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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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유희
두 꼬맹이들은 여자를 쫓아가야할지 말아야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다가 그의 말에 화들짝 정신을 차렸다.
“저, 저기요.”
“네?”
“저기, 그게… 피통이 얼마나 되세요?”
“글쎄요. 세보지 않아서 모르겠는데요.”
“…”
꼬맹이들은 입이 떡 벌어지고 말았다. 그럴 수밖에 없다. 방금 전 그 여자가 좀 싸가지가 없고 힐도 자기가 주고 싶을 때나 주는, 그런 사람이기는 해도 이 부근의 유저들 중에서는 그래도 힐량이 꽤 높은 편에 속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여자가 세 번이나 연거푸 힐을 퍼붓고 나서야 도트 하나 움찔하는 듯한 느낌으로 피가 채워지다니. 도대체 피통이 얼마나 커야 이런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불안하십니까?”
우왕좌왕하던 꼬맹이들은 다시 이어진 형진의 말에 그제서야 정신이 화들짝 돌아왔다.
“아, 아뇨. 그럴 리가요.”
“그럼 안내를 부탁해도 될까요? 사교도의 인던이라는 곳.”
“무, 무, 물론이죠. 이쪽이에요.”
꼬맹이들은 이제 형진을 잠시 놀러나온 초고렙 정도로 인식하는 모양이다. 뭐 따지고 보면 그것도 완전히 틀린 일은 아닌지라 형진은 피식 웃으며 자신을 안내하는 꼬맹이들의 뒤를 따랐다.
“여기 힐러들 원래부터 좀 저렇게 싸가지가 없습니까?”
“그게… 아무래도 좀 그런 면이 있어요. 아무래도 수가 제일 적기도 하고… 다들 떠받들어주는 경향이 있다 보니.”
“그럼 힐러를 하면 되지 않나요?”
형진의 말에 꼬맹이들은 주저하다가 이렇게 답했다.
“그거야 그렇지만, 아무래도 재미가 없잖아요. 뒤에서 남들 체력이나 채워주는 역할이니까.”
“아하.”
여차 저차 하다 보니 남들이 떠받들어 주는 걸 즐기는 자들만 하는 클래스가 되어버린 셈이다. 이거 참. 저쪽 세계와 비교를 하니 새삼 호구 사제들이 얼마나 착한 사람들인지 다시 느끼게 된다. 자신이 떠받드는 여신들한테 따돌림 당하고 사람들한테 호구 취급 당해도 변함없이 자신들의 신앙을 지키며 사람들을 돌보는 일을 하고 있으니. 정말 하나 하나 놓고 봐도 전부 성자급이 아닌가.
어쨌든 형진은 그렇게 두 꼬맹이의 도움을 받아 사교도의 던전이라는 곳 입구에 도착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꼭 분위기가…
“완전 도깨비집이네.”
“그런 면이 좀 있어요. 하하…”
당연하다는 듯이 꼬맹이 가운데 하나가 매표소로 보이는 곳으로 쪼르르 달려가더니 무언가를 사가지고 온다.
“이걸 받으세요.”
“이건…”
“인던 입장권이에요. 이게 있어야 안으로 들어갈 수 있어요.”
“…”
형진은 슬쩍 매표소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곳에 걸려있는 가격표를 보고는 자신도 모르게 헐 하는 소리를 내고 말았다.
그럴 수밖에 없다. 인던 입장권 자체가 캐시로 살 수 있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퀘스트를 받아서 개인이 도전하는 거라면 무료다. 하지만 이런 식의 도전은 하루 3회로 제한되어 있고, 난이도가 낮은 대신 경험치와 드랍율이 완전 바닥이다. 제대로 인던의 모든 것을 활용하고 싶다면 한 장에 2캐시짜리 입장권을 사야만 한다.
“그때 그 여자가 캐시 산다 그랬던 게 이래서였나.”
“네?”
“아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형진이 떠올린 것은 전에 거래소에 갔을 때 어떤 여자와 캐시 거래를 했던 일이었다. 당시에는 그냥 캐시템 같은 걸 구매하려고 그랬나 싶었는데, 이제 알고 보니 인던 같은 컨텐츠를 즐기기 위해서 그랬던 모양이다. 과연 허세와 망상. 단순히 속옷 장사만이 아니라 이런 식으로 공헌도를 끌어 모으고 있었던 건가.
그런 생각을 떠올리며 형진은 꼬맹이 파티장에게 말했다.
“거래 주세요.”
“네?”
하지만 파티장은 오히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다.
“입장권 값을 드려야 하지 않나요?”
어린애 코묻은 돈을 빼앗는 느낌이라 그렇게 말했지만, 파티장은 얼른 손을 붕붕 내저으며 말했다.
“아, 아니에요. 저희야 그냥 같이 가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뿐이죠. 그러니 신경 쓰시지 않아도 돼요.”
“…”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너무 하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지만, 2캐시 정도로 실랑이를 벌이는 것도 뭐한 일이라 형진은 결국 입장권 값을 주는 것을 포기하고 말았다. 대충 템이나 좀 주워서 주면 되겠지.
어쨌거나 입장권을 가지고 입구로 다가가자, 곧바로 메시지가 나타났다.
[파티장이 인던 ‘사교도의 은신처’ 입장을 시도합니다. 입장하시겠습니까? (y/n)]“물론.”
형진이 수락하자 곧바로 그들은 어딘가로 순간 이동이 되었다.
“흠…”
던전의 기본 구조는 동굴. 하지만 대미궁을 오랫동안 탐사한 전력이 있는 형진에게는 꽤 익숙한 느낌이다.
“제한 시간은 30분이에요. 구조 자체는 선형이라 그리 어려울 것이 없지만, 중간 보스들이 여럿 나와서 탱과 힐이 없이 딜러만으로는 깨기가 어려워요.”
“그렇군요.”
형진은 그렇게 말하고는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갔다.
“저기… 도핑을… 아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도핑을 해야 하지 않냐고 말하려던 꼬맹이는 이내 입을 다물었다. 딱 봐도 자기보다 고렙인 것 같은데 알아서 하지 않겠나 싶었던 모양이다.
그런 꼬맹이들의 모습에 형진은 피식 웃으며 인벤토리에서 기사단의 전투 식량 두 개를 꺼내 주었다.
“아, 제가 깜빡 했군요. 이거 드시고 시작하시죠.”
“이건…”
갑자기 도시락을 내미는 형진의 모습에 꼬맹이들은 다시금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제가 도핑용으로 쓰는 음식입니다.”
그제서야 꼬맹이들은 놀란 기색을 보였다.
“이런 걸 받아도 될지…”
“대단치 않습니다. 입장권도 대신 내주셨는데 이 정도는 드려야죠.”
“하지만… 가, 감사합니다.”
형진은 자작나무 껍질로 만든 도시락 용기를 하나씩 거의 강제로 건네주었고, 그것을 받은 꼬맹이들은 머뭇거리며 뚜껑을 열더니 이내 눈이 휘둥그레지고 말았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냥 도핑용 음식이라길래 그런가보다 했는데, 이건 무슨 고급 레스토랑의 정식 같은 포스를 지닌 음식들이 방금 막 만든 것처럼 따끈따끈하게 향기를 피워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런 음식 게임 안에서는 물론이고 현실에서도 본 적이 없다.
“어서 드세요. 제한 시간이 있다면서요.”
“죄, 죄, 죄송합니다.”
꼬맹이들은 형진의 말에 화들짝 놀라 얼른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 입 떠넣는 순간 그들은 자신도 모르게 풀린 얼굴로 헤 하고 웃으며 마치 꽃밭을 노니는 듯한 모습이 되어 버린다.
“킥.”
형진의 어깨 위에서 미엘의 꼬리 속에 숨은 채 고개만 빠꼼히 내밀고 있던 여신이 그 모습에 키득거리며 웃어버린다. 그런데 이 여신, 자기도 음식 먹을 때 꼭 저런 모습이 되어 버린다는 건 모르는 모양이다.
“마, 마시쩌요.”
“이거… 도대체… 헉! 버프가?”
“에? 히익!”
음식 하나를 먹었는데 무려 다섯 가지 버프가 후다닥 모습을 드러내자 그들은 이내 눈이 휘둥그레지고 말았다. 그럴 수밖에 없다. 아무리 요리 실력이 뛰어난 장인이나 명장, 달인이 만든 음식이라도 하나의 음식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버프 효과는 세 개가 전부. 그런데 이 말도 안 되는 요리는 고작 한 입 먹은 것만으로 다섯 가지나 되는 버프가 생겨나 버린다!
게다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도시락 용기 안에 자리잡은 각각의 요리가 전부 그런 식이다. 두 꼬맹이들은 순식간에 시야에 가득 들어차버린 버프 아이콘을 보고 정신마저 혼미해지고 말았다.
“어때요. 맛있습니까?”
“네? 네! 대, 대단해요! 이런 음식이 있다니!”
“도대체 이게 뭐죠?”
놀란 표정으로 어쩔 줄 모르는 그들의 모습에 흐뭇하게 웃던 형진은 다 먹은 도시락 용기를 챙기며 말했다.
“대단한 건 아닙니다. 그럼 출발해 볼까요?”
“네!”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그렇게 던전 입구를 나서자 얼마 지나지 않아 형진의 후각에 무언가가 느껴진다. 하지만 이곳은 인던. 그들 파티에 속한 이가 아니라면 적이라고 봐야 한다.
“이 앞에…”
뒤따르던 꼬맹이는 무언가를 말하려다가 갑자기 땅 속에 숨어있던 무언가가 형진에게 확 끌려오더니 단숨에 대검에 반토막이 나버리는 광경을 보고는 입이 떡 벌어지고 말았다.
“네? 뭔가 하실 말씀이라도?”
“아, 아뇨. 아무것도.”
한 방이라니. 이제 두 꼬맹이들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인던의 몬스터들, 특히 캐시로 입장권을 사서 들어왔을 때의 몬스터들은 파티 플레이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그만큼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데미지는 물론이고 피통도 상당히 크기 때문에 잡몹조차도 탱이 버티는 동안 딜러들이 일점사를 해야 쓰러뜨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단 일격이다. 뭐가 어떻게 되었는지도 모를 찰나에 몹을 훅 끌어들여서 단숨에 반토막을 내버린 것이다.
[축하합니다! ‘대검 숙련’을 체득하여 Lv.12를 달성하였습니다.]하지만 막상 형진은 의외로 별 거 아니라는 생각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대검 숙련이 아직 12레벨 밖에 안 되는 데도 단숨에 반토막이 나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그가 지니고 있는 탐식의 대검 때문이었다. 암살단이나 지영이라는 유저의 소식을 탐사하는 도중에 그는 틈틈이 낚시를 하면서 탐식의 대검을 강화했는데, 그 결과 어느새 +9까지 강화가 되어 있었다. 애초에 월드 보스가 드랍한 진귀급 무기인데다 +9까지 강화되고, 여기에 최대 체력에 의한 보너스 데미지까지 추가 되었다. 이래서야 아무리 인던의 몹이라도 버텨낼 도리가 없다. 아니, 버텨내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형진은 후크웜처럼 지형 속에 숨어있는 몬스터를 찾아 그렇게 박살을 내며 앞으로 전진했다. 그렇게 조금 나아가자 이내 널찍한 광장 같은 것이 모습을 드러내며 첫 번째 중간보스가 나타난다.
신장은 대충 일반인의 두 배 정도 되는 느낌. 상당히 두꺼워 보이는 중갑에, 커다란 철구를 손에 쥔 보스다. 놈의 주위에는 검과 방패를 든 병사들 십여 명이 도열해 있었다. 마치 사열 중인 장군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그렇게 보기엔 병사의 수가 좀 적은 느낌이긴 하지만.
“이 녀석들은 쫄들이 차지를 써요. 걸리면 경직이 걸리거나 넉백이 되니까 조심…”
다시 파티장 꼬맹이가 그렇게 설명을 하려고 했지만, 순간 형진의 모습이 훅 하고 꺼지는가 싶더니 어느 틈엔가 놈들의 한복판에 모습을 드러낸다.
“으랴아아아아!”
적들이 형진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반응하는 순간, 그의 대검이 지면에 꽂히더니 지면에서 검은 빛의 대검들이 허공으로 마구 솟구쳐 오른다. 바로 월드 보스가 사용했던 광역 스킬인 마그나 블레이드가 발동한 것이다.
중간 보스의 주위에 모여 있던 쫄들은 반항할 틈도 없이 이 말도 안 되는 필살기에 휩쓸려 순식간에 죽어 넘어지고 말았다.
[크으으… 감히 공포와 죽음의 성전에 침입하다니 겁도 없구나! 나 기젤 선트가 네놈을 용서하지 않겠다!]“푸핫!”
필살기 마그나 블레이드에 죽도록 처맞던 중간 보스의 말에 형진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공포와 죽음의 성전이라니! 기젤 선트라니!
참고로 기젤 선트는 그리칸의 지부장 이름이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어쩐지 투구 속에 비치는 얼굴 모습이 닮은 것 같기도. 지면에서 솟아오르는 마그나 블레이드에 휩싸여 고함을 지르는 그 모습을 보니 과거 형진의 요리를 처음 먹었을 때 말없이 주륵주륵 눈물을 흘리던 기젤의 모습이 떠올랐다.
“세상에… 아무리 그래도 이건…”
형진의 어깨 위에 모습을 숨기고 있던 여신은 그제서야 이 모든 상황이 뜻하는 바를 알아차리고는 난감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공포와 죽음 때문에 망신을 당했어도 이런 식으로 다른 세계에서 그 이름을 조롱거리로 삼다니.
이제야 알 것 같다. 공포와 죽음의 뜻을. 어째서 튜토리얼까지 만들어 그를 이곳으로 밀어넣은 것인지를.
“공포와 죽음께서 왜 이곳에 저를 보낸 건지 알겠군요.”
형진은 키득거리며 웃음을 짓다가 자신의 필살기에 반피 넘게 체력이 빠져 나가 휘청거리는 자칭 기젤 선트를 향해 다가갔다.
“어떻게 하실 건가요?”
여신의 물음에 형진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검을 높이 치켜들었다.
“당연히, 이 웃기지도 않는 가짜를 박살내 놔야죠.”
그리고 그의 대검이 다시 휘둘러진 순간, 인스턴트 킬이 터지며 가짜 기젤 선트의 목이 허공으로 날아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