라장이 펼쳐지겠지요.”
아수라장 정도면 다행이지.
방어선이 무너지는 순간 학살이 일어날 거다.
하나로 규합되지 못한 인간의 군대는 오합지졸에 불과하니까.
“방어선이 없는 방향으로 빠져나간 마물들은 어떻게 처리하고 있지?”
“기사들을 보내 처리하고 있습니다.”
“인근 마을의 주민들은 대피시켰나?”
“숲 인근 다섯 개의 마을 주민들 모두 무사히 도시로 피난했습니다.”
“그거 다행이군.”
엄한 곳에 신경 쓸 일 없이 베히모스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겠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랜돌프가 의외라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이 보였다.
“왜 그러지?”
“…그동안 제가 들어왔던 소문과는 상반되는 분위기이셔서 말입니다. 역시 소문 따위는 믿을 게 못 되는군요. 이 나이를 먹고도 헛소문 따위에 휘둘리다니…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부끄러울 것까지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내가 폐급이었던 건 사실인데.”
“폐급이라니. 그런…”
내 자학에 랜돌프가 곤란해할 때였다.
“지휘관님! 마물들의 습격입니다!”
말을 타고 달려온 병사가 상황을 보고했다.
랜돌프의 표정이 진지하게 변했다.
“어느 방어선에서 일어났지?”
“제3 방어선입니다. 마물들의 수가 생각보다 많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알았다. 곧장 가지. 용사님은 막사 안에서 기다려주십시오.”
“아니. 우리도 간다.”
“…위험할지도 모릅니다.”
“용사에게 위험을 따지는 건가?”
랜돌프는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나와 내 일행들은 말에 올라 랜돌프와 지원병들을 따라 3 방어선을 향해 달렸다.
오래 지나지 않아 숲 입구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이는 병사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일렬로 선 방패 병들이 선두에서 마물들을 막아내고, 그 뒤에 선 병사들이 검과 창으로 마물을 찌르거나 베었다.
병사들이 최선을 다해서 막고 있으나 마물의 수가 너무 많았다.
방어선은 언제 뚫려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위태로웠다.
“다행히 제시간에 도착했군. 전군! 빠르게 합류해서…”
말을 채찍질했다.
방어선에 가까워져 감에도 말의 속도는 느려지기는커녕 더욱더 빨라졌다. 나는 달리는 말에서 일어섰다. 타이밍을 보다가 그대로 말을 박차고 뛰었다.
용사님!
경악한 랜돌프의 목소리가 들려올 때는 이미 방어선 너머로 넘어온 상태였다.
마물 무리 뒤쪽의 빈 곳에 착지했다.
크르릉…
갑자기 나타난 인간을 경계하는 건지, 마물들은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기만 할 뿐 달려들지 않았다.
덕분에 나는 마물들의 상태를 살필 수 있었다.
‘역시 평범한 짐승 마물은 아니야.’
근육이 기형적으로 커졌거나, 뿔이 생겼거나, 아니면 외피가 단단해졌거나.
여러 가지 방향으로 강화되어 있었다.
아마 베히모스가 등장한 탓이겠지.
‘숫자만 앞선다면 기사까지 죽일 수 있다.’
주변을 잘 살펴보면 갈가리 찢어진 기사들의 시신이 바닥에 나뒹구는 것이 보인다.
많지는 않다.
네 명 정도로 추정된다.
이곳에 시신이 뒹구는 것을 보면, 병사들이 버티는 동안 마물 무리를 섬멸할 생각이었던 것 같다.
크르르…
컹!
마물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커다란 뿔이 달린 늑대와 앞다리에 굵직한 근육을 가진 멧돼지, 그리고 뾰족한 송곳니를 드러낸 호랑이가 동시에 덤벼들었다.
나는 검을 뽑았다.
[난격]한 호흡에 짐승 세 마리의 목을 떨어트렸다. 아무리 베히모스에 의해 강화된 짐승들이라지만, 내 레벨도 예전과는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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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v.42
힘 : D(312)+(62)
민첩 : D(301)
내구력 : E(266)
마력 : E(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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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에서 나왔을 때 확인한 내 스테이터스.
장비나 다른 장신구의 효과를 제외한 순수 스탯이다.
나보다 레벨도, 스탯도 한참 낮은 짐승 마물들에게 [늑대 죽이기]와 같은 단일 공격 스킬을 사용할 필요는 더 이상 없었다.
[난격]과 같은 다중 공격 스킬로도 놈들을 일격에 죽이기에는 충분했으니까.나는 마물들 사이로 파고들어 검을 휘둘렀다.
.
.
.
.
.
“네리아, 혹시 수건 챙겨온 거 있어?”
“응. 챙겨왔어. 내가 닦아줄게.”
“됐어 내가 알아서 할게.”
“응… 알았어…”
“용사님 어디 다치신 곳은 없으신가요?”
“여기저기 물리고 긁혔어. 숫자가 깡패는 깡패야.”
“다행히 경상이네요. 바로 치료해드릴게요.”
수십 구나 되는 마물들의 시체와 피가 바닥을 뒤덮었다. 보기만 해도 끔찍한 그곳 위에서 용사와 그의 파티원들은 태평하게 대화를 나눴다.
그 광경을 본 병사들은 기가 질리고 말았다.
특히 랜돌프는 용사를 쳐다보며 경악하고 있었다.
클라우드에 관한 소문은 헛소문이었다고 치부하기로 한 그였다. 그러나 아무리 헛소문이더라도, 무능 용사라고 불리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 아닌가?
냉철한 모습을 보여주는 클라우드여도 무력만큼은 약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약하기는커녕 기사조차 집어삼킨 마물 무리를 홀로 격퇴해 버렸다.
랜돌프는 클라우드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용사님. 혹시 다른 용사님들도 이 정도는 가볍게 해내십니까?”
클라우드는 자신의 몸에 묻은 피를 닦는 것을 잠시 멈췄다. 바닥에 굴러다니는 마물들의 시체를 둘러보고선.
“어.”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랜돌프는 뭐라 더 물어보려 하다가 입을 다물었다.
마땅히 할 말이 안 떠올랐다.
주둔지에 도착한 후로 방어선을 노리는 마물들을 처리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일주일 정도가 지나자 주둔지에 기스 파티가 도착했다. 오자마자 귀찮게 굴 거라고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기스는 내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 대신 다른 사람이 날 귀찮게 했다.
“그래. 아드레아나 살리에르. 대화가 하고 싶다는 건 알겠어. 그런데 꼭 이 밤중에 찾아와야 해?”
이 꼭두새벽에 대화를 하고 싶다며 기스의 동료가 내 막사로 찾아왔다.
네리아와 오필리아 때도 그렇고 얘도 그렇고.
기스랑 엮인 애들은 전부 시간관념이라는 걸 잊어버리는 걸까?
제발 아침에 와. 시발 새끼들아…
“네 검의 폼멜. 어디서 났어?”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드레아나는 제 하고 싶은 말만 했다.
시발년…
내가 한숨을 내쉬며 아무 대답도 하지 않자 그녀는 말을 이었다.
“네 어머니께 물려받은 거지?”
“맞아. 그런데 네가 무슨 상관이야?”
“…네 어머니가 설명 안 해주셨어?”
“설명? 뭔가 말하려던 것 같기는 했는데… 그 전에 돌아가셨어.”
아드레아나가 찾아온 의도를 알아내기 위해 적당히 거짓말을 했다.
그러자 그녀는 혀를 한 번 차더니 내 폼멜을 가리키며 설명을 시작했다.
“네 폼멜의 문양. 그건 우리 살리에르 가문의 문양이야. 그 폼멜은 우리 아버지가 정을 나눈 여성에게 주는 선물이고. 이제 내가 왜 찾아왔는지 이해가 돼?”
이해했다.
‘이 폼멜의 주인이 살리에르 가문의 사생아라는 거잖아.’
그런데 이 폼멜의 진짜 주인은 사련쟁투에서 죽었고, 내가 그걸 주웠다. 그것 때문에 얘는 나를 이복 남매라고 착각하고 있다.
그렇다면 내가 해야 할 행동은 간단하다.
“나이는?”
“스물넷.”
“눈나!”
“꺄악?!”
나는 아드레아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눈나가 생겼다.
피 한 방울 안 섞인.
“눈나!”
“꺄악?!”
클라우드가 와락 끌어안자 아드레아나는 적지 않게 당황했다.
‘이런 반응은 예상 못 했는데.’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면서 믿으려 하지 않거나.
왜 자신과 어머니를 지금까지 방치했냐며 분노하거나.
혹은 한순간에 평민에서 귀족으로 신분 상승 했다며 의기양양해 하거나.
셋 중 하나라고 예상했다.
지금까지 살리에르 가문의 사생아랍시고 나타난 이들이 다 그러했으니까.
그러나 클라우드는 누나! 라고 외치며 와락 안겨 왔다.
마치 정말 헤어진 가족을 만나기라도 한 것처럼.
아드레아는 그게 좀 어이없었다.
헤어지기는커녕 평생 만나본 적도 없는데, 어떻게 이런 반응을 보인단 말인가?
‘아니 그보다…’
너무 붙었잖아!
아무리 배다른 동생이라고 한들 얼마 전까지 타인이라고 생각했던 남자이다. 갑자기 끌어안아 오는 것이 달가울 리가 없었다.
아드레아나는 클라우드를 확 밀쳐냈다.
“아… 미안해요. 누나. 가족이 생겼다는 게 너무 기쁜 나머지 실수했어요.”
클라우드는 미안하다는 얼굴로 아드레아나에게 사과했다.
아드레아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아까는 잠 좀 깨웠다고 죽일 것처럼 굴더니 이젠 순해졌네?”
“제 누나라면서요.”
“정확히는 배다른 누나지.”
“그게 뭐가 중요해요. 다시 가족이 생겼다는 게 중요하지.”
클라우드는 환하게 웃으며 자신의 과거사를 털어놓았다.
어린 시절부터 아비 없는 부모라고 마을에서 박해받았으며, 그런 와중에 어머니는 병에 걸리셨고, 돌아가시기 직전에 살리에르 가문의 폼멜을 이어받았다.
수많은 이복동생을 마주해왔던 아드레아나로서는 지긋지긋한 레파토리였다.
그런데 지금은 듣고 있는 클라우드의 이야기는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비록 재미있는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경청하게 되고 조금이지만 감정을 이입하게 되었다.
마을 사람들에게 박해받은 이야기를 할 때는 눈살도 찌푸렸다.
아드레아나가 다른 이복동생 때와는 달리 클라우드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클라우드가 아드레아나라는 누나가 생겼다는 것에 순수하게 기뻐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만난 모든 이복동생은 살리에르 가문이나, 그녀를 자신의 비루한 인생을 바꿔줄 도구로만 보았다.
클라우드처럼 순수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렇기에 처음 본 이복동생의 순수한 마음에 그녀의 마음이 동한 것이다.
이야기가 끝났을 때, 아리아드네가 클라우드에게 느끼는 심리적 거리감은 많이 줄어있었다.
“많이 힘들었겠네. 그동안 방치해둬서 미안해. 앞으로는 누나가 많이 챙겨줄게.”
“고마워요. 그럼, 말 나온 김에 하나만 부탁해도 돼요?”
“…부탁?”
아드레아나의 미간이 꿈틀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