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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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내가 버그 유저라고?
이 게임이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그는 자신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 줄 몰랐다. 이전까지 여러 가지 게임을 해봤음에도 불구하고, 딱히 두각을 나타내 본 적도 없었다. 그저 남들이 하는 정도로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평균 정도의 무과금 유저였을 뿐이다. 물론 그건 그저 자신의 생각일 뿐, 남들이 보기엔 미니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래서일까. 처음 그 게임이 나왔을 때만 해도 또 얼마간 거쳐 가는 게임이 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게임은 달랐다. 가상현실이라는 말이 나온지 꽤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만들어진 현실이라는 개념과는 거리가 먼, 그저 겉핥기 수준의 체감 게임에 불과했던 그 모든 게임을 비웃듯 그 게임은 찬란하게 빛나며 모습을 드러냈다.
사람들은 열광했다. 물론 그렇게 열광한 이들 가운데는 그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단지 개울가에서 물을 뜨고 풀을 뽑고 나무에 대고 도끼질을 하는 것 뿐인 데도, 감동이 느껴질 정도로 그것은 완벽하게 만들어진 또다른 현실이었다.
그 세계는 할 수 있는 것이 할 수 없는 것보다 많았다. 그래서 그는 다른 유저들과 달리 생활러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사냥을 하고 렙업을 하는 대신 무언가를 채집하고 그렇게 모은 재료로 무언가를 만드는 것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풀을 뽑고 나무를 패고 돌을 캐는 그의 모습에 다른 유저들은 같은 유저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엔피시라고 생각했을 정도다. 하지만 그가 처음으로 집을 만들고 배를 만들고 그것으로부터 명성을 쌓아 마침내 유저 최초로 다리를 건설하는 위업을 달성하여 성에 초대를 받아 명장으로 칭해지고 성의 개축에 참여하게 되자, 사람들은 비로소 이런 식으로 플레이 하는 유저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특이한 체험을 하게 되었다.
이 게임에는 이른바 치명적인 일격이라고 불리는 시스템이 있었다. 게임 상에 존재하는 모든 개체에는 약점이 존재하는데, 이 약점을 공격하면 일반적인 공격보다 더 큰 피해를 입힐 수 있고 운이 좋으면 인스턴트 킬, 다시 말해 즉사에 이르도록 할 수도 있는 시스템이다.
하지만 이것은 시스템으로는 존재하더라도 실제로 그것을 이용해 사냥 중에 인스턴트 킬이 일어날 확률은 매우 낮았다. 각 개체에게 숨겨진 약점은 매우 작았고 게다가 고정된 것이 아니라 근육이나 뼈의 움직임에 따라 시시각각 움직이기까지 했다. 운이 좋으면 저렙 몹을 사냥하던 중에 인스턴트 킬을 경험하는 경우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과 동등한 렙의 몹에게서 이런 일을 경험하는 것은 사실상 로또에 뽑히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실제로도 인스턴트 킬은 로또 같은 역할을 한다. 달성할 경우 그 몹에게서 얻을 수 있는 최상위 아이템 가운데 하나가 무작위로 반드시 뜨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 이 시스템이 알려졌을 때만 하더라도 수많은 사람들이 시도했지만, 상대하는 몹들의 레벨이 높아지자 사실상 이 시스템이 발동될 확률은 거의 제로에 수렴하는 수준까지 내려가게 되었다. 이제는 의도해서 가능한 일이 아니라, 정말 로또에 당첨될 정도의 확률로 우연히 달성하게 되는 그런 일이 되어 버리고 만 것이다. 하물며 전투 자체에 관심이 없고 오직 생활만 반복하는 그로서야 그런 게 있나보다 할 뿐, 아예 신경조차 쓰지 않는 게 당연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왕실의 주문을 받아 조각을 하고 있던 그는 무언가에 이끌리듯 정을 향해 망치를 내리쳤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그 한 번의 망치질에 사람보다 훨씬 큰 바위 덩어리가 단숨에 가루가 되어 부서지는 것이 아닌가.
“으악!”
그는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왕실에 납품하기 위해 주문한 최고급 대리석이 단숨에 박살이 나버렸으니 정말 비명이 나올 법도 한 일이다.
사실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었다. 돌에는 결이라는 것이 있어서 망치질을 잘못 하면 의도하지 않는 방향으로 균열이 일어나는 것은 그리 드문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석재 가공 기술의 레벨이 낮았던 시절이라면 모를까, 명장 칭호를 단 지금에 이르러서는 정말 보기 드문 실수였고 그만큼 뼈아픈 실수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전의 실수와는 명확하게 다른 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대리석이 쪼개지는 순간 나타난 메시지다.
[인스턴트 킬! ‘최고급 대리석 석재’가 파괴되었습니다!]인스턴트 킬이라니!
딱히 스킬이 습득되었다든가 한 것도 아니었다. 단지 무언가가 보였고, 그것에 정을 대고 망치를 휘둘렀을 뿐이다.
어떻게 된 일일까. 처음에는 당황했고, 잠시 시간이 지나자 이것이 일종의 이스터에그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떠올렸다.
그 생각은 또 이렇게 바뀌었다.
혹시 이것이 단순하게 물체 뿐만이 아니라 몹에게도 적용된다면?
그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도축용 단검 하나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얼마나 사냥을 안 해 버릇했는지, 당장 무기로 쓸만한 것이 퀘스트 보상으로 받은 그 단검 뿐이었던 것이다.
곧바로 초보자 사냥터인 토끼 밭으로 향했다.
그리고 풀밭에서 풀을 뜯고 있는 토끼를 노려보았다.
사람들은 갑자기 작업복을 입고 나타나 풀밭의 토끼를 노려보는 그를 힐끔거리며 지나갔다. 토끼 밭은 정말 막 게임을 시작한 유저이거나 요리나 가죽 같은 것을 주로 하는 생활러가 아니면 거들떠도 보지 않는 사냥터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의 시선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토끼를 노려보았지만, 딱히 아까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다.
역시 착각이었나.
한참이나 눈싸움을 하다가 이건 뭔가 아니다 싶은 느낌에 자세를 풀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느낌이 왔다.
여기다. 이곳을 찌르면 된다.
그 느낌이 딱 하고 온 순간, 홀린 것처럼 그의 손이 움직이며 토끼의 목덜미를 찔렀다. 마치 시간이 멈추기라도 한 것처럼 토끼는 움직일 엄두도 내지 못하고 그의 단검에 맞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떠오른 메시지.
[인스턴트 킬! ‘토끼’가 죽었습니다!] “헐!”정말로 되는 것이었단 말인가. 그는 얼른 토끼가 떨군 아이템을 집었다.
[‘매혹의 토끼 머리띠’를 획득했습니다.] “허헐!”다시 한 번 놀라고 말았다. 이것은 어떻게 만드는지, 어떻게 얻는지조차 알려지지 않은 아이템이 아닌가!
확인해 보니 아이템 효과는 매력 +15과 레어스킬 ‘매혹’. 단순히 꾸미기 용도만이 아니라 그 효과 또한 엄청나다. 다른 유저들에게도 유용하겠지만 특히 테이머 계열이라면 돈이 얼마가 들든 반드시 사고 싶은 워너비 아이템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이것이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은 꿀임을 단숨에 알아챈 것이다.
다시 지나가던 토끼 한 마리와 눈싸움을 벌이다가 단검을 찔러 넣었다. 그러자 어김없이 다시 한 번 인스턴트 킬 메시지가 떴다.
[‘예리하게 손질된 토끼 발’을 획득했습니다.]이번에 나온 아이템은 무기에 달게 되면 치명타 발생 확률과 치명타 피해량을 증가시켜 주는 장식 아이템이다. 이것 역시 격수 계열이라면 없어서 못 쓰는 레어 아이템이다.
“말도 안 돼.”
누가 있어 토끼 따위가 이런 최고급 레어 아이템을 떨군다고 예상이나 했을까. 아니, 토끼 따위가 이런 레어 아이템을 떨군다면 다른 몹들은 도대체 어떤 아이템을 떨군단 말인가.
그러고 보니 문득 예전에 그런 일이 있었던 것이 떠오른다. 하루 종일 토끼 밭에서 토끼만 잡아대는 토끼 전문 사냥꾼이 한때 유행했던 적이 있다.
그때는 사람들 모두가 왜 그런 뻘짓을 하나 했는데, 지금 되돌려 생각해 보니 혹시 우연히 인스턴트 킬이 터지면서 이런 아이템을 얻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다시 같은 행운을 노리고 그런 일을 했었던 것은 아닐까.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이 정도 아이템이라면 잠시 레벨 업을 멈추고 작업을 한다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니까. 하지만 지금까지 그런 일들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은, 인스턴트 킬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결과가 아님을 뒤늦게나마 깨달았기 때문이 아닐까.
대박이다. 이건 대박이다.
그는 자신이 커다란 행운을 끌어안았음을 깨달았다.
그는 위약금을 물고 왕실의 의뢰를 포기했다. 명성이 크게 깎여 나갔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새롭게 몰두할 만한 무언가를 찾아냈기 때문이다.
곧바로 그는 지금껏 모아둔 돈으로 제대로 된 무기를 맞췄다. 그래봐야 전직 전에 사용할 수 있는 일종의 초보자 무기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생활러를 하다 보니 손재간은 최고 수준이었고, 더불어 그것을 극대화하기 위해 레벨업 하면서 얻은 능력치도 전부 민첩으로 몰아둔 상태였다. 어쩌면 이런 능력치 때문에 일어난 현상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스킬로 표시되는 것도 아니고, 별도의 이펙트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보니 모든 것이 애매했다.
그가 구한 무기는 단검과 활이었다. 모두 한 점을 타격하는 일에 최적화된 무기로서 클래스상으로는 레인저의 표준 장비라고 할 만 했다. 레인저 자체가 상당히 인기 있는 클래스라 기본 장비를 맞추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비용이 들었지만 그는 과감하게 투자를 선택했다.
이렇게 맞춘 장비에 토끼가 드랍한 두 개의 장비를 추가하니 제법 그럴 듯 하다. 물론 토끼 귀를 머리에 달고 있으니 뭔가 좀 모습이 기괴하긴 했지만, 어쨌든 말이다.
토끼 다음은 족제비였다. 하지만 고작해야 초식 동물에서 육식 동물로 바뀌었을 뿐인데도 불구하고 난이도가 확 올라가 버린다.
“큭!”
노려보다가 일격을 찔러 넣는 식으로 진행되었던 토끼 사냥과는 전투의 양상 자체가 달랐다. 혹시나 싶어 토끼 귀에 달린 매혹 스킬도 써봤지만, 기본 매력이 낮은 데다 테이머 계열이 아니라서 그런지 별 효과가 없다.
초보존의 족제비조차 꼬시지 못할 매력이라니. 아무리 게임이라지만 너무하지 않은가.
어쨌든 그는 할퀴고 물어뜯는 족제비의 공격에 묵묵히 견디며 약점이 드러나기를 기다렸다.
“뭐지? 맷집 수련 중인가.”
“장비는 딱 레인저인데.”
“어? 저거 토끼 귀 아니야?”
“저거 구하기 어려운 템일텐데. 고렙인가?”
“근데 레인저 계열 중에 맷집 능력치가 필요한 클래스가 있었나?”
“없을 걸? 하기야 워낙 레인저 자체가 워낙 물몸이라 일부러 맷집을 올리는 걸 수도 있긴 하겠다.”
고작해야 족제비에게 당해서 피투성이 몰골이 되어가는 그를 보며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그는 꿋꿋이 견디며 약점이 드러나는 때를 기다렸다.
그렇게 얼마나 버텼을까.
정말 족제비에게 맞아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이 되어서야 마침내 느낌이 왔다.
“지금!”
그는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소리를 지르며 단검을 찔러 넣었다. 그러자 어김없이 터져 나오는 메시지.
[인스턴트 킬! ‘족제비’가 죽었습니다!]“으X아!”
그는 마침내 해냈다는 생각에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그렇게 환호했지만, 사람들은 역시나 어리둥절할 뿐이다.
“뭐지?”
“글쎄. 크리라도 터졌나?”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이 말한 크리란 단순히 치명타 같은 것이 아니라 특정 능력치를 수련할 때 특별히 많은 수치가 한 번에 올라가는 경우를 뜻한다. 즉, 맷집 단련을 하다가 크리티컬이 터진 것이 아닐까 하는 식의 생각을 떠올린 것이다.
그는 빈사 상태에 빠져 피가 줄줄 흐르는 상황에서도 마침내 해냈다는 달성감에 환호하다가 얼른 족제비가 드랍한 아이템을 주워들었다.
[‘흉폭한 족제비의 꼬리’를 획득했습니다.]토끼발과 마찬가지로 무기의 장식으로 부착하는 아이템으로서 효과는 베기 공격으로 크리티컬 히트시 칼바람이라는 히든스킬이 발동한다. 찌르기 공격을 주로 하는 그에게는 별 의미가 없지만, 도검류의 무기를 주로 사용하는 이들에게는 상당히 유용한 아이템이라 할 수 있다.
“후… 그나저나 이런 식으로는 다른 몹은 꿈도 못 꾸겠는걸.”
맷집이 좀 오르긴 했지만, 족제비한테도 이런 식으로 얻어터져서 빈사 상태가 될 정도라면 다른 강한 몹들에게 인스턴트 킬을 뽑아내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대책이 없는 건 아니다. 굳이 비싼 돈 들여가며 활을 구한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하지만 활의 경우에는 단검과는 다른 문제가 있었다. 단검은 보이는 대로 찌르기만 하면 되지만, 활은 날아가면서 이런 저런 이유 때문에 경로가 틀어질 수도 있고 거리가 있는 만큼 날아가는 동안 몹의 움직임 때문에 빗나갈 수도 있다. 제대로 맞혀서 인스턴트 킬이 발생하지 않으면, 방금 전 치렀던 족제비와의 혈투 같은 상황이 다시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동 사격 같은 고급 기술을 쓸 수도 없는 일이고.”
움직이면서 활을 쏘는 것은 상당한 고급 기술에 속한다. 말이나 기타 탈것에 탑승한 채로 활을 쏘는 기사나 격렬한 전투 중에 활을 쏘는 회피사격 같은 것이 그것인데, 어느 것이든 최소한 궁수 계열의 일 단계 전직을 완료해야만 사용할 수 있는 기술들이라 지금의 그로서는 사용할 수조차 없다.
“끙… 일단 하는 데까지는 해보는 수밖에.”
그는 회복이 끝나자 다시금 지나가는 족제비를 향해 시비를 걸었다.
“자, 덤벼라!”
============================ 작품 후기 ============================
아이템정보
명칭 : 매혹의 토끼 머리띠
등급 : 희귀
착용제한 : 없음
설명 : 토끼의 귀여움을 극대화시킨 머리 장식.
효과 : 매력 +15, 스킬 ‘매혹’ Lv.1 상승
강화시 효과 : 매력 상승
아이템정보
명칭 : 예리하게 손질된 토끼 발
등급 : 희귀
착용제한 : 없음
설명 : 행운의 일격을 기원하는 토끼 발.
효과 : 치명타 발생 확률, 치명타 피해량 1단계 상승.
강화시 효과 : 치명타 발생 확률 증가.
아이템정보
명칭 : 흉폭한 족제비의 꼬리
등급 : 희귀
착용제한 : 없음
설명 : 흉폭한 족제비의 기운이 담긴 꼬리
효과 : 베기 공격으로 크리티컬 발생시 히든스킬 칼바람 Lv.1 발동
강화시 효과 : 칼바람 피해 증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