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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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확대
귀환조차 실패하고, 악마 같은 이상한 스킬의 덫에서 빠져 나올 방법은 보이지 않는다. 이대로라면 꼼짝없이 아이템을 몽창 깨먹게 생겼다.
간단하게 생각하면 그냥 물약 안 먹고 그냥 죽어 버리면 될 것도 같다. 하지만 이들은 앞서의 뒤치기로 성향치가 잔뜩 깎인 상태. 원래대로라면 트롤 밭에서의 사냥으로 그 정도 성향치는 금방 채웠겠지만, 느닷없이 뒤치기를 당하는 바람에 필요한 만큼의 성향치를 다 채우지 못했다. 다시 말해, 지금 죽어버리면 성향치에 의해 가중된 사망 패널티를 받아야만 한다는 얘기다.
이렇게 낮춰진 성향치에 의한 사망 패널티 가운데는 아이템을 떨군다든가, 장착한 아이템의 강화 수치가 하락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어중간한 아이템이라면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갈 수도 있지만 이들은 장래 있을 공성전에 대비해 고강템을 잔뜩 두르고 있는 상태. 게다가 이런 고강템들은 한 단계 강화가 떨어지는 순간 가격이 거의 반토막 나버린다.
하지만 그렇다고 계속 버티다가는 지니고 있는 모든 아이템이 깨져 버릴 상황. 이러니 놈들로서는 패닉 상태에 빠져 버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썅! 애들 불러!] [네? 하지만…]참다못한 유저 가운데 하나가 그렇게 외쳤지만, 그들은 또 한 번 망설였다. 같은 수준의 길드와 싸우다가 숫자에 밀렸다면야 어쩔 수 없이 증원을 요청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렇게 어디의 누군지조차 모르는 놈 하나를 어쩌지 못해서 도움을 요청한다면, 그들은 순식간에 길드 내에서 찐따 취급을 당하게 될 것이 뻔하다.
[이대로 템 다 깨먹어도 찐따 취급당하는 건 마찬가지라고! 그냥 불러!] [큭… 알았어요.]그럴 거면 그냥 자기가 하면 될 걸 가지고 이런 상황에서도 꼭 남을 시킨다.
[어차피 데미지 자체는 별 거 아니야. 게다가 스킬 발동 범위도 얼마 안 돼. 그러니 원거리 애들 불러서 저격하거나 숫자로 밀면 돼. 애들한테 잘 설명해.] [네.]그래도 유저들 발라먹던 실력은 어디 안 간 것인지 그 와중에도 용오름의 약점을 파악해서 설명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곧바로 길드 핑이 찍히자 구원 요청을 들은 암살단 유저들이 하던 일을 내팽개치고 몰려든다. 길드 안에서도 제법 날고 긴다는 소리를 듣던 패거리가 고작 한 놈을 감당 못하고 구원 요청을 하자 흥미를 느끼고 곧바로 달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격투가라는 거 같은데 그런 스킬이 있었나?”
“글쎄. 하지만 다른 애들이 알기 전에 우리가 먼저 알게 되었으니 어떻게 보면 잘 된 일인지도. 그런 식으로 상대 주력을 묶어 둘 수 있는 기술이라면 나중에 공성 때도 크게 도움이 될 테니까.”
“하긴.”
하는 짓은 양아치라도 공성을 준비하는 길드답게 단합력은 제법 좋은 편. 곧바로 이십 명이 넘는 인원이 워프 포인트를 타고 넘어와 길드 핑이 찍힌 곳을 향해 달리기 시작한다.
핑이 나타내는 곳을 향해 달려가다 보니 듬성 듬성 자라난 늪지의 나무들 위로 사람이 둥실 떠올랐다가 떨어지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길드원들의 접근을 발견한 이들로부터 급한 메시지가 전해진다.
[빠, 빨리! 이러다 템 다 깨지겠어!] [씨팔! 왔으면 빨리 저 놈부터 두들겨! 일단 이 짓부터 멈추게 만들라고!] [알았다. 짜식들. 급하긴 급했구나.]암살단의 길드원들은 곧바로 진형을 짜고는 일제히 돌입했다.
“왔군.”
하지만 의외로 형진은 별로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십여 명이나 되는 적의 등장이 기꺼운지 씨익 웃음을 짓는다.
“그럼 제대로 시작을 해볼까. 으랏차!”
한 줄기 기합 소리와 함께 다시 한번 용오름이 펼쳐진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터져 나오는 돌개바람의 위력이 이전과는 확연하게 다르다!
“크아아아악!”
용오름에 직격 당해 솟아오르는 유저의 목에서 절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온다. 지금까지는 들어오는지조차 감이 잡히지 않을 정도로 저조했던 데미지가 갑자기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한 탓이다.
차이점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이전에는 고작해야 나무보다 조금 높은 지점까지 둥실 떠오르는 정도에 불과했다면, 이번에는 그것의 곱절은 되는 높이까지 순식간에 치솟아 오른다.
“이 개자식! 속였구나아아아아!”
그렇다. 용오름과 폭렬차기는 이래봬도 필드 보스가 사용하던 기술이다. 게다가 지금 이들의 방어구는 죄다 내구도에 빨간 불이 들어와 있는 상태. 아무리 그들이 고강 장비를 착용하고 있다 한들, 이 정도면 아무리 위력이 약한 스킬이라도 직접 얻어맞는 순간 어느 정도 데미지가 들어가야 옳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이유? 간단하다. 형진이 일부러 힘을 조절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지금과 같은 상황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
“미, 미친!”
곧바로 일곱 개의 용오름이 발동하며 기존에 농락당하고 있던 유저들이 하늘 높이 치솟았다 떨어진다. 암살단의 길드원들은 형진의 행동을 저지하기 위해 급히 움직이다가 손쓸 틈도 없이 하늘 높이 치솟아 오르는 동료들의 모습에 크게 놀라고 말았다.
“뭘 멀뚱히 보고 있어! 쏴!”
조장으로 보이는 이의 외침이 이어지자, 하늘 위로 떠오른 동료들을 지켜 보고 있던 길드원들은 입술을 잘근 깨문 채 각기 마법과 스킬들을 형진에게 퍼붓기 시작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후욱!
일곱 명의 유저들을 하늘 높이 띄워놓고 그것을 구경하고 있던 형진의 모습이 마치 신기루처럼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린다. 환영의 반딧불로 그 자리에서 빠르게 이탈한 것이다.
꽈과광!
마법과 스킬들이 지면에 격돌하며 폭발을 일으킨다. 그리고 그렇게 폭음이 난무할 즈음, 하늘 높이 떠올랐던 유저들이 지면으로 격돌했다.
“크악!”
“컥!”
길드원들은 자신들의 동료가 지면과 격돌하는 장면을 연상했다. 하지만 실제로 그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지면으로부터 솟아오른 검은 색의 송곳 같은 것에 꿰뚫린 동료들의 모습이었다.
인스턴트 킬은 아니다. 지금의 형진에게는 일부러 인스턴트 킬을 피해 상대의 몸을 꿰뚫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는 적들의 공격이 쏟아지는 와중에도 그것을 환영의 반딧불로 회피하며 꼬리를 펼쳐 떨어지는 자들의 몸을 꿰뚫어 버리는 일에 성공했다.
“크윽… 이 개자식…”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가 떨어지면서 생긴 낙하 데미지에, 날카로운 꼬리의 일격까지 더해지자 유저들의 방어구는 힘없이 부서져 나가고 그것에 의해 보호되던 신체 역시 단숨에 꼬치처럼 꿰어지고 말았다. 일곱 명의 유저들 가운데 다섯 명 정도는 그 타격을 견디지 못하고 그대로 사망해 버렸지만, 남은 두 명은 체력이 상당히 높았던 모양인지 그러한 공격에도 살아남아 형진을 바라보며 상소리를 내뱉었다.
지영이라는, 얼핏 들으면 여자 같은 느낌의 이름을 지닌, 형진과 악연으로 묶인 그 녀석 역시도 살아남았다. 놈은 몸을 비틀며 그 와중에도 형진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커흑!”
“꺽!”
몸 안에서 꼬리가 부풀어 오르자 그 힘을 견디지 못한 놈들은 그대로 폭발하듯 사지가 찢기고 말았다.
“후, 여신님을 데리고 오지 않기를 잘했군.”
스스로가 만들어낸 풍경. 그러나 또한 너무나도 참혹한 그 모습에 형진은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찌푸리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미친…”
“방금 그게 뭐지?”
“그, 글쎄.”
지금까지 몹은 물론이고 유저 상대로도 수많은 전투를 해왔지만 이런 식으로 사지가 찢겨 죽는 모습을 보는 것은 처음이라 암살단의 길드원들은 당황하고 말았다. 이것이 바로 공포와 죽음께서 낙인을 내린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차이. 언제 어느 때, 어떤 상황에서라도 항상 냉정과 침착을 잃지 않도록 만들어 주는 문양의 효과는 어떻게 보면 암살자가 지녀야할 가장 커다란 덕목이기도 하다.
스륵.
동료들의 처참한 죽음에 잠시 말문을 잃고 있던 그들의 눈앞에서 형진의 모습이 마치 허깨비처럼 사라진다.
“아차!”
“놈이 숨는다! 광역기를 써!”
암살단 길드원들은 곧바로 늪지대 곳곳에 광역기를 쓰기 시작했다. 상대가 몸을 숨겼을 때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대처를 실행한 것이지만, 그 정도의 대응 방법은 이미 형진도 예측하고 있었다.
“으랏차!”
“끄아악!”
어느 틈엔가 법사들의 틈바구니에서 모습을 드러낸 형진이 손과 발을 뻗자 전력으로 발동된 용오름과 폭렬차기에 휘말린 법사들이 마치 가랑잎처럼 이리 저리 날아가 처박힌다. 동료들의 호위를 믿고 광역 마법을 준비하고 있던 마법사들은 그와 같은 기습에 속절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고, 암살단의 전열은 순식간에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죽어!”
하지만 그 와중에도 법사들 틈에서 모습을 드러낸 형진을 향해 몸을 날리며 공격을 시도하는 자들이 있었다. 한 명은 십자 형상의 날을 가진 장창을 가진 창술사였고, 또 한 명은 쌍검을 든 검사였으며, 또 한 명은 단검을 든 도적이었다.
맹렬한 스킬의 이펙트를 뿜어내며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그들의 모습은 어지간한 강자라도 흠칫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강맹했다. 그러나 이 순간 형진은 그런 그들의 모습에 피식 웃어 버리고 말았다.
만약 눈가리개와 목토시로 인해 얼굴이 가려져 있지 않았다면, 형진의 그런 표정에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 방향에서 동시에 짓쳐들고 있던 세 명의 격수들은 오히려 자신들을 향해 가소롭다는 표정을 짓고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일제히 스킬을 터트렸다.
꽈광!
벼락이 치는 듯한 소음과 함께 세 가지 스킬들이 형진을 향해 덮쳤다. 그들은 형진의 몸에서 터져 나올 피를 예상하며 눈을 가늘게 떴으나 그 순간 터져 나간 것은 갑자기 어디서 나온 건지 감도 잡히지 않는 커다란 나무 토막이었다.
“이건?”
“위다!”
무언가 떨어져 내리는 낌새를 눈치 채고 창수가 고함을 지름과 동시에 검은 빛의 무언가가 떨어져 내리며 그들을 후려쳤다.
퍼퍼퍼퍽!
창졸간에 가해지는 열 번의 맹타. 공중에서 맹렬하게 몸을 회전시키며 형진이 열 개의 꼬리를 모두 펼쳐 그들에게 연타를 가한 것이다.
“크악!”
“컥!”
실제로 가해진 것은 열 번의 타격이었지만, 사람들에게는 뭔가 시커먼 뭉치가 그들을 한 번씩 후려친 듯한 모습으로 보였다.
“미친!”
“뭐지? 저런 클래스가 있었나?”
“저 스킬에 대한 정보 아는 사람 있으면 빨리 불어!”
용오름이나 폭렬 차기도 생소한데, 엉덩이 쪽에 난 꼬리 같은 것을 휘두르는 스킬이라니. 그들로서는 생소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하기야 어느 쪽이 되었든 일반적인 방식으로는 습득할 수 없는 스킬이니 당연한 일이다. 그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구비하고 있는 집행자의 스킬 마스터에게도 없는 스킬이니 오죽하겠는가.
“쩝.”
하지만 아쉽게도 자신을 공격했던 세 명의 유저들은 죽지 않았다. 인스턴트 킬을 쓰던 버릇이 있다 보니 연타로 몰아쳐야 죽어 넘어진다는 것을 자꾸 깜빡해 버린다.
“이 개자식! 걸렸구나!”
“썬더 웹!”
바로 그 때, 진형의 끄트머리쯤에 있던 세 명의 마법사가 동시에 한 가지 마법을 발동했고, 그와 동시에 하늘로부터 마치 반짝이는 그물과 같은 무언가가 시간차를 두고 삼중첩으로 떨어져 내린다.
“이런.”
이것은 순간 이동 같은 회피기를 가진 적을 경직 상태로 몰아넣기 위한 일종의 합격술. 암살단의 길드원들이 상대편의 골치 아픈 유저를 잡기 위해 고안한 일종의 필살기인 셈이다. 스킬 자체의 위력이야 그다지 강하지 않다 해도, 넓은 범위에 그물을 둘러쳐 경직상태로 몰아넣은 다음 일점사로 적을 녹이는 것이 주목적이니 상당히 위력적인 연계기인 셈이다.
형진은 환영의 반딧불을 사용해지만, 역시나 마지막 세 번째 그물에 걸리고 말았다.
찌리릿!
하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그리 강한 충격이 아니다. 애초에 형진은 어지간한 유저들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의 체력을 보유한 상태이고, 각종 스탯도 거의 한계치까지 뻥튀기 되어 있는데다 다른 이들은 쉽게 보기 어려운 희귀 아이템을 둘둘 두르고 있는 상태라 이 정도 공격은 별 의미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연계기가 전혀 효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형진에게는 별 의미가 없었지만, 형진과 한몸처럼 붙어 있는 누군가의 잠을 깨우기에는 충분한 위력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
형진은 자신의 목에 몸을 두른 채 잠들어 있던 미엘이 잠에서 깨어나 도끼눈을 뜨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피식 웃어 버렸다.
“잠자던 우리 마눌의 코털을 건드리다니, 운도 없는 녀석들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