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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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천벌
“틀림없지?”
“물론입니다. 저와 함께 몇 명이나 가서 확인했습니다. 김밥천국이라는 곳에 가서 식사도 몇 번이나 하고 그랬어요. 성역도 어디까지 효과가 있는지 다 알아뒀습니다.”
“오, 잘했다.”
성역은 일반인들은 눈으로 그 범위를 확인할 수 없다. 그래서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 잠입했던 자들은 서로의 얼굴에 주먹을 날리는 행동을 통해 그 범위를 확인해야만 했다. 대답하는 병사의 눈두덩이가 서퍼렇게 변해 있는 건 아마도 그래서인 모양이다.
“그런데… 정말 괜찮겠습니까. 아무리 호구신의 신전이라고는 해도…”
“천벌? 에이, 그거 다 거짓말이야. 천벌이 정말로 있었으면 네놈들이 신전 안에서 쌈박질을 하는데 가만히 놔뒀겠어?”
“아하. 그렇군요.”
신전 근처의 으슥한 골목에 모여든 병사들의 눈에 음탕함이 서린다. 사제들에게 기본적으로 부여되는 뽀샤시라든가 후광 효과 같은 것은 형진이 자율적으로 켜고 끌 수 있도록 만들었다지만, 선량한 사제들의 외모는 역시 일반인들에게는 뭐가 달라도 달라 보이는 면이 있었다. 게다가 이전에 퍼졌던 호구신의 사제에 대한 소문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 사실 이번 일에 동원된 병사의 상당수는 그 소문 때문에 모여든 것이기도 했다.
“그런데 아직 신전 안에 식량이 남아 있을까요?”
“글쎄. 하지만 김밥천국이란 곳을 봐. 이 난리통에 그렇게 싼 가격에 음식을 파는 곳이 어디있어. 게다가 영주님한테만 그런 것이 아니라 거지 떼 같은 영민들한테도 식량을 풀었다더군.”
“세상에. 얼마나 많은 식량을 쌓아뒀길래.”
“내 말이. 쉿. 시간 거의 다 됐다. 신호가 오면 바로 움직인다.”
“네.”
병사들은 무기를 움켜잡고 침입을 준비했다. 조장으로 나선 선임 병사는 주의 깊게 전방을 살피다가 근처의 건물 위에서 작은 불빛이 규칙적으로 반짝이자 한 손을 들어 올렸고, 그 모습을 본 병사들은 일제히 목에 걸치고 있던 수건을 끌어올려 복면을 했다.
“이동.”
거듭된 전투로 인해 병사들의 숫자가 많이 줄긴 했지만, 반대로 실전을 통해 정예화되었다. 물론 그 와중에 인간으로서 당연히 지녀야 할 감성이 마모되어 스스로의 욕망을 위해서라면 살육을 주저하지 않는 자들이 생겨나는 건 부수적인 효과였고, 지금 모여 있는 자들 대부분은 바로 그런 과정을 거친 이들이었다. 적어도 이 세계에서 정상적인 정신 상태를 가지고 있는 이들이라면 신전에 대한 약탈에 대해 주저할 수밖에 없는 일. 다시 말해 이들은 이미 그만큼 정신이 망가져 있다는 뜻도 된다.
도적의 행색을 하고는 있다지만 실력이 어디 가지는 않는지, 정예병다운 일사분란한 움직임으로 그들은 곧바로 신전의 입구에 도달했다.
잠시 주위를 살피고는 역시나 지키는 이가 없음을 확인하자, 그들은 곧바로 신전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채 몇 걸음 안으로 들어서기도 전에, 그들은 무언가가 길목을 가로 막고 있는 것을 눈치 챘다.
“저건…”
“토끼?”
그렇다. 그곳에 버티고 서 있는 것은 한 마리 토끼였다. 뒷짐을 진 자세로 붉은 눈동자를 반짝이며 마치 그들을 내려다보는 듯한 시선을 던지고 있는, 이른바 협객 토끼라고 불리는 바로 그 토끼다.
병사들은 잠시 눈빛을 교환했다. 이 세계에서 토끼의 존재는 어지간한 장정 몇이 모여도 상대하기 어려운 맹수. 하지만 이들 또한 보통 장정들이 아니다. 전장에서 담금질된 정예병이 고작 토끼 따위에게 겁을 먹고 물러나서야 말이 되겠는가.
후열의 병사들 가운데 몇이 앞으로 나서며 석궁을 겨눈다. 하지만 그들이 앞으로 나서며 자세를 취하는 순간, 협객 토끼의 앞발이 번쩍 들어 올려진다.
“컥!”
“크악!”
그것이 신호였던가. 갑자기 신전 입구 양옆의 풀숲에서 희고 검은 털뭉치들이 튀어 나와 동시에 병사들을 기습했다.
“젠장! 매복이다!”
“미친! 토끼들 따위가 매복이라니!”
병사들은 당황했다. 그들이 아는 토끼는 제법 강하기는 해도 무리지어 다니지 않는 동물이다. 하지만 지금 그들을 에워싼 토끼의 수는 어림잡아도 열 마리는 되어 보인다. 게다가 놈들 중에는 마법으로 보이는 불꽃이나 얼음을 날리는 녀석들도 있었다.
작고 빠른데다 개개의 실력이 장정 몇은 쌈 싸먹을 정도인 녀석들이 좌우에서 동시에 들이치자 병사들의 전열은 금새 허물어지고 말았다.
이렇게 되자 이미 신전을 은밀하게 터는 일은 불가능해지고 말았다. 사방에서 터져 나오는 비명과 격투의 소음에 주위의 주택에서도 이 소란을 알아차리기 시작한 것이다.
“쳇! 멍청한 놈들. 할 수 없지. 우리가 나선다.”
가급적이면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려 했던 기사단이 그 모습을 보고는 바로 행동을 개시했다. 신전을 털어먹는 것은 아무래도 좋게 봐 넘길 수 없는 일이라 가능한 한 조용히 일을 마무리하려 했다. 그러나 이미 그것이 불가능해진 상황이라면 목격자를 전부 없애는 한이 있더라도 목적만큼은 달성해야만 한다.
곧바로 다섯 명의 기사가 신전에 난입했다. 토끼는 충분히 강한 존재지만, 오로지 전투만을 위해 단련한 기사들의 상대가 되기는 어려웠고, 위기에 빠졌던 병사들은 그들의 도움 덕에 숨을 돌릴 수 있게 되었다.
“이미 조용히 끝내기는 글렀다. 가급적 빠르게 최고 사제를 비롯한 주요 목표를 제압…”
선두에 선 기사가 그렇게 외치며 앞으로 걸음을 내딛는 순간, 하늘에서 그것이 떨어져 내렸다.
꽈릉!
한 점 구름조차 없는, 게다가 달마저 아직 뜨지 않아서 반짝이는 별빛만 가득하던 하늘로부터 한줄기 빛이 떨어져 내렸다.
그것이 떨어져 내린 순간, 기사를 바라보던 이들은 갑작스런 섬광과 굉음에 일순 시력과 청각을 잃어 버렸다.
털썩.
윙하는 이명과 함께 잠시 상실되었던 시각과 청각이 돌아오는 순간, 그들의 눈앞에 드러난 것은 전신이 새카맣게 그을은 채로 부들부들 떨며 앞으로 폭 고꾸라지는 기사의 모습이었다.
“어? 어어?”
“이건… 설마…”
누가 따로 설명해주지 않았음에도 그들은 이것이 어떤 이유에서 어떻게 만들어진 현상인지 바로 이해했다.
천벌.
그들 앞에 떨어져 내린 벼락의 정체는 바로 그것이었다.
그제서야 그들의 이성은 자신들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일을 저지르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원래대로라면 행동에 나서기 전에 미리 깨달았어야만 하는 일을, 이렇게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나서야 비로소 떠올린 것이다.
하지만 모든 이들이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 와중에도 여전히 미쳐 날뛰는 인종은 있었다. 다른 이들보다 좀 더 확정적으로 미친놈들이며, 또한 이 모든 일의 주동자이기도 한 자들이다.
“눈속임이다! 어딘가에 마법사가 있을 것이다. 두려워 말고… 컥!”
그렇게 외치며 앞으로 튀어나가는 순간, 여지없이 다시 한 번 벼락이 떨어졌다. 아마도 마법을 방어해내는 무언가를 지니고 있었던 모양인지 벼락이 떨어져 내리는 순간 놈의 몸에서 뭔가가 펑 하고 터져 나가는 소음이 들려온다.
“내가 맞아봐서 아는데, 이게 그냥 좀 짜릿하고 마는 게 아니거든.”
그들은 미처 몰랐다. 방금 자신들에게 떨어져 내린 그 천벌이 신에 의해 내려진 형벌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들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자랑이 아니거든요?”
“하하, 그런가.”
침입자들에게 천벌을 떨군 것은, 다름 아닌 형진이었다. 하지만 입으로 내뱉는 말과는 달리 그의 심기는 상당히 불편한 상태였다. 모처럼 아리따운 마눌들과 즐겁고 오붓하며 야릇한 해피 타임을 즐기던 도중에 방해를 받은 탓이다. 단순히 밥 먹다가 방해를 받아도 짜증이 날 수밖에 없는데, 한참 산꼭대기 정상이 보이는 위치까지 도달해 놓고 마무리를 못 지은 채 달려 나왔으니 그 짜증스러움이 오죽할까.
형진에게 핀잔을 준 유아는 기사들에게 부상을 입은 토끼들부터 일단 치료했고, 제랄딘은 두려움에 떠는 사제들과 아이들을 살피기 위해 움직였으며, 형진은 침입자들의 모습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신전 옥상에서 무언가를 설정하기 시작했다.
“준비 완료. 그럼 화려한 천벌놀이를 시작해 볼까. 뮤직 스타트.”
형진이 무언가 명령을 실행하자, 갑자기 신전 전체가 대낮처럼 환한 빛에 휩싸였다.
“윽!”
그렇지 않아도 앞장서던 기사 두 명이 날벼락에 맞아 쓰러지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우왕좌왕하던 병사들은 갑자기 신전에 속한 영역 전체가 강한 빛을 발하자 반사적으로 눈을 가렸다.
하지만 그렇게 눈을 가린 순간, 그들의 귀에 커다란 음악 소리가 울려 퍼진다.
과과과광!
마치 천둥이 내려치는 듯한 그 강렬한 음절에 병사들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곧바로 이어지는 선율을 통해 그것이 음악의 일종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서로를 돌아보기 시작한다.
이미 일은 완전히 틀어진 상황. 게다가 앞으로 나서던 기사 둘이 천벌로 보이는 벼락에 맞아 쓰러지기까지 했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남은 선택지는 과연 무엇일까.
하지만 그들이 잠시 고민하는 사이, 사방에서 들려오던 장엄한 음악소리는 서서히 그 소리를 키워가더니, 처음 그들을 놀라게 했던 강렬한 음절이 다시 한 번 반복되었다.
꽈과과광!
베토벤 교향곡 제5번.
흔히 운명이라는 별칭으로 더 잘 알려진 이 음악의 상징과도 같은, 마치 운명이 문을 두드리는 것 같은 소리처럼 들리는 강렬한 음절이 울려 퍼지는 순간, 하늘 전체를 새하얗게 물들이는 듯한 강력한 벼락이 침입자들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린다.
“끄악!”
“컥!”
이 상황까지 와서도 혹시나 하는 생각을 떠올리며, 또 한 편으로는 명령권자의 명령이 아직 나오지 않은 탓에 아직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던 침입자들의 머리 위로 거대한 빛의 장막과도 같은 벼락이 연이어 떨어진다.
그것은 멀리서 보기에는 마치 음원 재생프로그램의 시각 효과 가운데 하나를 구현한 듯한 모습이었다. 사방에서 격렬하고 장엄한 음악의 곡조가 울려퍼질 때마다 마치 리듬을 맞추듯이 떨어져 내리는 벼락의 향연은 직접 당하는 이에게는 공포를, 멀리서나마 지켜보는 이들에게는 전율이라는 감정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아… 이 좋은 능력이 신전 안에서만 사용 가능하다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구나.”
지금 그가 떨구는 벼락은 문자 그대로 천벌이다. 희망과 생명을 대신해서 감히 신전을 욕보이고 더럽히려던 자에게 사용이 허락된 징벌인 것이다. 하지만 엄연히 이것은 신전을 지키기 위한 자위적인 수단으로만 사용할 수 있고, 이렇게 임의적으로 떨굴 수 있는 것도 지금과 같은 비상 사태에만 한정 되어 있었다.
물론, 형진이 이렇게 수동으로 떨구지 않더라도 신전 안에서 사제들에게 위해를 가하려 하면 자동으로 발동된다. 하지만 그런 식의 자동 발동으로는 지금 보여지는 극적인 효과는 이루어낼 수 없다.
“악취미에요.”
마치 교향악단을 지휘하는 지휘자처럼 두 손을 휘저으며 벼락을 떨구는 일을 즐기는 형진의 모습에 유아는 얼굴을 찌푸리며 그렇게 말했다.
“알아. 하지만 적어도 사람들은 알게 되겠지. 제 아무리 호구신이라 불리는 신이라도, 그것이 감히 무례를 범하거나 얕보일 이유는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
확실히 지금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태는, 이 모든 일들을 지켜보고 있을 수많은 사람들에게 그냥 벼락만 파파팍 떨구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충격을 선사하고 있었다. 강렬한 빛과 음악이 결합한 상태에서 연이어 침입자들에게 쉴 새 없이 떨어져 내리는 벼락이라니. 이미 이것이 형진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작품임을 알고 있는 유아로서도 잠시 말을 잊을 정도라면, 다른 이들이야 말할 것도 없는 일 아니겠는가.
“일단 신전 안에 있던 사제님들과 아이들은 섬으로 모두 피신을 시켰어요.”
“끙… 오늘 밤은 애 보느라 정신없겠군.”
불벼락쇼는 그렇다 쳐도, 이후에 벌어진 본격적인 징벌을 희망과 생명의 사제들이나 그들이 키우는 아이들이 보는 건 별로 좋지 못한 일이라는 판단에 일단 모두 섬으로 대피를 시켰다.
“허… 이거 참, 아주 화끈하게 쏟아 붓고 계시는 군요.”
뒤늦게 연락을 받고 달려온 오귀스트와 하마란, 그리고 할은 형진이 선보이고 있는 불벼락쇼를 보고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하마란.”
“네.”
“수호자들에게는 연락을 보냈나.”
“물론이에요. 소식을 전해 받자마자 바로 기별을 보냈어요. 준비가 끝나는 대로 다시 연락이 올 거에요.”
“좋아. 그럼 하마란은 여기서 유아를 지키고 있도록.”
“알겠습니다.”
하마란의 대답을 들은 형진은 오귀스트와 할, 그리고 제랄딘을 돌아보며 말했다.
“모처럼 화끈한 집행자의 시간이 돌아온 것 같습니다. 아, 바로 신호가 오는군요.”
곧바로 신전 인근의 마을 곳곳에 빨간 화살표가 동동 떠다니기 시작한다. 공포와 죽음에 의해 확인된 관련자들의 위치다.
“자, 그럼 움직이도록 합시다. 꼴찌는 내일 아이들 기저귀 세탁을 맡는 걸로 하죠. 출발!”
“헉! 자, 잠깐…”
자기가 당했던 천벌 세례가 떠올랐는지 불벼락쇼를 보며 움찔움찔 몸을 떨던 할은 형진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지만, 순간 떨어져 내린 벼락에 직격 당하며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내기를 거는 순간 공포와 죽음으로부터 천벌이 떨어져 내린 것이다.
“바, 반칙이라고요…”
할은 그렇게 애처로운 목소리로 울부짖었지만, 그렇다고 뒤따라 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가 움직이는 순간 내기에 참여한 것으로 인정되어 다시 불벼락이 떨어져 내릴 테니 움직일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