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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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면접
마야나와 로트나, 두 몽마들은 순간 얼큰하게 취했던 술기운이 싹 날아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기껏해야 놀다가 발 헛디뎌서 물에 빠진 채 떠밀려온 요정 나부랭이인 줄 알았는데, 소개를 들어보니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형식의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설마… 여신이셨어요?”
조심스럽게 마야나가 묻자, 꽃과 바람은 처연한 표정으로 쓴웃음을 지으며 되물었다.
“안 그래 보이나요?”
“…”
여기서 응이라고 답해 버렸다가는 나중에 큰일 날 수도 있다. 비록 지금은 별거 없어 보이는 상태라도, 이 섬에 온 이상 언제 보호와 균형처럼 다시 신으로서의 권세를 누리게 될지 알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유… 별 말씀을 다하세요. 그냥 머릿결에 윤기가 자르르 흐르시는 게 범상치 않은 느낌이 딱 오더라고요.”
“그럼요. 밤인데도 탱글탱글한 피부가 어쩜 이렇게 요염할까 싶었다니까요. 과연 여신. 대박이세요.”
미용실 갔다가 우연히 회장님 사모님과 마주친 아줌마들도 이렇게 호들갑스럽지는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단숨에 태세 전환을 하는 몽마들의 모습에도, 꽃과 바람은 배시시 웃으며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뭐랄까. 어쩐지 백치미가 느껴지는 모습이다.
“고마워요. 그런 말 들어본 거 정말 오랜만인거 같아요.”
“그, 그런가요.”
마야나와 로트나는 얼른 꽃과 바람을 여신의 집으로 안내했다.
“어? 벌써 온 거야?”
기분 좋게 목욕을 마치고 침대 위에서 뒹굴 거리며 여느 때와 다름없이 신도들과 즐거운 대화 시간을 보내고 있던 보호와 균형은, 흠뻑 젖은 모습으로 마야나와 로트나의 안내를 받아 집 안으로 들어오는 꽃과 바람의 모습에 화들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아무래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배시시 웃는 꽃과 바람의 모습에 보호와 균형은 일단 수건을 꺼내서 그녀의 젖은 머리카락과 몸을 닦아 주었다. 하지만 바닷물에 오래 몸을 담그고 있었던 탓인지 여기저기서 짠내와 비린내가 진하게 전해져 오는 탓에 보호와 균형은 이내 얼굴을 찌푸리고 말았다.
“아우, 냄새. 안 되겠다. 너희들, 가서 얘 목욕 좀 시켜주고 올래?”
“네!”
“알겠습니다!”
방금 전까지 술잔을 기울이며 여신님 미워를 열창하던 그 몽마들이 맞나 싶을 정도로, 마야나와 로트나는 빠릿한 모습으로 채비를 갖추고는 얼른 꽃과 바람을 데리고 나갔다. 그 모습을 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던 보호와 균형은 바로 가서 형진에게 꽃과 바람이 도착한 사실을 알리려다가 시간이 너무 늦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지금은… 아무래도 실례겠지.”
낮에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데 밤에까지 찾아가서 번거롭게 하는 건 역시 예의가 아니다. 누가 뭐래도 그는 여러 신들의 일을 살피고 있는 아주 아주 바쁜 몸이니까 쉴 때는 쉴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오랜만에 여신다운 배려심을 보여주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 보호와 균형은 부엌에 가서 간단하게 간식거리를 손수 챙겨왔다. 그리고 잠시 기다리자 몽마들에 의해 말끔하게 씻긴 꽃과 바람이 집 안으로 들어온다.
“수고 했어. 이만 가서 쉬어도 좋아.”
“네, 여신님.”
“편히 쉬세요.”
몽마들은 그렇게 대답하고는 조용히 여신의 방으로부터 물러났다. 시녀로 부리는 몽마들이 방에서 나가자 여신은 얼른 꽃과 바람의 손을 잡고 자신의 침대 위에 데려와 앉혔다.
“고생했지? 배고프지? 일단 이거부터 좀 먹어.”
“응. 고마워.”
꽃과 바람은 보호와 균형이 건네주는 따뜻한 차를 마시고 달콤한 과자를 먹자 이내 풀어진 표정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참 기묘한 일이다. 그렇게 무방비한 표정이 되었는데도 바보스럽다기 보다는 오히려 퇴폐적인 느낌이 전해지는 이유는 뭘까.
“어휴.”
보호와 균형은 그런 꽃과 바람의 모습에 한숨을 쉬고는 이내 자신의 쇼올을 가져와 수영복만 걸친 듯한 꽃과 바람의 어깨에 가져다 걸쳐 주었다.
“우… 싫은데.”
그러자 꽃과 바람은 대번에 울상이 되며 몸을 비튼다. 역시 하나도 안 변했다. 아니, 그나마 수영복 비슷한 거라도 입고 있으니 다행인가.
“입고 있어. 그러다 감기라도 걸리면 어쩌려고 그래. 내일 면접도 봐야 하는데.”
“우…”
“일단 그렇게 있다가 잘 때만 벗어. 그러면 되잖아.”
“알았어.”
아무리 그래도 신인데 감기 따위에 걸릴까 싶기도 하지만, 어쨌든 조심해서 손해 볼 일은 아니다. 결국 꽃과 바람은 더 이상 거부하지 못하고 그녀가 걸쳐 주는 쇼올을 몸에 둘러야만 했다.
“그리고, 내일 면접 볼 때는 거추장스럽더라도 반드시 내가 골라준 옷을 입고 가.”
“꼭 그래야 해?”
“응. 네가 노출증 변태라는 게 알려지기라도 해봐. 사람들이 널 뭐라고 생각하겠어.”
“역시… 그건 안 좋겠지?”
“당연하지. 음… 진은 원래 좀 변태스러우니까 괜찮을지 몰라도, 다른 사람들은 분명 널 안 좋게 생각할거야. 너, 예전에 추종자 다 도망가 버렸던 것도 바로 그 노출증 때문이잖아.”
“우…”
그렇다. 조금 퇴폐스러운 느낌이 드는 것 외에는 의외로 멀쩡해 보이는 이 여신이 과거 추종자들을 모두 잃고 잊혀지게 된 계기는 바로 노출증이라는 치명적인 약점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꽃이나 바람 모두 어딘지 모르게 외설스러운 느낌인데 여기에 여신 본인이 노출증 환자이니 제대로 된 신도나 추종자가 모일 리가 없다. 물론 일부 계층에서는 열성적인 신도들도 있었던 모양이지만, 결국 그들도 부정적인 사회 인식에 떠밀려 하나씩 자취를 감추었고 결국 여신은 잊혀진 신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자신이 가져다 준 차를 마시며 표정이 풀어지는 모습을 지켜보며, 보호와 균형은 한숨을 푸욱 내쉬고 말았다. 진이 데려와도 좋다고 해서 일단 오라고 하기는 했는데,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얘를 어떻게 다시 회생시킬지 정말 막막할 뿐이다.
하지만 이대로 계속 잊혀진 상태로 놔두자니 너무 불쌍하다. 여신은 결국 호구로서의 본능을 발동시켜 꽃과 바람에게 내일 있을 면접의 대책을 소상하게 알려주기 시작했다.
“잘 들어. 그러니까, 일단 계약만 어떻게든 맺으면 돼. 그러려면 최대한 멀쩡한 척을 해야만 한다구. 무슨 말인지 알겠어?”
“응… 근데 나 졸려.”
“정신 차려! 잠은 내일 면접에 통과해서 계약을 맺은 후에도 충분히 잘 수 있으니까. 눈 떠! 뜨라고!”
“우웅…”
보호와 균형이 똑 부러진 여신처럼 보이다니. 역시 사람이든 신이든 결국은 전부 상대적인 모양이다.
그렇게 하룻밤이 지나고 다음 날이 되자, 여신은 몽마들을 시켜 꽃과 바람이 섬에 도착했음을 형진에게 알렸다.
“그래? 생각보다 훨씬 빠르네.”
보호와 균형 때는 그나마 정말로 신을 마주한다는 생각에 두근거림이라도 있었다. 하지만 여신과 오래 지내다보니 그런 처음의 두근거림도 많이 사라진 상태. 잊혀져서 힘이 사라진 신은 요정보다도 못하다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는 상황이라 딱히 놀랄 것도 없다.
“일단 아침 식사 때 간단하게 인사하고, 그 뒤에 면접을 보면 되겠네.”
“꽃과 바람이라니. 아주 예쁜 분일 것 같아요.”
“그런가.”
형진은 솔직히 외모보다는 내면이 더 궁금하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로는, 이곳의 신들은 모두 어딘가 한 군데 나사가 빠진 것 같은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마냥 귀여워 보이는 보호와 균형조차 형진이 잠시 말없이 시야에서 사라지기만 해도 안절부절하느라 정신 못차리는 심각한 의존증 환자가 아니던가.
바로 그때, 그의 뇌리에 누군가 작게 속삭인다.
[노출증.] “…”잠시 형진은 말문을 잃었다. 설마 자신의 내면에 살아 숨 쉬는 변태가 그렇게 스스로의 욕망을 표현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현명하구나.] “끙…”하지만 다시 이어진 한 마디에 그는 방금 전에 들었던 한 마디가 자신의 내면이 아닌 공포와 죽음께서 건넨 말임을 확실하게 인지했다.
“왜 그래요? 머리가 아파요? 회복 걸어줄까요?”
이부자리를 정돈하던 유아가 얼른 다가와 그렇게 말했지만 형진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냥 좀. 회복은 안 걸어줘도 되니까 걱정 마.”
“아픈 거 참는 게 제일 미련한 거라도 누가 그랬죠?”
“나였지.”
어째서 골치가 아픈지 설명하기도 뭐해서 그냥 유아의 회복을 받아들이고는 조리대로 향했다. 그러자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던 식구들과 함께 보호와 균형이 요정처럼 보이는 인물 하나를 그에게 소개한다.
“아까 미리 말씀드렸죠? 꽃과 바람이라고 해요. 얘, 인사해.”
“꽃과 바람입니다. 만나서 반가워요.”
첫 대면부터 홀라당 옷을 벗어던진 올누드의 여신과 마주하나 싶었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꽃과 바람은 의외로 말쑥한 드레스 차림이다. 딱 봐도 보호와 균형에게 빌려 입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뭔가 좀 어색하고, 스스로도 그걸 느끼는지 계속 몸을 비비적거리는 것이 좀 그렇긴 하지만.
“반갑습니다. 일단 앉으시죠. 얘기는 식사 후에 나누는 것으로 하고.”
“네.”
하룻밤 동안 보호와 균형에게 ‘멀쩡한’ 여신으로 보이기 위한 스파르타식 교육을 받은 탓인지 꽃과 바람은 무척이나 피곤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눈가에 다크 서클이 짙게 깔린 그 모습조차 어쩐지 퇴폐스러워서 할은 물론이고 오귀스트조차도 괜히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돌리느라 바쁘다.
간단하게 인사를 나눈 형진은 바로 아침 식사 준비를 시작했다.
어젯밤 포도주에 살을 발라 재워둔 닭고기를 꺼내 칼집을 낸 다음 소금과 후추를 뿌려 밑간을 하고는 그대로 올려 굽는다. 굽는 동안 포도주에 설탕을 섞어 뿌려 주기만 하면 끝. 이렇게 구워진 닭고기와 싱싱한 야채들을 한 접시에 낸 다음 머스타드 소스를 취향에 맞게 뿌려서 내고, 여기에 수프볼을 곁들이면 훌륭한 아침 식사가 된다.
“잘 먹겠습니다!”
곧바로 식탁 주위는 음식을 먹는 소리와 탄성이 교차하는 아수라장이 되어 버린다. 형진은 흐뭇하게 식구들이 자신들의 식탐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문득 보호와 균형 옆에 앉아 자기 몫의 음식을 먹고 있는 꽃과 바람의 모습에 흠칫 하고 말았다.
“하아아아…”
촉촉하게 젖은 눈으로 몽롱하게 허공을 응시하며 내뱉는 작은 탄식. 고작 그것 뿐인데도 보는 순간 괜히 얼굴이 붉어지는 이유는 뭘까. 이미 여자에 대해서라면 문자 그대로 산전 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어본 형진이다. 하지만 그런 그조차도 여신의 짧은 탄식을 보고 듣는 순간 마치 귓가에 대고 숨을 후 하고 불어댄 것처럼 등줄기를 타고 소름이 좌악 올라오는 듯한 느낌을 받고 말았다.
뭐랄까. 여러모로 존재 자체가 19금인 것 같은 느낌이다. 그나마 보호와 균형에게 제대로 옷을 빌려 입었는데도 저 모양이니, 본색을 드러내기라도 하면 어찌 될까. 확실히 질풍노도 시기의 청소년에게는 매우 유해할 것 같은 느낌의 여신이다.
하지만 이건 바꿔 생각하면 그만큼 강력한 존재감을 지녔다는 뜻도 된다. 잊혀진 상태인데도 불구하고 형진에게 이렇게 진한 인상을 남길 정도라면, 그 힘을 되찾았을 때는 과연 어느 정도일까. 뭐든 쓰기 나름인 법이다.
“역시 그게 좋겠군.”
형진은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다가 마침내 결정을 내리고는 식사가 끝나자 곧바로 면접에 들어갔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이렇게 마주 앉고 보니 어쩐지 살짝 백치미도 느껴진다. 참 여러 모로 사람 홀리기엔 딱 좋은 느낌이다.
하지만 형진은 그런 여신을 향해 사람 좋은 모습으로 푸근하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자, 그럼 간단하게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네.”
꽃과 바람은 의자에서 일어나 똑바로 선 채 자신을 내려다 보고 있는 형진을 향해 떨리는 목소리로 자기 소개를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꽃과 바람이라고 합니다… 일단은 여신이구요. 전부터 진님께서 여러 신들의 일을 살피는 일에 능하시다는 말씀을 듣고… 음, 그러니까… 그러니까…”
처음에는 더듬거리긴 해도 그럭저럭 조리 있게 말하는가 싶더니, 이내 얼굴을 푹 수그린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아무래도 보호와 균형이 미리 모범 답안을 외우게 했는데 긴장한 나머지 중간부터 잊어 먹은 모양이다.
형진은 그런 여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다시 물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다시 묻죠. 이건 시간이 걸려도 좋으니, 천천히 떠오른 생각을 가감없이 말씀해 주세요.”
“네…”
“꽃과 바람 님께서는 어떤 신이 되고 싶으십니까.”
꽃과 바람은 잠시 아무런 말없이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이렇게 답했다.
“사랑 받는 여신이 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