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pection RAW novel - chapter 200
– 아임 파인, 추. 쌩유. 오, 예스, 아이 하브 파운드 이시하라 케이코즈 어드레스. (I’m fine, too. Thank you. Oh, yes, I have found Ishihara Keiko’s address).”
사이토 히데토시의 설명에 따르면 히로와, 스즈시로 히데오, 그리고 이시하라 케이코가 서로 가까운 사이였다.
그래서 다나카 료마에게 다시 찾아가 이시하라 케이코의 연락처를 물어보았다. 하지만, 실망스럽게도 그는 이시하라 케이코가 누군지 몰랐다.
그녀가 운영했다는 클럽 이 있던 곳도 가보았고, 그녀가 살던 곳도 찾아가 보았으나 그녀 역시 찾기 쉬운 사람은 아니었다.
모든 길이 막힌 것 같아, 막막한 심정에 무작정 규슈행 비행기표를 예약하고 있는데, 오래된 회사 기록에서 이시하라 케이코의 주소를 찾은 것 같다고 다나카 료마로부터 전화가 온 것이었다.
“땡큐. 땡큐 베리 마치. 혼도니 아리까도 고자이마스.”
– 노, 노. 잇츠 오케이. 벗 잇 마잇 비 추 올드. (No, no. Its ok. But, it might be too old.)
“잇츠 오케이. 아 윌 체크 마이셀프. (It’s ok. I will check myself.)”
오래된 주소라고 할지언정, 여기까지 온 이상 포기할 수 없었다.
주연은 타나카 료마로부터 받은 주소를 곧바로 구글 지도에서 검색했다. 붉은색 풍선표시는 후쿠오카시(市) 근교를 가리켰다.
—*—
한여름의 후쿠오카는 뜨겁다. 공항에 도착한 주연은 유명하다는 가게에서 기름진 라멘 한 그릇을 먹고 곧장 타나카가 가르쳐준 주소로 향했다.
갑작스러운 이동이라 통역을 구하지 못하는 바람에 여정을 처음부터 순탄치 않았다.
“ここがこの住所の場所が正しいから.”
타나카 료마가 가르쳐준 주소에는 다른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 건물이 근처 대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많이들 자취하던 건물이었다는 것을 (겨우) 알아냈고, 그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타나는 단서를 따라간 결과,
“이시하라 케이코 상 데스카? 와타시와···음···나주연또 모우시마스.”
– 한국분이신가요?
“아, 한국말을 하십니까? 저는 나주연이라고 합니다. 여사님을 만나 뵙고 싶어서 연락드렸습니다. 스즈시로 히로라는 사람에 관해 여쭈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주연은 이시하라 케이코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 히로 상을 어떻게 아시죠?
“전화상으로 전부 말씀드리기가 조금 어려울 것 같습니다. 실례가 아니라면, 찾아뵙고 말씀드려도 괜찮을까요?”
– 음, 알겠습니다. 제가 사는 곳은······.
—*—
그녀는 후쿠오카시(市)에서 차로 한 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가라쓰라는 소도시에 살고 있었다.
흥미로운 인생을 산 여성이었다.
오사카에서 을 운영하기 전에는 어떤 분이셨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오사카를 떠나온 뒤로 그녀는 일본 검정고시 격인 졸업정도인정시험을 패스하여 대학에서 입학했고, 늦은 나이에 대학에 들어갔음에도 3년 만에 졸업한 뒤 다시 대학원에 진학했다.
작은 주조회사에 취직에 낮에는 일하고 야간에 대학원을 다니며 경제학 석사학위까지 받았으며, 그 와중에 취미로 글도 쓴 분이었다.
주연은 이시하라 케이코가 정말 만나고 싶었다. 동시에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혹시 그분은 알고 계셨을까? 히로가 불로불사였다는 사실을?’
후쿠오카 하카타역에서 JR 기차로 한 시간 정도 가면 나오는 가라쓰. 특산물 오징어로도 유명한 가라쓰시(市)는 생각보다 훨씬 작았다. 대충 근처에서 식사를 때우고 그녀와 만나기로 한 카페로 향했다.
“히로 상!”
주연이 도착했을 땐, 이미 그녀는 카페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시하라 케이코는 이제 흑발보다 백발이 많은 할머니였다. 그래도 머리카락은 여전히 풍성했고, 관리를 얼마나 잘하셨는지 회색 머리에서 윤이 날 정도였다.
시간을 견뎌낼 수 없는 피부는 이제 주름지고 탄력을 잃었지만, 색만큼은 여전히 뽀얗게 윤이 난다.
주연을 보고 동그래진 두 눈은 순간 젊었을 때 그녀의 눈만큼이나 반짝였다.
“아···.”
하지만, 놀란 것은 그녀만이 아니었다.
주연 역시 단발머리의 할머니가 얼마나 이은채를 닮았는지 깜짝 놀랐다. 그녀의 과거를 알지 못했다면, 은채의 생물학적 할머니라고 착각할 정도이다.
그 순간 송정의는 왜 원래 몸주인이 그녀에게 관심을 보였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서울에서 온 나주연이라고 합니다. 이시하라 여사님이신가요?”
그녀는 주연의 질문에도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은 채 한동안 그의 두 눈을 뚫어지라 바라봤다. 몇 분이 지났을까, 그가 장난치는 게 아니라는 걸 확인한 그녀는 온화한 인상으로 대답했다.
“네, 제가 이시하라 케이코에요. 한국 이름은 석경자입니다. 서울에서 오셨다고요?”
“네.”
“스즈시로 히로에 대해 궁금해서 이곳까지 날 찾아오셨다고 했나요?”
“네.”
“그럼 먼저 당신이 히로 상을 어떻게 알고 있는지 말씀해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무더운 7월의 어느 날, 이국적이면서도 익숙한 냄새가 나는 그 도시에서 석경자 할머니와 긴 대화가 시작되었다.
Eternal Life
설명이 끝나자, 굵은 눈물방울이 석경자 여사의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당연히 나보다 오래 살 줄 알았는데, 그렇게 먼저 갔네요.”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그쪽이 미안해할 이유는 없지요.”
아련하게 느껴졌던 석경자 여사의 눈빛이 푸근하게 바뀐다.
“알고 계셨나 봅니다.”
“스즈시로 히데오 상이 돌아가셨으니까, 이제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겠네요.”
교통사고로 인해 영혼이 바뀌었다는 말도 안 되는 설명을 여사는 의외로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그래서 궁금한 게 뭐예요? 어렵게 여기까지 찾아온 걸 보면 풀리지 않는 무언가가 있어서 찾아온 것 같은데···.”
“사실 궁금한 게 많습니다. 히로라는 분이 어쩌다가 이런 몸을 갖게 된 건지부터 왜 일본을 떠나 한국으로 오시게 된 건지···. 그리고, 지금 제가 거주하는 곳이, 그러니까 그분 살던 아파트에서 오래된 금고를 발견했어요. 그 안에서 다이아몬드 원석이 담긴 주머니와 스즈시로 히로라는 이름으로 발행된 여권, 그리고 생소한 웹사이트 주소가 적힌 종이가 나왔습니다. 혹시 그것들에 관해서도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무언가를 생각하느라 잠시동안 말이 없던 석경자 여사는,
“내가 답해줄 수 있는 것도 있고 없는 것도 있는데, 그전에 먼저 그것들을 왜 알고 싶은지 내게 말해줄 수 있습니까?”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사실, 이 몸이 늙지도, 죽지도 않는 몸이라는 것을 안 지는 얼마 되지 않습니다. 1년 정도 되었어요. 그런데, 그게 진짜 사실이라면, 앞으로 다른 사람들과 인연을 만들 때 좀 더 신중해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히로 상보다 현명한 젊은이네요. 그런데 늙지 않는다는 건 어떻게 알았어요? 몸이 바뀐 지 4년밖에 안 되었다고 한 것 같은데.”
“그게···그분의 기억과 대화한 적이 있습니다.”
“히로 상의 기억?”
“저도 정확하게 어떻게, 왜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는 모르겠지만, 죽을 때마다 그분의 기억이라고 할까, 아니면 의식의 잔재라고 할까, 아무튼 이 몸의 전 주인과 소통 같은 걸 했습니다.”
“호호. 상상만 해도 골치가 아프네요. 몸이 바뀐 것도 모자라 전 주인의 기억과 대화를 해야 한다니.”
나에 대해 더 물을 게 없는 여사는 스즈시로 히로에 대해 그녀가 아는 모든 것들을 자세하게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방금 만난 여사님은 마치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람처럼 금세 편안해졌고, 왠지 모르게 모든 것을 털어놓을 수 있을 만큼 믿음이 갔다.
“어디서부터 시작하는 게 좋을까요? 혹시 내가 그분을 어떻게 만났는지도 궁금한가요?”
“물론입니다.”
“긴 이야기가 될 텐데 괜찮겠어요?”
“괜찮습니다.”
“그게 아마 1988년이었을 거예요. 도박꾼이었던 우리 아버지는 도박 빚을 갚으려고 키타신치에 있는 요정에 나를 팔아넘겼죠. 내 나이 열아홉이었습니다. 거기서 히로 상을 처음 만났어요······.”
그녀가 경고한 대로 이야기는 길었다. 하지만, 시간이 가는 것을 잃어버릴 정도로 흥미로운 것이었다. 며칠 전 통역을 통해 전해 들은 사이토 히데토시의 이야기와는 디테일과 양에 있어서 비교도 되지 않았다.
그렇게 남은 휴가 며칠을 매일같이 석경자 여사를 만나 히로라는 남자에 대해 들은 나는 얻고자 하는 답을 찾을 수 있었다.
—*—
마포갈비.
“다녀왔으면 바로 연락하지. 왜? 사무실에 쌓인 사건이 많았어?”
“아니, 뭐 좀 알아볼 게 더 있어서.”
“뭐?”
석경자 여사를 통해 스즈시로 히로가 왜 일본을 떠났는지 들을 수 있었다. 늙지 않는 사실을 들키지 않기 위한 것도 있었지만, 여동생을 찾기 위한 것도 있었다.
“사람.”
“사람?”
“나주연 씨의 여동생.”
전라남도 나주의 나원흠 댁에서 노비의 자식으로 태어나 열여덟 살이 될 때까지 변변한 이름조차 없이 ‘개똥이’라고 불렸던 그에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아꼈던 여동생이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오겠다고 마음먹은 그는 오랜 기간 그녀를 찾았지만, 당시 출생신고도 제대로 되지 않은 사람을 지금 와서 찾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오랜 노력 끝에 동생이 있는 곳을 알아냈다. 경기도, 구리시에 있는 한 공동묘지. 안타깝게도 겨우 찾아낸 동생은 이미 이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상심했겠네.”
“응. 그랬을 거야.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니었어.”
“응? 끝이 아니었다고?”
죽은 여동생에게는 딸이 하나 있었다.
히로는 여동생의 딸, 즉 자신의 외조카를 찾아 나섰다. 여동생에게 해주지 못한 것들을 해주겠다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뭐라고? 여동생의 따님도 돌아가셨다고?”
그녀도 이미 죽은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응. 자살.”
그와 기정국 사이의 접점이 바로 그곳이었다.
여동생의 따님에게는 딸이 하나 있었는데. 서울의 한 사립고등학교에 다녔던 그녀는 학교폭력에 시달리다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딸의 억울함을 풀어주려 했던 엄마는 백방으로 노력해봤지만, 가해자 학생들의 부모 중에 정치인이 있었고, 사건은 결국 흐지부지 덮어져 버렸다.
딸을 잃은 슬픔을 견디지 못한 엄마는 딸과 같은 방식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 사건을 흐지부지 덮어버린 자가 바로 기정국이었다. 피해자 아이를 거짓말쟁이로 몰았고 아이의 엄마를 정신병력이 있는 여자로 만들었다.
개인적인 목적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늘 그렇듯이, 힘이 있는 가해자들은 아무일 아닌 것처럼 덮고 싶어 했고, 기정국은 자신이 생각해 둔 그림에 그 정치인이 필요했기에 뜻이 맞았던 것이었다. 그렇게, 행복했던 한 가정이 이유도 모른 채 희생된 사건이었다.
기정국과 가해자들 부모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마치 어쩔 수 없이 일어난 부수적인 피해처럼. 일말의 죄책감조차 느끼지 않은 채, 피해자의 이름을 잊어버리는 데 1년은커녕 1개월도 걸리지 않았다.
그들이 알지 못했던 건, 그 아이 엄마의 외숙부가 불멸자라는 사실이었다.
“죽였다고?”
“응. 가해 학생들 모두 의문사를 당했더라고.”
“그래도 설마···.”
확실하지는 않다. 그래도 우연이라고 치부하기엔 의심스러운 점이 있다.
“그래서, 기정국에게도 접근한 거야? 복수하려고?”
“그런 거 같아. 기정국의 의식을 들여다보고 그자가 상상 이상으로 악한 자라는 것을 알아내지 않았을까? 코카인을 숨긴 것도,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수많은 살인을 저지른 것도 다 봤겠지. 피해 학생들처럼 처리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을 거야.”
“그래서 그에게 접근한 뒤 좀 더 확실하게 제거할 방법을 계획한 거다? 네가 그랬던 것처럼?”
“아마도.”
확실한 복수를 하기 위해서.
“그러면 기정국이 그걸 미리 눈치채고 나주연의 차에 문제를 만들어서 죽이려고 한 거야? 그런데 그게 하필 네 오토바이랑 부딪힌 거고?”
“그건 아닐지도 몰라. 복수하려는 의도를 눈치채고 있었다면 기정국을 다시 만났을 때, 기정국이 이야기했을 것 같아. 그런데 그러지 않았어. 기억상실증을 테스트해보려고 말하지 않은 거라고 가정해도, 그걸 알고 있었다면 기정국 성격에 몇 년간 그렇게 가만두지 않았겠지.”
“그러면, 그때 차에 브레이크를 고장 낸 거는 누구야?”
“브레이크가 고장 난 게 아니었을지도 몰라.”
“당시 경찰 기록에는 그렇게 되어 있었는데. 그것도 기정국이 꾸몄다? 왜?”
“그래서 복수하려는 의도는 눈치채지 못한 것 같다고 생각해. 단지, 무언가 이상한 낌새 정도 느꼈을까?”
“아! 여의도 아파트 금고에 있던 코카인?”
“응. 기정국을 잡으려고 증거들을 모으고 있었던 거고, 기정국은 처음에 호감을 느꼈던 나주연의 이상한 점을 이제 막 눈치채기 시작한 단계였던 것 같고.”
“좋아. 그런데, 브레이크 고장이 난 게 아니라면, 그때 왜 브레이크를 잡지 못하고 네가 탄 오토바이랑 부딪힌 거지?”
그 의문에 대한 답은 구하지 못했다.
“어쩌면 신이 그런 게 아닐까?”
“신? 왜?”
“신이 내린 능력을 개인적인 복수에 사용해서?”
“야쿠자였다며? 들어보니까 그전에도 이미 개인적인 목적에 많이 사용한 거 같던데, 왜 인제 와서?”
흥식의 지적대로 이상하다.
“몰라.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어. 어쩌면 진짜 브레이크가 고장 났었을 수도.”
“흠-. 브레이크가 진짜 고장 났었던 거라고 해도 왜 하필이면 너랑 부딪혀서 몸이 바뀌게 된 거는 이상하네. 그냥 우연이라고 치기에는······.”
왠지 모든 일이 누군가의 뜻대로 일어난 것 같은 느낌을 저버릴 수가 없다.
“어렵다. 심오하고. 그래서 진짜 불로불사인 거야?”
“그런 거 같아.”
“참나- 이게 그 말도 안 되는 장면을 목격하고도 믿기가 어렵다.”
“나도 마찬가지야.”
몇 번이나 죽었다 살아났는데도.
“그래서 앞으로 어떡할 거야?”
라는 영화가 있다.
십 년간 한 지방 대학에 근무하던 남자가 갑자기 직장을 그만두고 이사까지 하려 하자 동료들은 그 이유가 궁금했고, 집요한 추궁 끝에 남자는 자신이 1만 년 넘게 죽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라고 고백하는 내용의 영화이다.
그 영화의 주인공처럼 늙지 않는 인간이 있다면 늙어가는 분장을 하고 살지 않는 한 한곳에 오래 머물 수 없다.
“이제부터 생각해봐야지. 앞으로 그래도 한 5년은 남은 것 같은데. 여차하면 콧수염이라도 하나 붙이고 살지 뭐.”
“······.”
“왜 그렇게 보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