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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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치유
주방으로 들어간 형진은 일단 마음 맞는 사람끼리 조를 나누게 했다.
“2인 1조로 요리를 만들 겁니다. 가급적 힘 좋은 분과 손재주 좋은 분이 짝을 이루면 좋겠죠.”
잠시 짝을 이루느라 소란이 벌어졌다. 그 결과, 제랄딘과 미엘, 크루그와 카트린, 유아와 하마란, 림과 오귀스트가 짝을 이루게 되었다.
“저도 해야 합니까?”
슬렁슬렁 저녁을 먹으러 내려왔던 오귀스트는 하마란이 쓰던 앞치마를 림이 건네주자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요즘은 요리 잘 하는 남자가 인기랍니다.”
“그, 그런가요?”
“절 보세요. 딱 감이 잡히지 않습니까.”
“…”
스스로 인기 있는 남자를 자처하는 형진의 모습에 오귀스트는 잠시 얼빠진 표정을 지었고, 여자들은 일제히 야유를 보냈다.
“우우! 변태 요리사는 물러가라!”
“맞아요! 얼른 요리나 가르쳐 주시죠!”
“기사님, 변태였어요?”
“후… 진님도 참.”
아무래도 이대로 더 놔뒀다가는 청문회라도 열릴 분위기라 형진은 얼른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요리 준비에 들어갔다.
“일단 손재주 좋은 분은 이쪽의 식재료 가운데 마음에 드는 걸 골라 주세요. 그리고 힘 좋은 분들은 이쪽으로.”
곧바로 제랄딘과 크루그, 하마란과 오귀스트가 형진에게로 다가왔다. 동생을 돌보는 것에 익숙한 크루그는 그렇다 쳐도, 나머지 셋은 참으로 걱정스런 조합이 아닐 수 없다. 손에 물 한 번 안 묻혀 봤을 법한 제랄딘이 그나마 좀 나을 것 같고, 하마란이야 말할 것도 없는 곰손이며, 오귀스트 역시 제대로 된 요리는 해본 적도 없는 듯한 분위기다.
원래 뭐든 마찬가지지만, 첫 경험이란 것은 매우 중요하다. 처음의 경험이 어떠했는가에 따라 그 분야에 대한 인상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것은 첫 키스, 첫 포옹, 첫 사랑, 첫 경험 같은 연애에 관련된 것만이 아닌 대부분의 일상에서 적용되는 하나의 법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의 요리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특히나 요리 자체를 처음 해보는 이들에게는 특히나 더.
흥미라는 단어로 무장한 채 눈빛을 반짝반짝 빛내고 있는 제랄딘을 제외하면, 두 명의 남자나 남자 못지않은 장신을 자랑하는 하마란 역시 어딘지 모르게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자, 일단 시작하기 전에 이걸 하나씩 머리에 꼽으십시오.”
“이, 이건…”
가장 먼저 형진이 내민 물건을 알아본 것은, 바로 직전에 그것의 효험을 이미 체험한 바가 있었던 하마란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순간 형진의 손에 들린 머리핀이 자신이 꼈었던 것과는 뭔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처음 봤을 때는 똑같은 것인가 싶었는데, 자세히 보니 어딘지 모르게 영롱한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거 꽤 귀한 겁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그걸… 하라고요?”
크루그는 물론이고 오귀스트 역시 여자나 낄 법한 머리핀을 내밀자 당황한 표정을 지었으나, 제랄딘은 주저 없이 형진의 손에서 그것을 집어 살펴보았다.
“헉! +4 라니? 장비도 아니고 액세서리가? 게다가 희귀급?”
수호자와는 달리 집행자는 아이템 정보를 직접 확인하는 것이 가능하다. 제랄딘은 형진이 건네는 물건이 보통의 것이 아님을 알아보았지만 무려 4강 액세서리일 줄은 꿈에서 예상치 못했다.
“말했죠? 귀한 거라고. 이거라면 여러분들도 오늘은 꽤 능숙한 솜씨를 보여줄 수 있을 겁니다.”
“와아아…”
“빌려드리는 거니까 잘 쓰시고 반납하십시오. 뭐하세요? 얼른 끼시지 않고.”
마지못한 첫 머리핀을 집어든 오귀스트와 크루그 역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오직 하마란만이 머뭇거리다가 형진의 눈총을 받고서야 머리핀을 집어 깻잎머리 스타일로 고정을 시킨다.
“크루그, 돌아서 봐요. 내가 꼽아줄 게요.”
“괘, 괜찮은데…”
어느새 좀 길어진 앞머리를 머리핀으로 고정시키니, 의외로 잘 어울린다. 강화된 물건은 곤란하더라도 노강 머리핀 하나 정도는 선물로 줘도 괜찮을 듯한 느낌. 물론 본인은 질색할지도 모르겠지만.
“와! 크루그 이렇게 보니까 꽤 미소년이었네요.”
“크흠. 크흠.”
나름 정략결혼 얘기가 나왔던 제랄딘의 말이다보니 크루그는 괜히 헛기침을 하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지만, 미소년이라는 말이 딱히 싫지는 않은 모양이다. 음흉한 녀석 같으니.
“오귀스트님도 이리 와보세요. 꼽아드릴게요.”
“이거… 곤란하군요. 허허…”
오귀스트는 머리핀을 손에 쥐고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역시나 제랄딘의 도움을 받아 머리핀을 착용했다. 머리카락이 상대적으로 짧아서 괜찮을까 싶었지만, 의외로 쉽게 착용할 수 있었다.
“어머. 의외로 오귀스트님도 잘 어울려요.”
“그, 그렇습니까. 허허허.”
물론 접대용 멘트인 게 당연하다. 크루그야 아직 어린 녀석이라 그렇다 쳐도 수염이 거뭇하게 난 중년 남자에게는 역시 좀. 물론 취향에 따라서는 그쪽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자, 그럼 우선 반죽부터 시작해 봅시다.”
오늘 모두 함께 만들어볼 요리는 다름 아닌 카나페다. 단, 이미 만들어진 크래커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손수 만드는 것이 다르다.
“먼저 밀가루를 체로 쳐서 준비해 주십시오.”
곧바로 힘꾼들 네 명이 밀가루를 체로 쳐서 준비하는 작업에 들어간다. 애꿎은 체만 부숴먹는 것이 아닌가 싶었지만, 의외로 쉽게쉽게 잘 하고 있다. 하물며 저 하마란조차! 본인조차 놀라운 모양인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할 정도다. 과연 고강 아이템. 저 곰손을 잠시나마 평범하게 보이도록 만들다니.
“너무 많이는 필요 없습니다. 네, 그 정도만. 밀가루가 준비되었다면 이번엔 소금을 넣어줍시다. 삼분의 일 스푼이면 됩니다.”
각자 형진에게 검사를 맡은 뒤 소금을 밀가루에 넣고 있자니 각자 원하는 식재료를 고른 솜씨꾼들이 그들 주위에 모여든다.
“식재료는 다 고르셨나요?”
“네!”
“그럼, 유아와 림의 도움을 받아서 각자 식재료들을 손질하도록 하세요.”
“알겠습니다!”
솜씨꾼들에게 식재료 손질을 맡긴 형진은 다시 힘꾼들을 돌아보았다.
“다음은 버터입니다. 요만큼만 잘게 다져서 넣어주세요. 네. 너무 많이 넣을 필요없습니다. 잘게 잘게. 잘 섞였다면 이제 우유를 조금씩 넣으면서 반죽해 주시면 됩니다. 너무 질면 안 됩니다. 이래도 좋을까 싶을 정도로 아주 되게. 너무 안 뭉쳐진다 싶을 정도로 퍽퍽하게 만들어주셔야 합니다.”
힘 좋은 사람들로 뽑은 이유가 이래서다. 수분이 적으면 반죽이 그만큼 힘들어지게 마련인데, 여기 모인 이들은 어디 가서 완력으로 꿇릴 이유가 없는 이들이다. 하다못해 제랄딘마저도.
이번에도 반죽하다가 보울을 깨먹는 거 아닌가 걱정이 되었지만, 머리핀 덕분인지 의외로 모두 수월하게 반죽을 마쳤다. 그렇게 만들어진 반죽을 밀대로 밀어 납작하게 만들고 각자 원하는 모양으로 크래커의 모양을 잡아 준 다음, 오븐에 넣고 15분 정도 구워주면 끝.
힘꾼들이 정성스레 만든 크래커들이 오븐 속으로 사라지자, 마침 솜씨꾼들이 식재료 손질을 마치고 돌아왔다.
“이 식재료들을 원하는 형태로 가공해서 지금 굽고 있는 크래커 위에 올리면 요리가 완성됩니다. 우선 여기 종이에 어떤 식으로 만들 것인지 자신의 짝과 계획을 만들어 보세요.”
“넵!”
형진의 말에 각 조들은 종이를 하나씩 받아들고 어떤 식으로 만들 것인지 열띤 토론에 들어갔고 이내 크래커가 완성되자 그 위에 재료들을 얹어 카나페를 완성한다.
제랄딘과 미엘은 상큼한 야채 샐러드 위에 베이컨을 깔고 반으로 자른 방울 토마토를 얹었으며, 크루그와 카트린은 달콤한 라즈베리 잼을 바르고 치즈를 얹은 다음 오이와 사과를 얇게 썰어 올리고 마지막은 호두로 장식했다.
유아와 하마란은 생크림을 두툼하게 얹고 커다란 딸기 하나를 얹은 다음 설탕을 갈아 만든 슈가 파우더를 뿌렸으며, 림과 오귀스트는 두툼한 햄 위에 치즈를 깔고 베이컨과 야채를 다져 만든 샐러드를 얹는 것으로 마무리 했다.
카나페 하나에도 저마다의 취향과 성격이 알게 모르게 드러난다고 해야 하나. 살짝 의외인 것도 있고, 생각보다 예쁘게 만들어진 것도 있는지라 왁자하게 떠들며 만드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꽤 즐겁다.
“어때요. 재미있습니까?”
“네!”
“자, 그럼 서로가 만든 것을 나누어 드세요. 전 그동안 본선을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핑거푸드인 카나페와 어울리도록, 본선 요리 역시 핑거푸드 스타일로 만들어 보기로 했다. 동굴곰 고기를 손가락 모양으로 썰어서 양념과 함께 굽고, 그것을 싱싱한 야채와 함께 쌈무로 감싼다. 손이나 포크로 집어 들었을 때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데친 부추로 살짝 묶어주는 것이 포인트. 남는 쌈무와 야채를 수국 같은 형태로 모양을 만들어 접시 중앙을 장식하고, 만들어진 동굴곰 야채쌈을 그 주위에 꽃잎처럼 주욱 나열하면 비로소 완성이다.
카나페를 만들고 나자 자신감이 붙었는지, 형진이 만들고 있는 동굴곰 야채쌈도 만들어보겠다고 난리다. 물론 형진이 만든 것에 비하면 여러 가지로 부족한 면이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스스로 이런 것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즐거운 모양인지 그날 저녁은 제법 떠들썩하게 보낼 수 있었다.
“후우…”
저녁 시간이 끝나고 수련실에서 수련을 마친 형진은 간단하게 몸을 씻고 침대에 누웠다. 자기 전에 한 번 더 온천욕을 하겠다며 여자들이 빠져 나가서 그런지 저택 전체가 너무 조용하다.
“…”
요즘 계속해서 유아와 함께 잠자리에 들었던 탓인지, 혼자 침대에 누운 상황이 왠지 모르게 어색하다. 그런 생각을 떠올리며 잠을 청하기를 얼마나 했을까. 살짝 잠이 들랑말랑 할 즈음, 문득 누군가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인기척이 느끼며 형진은 선잠에서 깨어났다.
누군가 싶어 슬쩍 실눈을 뜨고 바라보니, 마치 도둑처럼 뒷꿈치를 든 유아가 살금살금 침실로 들어와 옷을 벗고 자신의 옆으로 기어들어오는 모습이 보인다.
“벌써 왔어?”
“앗! 깜짝이야. 안 주무셨어요?”
“누가 옆자리에 없다보니 허전해서 말이지.”
형진이 그렇게 말하며 어깨를 가만히 쓰다듬자, 유아는 생긋 웃으며 그의 가슴에 얼굴을 부비적거렸다.
“저도 그래서 이렇게 와버렸어요.”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피식 웃고는 살짝 키스를 나누었다.
온천욕을 해서 그런지 한층 부드럽게 느껴지는 피부의 감촉을 가만히 만끽하고 있는데, 문득 유아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저…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요.”
“뭔데?”
유아는 잠시 주저하다가 이렇게 대답했다.
“카트린을 낫게 해주고 싶어요. 방법이 없을까요?”
그렇게 말을 꺼낸 유아는 형진에게 앞서 저녁에 있었던 일을 간단하게 설명했다.
“그런 일이 있었군.”
쉽게 승낙할 만한 일은 아니다. 마음의 상처란 것은 육체의 그것과는 달리 쉽게 아물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대로 계속 두고 볼 수도 없는 일. 그렇지 않아도 이번 최고 사제 회합에서 의견을 구해볼 생각을 하고 있던 참이기도 하고.
“잘 될지는 모르지만, 최대한 노력은 해봐야겠지. 그 아이도 이제는 우리 식구니까.”
“고마워요.”
“말로만?”
“…”
유아는 잠시 망설이는가 싶더니, 형진의 몸 위에 올라앉으며 말했다.
“어떤 보답을 원하시나요? 주인님.”
“알면서.”
“쿡쿡.”
유아는 살짝 웃음을 짓더니, 몸을 기울여 형진에게 입을 맞추었다. 아무래도 오늘 밤은 조용히 잠들기는 그른 모양이라는 생각에 형진은 침대옆 협탁에 놓여져 있던 반지를 작동시켜 방음 결계를 활성화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