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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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교육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된 건 좋은데, 덕분에 시간을 많이 잡아먹어서 정작 본래 하려던 강의는 예정대로 진행하기가 영 애매해지고 말았다. 결국 형진은 당일의 강의를 일찍 끝내기로 결정하고 대신 공지사항을 전했다.
“여러분께서 그동안 열심히 강의를 따라와 주신 덕분에 예정이 많이 단축되었습니다. 벌써 몇몇 사제분들은 숙련 단계에 접어드셨고, 다른 분들 역시 조만간 그 경지에 도달하리라 예상합니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모두 대리자님 덕분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사제들이 저마다 감사의 인사를 올리는 것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형진은 손을 들어 그들을 진정시키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서라고 하기는 뭐합니다만, 조만간 여러분에게 선물을 드리고자 합니다. 대단한 건 아니고 요리든 뭐든 앞으로 무언가를 함에 있어서 더 좋은 성과를 내는데 도움이 될 만한 소소한 물건입니다. 부담은 갖지 마시고, 살짝 기대만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하하하.”
“그럼 오늘 강의는 일단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자율적으로 실습을 더 하고 싶으신 분들은 남아서 연습을 하셔도 좋습니다. 그럼, 다음 시간에 다시 뵙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여신님, 힘내세요!”
그렇게 사제들의 인사를 받으며 형진과 여신은 회합장에서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아…”
방금 전의 일이 마치 꿈처럼 느껴졌던 것일까. 보호와 균형은 안타까움이 가득 담은 채 탄식에 잠겼다. 정말 이런 식으로 누군가에게 환영 받고 격려 받은 것이 언제였던가. 그럴 수만 있다면 계속 사제들과 함께 있고 싶을 정도다.
게다가 다시 몸의 크기도 쪼그라들어서 요정 사이즈가 되어 버렸다. 물론 몸의 크기가 중요한 것도 아니고, 회합장에서의 모습은 그저 환상에 불과할 뿐이었지만 그래도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형진은 그런 여신에게 가차 없이 다음 일정을 고했다.
“사제들과의 대면은 성공적으로 끝났으니 다음 일을 하러 가야겠군요.”
“네? 무슨…”
“아까 얘기했던 선물을 마련하러 갈 생각입니다. 물론 선물은 제가 마련하겠지만, 여신님께서 도와주신다면 사제들도 무척이나 기뻐하지 않을까 싶군요.”
그러자 여신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자리에서 발딱 일어나며 주먹을 불끈 쥔 채로 대답했다.
“돕겠어요. 그분들에게 보답하기 위해서라면, 전 무엇이든 할 각오가 되어 있어요!”
훌륭하다. 그야말로 좋은 호구의 표본이라 할 수 있을 정도의 아주 훌륭한 자세다.
“오오, 아주 좋은 자세입니다. 그럼 바로 가보도록 할까요.”
“네!”
형진은 곧바로 요정의 문을 열었다. 그러자 여신은 다시 한 번 크게 놀랐다.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이 허세와 망상의 신물을 사용해서 어딘가로 통하는 문을 여는 모습에 이 남자가 얼마나 대단한 인간인지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자, 그럼 제가 먼저 앞장서겠습니다.”
여신은 형진의 뒤를 따라 요정의 문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이질적인 풍경을 지닌 요정의 나라를 경유해 알 수 없는 어두컴컴한 동굴 속으로 접어들었다.
“여긴…”
“발디프스 대산맥에 출현한 대미궁의 내부입니다. 사제들에게 전해줄 선물은 바로 여기서 구할 수 있습니다.”
“아… 그렇군요.”
이때까지만 해도 여신은 혹시 동굴 안에서 보석 같은 거라도 캐나 싶은 생각을 떠올리고 있었다.
“좀 빠르게 이동할 생각입니다. 괜찮으시다면 제가 모시고 싶습니다만.”
형진은 그렇게 말하며 장비를 착용하고는 트렌치코트 위쪽의 주머니를 가리켜 보였다.
어떻게 보면 상당히 굴욕적일 수도 있는 일이다. 명색이 여신인데 화려한 탈 것을 마련하지는 못할망정 고작해야 코트 주머니라니. 하지만 지금 그녀의 사이즈나 처지를 생각해 보면 찬밥 더운밥을 가릴 처지도 아니다. 신이라고는 하지만 후광 좀 반짝이는 거 외엔 달리 능력도 없는 상황이니.
“그럼 실례할게요.”
“별 말씀을. 저야 말로 영광입니다.”
부끄럽다. 여신씩이나 되어서 이런 식으로 누군가의 주머니 신세를 져야한다는 사실이. 하지만 코트 주머니는 생각보다 꽤 안락했다. 자세 자체는 좀 불편했지만, 생각보다 여유 공간이 꽤 넓어서 드레스를 입은 상태로도 무리 없이 들어갈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포근하고 따뜻했다. 형진이라는 남자의 체온과 심장 박동 소리가 옷 너머로 바로 전해지는 느낌이라 여신은 자신도 모르게 살며시 얼굴을 붉히고 말았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형진은 곧바로 전율의 질주를 발동했다. 그리고 미궁 안을 지나쳐 가면서 시야에 들어오는 임프들을 사냥하기 시작한다.
“켁!”
“꾸엑!”
이미 임프 정도로는 형진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아직 마스터급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근접한 수준에 도달한 라이언하트와 인스턴트 킬의 조합은 너무나 막강해서, 고작해야 던전의 최하급 몬스터인 임프 따위는 감당 자체가 불가능하다.
“…”
보호와 균형은 자신도 모르게 눈을 찔끔 감았다. 그리고 형진이 단검을 들고 단숨에 임프들의 목숨을 빼앗는 모습을 보면서 새삼스럽게 그가 공포와 죽음을 섬기는 집행자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게 대여섯번 정도 임프들의 무리를 사냥하는 일이 끝나자 여신은 조심스럽게 형진에게 질문을 던졌다.
“선물이라는 건… 혹시 머리핀을 말하는 건가요?”
“네?”
여신을 윗주머니에 넣어두었다는 것조차 깜빡 잊은 채 사냥에 열중하던 형진은 갑작스런 여신의 질문에 깜짝 놀랐다.
그럴 수밖에 없다. 형진은 임프를 사냥하는 과정은 보여주었어도 룻으로부터 획득한 머리핀을 보여주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시 말해,
“설마… 룻이 보이시는 겁니까?”
“룻이요?”
“시체에서 튀어나오는 반짝이는 무언가 말입니다.”
“아… 그게 룻이군요. 네. 보이는데요.”
“…”
아무리 허접하고 무능력해도 신은 신이라 이건가.
지금까지 수없이 사냥이나 암살을 행하면서도 인스턴트 킬에 의해 떨궈진 룻을 알아본 이는 아무도 없었다. 물론 미엘이나 다른 이들도 지금은 형진이 어떻게 그토록 많은 희귀급 아이템을 얻을 수 있는 것인지 의아해 하는 기색이었지만, 그들이 아무리 주의를 기울여도 룻을 볼 수는 없었다.
그런데, 지금 이 조막만한 여신은 룻이 보인다고 말하고 있다.
형진은 일단 시험을 해보기로 했다.
“잠시만요.”
“네.”
곧바로 다음 리젠 장소를 덮쳐 임프들을 쓸어버리고는 다시 말했다.
“지금도 룻이라는 것이 보이십니까?”
“네. 다섯 개 정도 있는데요.”
정확하다. 이쯤 되면 보이는 것이 확실하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그것을 저에게 가져다주시겠습니까?”
“그렇게 할게요.”
여신은 주머니에서 나오더니 뽀르르 날아서 바닥에 떨어진 룻들을 집어서 형진에게로 가지고 왔다. 다섯 개 모두 빠짐없이.
“자요.”
“감사합니다.”
이건 예상치 못한 일이다. 그리고 여신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확인한 형진은 그녀의 새로운 용도를 깨달았다.
그것은 바로 루팅용 펫!
사실 지금처럼 파밍을 위한 사냥 중에 가장 번거로운 것이 뭐냐고 묻는다면 역시 일일이 루팅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사냥 자체보다도 룻을 줍는 시간이 더 오래 걸릴 정도라면 말 다한 것 아니겠는가. 하다 못 해 그 과정만 누군가가 대신할 수 있어도, 파밍 속도는 몇 배나 더 빨라진다.
지금까지는 아무리 뺑뺑이를 돌아도 하루에 잘해야 백 개 정도의 희귀급 아이템을 습득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물론 이것을 고작이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엄청난 사냥 속도에 비해 소득이 그리 크지 않았던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 루팅의 문제가 해소된다면, 이 속도는 두 배 세 배로 늘어날 수 있다. 똑같은 시간 동안 사냥을 해도 소득이 두 배 세 배로 증가한다는 얘기다!
대박! 이거야 말로 대박이 아니겠는가!
“이런 말씀을 드리면 실례일지도 모르지만…”
보호 본능을 자극하는 귀여움을 빼면 아무 쓸 데도 없어 보였던 무능력한 여신의 새로운 활용 방법을 확인한 형진이 그렇게 은근한 목소리로 말을 거는데,
“아!”
갑자기 여신의 몸에서 은은하게 피어오르던 후광이 더욱 찬란하게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어느 정도냐면, 지금까지 반딧불처럼 작고 은은하던 모습이 마치 커다란 횃불을 피운 것처럼 밝게 빛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이건…”
지켜보는 형진보다도 그녀 자신이 더욱 놀라버렸다. 어두컴컴하던 던전 안이 멀리까지 환하게 보일 정도로 후광이 강해진 탓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섬광탄처럼 눈을 아프게 만드는 그런 빛이 아니다. 빤히 바라봐도 눈이 아프기는커녕 몸과 마음이 푸근해지는 그런 안락한 빛이다.
“이게 어떻게 된 거죠?”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하는 여신의 모습에 형진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아무래도 사제들이 벌써부터 여신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모양입니다.”
“아… 세상에… 그런 은혜로운 일이…”
여신은 손을 입가에 모은 채 감격에 차서 어쩔 줄 몰라 한다. 지금의 이 빛은 아까처럼 잠깐 빛나다가 마는 수준이 아니다. 꺼지지 않는 등불처럼 은은하게 흘러나오는 이 후광은, 벌써 누군가 그녀에 대한 신앙을 본격적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구나 이 정도라면, 아마도 그 숫자마저도 제법 되지 않을까.
“후광 말고 다른 능력은 생기지 않았습니까.”
“그, 그게… 잠시만요.”
잠시 우물쭈물하던 보호와 균형은 이내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기본적인 권능 몇 가지가 돌아왔어요.”
“어떤?”
“보호, 그리고 균형의 권능이에요. 여기에 저 자신의 능력도 조금 돌아왔어요. 지금이라면 진님의 속도도 충분히 따라 잡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구체적으로 설명을 해주시겠습니까?”
“아… 내 정신 좀 봐. 우선 보호는…”
그녀가 되찾은 권능은, 이를테면 추종자들이 낙인을 부여받을 경우 얻는 기본적인 능력과 비슷한 형태의 것이다. 보호는 문자 그대로 위협이 되는 것으로부터 대상을 보호하는 권능이며, 균형은 대상의 신체를 최상의 상태로 유지시켜 주는 권능이다. 물론 아직 미약한 수준이라 보호라고는 해도 강력한 위협을 막아내기는 어렵고, 균형 역시 정신적 육체적 피로를 조금 빨리 회복시켜주는 수준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정말 다행이군요.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해요. 모두 대리자이신 진님 덕분이에요.”
계약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이만큼이나 힘을 되찾았다는 사실에 감격했는지 여신은 이제 형진에게 존경의 시선마저 던지고 있었다.
“과찬이십니다. 저야 그저 보수를 받고 일하는 것 뿐인데요.”
“아니에요. 진님이 아니었다면 저는 언제까지고 무능력한 채로 사람들에게 잊혀진 여신이었을 거에요. 정말로 감사드러요.”
“그렇습니까. 하하.”
마음 깊이 우러나는 여신의 감사 인사에 형진은 기특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웃음을 짓고는 다시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만족스러우시다니 저로선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그럼 이제 보수를 받아볼까요?”
“네? 보수요?”
“잊으셨습니까? 대리자로 일하는 대신 보수를 지급하기로 하셨잖습니까.”
“아… 그랬죠. 그런데 저는 지금 가진 것이 없는데…”
여신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권능이 조금 돌아오긴 했지만, 그것으로는 돈을 만들어 줄 수도 없다. 차라리 아무런 신을 섬기지 않는 자였다면 낙인을 내려주고 자신의 권능을 그에게 부여해 주기라도 하겠건만, 이 남자는 이미 공포와 죽음을 섬기는 집행자이다.
하지만 형진은 훈훈한 웃음을 지어 보인 채 난처해하는 여신에게 이렇게 말했다.
“괜찮습니다. 그리고 여신께서는 훌륭한 능력을 이미 가지고 계시지 않습니까?”
“무슨…”
“별 거 아닙니다. 제가 사냥할 동안 방금처럼 룻을 주워서 저에게 가져다 주시면 됩니다. 어때요. 참 쉽죠?”
그제서야 여신은 반색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 말씀이셨군요. 그런 거라면 당연히 제가 도와드려야죠! 바로 시작해요.”
“알겠습니다. 그럼 시작해 볼까요?”
하지만 여신은 몰랐다. 형진이 진심을 내기 시작하면 어떤 상황이 벌어지는지.
요리나 가공에 몰입할 때에 비하면 사냥은 그야말로 노닥거리는 수준에 불과했던 것이 사실. 하지만 이제 루팅이라는 이름의 족쇄가 풀리자, 형진은 요리나 가공 수련을 할 때처럼 전심 전력으로 사냥에 몰두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이 얼마나 엄청난 일인지, 여신은 정말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