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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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불씨
형진은 곧바로 나머지 영단도 하나씩 섭취하기 시작했다.
“끄윽…”
세 번째부터는 격렬했던 반응이 많이 약해져서 견딜만 했다. 물론 이것도 처음에 비해서 견딜만 했다는 얘기지, 가볍게 꿀떡꿀떡 삼켰다는 말은 아니다. 한꺼번에 영단을 먹은 탓에 속이 좀 더부룩하긴 해도 그 정도는 지금까지의 일에 비하면 대수로울 것도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하나씩 차례로 눈앞에 놓여져 있던 영단들이 형진의 입 안으로 사라져 갔다.
중복된 것을 제외한, 영약을 기반으로 제작된 여덟 가지 영단의 섭취가 끝나자 형진은 몸 전체가 마치 불길에 휩싸인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아직 영약의 기운이 완전히 흡수되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갑자기 너무 큰 힘을 얻어서 그것이 이런 식으로 표출되고 있는 것인지 헷갈린다.
“후우우우…”
눈을 감은 채 잠시 그렇게 길게 심호흡을 하다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형진이 영약을 복용하는 동안 계속 옆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여신들은 마침내 그가 몸을 일으키자 얼른 옆으로 다가와 문제가 없는지 살폈다.
허둥대며 자신의 몸을 살피는 여신들의 모습이 귀여워서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괜찮습니다. 그렇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정말요?”
“네. 정말입니다. 모두 여신님들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다행이다아…”
“휴우…”
“…”
세 여신들은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쉬며 긴장을 풀었다. 형진은 손을 뻗어 그녀들을 어깨 위로 옮겨 주었다.
“고생하셨습니다. 잠시 쉬고 계세요. 보답도 할 겸 맛있는 식사를 대접하겠습니다.”
“고생은요. 당연히 해야 할 일인 걸요.”
‘다행이에요. 그리고… 축하드려요.“
“수고하셨어요.”
“감사합니다.”
영단이 남아 있긴 했지만, 그것은 일단 남겨 뒀다가 나중에 복용하기로 했다. 일단 연거푸 한계를 돌파한 상태이므로 그것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급할 수록 돌아가라는 말은 이런 경우에도 틀림없이 들어맞는 말이다.
간단하게 도구들을 다루어 보았다. 급격하게 힘이 강해져서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싶었는데, 아바타 때의 감각이 남아 있어서인지 어렵지 않게 현재 상태에 적응할 수 있었다. 다만 본신이 이 정도로 강해진 상태라면, 나중에 아바타를 다시 활용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증폭된 힘을 감당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을까. 하긴 그런 일을 지금 미리 걱정해 봐야 의미 없는 일이긴 하지만.
시험 삼아 대리석 덩어리 하나를 꺼내 조각을 시도해 보았다. 당장 간편하게 세심한 힘조절을 익히기에는 이만한 것도 없다.
톡톡톡.
정과 망치를 조심스럽게 다루자 커다란 돌 덩어리가 점차 형태를 갖춰간다. 자칫 잘못해서 힘을 너무 주거나 하면 모처럼의 작품이 못 쓰게 되는 건 순식간의 일. 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약하게 힘을 줘도 돌은 깎여 나가지 않는다.
그렇게 세심하게 돌을 다루기를 얼마나 했을까. 이내 하얀 대리석 조각은 아름다운 여신의 모습으로 바뀌어 가기 시작한다.
그런 식으로 간단하게 손바닥만한 황혼과 망각의 신상 하나를 만들고 나자 이 정도면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몸에 붙은 돌조각을 털어내며 시간을 확인하니 얼추 점심 식사 시간이 되어 있었다.
아틀리에를 나섰다. 그러자 어떻게 알아차렸는지 아이들이 형진에게 우르르 달려든다.
“빠아!”
“어이쿠! 우리 공주님들. 아빠가 그렇게 보고 싶었어?”
“빠핫!”
“하하하. 그래. 아빠도 보고 싶었어요.”
아기들을 하나씩 양손으로 안아 올려 입을 맞추어주자 뒤따라온 미엘이 흐뭇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이내 놀란 시선을 던진다.
“당신…”
“응?”
“무슨 일 있었어요? 몸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이…”
“아… 그게 말이지.”
그렇게 영약에 대한 얘기를 미엘에게 하려던 찰나,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끄으응…”
형진의 손에 안겨 있던 아기가 갑자기 얼굴을 찌푸리더니 마치 뭐가 마려운 것처럼 힘을 주기 시작한 것이다.
“응? 왜 이러지? 어디가 아픈가?”
“앗! 설마?”
갑작스런 아기의 행동에 놀란 형진이 허둥대자 얼른 다가와 살피던 미엘은 이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고, 그녀가 미처 다음 말을 이어가기도 전에 그 일이 벌어졌다.
뽕!
마치 와인의 코르크를 딸 때 같은 소리와 함께 아기의 엉덩이에서 작지만 탐스러운 꼬리 하나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헛! 이건…”
“세상에! 아직 한 살도 안 됐는데?”
미엘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짓는 동안, 다른 아이들도 이내 얼굴을 찌푸리며 힘을 주기 시작하더니 연달아 퐁퐁 거리는 소리를 터뜨리며 꼬리가 튀어 나온다.
“어? 어어? 어쩌지?”
“잠깐만요.”
미엘은 급히 허둥거리는 형진에게서 아이를 받아들고자 했지만 아이는 고개를 저으며 투정을 부렸다.
“시져! 빠아랑 이쓸 꼬야!”
“헉!”
“앗!”
형진과 미엘은 다시 당황하고 말았다. 살짝 코맹맹이 소리긴 해도 아기가 하는 말을 분명히 들었기 때문이다.
잠시 어버버 거리며 자신이 방금 겪은 것이 현실인지 아닌지 헷갈려 하던 형진은 이내 자신을 가리키며 아기에게 물었다.
“아가. 내가 누구?”
“빠아!”
“빠앗!”
그러자 형진의 몸에 달라붙어 있던 아기들이 일제히 합창하듯 빠아라고 대답한다. 도대체 이건! 형진은 다시금 얼이 빠지고 말았다.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미엘도 얼떨떨한 기분을 감추지 못했다.
“뭐랄까… 대단하네요. 하기야 아이들이 이렇게 빨리 태어난 것도 전대미문이지만, 이렇게 꼬리가 빨리 생겨난 것도 전대미문일 거에요.”
미엘의 말에 형진은 아이들을 토닥거리며 말했다.
“그럼 문제 아니야? 탈이라도 생기거나 하면…”
“저도 이런 경우는 들어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네요. 하지만 역시 이렇게 빨리 꼬리가 생겨난 건… 당신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속성력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속성력?”
그러고 보니 영약을 먹을 때 이런 저런 속성력이 증가하긴 했다. 물론 이제까지 그런 종류의 힘을 써본 적이 없는 형진으로서는 그런가보다 할 뿐이었지만, 막상 이렇게 아기들에게 변화가 생기자 괜찮은 건가 싶어서 겁이 덜컥 난다.
아기가 빨리 자라나면 좋은 거 아니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이런 문제는 너무 특출 나도 좋은 게 아니다. 자라나는 과정을 건너뛴다는 건 이후에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커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니까.
“실은 방금 전에 당신을 보는 순간 강렬한 불의 기운 같은 것이 느껴졌거든요. 그래서 괜찮은 건가 하고 물어보려고 했던 건데…”
“아…”
사실 정기 자체는 희망과 생명의 힘을 끌어 쓰기 시작한 이래로 항상 넘치는 상황이었다. 그런 점을 생각하면 아기들의 성장이 빠른 것도 이해할 수 있는 일이지만, 하필 지금 꼬리가 나온 이유를 설명하기에는 뭔가 부족하다. 정기가 충분하게 공급되고 있는 중이라 해도 뭔가 방아쇠가 될만한 이유가 필요하게 마련인데, 지금 그에게 있어 가장 큰 변화라면 역시 속성력을 손에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가장 강하게 뿜어져 나오고 있는 것은 불이고… 그 외에 다른 여러 가지 속성력도 있네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미엘은 형진의 몸을 잠시 살피더니 다시 그렇게 물었다.
“그게 말이지.”
형진은 쓴웃음을 지으며 방금 전 아틀리에에서 영약을 복용했던 일을 설명했다.
“세상에… 큰일이라도 나면 어쩌려고 그랬어요?”
어지간해서는 화를 내지 않는 미엘도 형진의 말을 듣자 발끈해 버렸다. 감당하지 못할 힘을 품었을 때 어떤 일이 생길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다른 누구보다도 환수인 그녀가 가장 잘 알고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아니… 나름 대비도 많이 했고, 여신님들도 도와주셨고.”
“그래도 너무 무모했어요.”
“하하…”
미엘의 화난 모습을 보니 처음에 무턱대고 영단을 먹으려 했던 일이 떠올라 찔끔할 수밖에 없었다. 공포와 죽음께서 중간에 끼어들지 않았으면 어찌 되었을지에 대한 것이 새삼 피부로 느껴졌다고나 할까.
“빠아 혼나?”
“어? 음… 그게. 아빠가 잘못 한 게 있어서.”
“잘모해쩌? 그래서 혼나?”
“응.”
고개를 갸웃거리며 둘을 바라보는 아기들의 모습을 보니 미엘도 더 야단 칠 마음이 안드는지 한숨을 푸욱 내쉬며 웃어버렸다.
“다음부턴 그러지 말아요. 당신은 이미 혼자가 아니니까요.”
“알았어. 미안.”
“빠아가 미안하대. 그니까 혼내지 마여.”
“푸훗. 알았어. 엄마 혼 안낼게. 됐지?”
“응. 싸우지 마.”
“안 싸워. 아유, 귀여워.”
필사적으로 둘의 사이를 중재하려고 하는 아기들의 모습에 미엘은 결국 항복 선언을 하고 말았다.
“이거 모야?”
그러다가 아기 하나가 형진의 어깨 위에 옹기종기 앉아 있는 여신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형진과 미엘은 화들짝 놀랐다.
“이거가 아니라 여신님이셔.”
“죄송합니다. 철모르는 아이들이라.”
“괜찮아요. 신경 쓰지 마세요.”
여신들은 아기들에게 하나하나 다시 한 번 축복을 내려 주었다. 아기들은 여신들이 축복을 내려줄 때 몸 안으로 스며드는 신성한 기운이 마음에 드는지 이내 함박웃음을 짓기 시작한다.
“뭔가… 정신이 없네.”
“하하…”
“일단 갈까.”
“네.”
갑작스럽게 아기들에게 꼬리가 나는 바람에 형진이 영단을 섭취한 일은 식구들의 관심에서 완전히 밀려나고 말았다.
“언니 이름은 카트린이야. 카트린.”
“까뜨린?”
“꺄아! 너무 귀여워!”
원래도 귀여웠지만 고개를 갸웃거리며 상대의 이름을 따라하는 모습은 또 얼마나 귀여운지, 식구들은 혀 짧은 목소리로 자신의 이름이 아기의 입에서 흘러나올 때마다 몸을 바둥거리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
그 중에서도 특히 부러운 기색이 역력한 것은 바로 하마란이다. 원래 귀여운 것에는 별로 흥미를 보이지 않는 그녀였지만, 깨물어 주고 싶을 정도로 귀여운 아이들의 모습은 역시 견디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말없이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는 그녀의 모습에 오귀스트는 살짝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녀가 어떤 결심을 한 것인지 어렵지 않게 알아채 버린 탓이다.
“나도… 연애나 해볼까.”
“…”
현실의 여자 따위에는 관심도 없다는 듯한 태도를 견지하던 할마저도 이런 말을 중얼거릴 정도로 아기들의 귀여움은 가히 하늘을 찌를 기세였다.
하지만 모든 이들이 그렇게 아기들에게만 집중하고 이는 것은 아니었다.
요안나는 아기들에게 둘러싸인 그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몸이 달아올라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그에게 끌리는 자신을 주체할 수가 없어서 결국 잠자는 숲속의 공주처럼 가만히 누워있는 그의 본신을 덮쳤던 그녀였지만, 이제는 단순히 그의 존재를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달아오르는 몸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가 되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한 명. 요안나와 비슷한 증세를 겪고 있는 인물이 있었다.
이제는 거의 미엘의 동족이라는 사실조차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진 채, 여신의 탈것으로서 살아가고 있던 또 다른 흑요호. 파괴와 재생의 추종자이기도 한, 하엘이라는 이름의 존재 역시 갑자기 미친 듯이 끓어오르는 정욕에 당황하고 있었다.
‘뭐지? 왜 이래? 이럴 리가 없는데?’
비록 작은 흑요호의 상태이긴 했어도, 여러 가지 요인을 통해 발정을 억누르고 있던 하엘로서는 그야말로 날벼락이 아닐 수 없었다.
틀림없다. 몸이 후끈 달아오르는 이 느낌은 틀림없이 발정이 시작되었음을 의미하고 있었다. 어째서? 왜 느닷없이 이런 일이?
하지만 지금의 하엘은 말 한 마디조차 자유롭게 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태. 그저 끙끙거리며 자꾸만 형진에게로 향하려는 시선을 억지로 돌리는 것이 당장 그녀가 할 수 있는 행동의 전부였다.
지옥이다.
그냥도 감당하기 어려운 발정기가, 하필 이런 상태에서 발동해버리다니. 게다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하필 저 남자라니!
하엘은 이를 악물고 자신의 몸 안에서 피어오르는 불꽃을 어떻게든 참아보려 애썼다. 하지만 그렇게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끙끙거리고 있어도, 막상 그 당사자는 자신의 품안에 안겨 있는 아기들에게만 신경을 쓰고 있었다. 아니, 그만이 아니라 다른 어떤 사람도 지금의 하엘에게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바로 그때.
하엘의 눈앞에 작은 그림자 둘이 나타났다.
“마야나. 얘… 상태가 이상한 거 같지 않아?”
“로트나가 보기에도 그래?”
“어디 아픈 건가?”
그들은 바로 허세와 망상의 추종자였다가 보호와 균형에게로 전향한 비공식 팬클럽 1,2호인 몽마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