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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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유희
마침내 꼬맹이 자매의 허락이 떨어지자 여신은 그들에게 날아가더니 손등을 잡고 그곳에 살짝 입을 맞추어 주었다. 여신이 지구의 문화에 더 익숙했다면 팬클럽이라는 이름에 맞게 사인 같은 것을 해주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문양을 남기는 것보다 이쪽이 훨씬 강력한 위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었다.
“어?”
“어라?”
뭔가 했던 두 꼬맹이는 갑자기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에 다시 크게 놀라고 말았다.
[축하합니다! 보호와 균형에게 추종자로 인정받았습니다!]-보호의 낙인이 부여되었습니다. 이제 보호와 균형의 권능이 당신을 항상 지켜줄 것입니다.
-보호와 균형의 팬클럽 회원이 되었습니다.
-팬클럽 회윈이 되었기 때문에 팬클럽 전용 채팅이 개방됩니다.
-팬클럽 회원은 추후 업데이트될 기능을 통해 캐시나 전용 스킬 등의 특전이 부여될 예정입니다.
띠용.
그냥 말로만 팬클럽이 아니었던 거다. 하지만 가장 놀란 건 역시 처음으로 추종자다운 추종자를 받아들인 보호와 균형이다.
“저기… 진님, 이건… 도대체?”
“아, 팬클럽이요? 이런 일이 있을 때를 대비해 이전부터 조금씩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마음에 안 드십니까?”
“아…”
보호와 균형은 형진의 당연하다는 듯한 대답에 왈칵 눈물이 치솟는 것을 느꼈다.
카트린이 성물의 관리자로 임명이 되어 있긴 하지만, 그것은 일반적인 추종자와는 다른 특별한 직책이다. 애초에 카트린은 추종자라기보다는 여신의 친구 같은 느낌이기도 하고.
그러나 이들 쌍둥이는 문자 그대로 진짜 추종자이다.
현재 엘 파르드 지역에서 가스트샵의 직원들을 대상으로 신도를 모집하고 있고, 희망과 생명의 신전의 성물을 들여 놓고 역시 신도를 모집하고 있지만 이들은 사실 반쯤은 나일롱 신자나 다름없다. 희망과 생명의 신전에 왔다가 보호와 균형의 성물에 들러 1+1식으로 참배를 드리거나, 가스트샵의 직원으로서 일하는 동시에 우대 조건에 넘어가 신도가 되는 식이니 추종자는커녕 제대로 된 신도라고 보기도 어려울 수밖에.
창피한 얘기지만 보호와 균형은 제대로 된 추종자를 가져 본 적조차 없다보니 추종자를 지칭할 이름도 없다. 그래서 형진은 아예 추종자의 이름도 자기 멋대로 지어 버렸다.
“저기… 그런데 팬클럽이 뭐죠?”
문제는 여신이 팬클럽이라는 말의 뜻을 모른다는 점. 이래서 교단의 관리를 남에게 막무가내로 맡겨 버리면 안 되는 거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팬이라고 부르는데, 팬클럽은 그런 사람들의 모임을 말합니다. 특히 그 중에서도 열성 팬클럽은 막강한 파괴력을 지닌 전투 종족이라 할 수 있죠. 아직은 그런 이들이 없지만, 나중에 팬클럽이 커지고 나면 이런 열성 팬클럽만을 모아 여신 호위대도 만들 생각입니다.”
“아아…”
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좋은 건가보다. 물론 옆에서 듣고 있는 쌍둥이들은 이게 뭔 소린가 싶을 뿐이지만.
“그럼 추후 업데이트라는 내용은…”
“그건 저기 있는 높으신 분과 협의를 좀 해야 할 내용이라서요. 하하.”
높으신 분이란 건 당연히 공포와 죽음이다. 추후 업데이트라는 건 또한 희망과 생명의 신도에게 그랬던 것과 같은 임무 공유를 말하는 것이고.
사실 지구인들에게 포교를 하는 부분은 심도 깊은 협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게다가 보호와 균형의 신도만 모을 것인지, 공포와 죽음 또는 다른 신들의 신도 또한 모을 것인지에 대한 문제까지 확장되면 이것은 형진의 선에서 간단하게 결정하고 말 일이 아니게 된다.
때문에 당장 이 두 꼬맹이들이 추종자가 됨으로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손에 새겨진 보호의 낙인을 통해 보호와 균형의 권능을 부여받는 정도에 불과하다. 게다가 아직은 신앙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는 관계로 남에게 그 권능을 나누어주는 것도 불가능한 상황.
“저기…”
“네.”
“이 팬클럽 전용 채팅이라는 건 또 뭐죠?”
꼬맹이 파티장의 질문에 형진은 씩 웃으며 답했다.
“제가 이런 저런 설명을 하느니 직접 경험해 보시는 편이 좋겠네요. 채팅을 활성화 해보세요.”
“…”
형진의 말대로 활성화를 하자, 그곳을 통해 여신의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저기… 제 말 들리시나요?] [어? 네. 들려요.] [다행이네요. 앞으로 저에게 말하고 싶은 내용이 있으시면 이걸 통해서 말씀하시면 돼요.] [아… 그렇군요.]꼬맹이들은 잠시 혼란스러워 하다가 자신이 일종의 히든피스를 찾아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숨겨진 직업이라고 해야 하나. 딱히 상태창에 다른 직업으로 전직했다는 식의 정보가 나오지는 않았어도, 보호와 균형이라는 이름의 권능이 무한대 표시와 함께 활성화되고 팬클럽 메뉴 아이콘이 생겨난 것을 보자 그런 결론을 내린 것이다.
어쨌든 그렇게 조금 정신없는 가입 절차를 완료하고 계속해서 전투를 이어간다. 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 형진은 계속해서 한 방에 보스들을 썰어 버렸고, 이제 숨지 않아도 괜찮아진 여신은 형진에게 보답하기 위해 열심히 루팅을 했다. 방금 전까지 여신 어쩌고 하더니 이제는 또 언제부터 있었나 싶었던 여우의 등에 타고 다른 펫들처럼 열심히 루팅을 하고 있으니 꼬맹이들로서는 더욱더 혼란스러울 따름이다.
어쨌건 그렇게 인던 공략을 마치고 나자, 형진은 잠시 시간을 가늠하는가 싶더니 꼬맹이들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럼 또 나중에 보도록 하죠.”
“저희야 말로… 어?”
“벌써 사라졌네.”
꼬맹이들은 인사를 하기도 전에 여신과 함께 모습을 감추어 버린 형진의 모습에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거… 꿈인가?”
“아닌데. 인벤토리에 아이템들이 가득한 걸 보면…”
피곤하다. 그냥 형진이 사냥하는 걸 졸졸 따라다닌 것 뿐인데, 한 열시간은 죽어라 열렙한 것 같다. 정확히는 균형의 권능이라는 것 때문에 실제 피로는 거의 없는 상태였지만, 그냥 피곤한 것 같은 기분이다.
“그만… 돌아갈까?”
“아무래도 그래야 할 것 같아. 그럼 내일 또 봐. 언니.”
“응. 수고해.”
꼬맹이들은 접속을 해제하고 현실로 돌아왔다.
“후아…”
꼬맹이 모험자들 가운데 언니, 이아름은 접속기를 벗으며 자신도 모르게 깊은 숨을 몰아쉬었다.
이아름. 방년 18세. 일찌감치 여자 농구 국가 대표 선수로 선발된 차세대 유망주지만, 얼마 전 무릎 부상을 입는 바람에 치료와 재활을 겸하며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중이다. 게임 안에서는 꼬맹이지만, 실제로는 신장 178의 여자 농구 선수인 것이다.
쌍둥이 동생인 새름 역시 함께 농구 선수로 활동하고 있으며 마찬가지로 국가 대표 선수이다. 스포츠, 그것도 여자 농구에 대해 그다지 관심이 없는 형진은 이런 쌍둥이 자매가 있는지조차 잘 모르고 있지만, 귀여운 인상의 여자 쌍둥이 선수라는 특별함에 자매가 둘 다 일찌감치 성인 국가대표팀에 뽑힐 정도의 실력까지 갖추고 있어서 관계자들은 물론이고 여자 농구 팬들에게도 주목을 하나 가득 받고 있었다.
올해는 특히 아시아 선수권이 있는 해여서 나름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무릎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자칫하면 모처럼의 기회가 날아가게 생겼다. 물론 농구를 계속하다보면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뛸 날이 언젠가 다시 찾아올지도 모르고, 아직 어린 그녀는 기껏해야 백업 정도가 고작이겠지만 말이다.
“끙차…”
엘리시온은 그런 아름을 위해 동생 새름이 권해준 게임이다. 자칫 우울해질 수도 있는 그녀를 위해 게임에서나마 마음껏 몸을 움직이라는 식의 배려라고나 할까.
일부러 꼬맹이 캐릭터를 만든 건 어릴 적부터 꺽다리라고 놀림 받은 것에 대한 반동이다. 이제껏 또래의 다른 여자 아이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높이의 시점만 가져왔던 그녀들로서는 이런 식으로 남들보다 작은 체구의 캐릭터를 운용하는 것이 너무나 신기한 경험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오늘 두 자매는 이상한 경험을 하고 말았다. 시간이 없어서 인던만 후딱 돌고 나오려고 했는데, 영문 모를 이상한 초고렙과 만나고 만 것이다.
“여신이라… 참 귀여웠는데.”
보호와 균형이라는, 얼핏 듣기엔 신의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이상한 이름. 하지만 아름과 새름 자매는 여신을 보는 순간 문자 그대로 홀딱 반해 버리고 말았다. 그렇지 않아도 작고 귀여운 것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자매인데 정말 꿈에서나 볼 법한 천상의 귀여움을 목격했으니 그 감동이 오죽하겠나.
하지만 게임은 게임.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에 아름은 화장실로 향했다. 슬슬 이를 닦고 잠을 청하기 위해서다.
“하아…”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아름은 다시 한숨을 쉬었다.
여자 키 178. 확실히 보통의 여자들과는 비교되는 훤칠한 키지만 농구 선수라면 그리 큰 것도 아니다. 듀얼 가드로 가기도 애매하고 코너맨이 되기도 애매한 그런 느낌. 물론 마이클 조던 같은 위대한 스윙맨도 있지만 아름은 자신이 그 정도로 대단한 선수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대단한 선수라면 이 중요한 시기에 멍청하게 부상 같은 걸 당하지도 않았을 테니까.
“하아…”
그렇게 다시 한 번 한숨을 푸욱 내쉬고 침대로 돌아가려는데, 시야 한쪽에서 뭔가 반짝거리는 것이 보인다. 처음에는 뭔가 착각이겠거니 했는데, 그곳으로 시선을 돌리는 순간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그대로 굳어 버리고 말았다.
“어? 어어?”
그럴 수밖에 없다. 이게 여기서 이렇게 보여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게임 상이라면 몰라도, 게임에서 나와 버린 지금 이렇게 보이면 안 된다.
그런데 보인다. 팬클럽이라고 써있는 아이콘 하나가 얼른 눌러달라는 듯이 반짝거리는 모습이.
“…”
너무 게임에 몰입해서 헛것이 보이는 건가.
잠시 눈을 비벼본다. 하지만 사라지지 않았다. 냉장고를 열고 찬물을 꺼내 벌컥벌컥 마셔 봤다. 하지만 마찬가지다.
그렇게 어찌할 바를 모르고 우왕좌왕하고 있는데, 책상 위에 올려둔 전화기가 부르르 떨린다. 얼른 가서 받아보니 동생이다.
-어, 언니. 언니도 보여?
첫 마디가 그거다. 동생인 새름 역시 자신이 보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을 보고 있는 것이다.
“어… 보, 보여.”
-세상에…
잠시 둘은 말이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새름이 조심스럽게 말을 건넨다.
-언니.
“응?”
-열어보자. 그거.
“진짜로?”
-응.
“…”
잠시 망설이던 아름은 이내 전화기 너머의 동생을 향해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혼자라면 무서워서 끙끙 댔을 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동생까지 함께라면 괜찮을지도 모른다는 식의 호구 마인드를 지닌 채.
“알았어. 그럼 하나둘셋 하면 동시에 열어보는거다.”
-응.
“하나, 둘, 셋.”
아름은 눈을 딱 감고 시야 한쪽에서 반짝거리고 있는 팬클럽이라는 것을 눌렀다. 그러자 곧바로 어쩐지 안절부절하는 느낌의 귀여운 목소리가 전해져 온다.
“저기… 계세요?”
“…”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아름은 어떤 얼굴이 떠올랐다. 털목도리 속에서 빼꼼 고개를 내밀던 귀여운 여신의 얼굴이 바로 그것이다.
“여신… 님?”
아름의 떨리는 목소리가 전해지자, 곧바로 안도하는 여신의 대답이 돌아온다.
“아… 다행이에요. 연락이 안 되면 어쩌나 했는데.”
“세상에…”
참고로 세상에는 저편에서 새름이가 건넨 말이다.
하지만 두 자매가 그렇게 패닉 상태에 빠져 있으리라고는 감히 생각도 못한 채, 여신은 혹시라도 거절하면 어쩌나 싶어 하는 표정이 바로 눈앞에 떠오르는 듯한 그런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아까… 깜빡하고 두 분 이름을 못 물어 봐서요. 괜찮으시다면 이름을 좀 알려주실래요?”
엘리시온의 접속을 끊는 순간 여신은 아차하며 자신의 멍청함을 자책했다. 그렇지 않은가. 카트린을 제외하면 사실상 최초의 추종자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의 이름조차 묻지 않았으니 말이다.
“제 이름은… 아름이라고 해요.”
“저는 새름이에요. 참고로 아름이 언니랑 저는 쌍둥이에요.”
그래도 새름이 쪽이 좀 더 정신을 차리고 있었는지 그렇게 부연 설명을 덧붙인다. 여신은 둘의 이름을 확인하자 얼른 그것을 기억하기 위해 종알종알 되뇌이기 시작한다.
“아름님, 새름님이신 거죠? 다행이다. 헤헤. 아름, 새름. 꺄아.”
“…”
아름은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의 뺨을 꼬집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녀는 보았다. 손등에 새겨진 알 수 없는 문양이 거울 저편에서 희미하게 빛나고 있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