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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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천벌
형진과 제랄딘, 그리고 오귀스트는 신전의 담을 넘어 곧장 마을로 들어섰다.
[중앙은 내가, 좌측은 오귀스트님, 우측은 제랄딘. 이의 있는 사람?] [없습니다.] [먼저 갈게요.] [앗! 얘기도 안 끝났는데!]한동안 서류 업무만 한 탓에 몸이 근질근질했는지 제랄딘은 전신에서 검은 기운을 확 뿜어내며 곧장 골목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렇게 좀 더 다가서자, 앞쪽에서 투덜거리는 소리와 함께 한 무리의 사람들이 달려 나가는 모습이 보인다.
“젠장! 얘기가 틀리잖아!”
“시끄러워. 말할 시간이 있으면 달려! 벼락 맞고 싶지 않으면.”
여차하면 신전 주위 마을을 초토화시켜 증거를 인멸하려는 생각이었는지, 마을 이곳저곳에 꽤 많은 인원의 병력이 집결해 있었다. 하지만 형진이 쏟아낸 불벼락쇼를 보는 순간 그렇게 대기 중이던 모든 이들은 모두 경악과 공포에 빠졌다.
천벌. 그것을 모르는 이는 없다. 하지만 이들은 설마 이런 식으로 그 천벌이라는 것을 목격하게 될 거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않았다. 아니, 천벌이라는 것이 있더라도, 생명을 사랑하는 호구신이 자신들에게 그런 식으로 벌을 내릴 거라고는 생각지 않은 것이다.
생각지 못한 것이 아니다.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본격적인 약탈조로 투입되지 못하고 대기조가 되어 버린 것이 불만이었던 자들이 자신도 모르게 가슴을 쓸어내리는 순간, 지휘관으로부터 신속히 이탈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저런 식의 불벼락에 병력을 들이밀어 봐야 아무 의미도 없는 일이라는 것을 뒤늦게야 깨달은 것이겠으나 이미 늦어도 너무 늦어버린 일이다.
그렇다. 너무 늦었다. 이미 집행자들이 그들의 위치를 포착하고 움직이기 시작한 상황에서 그런 식의 이탈 명령 따위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급히 걸음을 옮기던 병사들 속으로 무언가가 떨어져 내렸다. 시커먼 무언가가 행렬 중간으로 떨어져 내리는가 싶더니, 곧바로 무언가 부러지고 부서지는 소음과 함께 병사들이 솜인형처럼 허공을 날아 벽과 담에 맹렬한 속도로 부딪힌다.
“커흑…”
“끄아아아아아!”
그 일격에 목이 부러지고 가슴이 함몰되어 즉사한 이들은 차라리 나았다. 팔다리가 꺾이고 허리가 부러진 병사들이 눈앞에서 불똥이 번쩍 하는 듯한 충격과 동시에 전신으로부터 전해지는 끔찍한 고통으로 인해 찢어질 듯한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치자, 작은 골목은 순식간에 공포가 군림하는 아수라장으로 변하고 말았다.
“아, 악마… 커흑!”
누군가의 비명처럼, 지금 이 순간 제랄딘은 악마와도 같은 느낌으로 공간을 지배하고 있었다. 흑요호와의 계약을 통해 얻은 힘이라고는 하지만, 그녀는 그 누구보다도 미엘과 오랜 시간을 보냈으며 그만큼 강력한 교감을 지니고 있었고, 때문에 집행자 가운데서도 손꼽히는 강자로 군림할 수 있었다. 그 힘은 일개 병사 따위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사악한 악마 따위에게 질까보냐!”
병력을 이끌고 있던 것으로 보이던 기사가 제랄딘에게 그렇게 소리치며 달려든다.
이런 식으로 상대의 주의를 끄는 식의 행동은 전투 상황에서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일. 하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마음속을 잠식해 들어오는 공포에 짓눌려 버렸을 것이다. 말이란 때로 다른 이는 물론이고 자신을 조절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적어도 지금의 이 기사에게는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로부터 은연중에 전해지는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그 작은 수단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퉁!
하지만 모처럼의 일격은 제대로 휘둘러지기도 전에 검은 빛의 무언가에 가로막혔다. 기사는 반동을 이용해 다시금 일격을 가하려 했지만, 순간 번뜩이는 어떤 직감에 의해 급히 몸을 숙였다.
훙!
그러자 곧바로 검은 빛의 무언가가 방금 그의 머리가 위치하던 곳을 스치고 지나간다.
기사는 모골이 송연해지는 느낌을 받으며 허겁지겁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공격을 막아야 했다.
“이런 미친…”
그것은 마치 팔이 여러 개 달린 괴물을 상대하는 것과 같은 기분이었다. 기사는 다시 공격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서로 다른 방향에서 다른 각도로 날아드는 무언가를 막아내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제대로 눈앞이 보이지도 않을 정도의, 달도 없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 여전히 내리치고 있는 불벼락의 섬광에만 의지해 자신에게 날아드는 공격을 막아내는 것은 말처럼 쉬운게 아니다. 그렇게 잠시라도 공격을 막아낼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 기사의 실력은 칭찬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그것도 그리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옆구리를 노리고 날아드는 무언가를 막아내는 순간 채찍과도 같은 무언가가 기사의 목을 낚아채 허공으로 들어올린다.
“커흑…”
기사는 목이 졸린 채 들려지는 순간 보았다. 검은 안개와도 같은 무언가 사이로 언뜻 비친, 두건을 깊게 눌러쓴 누군가의 갸름한 턱선과 어둠 속에서도 유난히 선명하게 반짝이는 붉은 입술을.
여자?
그 단어를 떠올리는 순간, 기사의 목은 죄어오는 힘을 견디지 못하고 그대로 부러져 버린다.
“힉!”
갑옷이 우그러지고 뼈가 부러지는 소름끼치는 소리와 함께 기사의 몸이 축 늘어지자,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가지고 지켜보던 병사들의 안색은 어둠속에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창백하게 질려버리고 말았다.
“으아아아아!”
비명인지 발악인지 모를 소리를 지르며 병사 하나가 창을 들고 제랄딘을 향해 맹렬하게 달려든다. 공포가 머리 끝까지 차올라 자신이 뭔 짓을 하는지도 모르고 그런 행동을 벌인 것이다.
하지만 그 병사는 제랄딘을 향해 제대로 창을 찔러보지도 못했다. 묵직하게 날아드는 일격에 턱 아래를 얻어맞음과 동시에 구겨지듯 벽을 부수며 처박히고 만 것이다.
“힉!”
“엎드려! 보지 말고 엎드려!”
미친 듯이 때려대는 벼락 소리와 벽 너머에서 들리는 고함과 비명 소리에도 맘 편하게 숙면을 취할 수 있는 인간이 과연 있을까. 가슴 졸이며 한 군데 뭉쳐서 떨고 있던 가족들은 갑자기 한쪽 벽을 뚫고 피투성이로 변해버린 인간의 상반신이 튀어 나오자, 기겁을 하며 머리를 처박고 신에게 자비를 빌었다. 그리고 저들에게 내려진 천벌이 자신들에게까지 전해지지 않기를 또한 간절히 빌었다.
살육이 시작된 곳은 그곳만이 아니었다.
“누구냐!”
급히 마을을 벗어나려던 한 무리의 병사 앞에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낸다.
손에 들고 있는 것은 한 자루의 검과 상반신을 가릴 정도의 크기를 가진 두툼한 방패. 혹시 동료인가 싶어 살펴 봤지만, 이런 종류의 방패라면 의례 새겨져 있어야 하는 문장이 없다. 아니, 본래는 새겨져 있었던 것 같지만 이미 지워져서 알아볼 수 없게 되어 있었다.
몸에는 모험가용으로 보이는 하프 플레이트를 걸치고 있는데, 두건을 써서 거무스름하게 수염 자국이 나있는 아래턱 정도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선두에서 병사를 이끌고 있던 기사는 그 모습과 걸음걸이, 그리고 자세를 보고 알 수 있었다.
이 자는 기사다. 그것도, 자신이 지금껏 본 적이 없는 강한 기사.
손을 들어 뒤따르는 병사들에게 신호를 보내고는 등에서 태도를 뽑아든다. 두툼하게 뻗어 올라가다가 마치 도끼와 같은 형태의 날끝을 가진, 지구에서였다면 변형된 펄션으로 불릴 법한 무기다. 도검의 형태를 가진 도끼라고 부르는 편이 좋을 법한 기형 무기지만, 질기고 두터운 갑주도 단숨에 쪼개버리는 손맛이 있어서 엘 파르드의 검사들이 흔히 사용하는 무기중 하나이다.
“탓!”
기사는 짧은 기합성과 함께 쇄도하며 상대의 방패를 향해 자신의 애병을 휘둘렀다. 일단 한번 상대를 방어 자세로 몰고 가기만 하면, 위에서 내리찍는 쉴 새 없는 공격으로 단숨에 적의 방어구를 무용지물로 만들어 박살내 버릴 수 있다는 자신감이 담긴 공격이다.
예상대로 상대가 방패를 내밀며 방어 자세를 취하자 기사는 승기를 잡았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하지만 그건 너무 이른 판단이었다.
쾅!
기사의 무기가 방패와 닿는 순간, 예상치 못한 굉음이 터져 나왔다.
“컥!”
순간 기사는 자신의 손아귀가 찢어져 나가는 것을 느꼈고, 동시에 단단히 말아쥐고 있던 자신의 무기가 허공으로 치솟아 오르는 것을 보아야만 했다.
뭐지?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하지만 기사의 뇌리에 그러한 의문이 떠오를 찰나, 희뿌연 빛 하나가 그를 확 스치고 지나간다. 그것이 끝이었다. 기사는 더 이상 어떤 의문도, 그리고 그 의문에 대한 해답도 떠올리지 못한 채 사선으로 몸이 갈라지며 차디찬 땅바닥에 몸을 뉘어야만 했다.
“젠장!”
둘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던 병사들은 자신들을 이끌던 기사가 그렇게 단숨에 쓰러지자, 기다렸다는 듯이 열을 맞추어 석궁을 쏘았다.
앞 열에 선 세 명은 무릎을 꿇은 채, 뒷 열에 선 두 명은 똑바로 선 채 동시에 화살을 발사한다. 이런 좁은 골목에서라면 어떻게 피하든 꼼짝없이 한 발은 맞을 수밖에 없는 상황. 그러나 뜨득거리는 소음과 함께 석궁으로부터 화살이 쏘아져 나가는 순간, 병사들은 일순 적의 모습이 눈앞에서 사라진 듯한 착각을 느꼈다.
아니다. 그것은 착각이 아니었다. 적은 정말로 허깨비처럼 한 순간 모습이 사라졌다가 그들 앞에 나타나며 방패를 휘둘렀다.
검이 아니다. 방패를 휘둘렀고 병사들은 그것에 얻어맞는 순간 병사들은 거대한 공성용 철추를 맞은 듯이 박살이 나서 쓰러지고 말았다.
“히이익!”
운 좋게 방패의 일격을 피한 병사는 기겁하며 주춤주춤 물러서다가, 얼른 손에 들고 있던 석궁을 버리고 허리춤의 검을 뽑으려 했지만, 미처 손잡이에 손을 뻗기도 전에 시퍼런 빛과 함께 자신의 가슴이 갈라지며 피가 솟구치는 것을 보아야만 했다.
오귀스트는 뒤를 돌아보며 살아남은 자가 없는지 확인하고는 혀를 찼다.
“어째… 자리를 잘못 잡은 것 같은데.”
생각보다 자신이 맡은 곳에는 적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우연일까. 글쎄. 저 진이라는 남자가 어떤 자인지를 생각해 보면, 아무래도 일부러 그렇게 배정을 했을 거란 의심이 더 강하게 든다. 오귀스트는 한동안 던전이라든지 이곳저곳 많이 돌아다녔지만, 제랄딘은 꼼짝없이 틀어박혀서 일만 했으니 나름대로 배려를 한 것이 아닐까.
“하긴, 딱히 상관은 없지만.”
오귀스트는 훌쩍 몸을 날려 지붕 위에서 다음 목표를 살피고는 추격을 시작했다.
그렇게 마을 안쪽에서 두 집행자에 의해 사냥이 이루어지고 있을 때, 마을 밖에서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급히 말과 마차를 이끌고 어디론가 돌아가려는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갔던 녀석들은… 다 죽었다고 봐야겠군.”
“혹시 추격하지 않을까요?”
“괜찮아. 지금 저 벼락들도 신전 근처에만 떨어지고 있으니까. 게다가 누가 추격을 하겠어. 설마 그 순둥이 사제들이?”
“아하.”
하기야 천벌이 무서운 것이지 사제들이 무서운 건 아니다. 확실히 저 벼락은 무시무시하지만, 어쨌든 침입했던 자들의 개인적인 일탈이라고 우겨대면 뭐라고 할 것인가.
“그나저나, 대기조들은 왜 이리 안 와?”
“모르겠습니다. 신호를 보냈는데.”
“다시 보내봐. 괜히 꼬리를 잡혀 봐야 좋을 것이 없으니.”
일단 신전 바깥에 벼락이 떨어지지는 않는 것 같아서 안심하고는 있었지만, 만약 신이 노해서 뭔가 다른 징벌이 내려질 수도 있는 일이기 때문에 그들은 조금이라도 빨리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전령 하나가 등불을 들고 마차 위에 올라가 마을을 향해 다시 신호를 보낸다. 하지만 그 신호가 끝나기도 전에, 전령은 무언가 검은 새 같은 것이 머리 위를 휙 하고 날아내리는 듯한 모습을 보았다.
“어?”
그 모습을 본 것은 전령만이 아니었다. 이제나 저제나 하며 마을 쪽에 시선을 던지고 있던 지휘관들 역시 갑작스럽게 자신들의 머리 위를 넘어 출발 준비를 하고 있는 마차 위에 내려선 무언가를 알아보고는 일제히 무기를 뽑아 들었다.
“웬 놈이냐!”
기사 중 하나가 말을 몰아 앞으로 나서며 그렇게 외쳤지만, 대답 대신 갈고리 하나가 확 날아들어 그 자의 목을 움켜잡았다. 화들짝 놀라 그것을 잘라내려고 검을 휘둘렀지만 미처 그 시도가 이루어지기도 전에 기사는 자신의 코앞으로 다가선 시퍼런 단검의 날을 보아야만 했다.
“컥!”
단숨에 미간에 단검을 박아 넣은 형진은, 그 자의 어깨를 디딤돌 삼아 밟은 뒤 다시 허공으로 뛰어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