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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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교육
여신은 자신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용기 백배 해서 눈을 빛내고 있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형진은 바로 출발하는 대신 인벤토리에서 무언가를 꺼내더니 주섬주섬 무언가를 만들기 시작한다.
커다란 가죽을 꺼내는가 싶더니 분필로 무언가를 그리고는 가죽 재단용 가위를 꺼내 서걱 서걱 자른다. 그리고 그렇게 바늘과 실을 꺼내더니 꼼꼼하게 바느질을 해서 그것을 잇는다.
도대체 이게 뭐하는 짓인가. 방금 전에 분명 사냥을 한다고 그랬던 것 같은데.
“저기… 진님?”
‘아, 잠시만요.“
“…”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잠시 지켜보고 있자니 마침내 물건이 완성되었다.
“자, 돌아서십시오.”
“저, 그게…”
“어서요.”
“…”
눈가리개에 가려져 있었지만, 어쩐지 무시무시한 기세가 뿜어져 나오는 듯한 착각에 여신은 끽 소리도 못하고 형진이 시키는 대로 그것을 착용했다.
그 물건의 정체는 바로 배낭이었다. 그녀의 덩치보다도 훨씬 큰. 벨트까지 구비되어 있어서 고속 이동에도 흔들림을 최소화하는 형태로.
“머리핀을 최대 백 개까지 담을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그것을 지고 저를 따라오시면 됩니다.”
“배, 백 개요?”
“네. 뭔가 문제라도?”
“…”
그 정도야 얼마 안 되지 않느냐는 듯한 형진의 태도에 여신은 다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뭔가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자, 그럼 사냥에 앞서서…”
“…”
또 뭔가 싶어 바라보니, 이번에는 음식을 꺼내어 늘어놓기 시작한다. 방금 전 죽은 임프들의 피비린내가 진득하게 풍겨지는 곳에서 음식이라니.
“저기…”
“여기서 드시려고요?”
“아, 그러고 보니 깜박했군요.”
깜박은 무슨. 사냥개의 코장식까지 달고 있는 상황에 피비린내가 거슬리지 않는다면 그건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이다. 하지만 어차피 제대로 식사를 하는 것도 아니고 도핑을 하는 것 뿐인데 귀찮게 이것저것 따지기 귀찮아서 무시하고 있었을 뿐.
하지만 자신만 도핑을 해야하는 것도 아니고 여신도 함께 해야 하는 상황이니 신경 쓸 필요없다고 무시할 수도 없는 일. 그래서 일단 피비린내가 나지 않을 만한 장소로 이동한 뒤 도핑을 시작한다.
“드세요.”
“이걸… 전부요?”
“네. 여신께도 도핑 효과가 통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일단 먹어 두십시오.”
“…”
도핑은 또 뭔지. 영문을 알 수 없는 일의 연속이었지만 이 착한 여신은 별다른 의심도 하지 않고 형진이 내미는 음식들로 손을 가져갔다. 도핑이 뭔지는 몰라도 눈앞에서 맛있는 음식들이 냄새를 풍기고 있으니 유혹을 뿌리치기 어려운 건 분명한 사실이기도 하니까.
“오오오! 힘이 솟아요!”
“다행이군요.”
형진은 느긋하게 도핑을 하고는 효과 목록을 확인한 다음, 먹었던 자리를 정리하고는 가볍게 몸을 풀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조금 빨리 갈테니까 잘 따라와 주십시오.”
“네.”
드디어 시작인가. 여신은 커다란 배낭을 짊어진 채로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조막만한 주먹을 불끈 쥐고 결의를 다지는 귀여운 여신의 모습에 형진은 빙긋이 웃더니, 품에서 단검을 꺼내 들고는 작게 말했다.
“그럼, 갑니다.”
“네… 앗!”
여신은 습관적으로 형진의 말에 대답하려다가 어느 틈엔가 그의 모습이 시야 저편으로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화들짝 놀라 전속력으로 그를 따라갔다.
직선으로 동굴이 이어지다가, 살짝 오른쪽으로 방향을 트는가 싶더니 다시 직선 형태의 동굴이 이어진다. 하지만 그렇게 깨닫는 순간 동굴이 다시 순식간에 넓어지며 한 무리의 임프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키익?”
“킥!”
여신이 형진의 주머니 속에 들어가 있을 때는 후광의 밝기도 그리 세지 않은데다 몸 대부분이 주머니에 담겨져 있었기 때문에 따로 조명 효과가 생기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환하디 환한 빛을 뿌리며 형진의 뒤를 따르고 있는 중이라, 임프들도 금새 그들의 접근을 알아차리고 경계 상태로 들어갔다.
하지만 그래봐야 소용없는 짓이었다. 눈으로 따라가기도 어려울 정도로 빠르게 쇄도한 형진이 곧바로 공격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첫 번째 희생물은 가장 앞에서 단검을 들고 있던 임프. 녀석은 급히 몸을 낮추며 전투에 대비하려 했지만 제대로 자세를 잡기도 전에 형진이 휘두른 단검이 시퍼런 궤적을 그리며 약점이 위치한 목을 스쳐 지나갔다. 두 번도 필요 없이, 단 일격에 목이 반쯤 잘리며 피가 솟구쳤고, 동시에 임프는 숨이 끊기며 룻을 떨구었다.
“!”
허겁지겁 형진의 뒤를 따르던 여신은 임프의 목으로부터 뿜어지는 피보라 너머로 반짝거리는 룻이 떨어지는 것을 발견했다. 하지만 비틀거리며 쓰러지는 임프로부터 뿜어지는 피보라 때문에 바로 다가서지 못하고 멈칫거리는 동안, 형진은 이미 두 번째와 세 번째 임프에게 다가가 단검을 찌르고 있었다.
푸푹!
거의 한 동작으로 보이는 움직임으로 두 마리의 임프들을 뛰어 남으며 정수리에 단검을 박아 넣자, 놈들은 룻을 하나씩 떨구고는 마치 술에 취한 것처럼 비척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놈들이 썩은 고목둥치처럼 쓰러지기도 전에, 형진은 이미 기겁해서 방패를 치켜든 임프들에게 다가서고 있었다.
뭐가 이렇게 빨라!
눈을 한번 깜박일 틈도 주지 않고 세 마리의 임프가 절명하고 룻 세 개가 떨어졌다. 당황한 여신은 눈을 질끈 감은 채 여전히 피를 뿜으며 천천히 뒤로 넘어가고 있는 임프를 무시한 채 바닥을 구르는 룻을 집기 위해 움직였다.
“으…”
빠르게 움직인다고 움직였지만, 임프들이 쏟아내는 피보라를 완전히 피하는 건 역시 무리였고, 여신의 드레스는 금새 피비린내를 머금은 상태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인상을 찌푸릴 틈도 없었다. 그녀가 첫 번째 룻을 집어 드는 순간, 이미 형진은 다른 임프들에게 단검을 휘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퍽!
조악하게 나무판자를 얼기설기 엮어 만든 방패를 내밀고 형진을 막으려던 임프들은, 번쩍이는 단검이 한번 스쳐지나가자 들고 있던 방패가 산산조각이 나서 부서지고, 다시 그 빛이 자신에게로 향하는 모습을 멀거니 지켜봐야만 했다.
“세, 세상에…”
다시금 단검이 번쩍거리는가 싶더니 또다시 룻 세 개가 떨어진다. 발견과 즉시 헐레벌떡 따라가서 룻 하나를 집는 동안 임프 여섯 마리의 목숨이 끊어져 버린 것이다.
하지만 형진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다음 목표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한다.
“헉!”
뭘 어떻게 할 틈도 없이 순식간에 형진의 모습이 동굴 한 켠의 작은 틈으로 사라진다. 여신은 기겁한 채 얼른 바닥을 뒹굴고 있는 룻을 집어 배낭에 넣은 뒤 그가 사라진 방향으로 향했다.
하지만 형진의 모습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군데군데 떨어진 룻과 몬스터의 시체들이 길을 인도해 주고 있다는 사실.
여신은 금새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말았다. 그리고 그제서야 도핑이란 것이 필요한 이유를 알았다.
헉헉거리며 최선을 다해 쫓아가자 다시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얼른 달려가 보니 이번에는 무려 십여 마리나 되는 임프와 형진이 싸우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게다가 이번에는 보통의 임프들과는 달리 꽤 커다란 녀석까지 함께 하고 있었다.
하지만 여신은 넋 놓고 그 싸움을 지켜볼 틈이 없었다. 바닥에 떨어진 룻을 얼른 줍지 않으면 형진은 또다시 순식간에 자신을 버려두고 먼저 가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모처럼 제대로 보답을 할 기회가 생겼다. 그렇다면 최선을 다해 그가 베푼 은혜에 보답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다행히 여신이 딴 데 정신을 팔지 않고 열심히 룻을 주운 덕분에, 형진이 십부장을 쓰러뜨리느라 잠깐 시간을 끄는 동안 바닥에 떨어진 것을 모두 주울 수 있었다.
“이건 크니까 제가 챙기겠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십부장이 드랍하는 복대는 워낙 커서 작은 고작해야 손바닥만 한 체구의 여신이 들고 다니기엔 아무래도 벅찰 수밖에 없다. 그래서 형진이 직접 들겠다고 한 것이지만, 여신은 어느새인가 그것마저도 마땅히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스스로 깨닫지도 못하는 사이에, 훌륭한 짐꾼 마인드가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다.
형진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고, 여신 역시 급히 뒤를 따랐다.
갑자기 앞서 달리던 형진이 손을 좌우로 뻗는다. 그러자 천장에 매달려 있던 무언가가 그에게로 확 끌려오더니 단검이 스치고 지나가자 어김없이 룻이 떨어진다. 여신은 뭔지 확인할 틈도 없이 얼른 집어서 등에 맨 커다란 배낭에 집어 넣고 뒤를 따랐다.
이번에는 S자 모양으로 조금 구불텅거리는 통로가 나타나더니, 급격하게 아래쪽으로 향하는 경사가 이어진다. 그곳을 마치 미끄럼틀 타는 듯한 느낌으로 통과하자, 물이 흥건하게 고인 작은 공터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키릭!”
“키키끽!”
그리고 임프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가 싶더니, 갑자기 화살 서너 대가 일시에 형진과 여신을 향해 쏟아진다.
“앗!”
깜짝 놀라서 보호의 권능을 쓰려했던 여신은 갑자기 커다란 형진의 그림자가 앞을 막아서더니 주먹을 휘두르는 모습을 보았다.
그러자, 순간 그의 주먹으로부터 용오름이 터져 나오며 날아들던 화살들을 모조리 날려버린다.
“아!”
저 기술은 바로 미스틱의 것. 과거 그녀가 호위 삼아 데리고 다녔던 특히 강한 힘을 지닌 토끼들의 주특기였다. 다른 이들은 알 수 없었지만, 토끼들에게 힘을 부여했던 당사자인 보호와 균형 만큼은 단숨에 그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지금은 모든 토끼들이 그녀의 존재를 잊어 버렸다. 그래서 미스틱들도 그녀를 호위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녀의 옆에는 이제 그 어떤 토끼들보다도 훨씬 강하고 듬직한 이가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그 당사자인 형진은, 뒤에서 여신이 멍한 표정으로 자신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환영의 반딧불을 펼쳐 임프들의 코앞으로 곧장 다가섰다. 그리고 화들짝 놀라는 임프들을 향해 폭렬 차기를 사용했다.
“끄엑!”
“키에엑!”
이 임프들의 반수 정도는 나무껍질을 얽어 만든 제법 그럴 듯한 방어구를 입고 있었지만, 형진의 폭렬 차기가 날아들자 제대로 막을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모조리 벽으로 날아가 처박히고 만다.
형진은 죽는다고 비명을 질러대는 놈들에게 빠르게 다가가 일일이 숨을 끊어 놓고는 곧바로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헉… 헉…”
여신은 숨이 턱까지 차올랐으면서도 얼른 달려가 바닥에 떨어진 룻을 집어 들고는 다급하게 또다시 어느 틈엔가 저만큼 앞서 가기 시작한 형진의 뒤를 쫓았다.
“크아아아!”
임프가 아니다. 이번에 형진의 앞을 가로 막은 것은 등에 우둘투둘한 돌기가 솟아있는, 일종의 도마뱀. 하지만 크기가 무지막지하다. 척 보기에도 몸길이가 사람보다 훨씬 클 것 같은 느낌. 엎드린 자세라 체고 자체는 그리 높지 않지만 그 체중과 덩치만으로도 꽤 위협적으로 느껴진다.
새로운 몬스터인가. 그렇다면 가능성은 두 가지. 서브 코어에 근접했거나, 아니면 전혀 다른 코어의 영역에 들어왔거나 둘 중 하나다.
모습을 드러낸 도마뱀의 수는 셋. 형진은 빠르게 처리하고 움직이기 위해 훌쩍 뛰어올랐다. 하지만 그가 뛰어오르는 순간 도마뱀의 등에 나있던 돌기들이 갑자기 고슴도치의 바늘처럼 곤두서더니 마치 산탄을 쏘아대듯 터지면서 그 내용물을 허공으로 뿌려댔다.
“이런.”
형진은 혀를 찼다. 아무리 라이언하트를 발동한 상태여도 이런 식으로 쏟아져 나오는 무언가를 단검 하나로 막아내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 결국 그는 환영의 반딧불로 그 공격을 피해내는 것을 선택했다.
“앗!”
하지만 그렇게 되자 놀란 것은 여신이었다.
갑자기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자신을 향해 쏟아지자 기겁을 하며 보호의 권능을 발현했다. 다행히 그 무언가는 그녀가 만들어낸 은은한 빛의 아우라에 부딪히며 증발하듯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그녀가 막아내지 못한 다른 파편들은 바위를 때리며 그것들을 순식간에 부식시키기 시작한다.
“조심하세… 요?”
바위마저 녹여 버리는 파편의 위력에 깜짝 놀라 소리쳤지만, 형진은 어느 틈엔가 도마뱀 세 마리의 숨통을 끊어버리고는 또다시 저만큼 앞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룻 역시 형진이 이미 챙긴 것인지 눈에 띄지 않는다.
“이런!”
여신은 화들짝 놀라며 커다란 배낭을 짊어진 채 다시 열심히 형진의 뒤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