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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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면접
과연.
형진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이 면접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과연 이 신이 사람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자신을 어필할 수 있는 무기를 가지고 있느냐는 점이다. 보호와 균형처럼 그 이름만으로도 대충 어떤 신인지 감이 오는 경우라면 몰라도, 꽃과 바람처럼 도대체 이 신이 뭐하는 신인지 모르는 경우라면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과정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꽃과 바람은 적어도 자신이 어떤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지 이미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형진과 같은 사람에게 있어 가장 골치 아픈 것은 아무 개성이 없어서 정말 뭘 어떻게 어필해야 좋을지 모를 그런 신이다. 꽃과 바람처럼 좋든 나쁘든 강렬하게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어필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것이다. 어차피 사람들에게 있어 신이 갖춰야 할 가장 큰 덕목은 역시 존재감이니까.
“좋습니다. 솔직한 대답이 아주 좋군요.”
“휴우…”
형진이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자 꽃과 바람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어제 잠도 제대로 못자고 보호와 균형이 이렇게 하라고 알려준 말들을 중간에 까먹어 버렸을 때는 정말이지 눈앞이 캄캄해질 정도였으니까. 이대로 면접에서 떨어지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가득 들어찬 그 느낌은 정말이지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아직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건 너무 이른 일이었다.
“자, 그럼 이제 노래를 한 번 불러 보십시오.”
“네?”
꽃과 바람은 자신이 뭔가 잘못 들었는 줄 알았다.
“지금… 뭐라고…”
하지만 그건 잘못 들은 것도 잘못 말한 것도 아니었다. 형진은 당황해 하는 꽃과 바람에게 똑똑히 들으라는 듯이 이렇게 다시 한번 또박또박 말을 건넸다.
“노래 말입니다. 춤도 가능하시다면 한번 보여주셨으면 싶군요.”
“…”
꽃과 바람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형진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설마 지금 자신을 놀리나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형진은 아주 진지했다. 할 수만 있다면 궁서체로 대사를 적어 팻말로 보여주고 싶을 정도로.
사람으로 하여금 시선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매력. 그 느낌이 퇴폐적이든 농염한 것이든 몽롱한 것이든 간에, 그런 매력을 가지고 있다는 건 연예인으로서의 아주 강력한 무기가 된다.
그렇다. 형진은 꽃과 바람에게서 사람의 시선을 단숨에 휘어잡는 연예인의 재능을 발견한 것이다. 그것도 보통 재능이 아니다. 무려 신급 재능이다. 비유가 아닌 진짜 여신으로서의 매력이다. 이처럼 강력한 무기를 썩힐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이건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여신님의 개성을 온전히 살릴 수 있을지 확인하기 위한 시험이니까.”
“그렇지만…”
그래도 노래라니. 아무래도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때문에 꽃과 바람이 망설이는 기색을 보이자, 형진은 대번에 냉담한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쐐기를 박는다.
“생각이 없으시다면 안 하셔도 무방합니다. 아쉬운 일이지만, 딱히 열의가 없으신 분을 억지로 끌고 갈 생각은 없으니까요.”
팔짱을 끼고 실망스럽다는 표정으로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는 형진의 말에 꽃과 바람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렇다. 지금 자신은 신으로서의 힘과 자격을 되찾기 위한 아주 중요한 관문에 와 있다. 찬 밥 더운 밥 가릴 처지가 아닌 것이다!
여기서 퇴짜를 맞고 쫓겨가면 다시금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 영원한 망각 속에서 허우적거려야만 한다. 신은 불멸의 존재지만, 그런 식으로 영원한 망각 속을 헤매이는 건 사실상 죽음보다도 더 끔찍한 징벌이나 다름 없다.
“하, 할 게요.”
“정말입니까?”
“네! 할 수 있어요. 하겠어요.”
형진은 그제서야 팔짱을 풀고 다시 앞으로 몸을 숙이며 웃음을 지었다.
“좋습니다. 그럼 준비가 되는대로 바로 시작해 주십시오.”
“네…”
잠시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목소리를 가다듬던 여신은 두 손을 가슴에 모은 채 노래를 시작했다.
너의 이름은 꽃.
평화를 간직한 꽃.
꿈을 간직한 꽃.
하지만 언제나 사람들을 그것을 꺾어 버려.
바람이 불어와 꽃잎이 날리면
사람들은 앙상하게 남은 꽃대를 버리고
다시 막 피어난 꽃들을 찾아가
다시 그 꽃을 꺾어 버려.
다시 새 꽃을 꺾어 버려.
너의 이름은 꽃.
평화를 간직한 꽃.
꿈을 간직한 꽃.
그렇게 피고 지고 꺾여도
때가 되면 언제나
그렇게 다시 피어나는 꽃.
그렇게 다시 피어나는 꽃.
“…”
노래가 끝났다.
형진은 몽롱한 꿈속을 헤매는 듯한 느낌에 허우적거리다가, 노래가 끝나고 나서야 화들짝 정신을 차리고 말았다.
그리고, 당황했다.
이럴 수가. 이건 또 무슨. 도대체 방금 내가 뭘 들은 거지?
솔직히 말해서 형진은 여신에게 노래를 시키면서도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고 있었다. 그냥 재능이 있는지만 확인하려는 의도였을 뿐, 애초에 기대 자체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다만 단순히 보호와 균형처럼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수준이 아니라, 좀 더 확실하게 사람들의 이목을 휘어잡을 수 있는 수단이 있는지 확인하고자 했을 뿐이다.
그런데 이건 뭔가. 도대체 방금 뭐가 어떻게 되었던 것인가. 도대체 지금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인가!
홀려 버렸다. 문자 그대로 홀려 버렸다. 집행자가 된 이후로 흔들려 본 적이 없는 그의 정신이 잠시나마 이 조막만한 여신의 노랫소리에 그대로 홀려 버리고 말았다. 공포와 죽음께서 주신 정신 보호의 효과가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 채, 홀려서 모든 것을 잊고 있었다.
세상에. 세상에 이럴 수가. 어떻게 이런 일이!
“저기…”
꽃과 바람은 심각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형진의 모습에 뭔가 잘못 되었나 싶은 표정을 짓는다.
“역시… 별로인가요?”
어쩌면 좋단 말인가. 모처럼 찾아온 기회인데, 역시 어려운 건가.
아무런 말없이 자신을 향해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모습에, 꽃과 바람은 울적해지고 말았다. 역시 이제 와서 다시 사랑 받는 신이 되겠다는 생각 따위, 과한 욕심이었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 같이 여신의 눈이 글썽거리는 그 찰나, 그제서야 비로소 형진의 입이 열렸다.
“계약 합시다.”
“네?”
순간 꽃과 바람은 자신이 뭘 잘못 들었는줄 알았다. 하지만 자신이 방금 들은 얘기가 진실인지조차 갈피를 잡지 못하는 여신을 향해, 형진은 아주 심각하고 단호한 태도로 외쳤다!
“계약 합시다. 지금 당장! 계약 내용에 대해서는 대충 보호와 균형께 들으셨겠죠?”
“그, 그거야…”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종이. 종이. 펜! 이게 어디 갔지? 제랄딘! 제랄딘!”
갑자기 다급하게 외치며 종이와 펜을 찾아 법석을 떠는 형진의 모습에 꽃과 바람은 당황하고 말았다.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 몰라 당황해 버린 것이다.
“노래는 일단 그대로 가고… 음, 악단은 요정들에게 시키면 되겠지. 코러스와 백댄서는 몽마들에게 시키자. 좋아. 그럼 영상을 저장하는 방법인데…”
“…”
무슨 소린지 통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계속 중얼거리며 계약서와 함께 무언가에 대한 기획서를 써내려 가는 형진의 모습에 여신은 그저 우왕좌왕할 뿐이다.
일 하러 가던 제랄딘을 붙잡고 사업 계획서를 다시 점검하고 림과 람을 불러 악기를 다룰 줄 아는 요정들을 불러오라고 시키는 식으로 난리 법석이 벌어진다. 그렇지 않아도 꽃과 바람이 면접을 잘 볼까 싶어서 노심초사하고 있던 보호와 균형은 난리가 난 형진의 집무실 분위기를 보고는 조심스럽게 꽃과 바람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어떻게 됐어? 잘 됐어? 안 들켰어?”
“그게…”
보호와 균형은 노출증이 들키지 않았는지가 제일 궁금했던 모양이다. 만약 그것이 처음부터 공포와 죽음에 의해 홀라당 밝혀져 버렸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녀는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하지만 꽃과 바람으로서도 막막할 뿐이다. 대답을 해주고 싶어도 잘 된 건지 안 된 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계약하자고 하긴 했는데.”
그래서 그렇게 조심스럽게 말하자, 보호와 균형은 확 밝아진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래? 그럼 됐어. 잘 된 거야.”
“정말?”
“그래. 내가 말했잖아. 일단 계약서만 딱 만들어 버리면 그걸로 문제 해결이라고. 진은 정말로 대단한 사람이거든!”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정말!”
그렇게 말장난 같은 문답을 잠시 반복하고 나서야 비로소 꽃과 바람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대로 털썩 주저 앉고 말았다. 긴장이 풀림과 동시에 후들거리던 다리를 더 이상 지탱할 수 없게 되어 버린 것이다.
보호와 균형은 그렇게 쓰러지는 꽃과 바람을 얼른 안아주었다.
“괜찮아?”
“응. 괜찮아. 그리고 고마워. 흑…”
꽃과 바람은 긴장이 풀리자 보호와 균형의 품에 안겨 훌쩍거리며 울기 시작했다. 어쨌든 한 고비를 넘겼다는 사실에 감정이 북받쳐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바보 같이. 울긴 왜 울어. 이렇게 좋은 날에.”
“그렇지? 헤헤.”
그렇게 감동스런 장면을 연출하고 있는데, 문득 열심히 종이에 뭔가를 휘갈겨 쓰고 있던 형진이 마침내 계약서의 작성을 마쳤다.
“자, 읽어 보십시오.”
두 여신은 형진이 건네준 계약서로 얼른 시선을 돌렸다.
“매니지먼트 전속 계약서?”
뭔가 이전에 보호와 균형이 작성했던 것과는 내용이 다르다.
“이거 제 거랑 다른데요?”
보호와 균형의 말에 형진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사람도 같은 사람이 없는데, 신이야 오죽하겠습니까. 보호와 균형께서 잘 하시는 분야가 다르고, 꽃과 바람께서도 마찬가지니 그에 따라 다른 계약서를 작성하는 것이 당연하지요.”
“아하.”
뭔지는 몰라도 그런가보다 할 뿐이다. 이전에 이런 비슷한 것을 본 적이 있다면 몰라도, 매니지먼트나 전속이라는 말 자체가 처음이라 그러 어리둥절할 뿐이다.
“일단 읽어보시고 궁금하신 내용은 질문해 주십시오.”
“네.”
1. 이 계약은 갑과 을이 서로의 이익과 발전을 위하여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것을 전제로…
그렇게 시작된 계약서는 서로의 권리와 의무를 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수익의 분배와 같은 부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물론 여신들로서는 읽어도 그런가보다 싶을 뿐 뭐가 뭔지 영 갈피를 잡기가 힘들다.
“저기…”
“네, 말씀하십시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었던지 꽃과 바람이 가만히 손을 들고 질문을 한다.
“죄송하지만 역시 잘 모르겠어요.”
“무엇을 모르시겠습니까.”
“제가 뭘 해야 하는 거죠?”
그 말에 형진은 씨익 웃음을 지었다.
“일단은 노래부터 시작할 겁니다. 아까 불렀던 노래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노래들을 저장매체에 담아 사람들에게 들려줄 겁니다. 그 이후의 일은 차후에 다시 생각해 보도록 하죠.”
꽃과 바람은 물론이고 보호와 균형 또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것뿐인가요? 노래만 부르면 되는 거에요?”
“물론입니다. 아, 물론 보호와 균형께서 하시는 것처럼 시간 나실 때 저를 도와주시면 더욱 좋겠죠. 나머지는 다 저에게 맡기시면 됩니다.”
“아…”
영문은 모르겠지만 그거면 된다니 그런가보다 할 뿐이다. 애초에 그에게 전부 맡길 생각으로 찾아온 것이기도 하고.
“그럼, 계약하시겠습니까?”
“네!”
어차피 계약서의 내용이야 뭐가 뭔지도 모른다. 지금 중요한 것은 과거처럼 잊혀진 여신이 아닌, 다른 여러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여신이 될 수 있다는 것. 지금의 꽃과 바람에게 있어 그것 외의 다른 것은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먼저 형진이 이름을 적어 놓은 계약서에 꽃과 바람이 자신의 이름을 적자, 마침내 계약서가 효력을 발휘하며 서로의 영혼에 그 내용이 새겨진다.
“좋은 계약이었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저야 말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꽃과 바람을 보며 형진은 속으로 사악한 웃음을 지었다. 내용은 좀 달라졌어도 어차피 수익 분배라든가 기타 내용에 있어서는 보호와 균형이 작성한 계약서와 다를 바가 없다. 아니, 어떻게 보면 이쪽이 더 악랄하다. 매니지먼트라는 이름 아래 사실상의 노예 계약이나 다름없는 내용이 작성되어 버린 탓이다.
[좋냐.]문득 마음속으로부터 누군가의 한 마디가 전해진다. 혹시 천벌이라도 내리려는 건가 싶어 움찔했지만, 다행히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사람 놀라게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