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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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유희
뜨악.
쌍둥이들은 이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저 입만 쩍 벌린 채 자신의 눈앞에서 벌어진 일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광역기를 써서 쫄을 날려 버린 건 그렇다 치자. 원래는 이것도 놀라서 나자빠질 일이지만 어쨌든 쫄이니까. 하지만 중간 보스를 단 두 방에 끔살 시키다니? 이걸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좋단 말인가.
중간 보스다. 그냥 중간 보스도 아니고 중갑 스타일의 중간 보스다. 방어구를 제대로 갖추지 않은 대신 잽싼 몸놀림으로 요리조리 피해 다니는 그런 보스도 아니고, 처음부터 몸빵을 전제로 유저들의 공격을 버티면서 묵직한 일격을 날리는 스타일로 디자인된 보스다. 그만큼 방어력도 높고 체력도 높아서 제법 시간을 잡아먹을 수밖에 없다. 이런 녀석이 있으니 탱딜힐의 구성이 있어야 돌파할 수 있는 던전인 것이다.
그런데 그런 보스가 단 두 방에 끔살 당했다. 느닷없이 순간 이동 같은 기술로 시야에서 사라지더니 적들 한복판에 나타나 처음 보는 광역기로 단숨에 쫄을 쓸어버리고, 다시 이어진 일격으로 마치 처형장에 사지가 묶여 꼼짝 못하는 죄수의 목을 날리듯이 단숨에 죽여 버렸다.
이게, 도대체 가능한 일이기는 한 건가?
“가만히 있어요.”
가짜 기젤의 몸에서 룻이 튀어나오자, 거의 조건 반사처럼 튀어 나가 그것을 집으려 하는 여신을 말린 형진은 다른 룻들과는 조금 다른 느낌의 룻을 먼저 집어 들었다.
원래 파티 사냥을 할 경우에는 이렇게 룻을 집었을 때 등급에 따라 분배 방식이 달라진다. 희귀급 미만의 아이템의 경우엔 상관이 없지만, 그 이상의 등급일 경우에는 미리 정해진 몇 가지 분배방식에 따라 파티원들에게 아이템이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인스턴트 킬에 의해 튀어나온 룻은 집어도 그런 식의 반응이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따라오는 것조차 잊고 있었던 주머니 토끼가 후다닥 주위의 룻을 집자 그제서야 분배옵션이 발동된다.
[동화 12개가 파티원에게 자동 분배되었습니다.] [부서진 사교도 갑옷 조각 6개가 파티원에게 자동 분배되었습니다.] [부서진 사교도 갑옷 조각 5개가 파티원에게 자동 분배되었습니다.] [동화 15개가 파티원에게 자동 분배되었습니다.] [부서진 사교도 무기 조각 7개가 파티원에게 자동 분배되었습니다.] [‘사교도의 투구’를 습득했습니다.] [‘사교도의 갑옷’을 습득했습니다.] [은화 2개가 파티원에게 자동 분배되었습니다.] [‘사교도의 사악한 기운’을 습득했습니다.] [‘섬뜩한 사교도의 건틀릿’을 습득했습니다. 분배에 참여하시겠습니까? (Y/n)]은화와 잡템은 균등 분배가 되었지만 ‘마법’ 등급의 아이템 세 가지는 고스란히 형진의 인벤으로 들어왔다. 살펴보니 옵션이 하나씩 달린 그저 그런 아이템들이고, 사악한 기운은 사념체 같은 느낌의 인챈트 아이템이었다.
“저에겐 별로 필요 없을 것 같군요. 받으십시오.”
“네? 아니… 그게…”
아무것도 못하고 그저 뒤에서 손가락만 빨고 있었던 꼬맹이들은 형진이 사악한 기운만 챙기고 갑옷과 투구를 건네자 어쩔 줄 몰라하며 당황해 하기 시작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사악한 기운의 경우엔 인챈트 아이템이라고는 해도 사실상 거의 의미가 없을 정도의 미미한 효과 밖에 없다. 처음 한두 번 정도야 시험 삼아, 또는 재미 삼아 인챈트를 해보는 경우가 있다 해도 이후로는 거의 상점에 팔아먹는 잡템 취급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형진의 싸우는 모습을 보니 필요 없다는 말은 확실히 이해가 된다. 사교도 신전에서 나오는 마법 등급의 아이템이 일반적인 마법 등급 아이템보다 효과가 좋아서 인기가 많은 편이긴 해도, 이 사람이라면 분명 희귀 등급 이상으로 몸을 칭칭 감고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절로 들 정도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아이템을 그냥 막 받아도 되는 걸까. 자신들은 정말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데.
우왕좌왕하며 선뜩 갑옷과 투구에 손을 뻗지 못하던 꼬맹이들은 이어진 메시지에 다시 한번 뒤집어졌다.
[파티원 ‘진’님이 ‘섬뜩한 사교도의 건틀릿’의 분배에서 기권했습니다!]“헉!”
“어, 어째서?”
사교도 인던이 인기 많은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렇게 보스급들에게서 희귀급 아이템이 간간히 나오기 때문이다. 이 희귀급 아이템들은 일반적인 마법 등급의 사교도 아이템보다 옵션이 하나씩 더 추가되는데, 섬뜩한이라는 이름이 붙을 경우 치명타 확률 상승 옵션이 붙는다. 특히 사교도 아이템에 붙는 치명타 확률은 단순히 공격 시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힐 같은 것에도 적용되기 때문에 딜러는 물론이고 힐러나 탱에게도 인기가 높다.
강화가 안 된 상태에서도 금화 열 개는 우습게 넘어가는 가치의 아이템을 선뜻 포기 하다니! 도대체 얼마나 부자길래!
“저기… 아무리 그래도 이건…”
“희귀템 말씀이십니까? 괜찮습니다. 더 좋은 것을 가지고 있거든요.”
거짓말이 아니다. 방금 전 인스턴트 킬로 인해 추가로 튀어나온 룻에서, 그보다 한 단계 높은 진귀급의 룻이 튀어 나와 버렸기 때문이다. 원래 보스급이면 최소 세 개는 룻이 튀어 나와야 하는데, 인던이라서 그런지 진귀급 건틀릿이 담겨진 룻 하나만 덜렁 튀어나오고 말았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모르는 꼬맹이들은 여전히 손을 뻗지 못하고 우왕좌왕할 뿐이다.
“빨리 분배를 마쳐야 계속 진행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죄, 죄, 죄송합니다.”
그제서야 꼬맹이는 후다닥 아이템 분배에 손을 댔다. 그 결과 섬뜩한 사교도의 건틀릿은 파티장에게, 나머지 아이템 두 개는 다른 꼬맹이에게 돌아갔다.
분배가 끝나자 형진은 다시 이동을 시작했고, 꼬맹이들은 한층 조심스러운 모습으로 그들의 뒤를 따른다.
던전 자체는 기본적으로 선형이라 길을 잃거나 할 일이 없었다. 간혹 가다 봉인을 깨기 위해 조금 돌아가야 하는 경우가 있긴 했지만, 그 정도는 별로 헤매는 느낌도 아니다.
[공포와 죽음의 이름 앞에 경배하라. 나의 이름은… 꽥!]“…”
꽥이란다. 꼬맹이들은 자신의 귀를 의심해야만 했다. 봉인을 지키고 있던 중간 보스 하나가 자신의 이름을 다 말하지도 못하고 꽥이라는 소리를 내며 죽어버린다. 아마 다른 사람들에게 말해도 믿지 않을 것이다. 동영상을 찍어 올린다 해도 합성 소리나 안 들으면 다행이다.
다시 아이템 획득 메시지가 우르르 뜬다.
“흠… 이번엔 희귀급이 없군요. 받으십시오.”
“…”
이젠 꼬맹이들도 말없이 형진이 내미는 아이템들을 받아든다. 어차피 거부해 봐야 소용없다는 것을 이전의 경험에서 체득해 버린 것이다.
딜러들이 달려들어 일분 정도는 열심히 두들겨야 깨지는 봉인석이 대검을 한 번 휘두르자 허무할 정도로 간단하게 가루가 나버린다.
원래는 인스턴트 킬을 보여주지 않고 그냥 적당히 고렙 흉내나 내려 했던 형진이지만, 계속해서 이어지는 공포와 죽음 어쩌구의 연발이 짜증스러웠는지 이제는 대놓고 막 써대기 시작한다. 하지만 꼬맹이들은 그것이 인스턴트 킬인 줄은 꿈에도 생각 못하고 있었다. 그저 말도 안 될 정도로 무지막지한 공격력을 가지고 있어서 그냥 확확 썰린다고만 생각할 뿐이다.
봉인석을 깨고 다시 길을 조금 돌아가자 또다른 보스가 모습을 드러낸다.
이쯤 되면 꼬맹이들도 슬슬 보스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그래도 보스라고 대사 한 마디는 할 수 있게 되어 있는데, 차마 이름조차 상대에게 알리지 못하고 비명횡사를 해야 하다니. 아무리 봐도 이건 상도덕에 어긋나는 일이다. 아니, 그 전에 그렇게 보스가 소개를 할 때 공격이 들어가는 게 맞나 싶은 생각부터 들어야 정상. 그러나 꼬맹이들은 이미 그런 정상적이고도 일반적인 사고가 불가능할 정도로 넋이 나가 버렸다.
“오, 희귀급이 나왔군요.”
“…”
이번에 나온 아이템은 ‘온유한 사교도의 가죽부츠’. 경갑이라 앞서의 보스들이 드랍하는 장비보다 무게가 가벼운 것이 장점. 여기에 온유한이라는 이름이 붙으면 정신력 증가 효과가 있어서 역시 법사나 힐러들에게 인기가 많다. 특히 정신력이 증가될 경우 힐량이 증가하는 효과까지 있기 때문에 사교도 신전을 돌 때 이 아이템이 나오면 무조건 힐러에게 주는 것이 불문율이나 다름없다.
얼마나 이 아이템이 인기가 많은가 하면, 힐러들 사이에서는 온유한 사교도 세트를 전부 갖추는 것을 졸업이라고 표현할 정도다. 앞서의 섬뜩한 사교도 세트가 수요가 많아 비싼 경우라면, 이 온유한 사교도 세트는 문자 그대로 희귀해서 비싼 경우다. 경갑 세트를 드랍하는 것이 방금 전의 세 번째 중간 보스 뿐이라 개중에는 세 번째 중간 보스만 잡고 볼일 다 봤다는 듯이 그냥 나가버리는 비매너 힐러들도 있을 정도.
꿀꺽.
앞서까지는 안 받으면 진행이 안 될 것 같아서 그냥 주는 대로 받았지만, 이것만큼은 정말 손이 나가지 않는다. 돈 많은 힐러라면 금화 백 개에 올려도 땡 잡았다고 사갈만한 아이템이니 당연한 일이다. 보통 금화와 캐시의 교환비가 11대 1 근처인 것을 감안하면, 이미 이 아이템 하나만으로도 본전을 넘어 대박이 난 것이나 다름없다.
“아, 아무래도 이건 그냥 받기가…”
하지만 형진은 피식 웃으며 그런 꼬맹이들을 독촉한다.
“얼른 받아요. 시간 없습니다.”
“…”
이쯤 되면 무서워진다. 아무리 사교도 인던에 와본 경험이 없어도 저 정도 고렙이면 아이템 시세 정도는 알 텐데. 이런 걸 아낌없이 막 줘버릴 정도면 얼마나 부자란 소린가.
“부담 가지실 필요 없습니다. 입장권 값을 대신하고 있는 것 뿐이니.”
“…”
“얼른요.”
결국 꼬맹이들은 잠시 주저하다가 자신들이 지니고 있는 금화를 탈탈 털어 형진에게 내밀었다.
“그냥은 못 받아요. 이렇게 비싼 아이템…”
“가진 게 이거 밖에 없어서… 이거라도 받아주세요.”
“…”
그런 그들의 모습에 형진은 피식 웃어버리고 말았다. 그냥 받고 입을 씻어도 될 텐데, 이렇게 알아서 돈을 상납하는 이 아름다운 호구스러움이라니. 어쩐지 누군가를 떠올리게 만드는 모습이 아닐 수 없다.
“돈은 됐고, 그럼 우리 이렇게 합시다.”
“어떻게요?”
“실은 제가 어떤 분을 모시고 있는데, 이 분이 외로움을 많이 타시는 분이라서 말이죠. 여러분이 그분의 팬클럽이 되어 주시면 어떻겠습니까.”
“팬클럽이요?”
“네. 별로 어렵지 않죠?”
“…”
영문 모를 상황에 꼬맹이들은 다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보험이나 그런 걸 들으라고 하면 차라리 납득이 갈 거 같은데 뜬금없이 팬클럽이라니.
“착하고 귀여운 분이니, 여러분이라면 아주 잘 어울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 걸로 괜찮을지…”
“물론입니다.”
“그럼… 그렇게… 하지만 그래도 돈은…”
꼬맹이들이 그렇게 반승낙을 하자, 형진은 미엘의 꼬리 속에 모습을 감추고 있던 여신에게 말했다.
“여신님. 나와 보십시오. 새로운 신도들에게 인사하셔야지요.”
“…”
여신은 그 말을 듣고는 조심스럽게 꼬리 틈에서 고개를 쏙 내밀었다. 형진은 무엄하게도 그런 여신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보호와 균형이라는 이름의 여신이십니다. 어때요. 정말 귀여운 분이죠?”
“…”
꼬맹이들은 형진의 어깨에 둘러진 털목도리에서 고개를 빠꼼 내밀고 있는 여신의 귀여운 모습에 놀라면서도 그가 자신들을 놀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식의 펫이 있다는 얘기는 들은 적이 없지만 아무리 봐도 그가 가리켜 보인 것은 일종의 펫으로밖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그들의 생각은 여신이 조심스럽게 모습을 드러내고는 치맛자락을 잡고 우아하게 인사를 하는 순간 와장창 깨지고 말았다.
“아, 안녕하세요. 보호와 균형이라고 해요. 만나게 되어서… 그러니까, 반갑습니다.”
말을 한다! 펫이 말을 한다! 이것을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한단 말인가!
단순히 말을 하기만 해도 대단한 일인데, 보호와 균형은 조심스럽게 허공으로 날아오르더니 꼬맹이들에게 축복을 내려 주었다. 그러자 꼬맹이들은 자신들에게 새로운 종류의 버프가 생긴 것을 확인했다. 바로 ‘균형의 권능’이라는 이름의 버프가 그것이다.
펫이 버프까지 주다니! 이건 또 무슨!
“저기… 그러니까… 여러분이 제 신도, 아니 추종자가 되어 주시면… 보호와 균형의 권능을 쓸 수 있도록 해드릴 수 있어요. 그러니까… 제 추종자가 되어 주시지 않겠어요?”
여신이 불안한 표정으로 더듬더듬 말하는 것을 지켜보며 형진은 씨익 웃음을 짓고 있었다.
이것은 일종의 시험이다. 이 엘리시온에서도 포교가 가능한지를 알아보는 일종의 시험. 이것이 만약 가능하다면, 허세와 망상이 힘을 모으기 위해 만들어낸 이 거짓된 낙원을 다른 신의 추종자들로 가득 메우는 것이 가능해진다. 어떻게 보면 그것은 허세와 망상이 만들어 놓은 모든 노력을 내부로부터 무너뜨리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아뇨. 될게요. 추종자.”
“추종자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되어드릴게요. 그러면 되는 거죠?”
“와아! 감사합니다! 정말로 감사드려요!”
형진은 호구스러움으로 충만한 그 모습을 지켜보며 매우 마음이 흡족해졌다. 세상엔 아직도 이렇게 호구가 넘쳐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