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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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교육
“자, 그럼 계약도 무사히 끝났으니 바로 시작해 보도록 하죠.”
서로가 만족스러운 계약을 맺었으니 이제는 슬슬 그 달디단 꿀물을 체험시켜줄 차례다. 한번 맛을 들이면 빠져 나갈 수 없도록, 아주 끈적하고도 치명적인 그 맛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네? 바로요?”
보호와 균형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계약을 맺기는 했어도 이렇게 바로 뭔가가 이루어질 거라고는 생각지 못한 탓이다.
형진은 그런 여신을 푸근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이런 일은 시간을 끌 필요가 없죠. 보호와 균형께서도 가급적이면 빨리 성과를 보고 싶으시지 않으십니까?”
“그거야 그렇지만. 너무 죄송해서.”
정말 미안해서 어쩔 줄 모르는 듯한 여신의 모습을 보니 천하의 형진이라도 솔직히 좀 양심이 찔리긴 한다. 하지만 신과 인간의 관계는 언제 그 갑을 관계가 뒤집힐지 모르니 주도권을 쥐고 있을 때 확실히 휘어잡아야만 한다. 나중에 강대해지고 난 다음 미천한 인간 따위가 어쩌고 했을 때는 이미 늦은 일이니까.
“별 말씀을 다 하십니다. 모처럼 대리자로 임명이 되었는데 가만히 있어서야 도리가 아니지요. 여신님께서는 걱정하지 마시고 그저 저만 믿고 따라와 주시면 됩니다.”
“아… 정말… 너무 감사합니다.”
하지만 그런 형진의 속내를 모르는 보호와 균형은 울먹거리며 감격에 빠졌다. 지금까지 어디서 이런 식으로 대우와 관심을 받아본 적이 없다보니, 더욱더 감동에 빠질 수 밖에 없는 노릇이다. 하다 못해 그녀에게서 힘을 받아 강해진 토끼들마저도 무시하는 상황 아닌가.
“일단, 이 자격을 받아들이십시오.”
“이건…”
“희망과 생명의 사제들이 모이는 회합장에 출입하기 위한 임시 권한입니다. 제가 가서 알려도 되겠지만, 이런 것은 역시 여신께서 직접 모습을 드러내 보이시는 편이 좋지 않겠습니까?”
보호와 균형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런 것도 가능한가요?”
“물론입니다. 자, 그럼 저를 따르십시오.”
형진이 먼저 눈을 감고 회합장으로 접속하자, 임시로 손님 권한을 받은 여신 역시 그 뒤를 따랐다.
“어떻습니까.”
보호와 균형은 눈앞에 드러난 아름다운 꽃밭의 정경에 감탄했다.
“아… 이건… 혹시 토너먼트와 같은 원리인 건가요?”
“그렇습니다. 바로 알아보시는군요. 역시 여신님이십니다.”
“대, 대단한 것도 아니에요.”
이런 식으로 칭찬을 받아본 것은 또 언제였던가. 자신도 모르게 부끄러운 기분이 들어 고개를 숙이는 여신을 바라보며 형진은 다시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모처럼 이렇게 방문하셨으니 제가 선물을 드리도록 하죠.”
“선물이요?”
“대단한 건 아닙니다.”
그렇게 말하며 형진이 손을 한 번 휘저어 보이자, 요정처럼 자그마한 모습이었던 여신의 체구가 보통 성인 여성 정도의 크기로 변화했다.
“이건… 도대체…”
자신의 변화에 크게 놀란 여신이 당황한 모습을 보이자, 형진은 그녀에게 춤을 권하듯 손을 내밀어 보이며 대답했다.
“말씀드렸다시피 전 희망과 생명의 대리자입니다. 희망과 생명의 교단에 속한 모든 것을 여신의 뜻을 대신해 관리할 수 있는 권한이 있죠. 사실은 이 회합장도 제가 그 권한으로 구현해낸 것입니다. 아직 현실에서의 모습을 바꾸어드릴 수는 없지만, 이 회합장 안에서라면 겉모습을 조금 꾸며 드리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세상에…”
대리자라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그 정도로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으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기 때문에, 보호와 균형은 다시 한 번 크게 놀라고 말았다.
“자, 그럼 가시지요. 오늘은 마침 제가 사제들에게 교육을 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함께 가셔서 사제들에게 인사도 하시고, 교육도 함께 지켜보시지요.”
“감사합니다. 정말 너무 감사해요… 흑…”
보호와 균형은 다시금 울먹이며 눈물을 떨구었다. 슬퍼서 울고, 기뻐서 울고, 감격해서 울고. 정말 걸핏하면 울어대는 울보 여신이다. 셜마 보호와 균형에서 보호의 의미가 보호 받아야만 하는 여신이라는 의미인 건 아니겠지.
“울음을 그치십시오. 어떻게 보면 여신의 이름을 직접적으로 알리는 것은 바로 사제들의 몫입니다. 그런 이들과의 첫 만남인데 예쁘게 보이셔야죠.”
“그렇지만… 너무 고마워서…”
“어허, 뚝.”
“뚝.”
여전히 눈물이 그렁거리면서도 억지로 울음을 참으려드는 모습이 꽤 귀엽다. 작은 사이즈일 때는 그냥 귀엽구나 했는데, 이렇게 보니 역시 여신이다 싶을 정도의 순진무구하고 청초한 모습이다.
“자, 가실까요.”
“네.”
겨우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진정시키고 사제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향했다. 하지만 도착하기가 무섭게 다시 눈이 휘둥그레진다. 수많은 사제들이 질서 정연하게 자리한 채로 형진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에 놀란 것이다.
형진은 빨간 드레스를 입은 보호와 균형을 연단으로 이끌며 사제들에게 그녀를 소개했다.
“오늘 저는 조금 특별한 손님을 이 자리에 모셨습니다.”
그가 여자를 데리고 강의 장소에 나타난 것이 처음은 아닌지라 사제들은 대부분 그런가보다 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다만 여자 사제들 가운데 몇몇은 신녀님은 어쩌고 또 새로운 여자를 데리고 왔다며 자기들끼리 조심스럽게 흉을 보기 시작한다.
하지만 형진이 누구인가. 그 정도 수군거림 따위에 굴할 것 같았으면 매번 자신의 반려들에게 변태니 사기꾼이니 하는 소리를 듣고도 가볍게 흘려버리거나, 뻔히 공포와 죽음께서 지켜보고 있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당당하게 뜨거운 밤을 보내거나 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처음 이 세계에 왔을 때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아마도 정신적인 강건함을 유지시켜주는 낙인의 효과나, 어떠한 상황에서도 능수능란한 대처를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라이언하트의 상승효과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건 좀 아닌가. 그냥 숨겨져 있던 본성이 여러가지 일을 겪으면서 깨어난 것인지도.
어쨌든 몇몇 여사제들이 수군거리는 것을 무시한 채, 사실은 누가 수군거리는지 깨알같이 메모를 해두면서, 형진은 자신이 데리고 온 여신을 사제들에게 소개했다.
“놀라지 마십시오. 이분으로 말할 것 같으면, 무려 여신이십니다. 그 이름은 바로 보호와 균형. 물론 희망과 생명에 비하면 조금 덜 유명하신 분이십니다만, 보시는 바와 같이 아주 아름다우시고, 또한 따뜻한 마음을 지니신 분이니 여러분과도 친하게 지낼 수 있을 듯 합니다.”
누구길래 이렇게 강의 시간을 잡아먹으면서까지 소개를 하나 싶었던 사제들은 깜짝 놀랐다. 어디 잘 나가는 가문의 귀족 영애거나 대충 그런 사람 아닐까 싶었던 예상을 뒤엎고, 형진의 입에서 나온 소개는 무려 여신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장소는 희망과 생명 교단의 회합장. 만약 형진이 아닌 다른 사람이 이런 말을 했거나, 또는 다른 장소에서 이런 말을 들었다면 농담이겠거니 싶은 생각이라도 떠올렸겠지만, 엄연히 신의 힘으로 구현된 장소에서 신의 대리자에 의해 소개된 것을 농담으로 치부할 수도 없는 일.
“여신을 뵙습니다.”
“여신을 뵈어요.”
곧바로 사제들은 고개를 숙이며 그녀에게 예를 취해 보인다. 조금은 떨리고, 조금은 황망한 기분으로 연단에 서 있던 보호와 균형은 사제들에게 인사를 받는 순간 뭔가 막 뿌듯한 기분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런 느낌을 전해 받는 동시에 그녀의 몸에서 환하고 따뜻한 빛이 은은하게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아…”
가만히 옆에서 지켜보던 형진은 갑작스런 여신의 변화에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것이 본래 보호와 균형이 지니고 있어야할 후광의 일종이라는 사실을. 사제들의 인사는 진심을 담은 것이었고, 그 신실함이 가득 담긴 인사를 받는 순간 그녀가 본래 지니고 있어야 하는 것들 가운데 아주 사소한 것 하나가 돌아온 것이다.
형진은 잠시 그녀의 몸에서 은은하게 흘러나오는 후광에 감탄하다가, 이내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얼마나 가진 바 힘이 없었으면 인사 한 방에 후광이 돌아오나 싶었던 것이다. 이걸 바꿔 말하자면 후광조차 제대로 구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빈곤한 여신이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결국 참지 못하고 이 울보 여신은 또 울먹이기 시작한다. 이번엔 형진도 딱히 말리거나 하지 않았다. 명색이 여신이 인사 한 번 받았다고 울먹이는 모습이 그리 흔히 볼 수 있는 일도 아니고, 앞으로 사제들을 설득하는데 있어서도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일단 여기 앉으십시오.”
“네… 죄송해요.”
형진은 연단 뒤쪽에 의자를 만들어서 그녀를 앉힌 다음, 갑자기 울먹이기 시작하는 여신의 모습에 자신이 뭔가 잘못한 건가 싶어서 어리둥절해 하는 사제들을 향해 말을 시작했다.
“보호와 균형께서는 감수성이 좀 예민하십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의 진실한 마음이 담긴 인사를 받고 감격하신 것입니다.”
그제서야 사제들은 크게 안도하는 기색을 보였다.
“아… 그랬군요.”
“다행이에요. 혹시나 뭔가 결례를 한 것인가 하고 걱정했는데.”
역시나 훌륭한 호구 마인드를 갖춘 사제들. 호구 사제와 호구 여신이 만났으니, 의외로 일이 잘 풀릴 것 같은 느낌이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사실 보호와 균형께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여신이십니다. 때문에 매우 곤궁한 상황에 처해 계시지요.”
형진은 간단하게 보호와 균형에 대한 설명을 했다. 오래 전에 잊혀졌다가 최근에서야 다시 활동을 시작했고, 더불어 엘 파르드 지역의 신전에 자리 잡은 토끼들에게 힘을 전해준 장본인이며, 그렇게 아낌없이 힘을 나누어 주다보니 당장 여신으로서의 체면치레를 하기 어려울 정도로 곤궁한 처지에 빠졌다는 사실을 차분하게 사제들에게 알린 것이다.
“그런 일이.”
“어쩜.”
“안타까워요.”
불쌍한 사람이 있으면 그냥 두고 못 보는 호구심 충만한 사제들이 그런 사연을 듣고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처음 형진이 여신을 연단에 불러들였을 때 또 새로운 여자냐고 흉을 보던 여사제들도 눈물을 글썽이고 있을 정도니 말 다한 것 아니겠는가. 물론 그렇다고 적어둔 메모를 지울 형진이 아니긴 하지만.
“그래서 말입니다.”
형진은 그렇게 운을 떼고는 사제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런 아름다운 마음을 지닌 여신을 이대로 잊혀지게 해서야 되겠습니까. 세상 모든 사람을 위해서도, 이런 훌륭한 여신은 이름을 널리 알려 그 혜택을 고루 누릴 수 있도록 해야만 합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곧바로 사제들에게서 뜨거운 반응이 돌아온다.
“맞아요. 이번만큼은 대리자님의 말씀이 절대로 옳아요.”
“돕고 싶습니다. 저희들이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대리자님, 저희에게 지혜를 빌려 주십시오.”
“보호와 균형께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그러자 뒤에 앉아서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있던 보호와 균형은 다시 한 번 감격을 참지 못하고 울먹이기 시작했고, 억지로 내색하지 않으려고 끅끅거리며 눈물을 삼키는 그 모습이 다시 한 번 사제들의 마음을 강하게 뒤흔들었다. 보호의 여신이 아니라 보호본능 유발의 여신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강렬하게.
“여러분의 그 마음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형진은 그렇게 말하며 사제들을 향해 손을 펼쳐 보였다.
“보호와 균형께서 지금의 곤궁한 처지로 내몰리신 것은 오직 여신의 이름이 사람들에게서 잊혀진 탓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을 해결할 방법은 단 하나. 여신의 이름을 세상 모든 사람에게 널리 퍼뜨리면 되는 것이지요.”
“아… 그렇군요.”
“그런 간단한 방법이!”
잠시 말을 멈추고 반응을 지켜보던 형진은 감탄하는 사제들을 바라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
“물론 이건 강제사항은 아닙니다. 여러분은 본래 희망과 생명의 사제들이시니, 다른 신을 위해 그 이름을 알리고 신도를 모으는 것이 자칫 불경으로 비춰질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이번만큼은 특별히 희망과 생명의 대리자인 제가 허락하겠습니다. 그저 사람들이 보호와 균형이라는 이름을 한번쯤 들어보고 그분의 은총을 기원할 수 있도록 해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조만간 제가 보호와 균형의 문양을 새긴 작은 사당과 여신의 모습을 담은 신상을 만들어 각 신전에 나누어 드릴 테니, 신전 한 켠에 자리를 마련해 그것을 들여놓고 사람들에게 그것이 지닌 의미를 설명해 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그렇게 해주시겠습니까.”
간곡하게 울려 퍼지는 형진의 말에 사제들은 벌떼처럼 일어나 열렬한 반응을 보였다.
“저는 대리자님의 말씀에 따르겠습니다.”
“작은 사당을 들여 놓는 정도라면 다른 사제님들도 이해해 주실 거에요.”
“이토록 마음 따뜻한 여신이시라면 마땅히 그 이름이 알려져야 합니다. 저 역시 대리자님의 말씀에 따르겠습니다.”
“보호와 균형님, 울지 마세요. 저희들이 도와드릴게요.”
결국 보호와 균형은 쏟아지는 격려와 위로에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형진은 그런 호구 사제와 호구 여신의 결합을 통해 빨대가 무사히 제대로 훌륭하고 완벽하며 철저하게 꽂혔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