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pection RAW novel - chapter 122
웃긴 거는 조필건 회장이 그런 인물이라는 것을 변영상도 이미 잘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다만, 자신이 그 대상이 아니었기에 지금까지 공감하지 못했을 뿐.
“흥. 씁쓸하네. 딱히 내가 잘못한 게 없는 것 같은데.”
“언제 우리가 잘못해서 가나요. 못해서 가지. 잘 아시면서.”
김현준. 사실 지금 김현준이 하던 일은 그전에는 변영상이 했다.
돌이켜보니 그게 조필건 회장이 사람을 키우는 방식이다.
처음에는 가까이 두면서 일을 가르친 뒤, 어느 정도 경험이 쌓이면 사업을 맡긴다.
그래서 실패하면 제거하고 그 밑에 있는 놈에게 맡긴다.
퍽!
변영상이 잠시 감상에 빠진 사이, 김현준이 뒤에 있던 ‘검은 코트’에게 눈짓을 했고, 지시를 받은 부하는 들고 있던 각목으로 그의 종아리를 후려쳤다.
윽!
“으으···너 이 새끼···.”
“죄송해요, 변 이사님. 원래는 곱게 보내드리는 게 계획이었는데, 변경되었습니다.”
“으으···.”
“그러길래 잘하시지, 그러셨어요. 칠칠찮게 위치추적이나 당하시고. 감이 많이 떨어지셨어요.”
“흥. 너는 언젠가 안 당할 것 같아?”
김현준은 자신을 노려보는 변영상의 눈을 마주 봤다. 둘의 나이 차이가 십 년이 조금 넘는다.
“방금 그 말. 슬프네요. 변 이사님도 그런 말을 할 줄이야.”
“결국 너도 나처럼 갈 거야.”
“어차피 다 죽어요. 죽는 게 무서웠으면 애초에 이 바닥에 들어오지 말았어야죠. 그래도 변 이사님은 제가 좀 존경했어요. 이 일 있기 전까지는 일 처리도 깔끔하시고. 외로운 늑대 같았다고나 할까. 다른 분들과 다를 줄 알았는데···. 이렇게 보고 있으니까, 별반 차이 없네요. 말도 많으시고.”
“······.”
“회장님께서 그 검사랑 형사에게 확실하게 보여주라고 해서 곱게는 못 보내드릴 것 같고. 그래도 존경하시던 분이니까 죽이고 자를게요. 개인적으로 감정이 있어서 그런 거는 아니니까, 이해해주시고요. 야.”
김현준의 지시에 같이 온 ‘검은 코트’ 한 명이 칼을 꺼내 다가왔다.
“잠깐.”
“이사님, 이러시면 이사님만 더 고통스럽습니다. 아시잖아요. 얘들 프로라는 거.”
“갈 때 가더라도 술이나 한잔 먹고 가자.”
황당한 요구에 김현준은 웃음이 터진다.
“네? 하하하. 왜 이러십니까, 변 이사님? 그래도 한때는 회장님한테 가장 인정받으셨던 분이. 깔끔하게 가시죠. 야, 그어.”
“잠깐, 잠깐.”
변영상은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저거 뭐야? 전화기 안 뺏었어?”
“빼앗았는데요. 이사님이 사용하던 2G폰 여기 있습니다.”
“그럼 저건 뭐야?”
변영상의 손에 들린 스마트폰에 집중된 눈들.
“뭐긴 뭐야, 검사 핸드폰이지.”
“?”
“아직 멀었어, 김 실장. 칠칠찮게 위치추적이나 당하고.”
변영상의 발언에 김현준은 주위를 둘러봤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멀리서 사이렌 같은 게 들린 것 같기는 한데 경찰 사이렌은 아니다.
“후훗. 변 이사님, 무슨 쇼를 하는지 모르겠지만, 남아있던 일말의 존경심도 없어지려고 합니다.”
검사가 그의 주머니에 전화기를 넣어두었으리라고는 추호도 상상하지 못한다.
“지금 여기서 나 죽이면 너도 죽는 거야. 확인해봐, 이거 그 검사 전화기 맞으니까.”
변영상은 전화기를 김현준의 발밑에 던졌다. 마지막 발악이다. 태연하게 연기하고 있지만, 일 초라도 빨리 경찰이 들이닥치기를 빌 뿐이다.
“상관없어요. 방금 제가 한 말 못 들으셨습니까? 어차피 게네들한테 보여주려는 거니까. 진태야, 빨리 처리하고 가자.”
“예.”
김현준의 명령에 ‘검은 코트’가 변영상에게 다가왔다. 바로 그때,
탕!
조선소 안에 총성이 울려 퍼진다.
“경찰이다. 움직이지 마!”
그와 함께 우렁찬 인아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김현준을 비롯해 그 자리에 있던 열댓 명의 검은 코트들은 일제히 목소리가 들려온 쪽을 쳐다봤다.
“움직이면 죽어.”
그곳에는 주연과 인아가 서 있다.
“진짜 겁이 없으신 분들이네. 단둘이 오셨어요? 그러기에는 지금 상황이···.”
“아니. 단둘이 온 거 아닌데.”
부우우우웅-
삐이익- 삐이이이-
동시에 거친 엔진소리와 함께 조선소 안으로 들어오는 형사기동대 차량들. 그제야 번쩍이는 적록 불빛과 함께 울리는 사이렌.
열댓 명이 넘는 형사들이 차에서 내리자, 김현준의 표정은 조금 전 변영상의 표정과 같아진다.
“그러길래, 잘하지 그랬어, 김 실장.”
사이코패스 (8)
형사기동대 승합차 안,
검사는 손목의 수갑을 풀어주더니만 대뜸 악수를 청했다.
“뭐야, 이건? 나중에 정치라도 하려고? 흥.”
아니꼬운 눈초리로 쏘아보며 묻자,
“넌 투표 못 해.”
싸늘한 목소리의 답변이 돌아왔다.
“감옥 가면 투표 못 한다고. 넌 오래 들어가 있을 거야.”
공직선거법 제18조 2항에 의거하여,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금고의 형의 선고를 받고 그 집행이 종료되지 아니하거나 그 집행을 받지 아니하기로 확정되지 아니한 자」는 선거권이 없다.
법을 모르는 변영상은 주연의 대답을 이해하지 못했다.
“건방진 새끼.”
“이 건방진 새끼가 방금 네 목숨을 구했어.”
“잊었나 본데. 애초에 내가 여기 끌려온 이유가 그 건방진 새끼 때문이야.”
고마움 따위는 느끼지 못하는 자였지만 어차피 기대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살려면 그 건방진 새끼의 손을 잡는 게 좋을 텐데.”
주연은 내민 손을 거두지 않았다. 역시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망정, 다시 한번 시도해 보고 싶다.
“흥. 그래서 뭐?”
자기보다 스무 살 가까이 어린 검사를 한참 동안 노려보던 변영상은 그가 내민 손을 잡았다.
사이코패스라고 바보는 아니다. 지금 그를 살려줄 수 있는 사람은 나주연밖에 없었다.
악수하자는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딱히 궁금하지도 않다.
“동맹이라도 맺자는 거야 지금?”
변영상은 ‘정의로운 손’을 잡았다.
-*-
「변영상 극장입니다.」
‘변영상 극장? 아, 거기다!’
2년 전 비슷한 곳에 온 적이 있다.
자살한 이준성 씨 어머니인 박효순 할머니의 손을 잡았을 때도 이랬다.
눈앞의 큰 화면에 수십 편의 영화 포스터와 정보들이 나열되어 있다. 역시나 모든 영화의 주인공은 변영상이다.
···
「뭐 보실래요?」
현재의 변영상과 비슷하게 생긴 직원이 건방진 말투로 묻는다.
“다.”
-*-
“지금 뭐 하자는 거야? 눈싸움이라도 하자는 거야?”
일반적인 악수보다 좀 더 오래 손을 잡고 있었더니 변영상이 비아냥거렸다.
“이 쓰레기 같은 놈을 그냥 죽게 놔둘 걸 그랬나, 잠깐 후회 중이었어.”
“뭐라고 이 새끼야?”
“그래도 이렇게 된 게 단순히 우연은 아니겠지. 네게 갱생이 기회를 줄게. 조필건을 상대로 증언대에 서면 나를 만나기 이 전의 죄는 묻지 않겠다. 어쩔래? 증언할래, 말래.”
조필건을 상대로 증언이라···. 흥정이 필요한 사항이다.
“그럼 내가 얻는 게 뭔데?”
“넌 이미 얻었어.”
“?”
“잊었어? 내가 오 분만 늦게 왔어도 넌 이미 죽었어.”
검사의 표정과 말투가 달라졌다.
“애초에 나를 여기로 몰아넣은 게 너였잖아.”
“그러니까, 잊지 말라고. 내가 널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다는 걸.”
농담이 아니다. 여태껏 상대하던 검사들과는 완전히 다른 부류다.
“너 혼자서는 조 회장 상대 못 해.”
“그건 네가 신경 쓸 일이 아니고.”
“흥. 방금 조 회장 상대로 증언해달라고 부탁한 게 누군데?”
“부탁한 거 아니야.”
명령이든, 부탁이든,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든, 뭐라고 불러도 다르지 않다. 주연 앞에서 허세를 부리고 있지만, 변영상은 거절할 수 없다.
“내 증언 하나 갖고는 그 사람 어떻게 못 해.”
“그건 내가 걱정할 테니까, 너는 지난 10여 년간 조필건하고 관련되는 범죄는 모두 털어놓는 게 네 신상에 좋을 거야. 하나라도 감추려고 하면 너 말고 김현준이를 증언대에 세울 거니까.”
“흥. 김현준이 그 새끼는 좆도 몰라. 회장 밑에서 따까리 짓이나 하는 거지.”
“과묵한 타입인 줄 알았더니 의외로 사설이 많네. 살인 청부만 증명해도 평생 감옥에 보내.”
“흥.”
“자, 밤이 늦었다. 밀당은 여기까지 하고 나머지는 경찰서에서 불어. 다음 주에 보자.”
주연이 나가려고 하자, 변영상이 잡는다.
“자신 있어?”
“무슨 자신?”
“조필건이 잡을 자신. 그 사람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무서운 사람이야. 고작 경찰 몇 명 매수해서 여기까지 올라온 인간이 아니라고.”
녀석의 경고에 대답하려던 주연은 마음이 바뀌었다.
이런 놈에게 결의를 증명해야 할 필요가 있나?
그럴 필요 없다.
진지했던 그의 얼굴이 장난기 가득한 배우의 얼굴로 변한다.
“응.”
짧은 답변에 당황한 변영상은 더 말을 잇지 못했다. 아니 이을 수가 없었다. 주연이 그의 손목에 다시 수갑을 채우고 승합차의 문을 열었다.
—*—
“말씀 다 나누셨어요?”
잠시 시간을 달라고 하고 승합차 안으로 들어갔던 주연이 나오자 인아가 물었다.
“네.”
어딘가 모르게 만족스러운 표정이다.
“김현준은요? 김현준은 서에 가서 조사하실 건가요?”
그놈의 손은 방금 변영상과 면담하기 전에 먼저 잡았었다. 변영상의 말대로 조필건 밑에서 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는 게 그리 많지 않았다.
물론 아예 쓸모없지는 않았지만.
“아니요. 조필건 회장 밑에서 일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인물이라, 김현준은 그리 급하지 않습니다.”
“조필건 회장이요?”
생소한 이름. 인아의 얼굴에 물음표가 떠오른다. ‘정의로운 악수’를 통해 주연만 알아낸 사실들이라 그녀로서는 알 수 없는 정보.
“아, 네. 방금 변영상이 회장에 관해 털어놨어요. 신문하실 때 들으실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