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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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면접
수빈이 길드원들과 대화를 끝냈을 즈음, 형진과 그의 식구들은 막 식사를 끝내고 있었다.
“후아아… 배불러.”
“킥킥.”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댄 채 배를 두드리는 카트린의 모습에 여신이 웃음 짓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크루그의 눈이 가늘어지자 카트린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얼른 똑바로 자세를 잡는다. 크루그는 한 없이 자상한 오빠지만, 그녀가 왕족으로서 지녀야할 최소한의 품위마저 저버리는 것은 결코 용납하지 않았다.
“아, 맞다.”
아무래도 가만히 있다가는 짧지만 강렬하게 지적을 받을 것 같았기 때문에 카트린은 얼른 다른 화제를 꺼냈다.
“오빠. 진 오빠.”
“응?”
“부탁 하나만 해도 되나요?”
“부탁? 무슨 부탁?”
카트린이 이런 식으로 무언가를 부탁하는 일은 아주 드문 일이기 때문에 형진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녀의 말을 기다렸다.
“음… 있잖아요. 여신님에게 영화를 보여주고 싶어요. 아름님도 같이. 그래도 될까요?”
“영화를?”
그러자 여신이 화들짝 놀라며 얼른 손을 내저어 보인다.
“아니. 전, 그러니까… 괜찮아요. 굳이 그러지 않아도…”
솔직한 심정으로는 카트린이 보고 왔다는 영화, 보고 싶다. 당연한 얘기지만 여신도 그런 것이 있다는 것은 처음 들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번에는 아름도 함께다. 추종자로 받아들이기는 했어도, 이 거짓된 천국에 들어왔을 때 잠깐 만나는 것 외에는 얼굴을 마주칠 시간도 없다. 그런데 그렇지 않아도 짧게 느껴지는 그 시간의 대부분을 또다시 떨어져서 있어야만 한다는 사실이 여신에게는 너무나 아쉽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 형진의 일을 돕고 있는 중. 그건 단순히 일을 돕는다거나 하는 수준을 넘어 그에게 당연히 지불해야 할 보수의 일환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런 일을 내팽개치고 놀러 가다니. 그건 역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때문에 그녀는 내심 함께 가고 싶은 마음을 꼭 눌러 참은 채 이렇게 손을 내저으며 사양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형진은 의외로 순순히 카트린의 부탁들 받아들였다.
“그래? 하긴. 그것도 나쁘진 않겠군. 여신님, 다녀오십시오. 오후에는 저 혼자서도 괜찮으니까.”
“네? 저, 정말요?”
여신은 깜짝 놀랐다. 그럴 수밖에 없다. 설마 형진이 이렇게 간단히 허락하리라고는 예상치 못한 탓이다.
“물론입니다. 오전에 열심히 일하셨으니 오후에는 좀 쉬어도 괜찮겠지요. 휴가라고 생각하시고 다녀오십시오.”
“아아… 고, 고맙습니다. 정말 고마워요.”
감격한 여신은 이제 눈물마저 글썽거리기 시작했다. 세상에 이렇게 마음씨 좋은 사람이 또 있을까.
그러나 불행히도 형진의 의도는 여신의 생각과는 조금 달랐다.
조만간 새로운 호구신들이 그에게 빨대를 꽂히러 오게 된다. 그 상황에서 여신이 누리고 있는 것은 그들에게 강렬한 미끼가 될 터. 단순히 신전이나 예쁜 집, 추종자들을 넘어 다른 세계에서의 멋지고 특별한 체험 역시 그들에게는 아주 탐나는 미끼가 될 것이다.
실제로 여신은 지금까지 쉼 없이 그의 일을 돕고 있었고 이번이 사실상 첫 번째 휴가나 다름없지만, 자신의 추종자들과 함께 하는 특별한 휴가의 기억은 여신에게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게 될 것이며, 또한 그것은 이제 새롭게 도착할 호구신들에게는 커다란 부러움의 대상이 될 것이다.
미끼나 밑밥은 아끼는 것이 아니다. 대어를 잡으려면 아낌없이 뿌릴 줄도 알아야 하는 법 아니겠는가. 오전에 이미 꽤 많은 아이템을 얻었으니 오후에는 주변도 살필 겸 인던 외의 다른 장소에 다녀 봐야겠다.
허락이 떨어지자 카트린은 서둘러 채비를 마치고 형진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재미있게 보고 와.”
“네! 정말 고마워요. 오빠!”
“하하.”
그러자 여신과 아름도 머뭇거리며 형진에게 인사를 건넨다. 아름이야 그렇다 쳐도 여신은 미안한 기색이 역력하다.
“다녀올게요.”
“다녀오겠습니다.”
“네. 편히 즐기다 오십시오.”
형진 혼자 보내는 것이 미안한 모양인지 여신은 카트린을 따라 가면서도 자꾸만 고개를 돌린다. 슬쩍 손짓하면 맹렬하게 꼬리를 흔들며 달려올 듯한 분위기라 형진은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극장에 도착하자 카트린은 대뜸 아름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름님.”
“네?”
“이번에는 아름님이 골라 봐요. 사실 저희들은 어떤 영화가 재미있는지 모르거든요.”
“아… 그렇겠네요.”
지금까지는 그런가 보다 했지만, 이제는 아름도 이 사람들이 자신이 본래 살고 있는 세상의 사람들이 아님을 어렴풋이 이해하고 있었다.
“그럼… 음… 인어공주는 어떨까요?”
“인어공주요?”
지금 극장에서 상영되고 있는 인어공주는 과거 유명했던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리메이크작이다. 원작 소설은 본래 새드 엔딩이지만, 이 영화는 모두에게 축복을 받으며 끝나는 완벽한 해피 엔딩이니 카트린이나 여신이 눈물을 펑펑 흘리거나 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볼래요!”
“저도요!”
크루그 때문에 완전히 꽝꽝 얼어붙어서 자신이 뭔 소리를 하는 건지조차 알지 못하고 그냥 되는 대로 주워섬겼던 수빈에 비해 아름은 아주 충실한 가이드 역할을 해주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수빈은 이들의 실체를 알지 못했지만, 아름은 조금이나마 그 본색을 알고 있기에 다른 세계의 사람이라 알기 어려운 부분까지 충실하게 설명을 해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아… 정말 다행이야.”
“흑. 눈물이 날 뻔 했어요.”
여신은 작중에 등장하는 인어공주의 아버지가 어쩐지 형진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물론 인어공주의 아버지는 얼핏 가벼워 보이는 형진과는 성격이 많이 달랐지만, 은연중에 인어공주를 아끼고 사랑하며 세심하게 돌봐주는 점은 또한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다. 이쯤 되면 거의 콩깍지 수준이 아닐까 싶지만, 아쉽게도 여신에게는 이런 오류를 바로잡아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즐거운 영화 관람을 마치고 돌아온 그들은 뒤늦게 훈련을 마치고 접속한 새름이 아름과 함께 크루그에게 스킬 수련을 받는 모습을 지켜보며 하루 일과를 마무리 했다.
“그럼 내일 또 봐요.”
“네, 여신님도 편안한 밤 되세요.”
“쉬세요.”
훈련을 마친 아름과 새름이 접속을 해제하자 그들은 다시 섬으로 돌아왔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날 저녁 식사 시간의 주요 화제는 다름 아닌 인어공주였다.
“카트린이랑 여신님이 아주 푹 빠져버렸나 봐요. 그 인어공주라는 얘기에.”
“하긴.”
샤워를 마치고 침실로 들어온 유아의 부드러운 몸을 안으며 형진은 건성으로 대답했다. 그런 만화야 어찌 되었든 지금 그에게 있어 가장 큰 관심사는 자신의 품에 안긴 어린 양을 어떻게 잡아먹을지에 대한 것뿐이다.
“저기, 진.”
“응?”
“부탁 하나만 들어줄래요?”
“부탁? 무슨 부탁?”
“신전의 아이들에게도 그 영화란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응? 영화?”
형진은 잠시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당연한 일이다. 식구들이라면 몰라도 신전의 아이들은 통제가 되지 않는 불특정 다수다. 공연히 엘리시온에 대한 정보가 밖으로 새나가기라도 하면 아주 일이 골치 아파질 수도 있는 것이다.
“안 되나요?”
“음… 당장은 좀 무리가 아닐까 싶은데.”
게다가 현재로서는 대미궁의 코어가 몇이나 되는 인원을 감당할 수 있는지도 확실치 않다. 여러모로 실현이 어려운 얘기란 소리다.
“그렇군요.”
유아는 이내 시무룩한 표정을 짓는다.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야. 하지만 역시 시간이 좀 걸릴 수밖에 없어.”
“죄송해요. 괜히 무리한 부탁을 해서.”
“아니. 생각 자체는 나쁘지 않아. 좋은 의견을 말해줘서 고마워.”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다. 이번에 카트린과 여신을 통해 형진은 영화라는 미디어가 가진 파괴력을 새롭게 인식했다. 게다가 엘리시온을 대체할 가상현실이라면 이미 회합장이라는 훌륭한 공간이 존재한다. 그건 다시 말해 원본 영상을 가져와 장서관에 저장할 방법을 찾아낼 수 있다면 이 세계에도 충분히 엘리시온에 존재하는 극장을 구현할 수 있다는 뜻이다.
카트린과 여신의 체험담에 이런 저런 생각을 떠올린 것은 비단 유아만이 아니었다.
“아아… 나도 보고 싶은데…”
“흑… 여신님, 미워. 나도 인어공주 보고 싶었는데.”
그들 중에서도 특히나 서러워하고 있는 이들을 꼽으라면 역시 언제나 존재감 제로에 가까운 상태로 지내고 있는 몽마들이라 할 수 있다. 평소라면 은근슬쩍 여신과 동행해서 엘리시온에도 가고 그랬겠지만, 오늘은 뒤뜰 청소를 하고 오는 동안 여신이 출발해 버리는 바람에 이 천금 같은 기회를 놓쳐 버리고 말았다.
울적해진 몽마들은 부채질을 하다가 여신이 잠들고 나자 집을 빠져 나와 파도가 철썩이는 바닷가를 바라보고 앉았다.
“자, 받아.”
“크아아아…”
그녀들이 홀짝거리며 마시고 있는 것은 바로 포도주다. 오늘 저녁에 형진은 이전에 함께 만들었던 포도주 일부를 개봉해 선을 보였는데, 자신들이 직접 만들었던 술이라 그런지 모두들 호평 일색이었다. 지금 몽마들이 몰래 가져와서 마시고 있는 것은 저녁 때 마시고 남은 포도주다.
“흑… 우리는 언제쯤 진정한 추종자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글쎄… 여신님 미워.”
“히이잉…”
가뜩이나 울적한 와중에 술까지 들어가니 이내 몽마들을 엉엉 울어대기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렇게 엉엉 울고 나니 이제까지 가슴 속에 맺혔던 울분이 조금은 풀리기 시작했다는 정도.
“어, 술이 다 떨어졌네.”
“한 병 더 가져올까.”
“그럴까?”
“그러자.”
몽마들은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주방으로 가려고 했다. 그런데 그렇게 마을로 돌아가려고 하던 그들의 눈에 이상한 것이 보인다.
“저게 뭐지?”
“글쎄.”
술김에 헛것이 보이는 건가 싶었지만 눈을 비비고 봐도 틀림없었다. 영락없이 시체로 보이는 무언가가 바다로부터 떠밀려와 모래사장에 엎어져 있는 것이다!
“헉! 큰일이다!”
“어쩌지?”
“일단… 가보자!”
“그래. 가보자!”
몽마 마야나와 로트나는 얼른 바닷가로 내려가 모래사장에 떠밀려온 무언가를 얼른 뭍으로 끌어올렸다. 다가가서 살펴보니 어쩐지 자신들과 사이즈가 비슷하다. 입고 있는 것은 이 섬의 여자들이 수영할 때 가끔 입는 비키니 수영복이라는 옷과 닮았는데, 헤엄치다가 물을 잔뜩 마셨는지 배가 뽈록 튀어 나와 있었다.
“혹시 인어공주 아닐까?”
“하지만 얘는 꼬리가 없는 걸?”
“바보야. 마녀한테 목소리를 주고 다리를 얻은 걸 수도 있잖아.”
“아! 맞다!”
카트린에게 주워들은 인어공주의 얘기를 떠올린 그들은 지금 눈앞의 변사체를 영락없는 인어공주라고 단정지어 버렸다.
“그럼 어쩌지?”
“일단… 물부터 뱉어내게 해야할 것 같아!”
응급처치라고는 배워본 적도 없는 몽마들이었지만, 예사롭지 않게 뽈록 튀어나온 배가 아무래도 신경 쓰였던 모양인지 얼른 그것을 힘껏 눌렀다. 그러자 마치 분수가 솟아오르는 것처럼 그 인물의 입에서 바닷물이 뿜어져 나온다.
“콜록! 콜록!”
그렇게 물을 전부 뱉고 나자 그제서야 정신을 차렸는지 그 인물이 몸을 일으킨다.
“당신들은… 누구죠?”
순간 마야나와 로트나는 실망스러운 기색을 보였다. 인어공주라면 다리를 얻은 순간 목소리를 잃었을 텐데, 이 여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건네고 있었기 때문이다.
검은 머리가 흘러내린 모습이 약간 퇴폐적인 인상을 준다. 눈빛도 뭔가 몽롱하고. 몽마들은 어째 자신들보다 더 몽마스러워 보이는 그녀의 모습에 흠칫 놀라면서도, 기회가 왔다는 듯이 얼른 자신들의 소개를 했다.
“저로 말할 것 같으면!”
“또한 저로 말할 것 같으면!”
“제 이름은 타락의 마야나!”
“제 이름은 유혹의 로트나!”
“보호와 균형의 여신을 섬기는!”
“첫 번째 추종자가 바로 우리들입니다!”
드디어 했다. 이 소개를 해보고 싶어서 얼마나 많은 밤을 뜬눈으로 지새웠던가. 마야나와 로트나는 그것만으로도 날아오르는 듯한 기쁨을 느꼈다.
“아… 그럼 제가 제대로 찾아왔나 보네요.”
그녀는 마야나와 로트나를 향해 배시시 웃어 보이며 다시 이렇게 말했다. 그냥 살짝 웃는 것 뿐인데도 자신들의 마음을 흔들리게 만드는 그 기이한 느낌에 몽마들은 흠칫 몸을 떨어야만 했다.
“당신들의 여신에게 전해주겠어요? 꽃과 바람이 찾아왔노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