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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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파워업
일단 형진은 인벤토리에서 옷을 꺼내어 아바타에게 입혔다. 물론 이렇게 표현은 해도, 실제 모습은 조금 양상이 다르다. 본신은 가만히 의자에 앉아 있는 가운데, 아바타가 스스로 인벤토리에서 옷을 꺼내 입는 식이기 때문이다.
뭔가 자신이 스스로 옷을 입고 있는데 또다른 자신이 그것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식의, 느껴지는 이질감은 없지만 그렇게 이질감이 없는 상황이 뭔가 어색한 그런 상황이랄까.
부욱!
바로 그때였다. 문득 입으려던 바지가 요란한 소리와 함께 찢어져 버리고 만다. 아무래도 잠시 딴 생각을 하면서 집중력이 흐트러진 탓인가보다.
“이거… 힘이 너무 좋은 것 같은데요.”
형진이 쓴웃음을 지은 채 찢어진 바지를 보며 그렇게 말하자 공포와 죽음은 피식 웃어 버렸다.
[아바타 자체가 본신의 힘을 증폭시켜 사용하는 것이니 어쩔 수 없다. 필요하다면 증폭률을 임의로 조절할 수는 있지만, 나중을 생각하면 현재의 상태에 익숙해지는 것이 낫겠지.] “그렇군요.”일리가 있다. 증폭률을 조절하면 간단하지만, 그래서야 나중에 아바타의 증폭된 힘이 필요한 시점에서 적응이 안되어 손발이 꼬이는 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으니 차라리 지금 좀 불편하더라도 미리미리 적응을 해두는 편이 좋다.
“그런데… 이건 인형술을 강화시키는 거랑은 좀 다르지 않나요?”
조심조심 옷을 입는 것부터 시작하던 형진은 또다시 그런 생각을 떠올렸다. 아바타를 다시 활용할 수 있게 된 것은 좋은 일이지만, 따지고 보면 본래 자신이 사용하던 아바타를 되찾은 것에 불과할 뿐 인형술을 강화시키는 것과는 무관하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하지만 공포와 죽음은 이렇게 답했다.
[다르지 않다.] “어떤 면에서?”[그건 직접 시험해 보면 알 수 있다. 그런데 은근슬쩍 말꼬리를 짤라 먹는 건 좀 관두지?] “하하, 죄송합니다.”
형진은 얼른 사과를 한 다음 인벤토리에 담겨져 있던 목각 인형들을 꺼내 놓았다.
처음 만들었을 때보다는 많은 면에서 개량이 되긴 했지만, 역시 아바타에 비하면 조악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애초에 사실상 완전한 또 하나의 자신과 다를바 없는 아바타와 나무를 깎아 만든 목각 인형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리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인형을 꺼내 놓고 아쉬운 느낌에 입맛을 다시던 형진은 인형술을 발동해 조작을 해보았다.
“오?”
곧바로 형진은 다르지 않다는 공포와 죽음의 말을 이해했다. 받아들일 수 있는 감각이 훨씬 제한되고, 취할 수 있는 동작이나 발휘할 수 있는 능력에 제한이 가해지는 것은 분명하지만 움직이는 방식 자체는 어느 새인가 동일한 형태로 변화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전의 인형술이 이식된 사념체를 기반으로 명령에 따라 정해진 형태를 취하는 방식이었다면, 진화된 인형술은 아바타를 움직이는 것처럼 개별적인 컨트롤이 가능한 방식이었다.
“설마… 아바타의 조작 자체가 인형술에 기반을 둔 것이었습니까?”
형진의 말에 공포와 죽음은 바로 긍정했다.
[맞아. 신이 아닌 이상, 흑요호처럼 태생 자체가 그런 생물이 아닌 이상, 보통의 인간이 본신과 아바타를 동시에 조작하려면 그런 편법을 쓸 수밖에 없는 일이지.] “아하…”형진은 삐걱거리며 움직이는 목각인형을 조작해 보다가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면, 제가 활용할 수 있는 아바타나 인형의 숫자는 어느 정도까지 입니까.”
[글쎄. 그건 너에게 달린 일이 아닐까.]
“저에게 달렸다고요?”
[너에게 이식된 핵은 그 자체로 성장이 가능하다. 다시 말해 많이 활용하고 쓰다보면 아바타나 인형을 여러 개 동시에 불러놓고 쓰는 것도 가능하다는 얘기지. 다만 아바타에 비해 인형은 조작이 단순한 편이니까, 좀 더 많은 수를 불러들일 수 있을 거다.]
공포와 죽음의 설명에 형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인형은 제가 만들면 된다 쳐도, 아바타는 그럼 어떻게 늘립니까.”
[공헌도 상점에 전용 항목을 만들어 두겠다. 사서 쓰렴.]
“네?”
[원래 아바타는 신만이 만들 수 있는 거야. 그것도 일종의 권능에 속하는 영역이니까. 넌 알려줘도 못 만들어.]
어쩐지 자존심이 상한다.
“그래도 혹시 모르잖습니까. 저 이래봬도 세공 장인이거든요?”
[글쎄. 달인쯤 되면 비슷하게 흉내는 낼 수 있지 않을까. 그래봐야 완벽한 아바타는 아니겠지만.]
“끙…”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설마 공헌도를 회수할 생각으로 아바타 쓰는 법을 알려준 건 아닐까. 아니, 공포와 죽음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것 같다. 뭐라해도 빨대를 꼽는 것에 대해서는 자신보다도 한 수 위의 수완을 가진 것이 바로 공포와 죽음 아닌가.
그러나 공포와 죽음은 뻔히 그런 형진의 생각을 읽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배짱을 부렸다.
[싫으면 말고.] “아뇨. 싫다뇨. 하하. 어디…”형진은 얼른 공헌도 상점을 열어서 아바타를 찾아보았다.
“백만…”
가격을 보니 공헌도 백만이라고 당당하게 기재되어 있었다.
“좀… 비싼 거 같습니다만.”
과거 전국 시대 일본의 다이묘들이 성 하나 가격의 찻잔을 사서 쓰네 어쩌네 했던 것이 기억난다. 물론 아바타는 그런 사치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효용성을 지니고 있지만, 그렇다 해도 백만이면 왕성 라이언하트를 하나 더 지을 수 있는 공헌도다.
하지만 공포와 죽음의 반응은 너무나도 일관적이었다.
젠장. 이게 바로 독과점의 폐해라는 건가. 이제와서 자본주의가 그리워질 줄이야. 투덜대며 아바타를 하나 더 구매하려던 형진은 문득 번개처럼 한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깨달았다.
“음? 잠깐만요.”
[뭐가?]
“아바타라는 거… 신만이 만들 수 있다고 하셨죠?”
[그랬지.]
“그러면, 보호와 균형 같은 다른 분들도 만들 수 있다는 얘기 아닌가요?”
[…]
순간 공포와 죽음이 침묵을 지켰다. 하지만 형진은 그 침묵이 의미하는 바를 바로 알아차렸다. 자신의 추측이 옳았다. 꼬맹이 여신들이라면 좀 더 저렴한 가격으로 아바타를 만들어 줄 것이다. 그냥 만들어주는 것도 아니고, 기쁘게 헤헤 웃으며 그의 부탁을 들어줄 것이다!
“크크크… 크크크크…”
[자, 잠깐. 진정해.]
“네? 뭐라고요? 안 들리는데요.”
[깎아주마.]
“에이… 꼬맹이 여신님들이라면 그냥 말만 잘해도 만들어 주실지도 모르는데…”
싫다고 해도 계약서 상에 기재된 바에 따르면 형진은 얼마든지 자신의 보수를 임의로 책정해서 요구할 권리가 있다. 그리고 꼬맹이 여신들은 그것이 착취라는 생각조차 떠올리지 않겠지.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공포와 죽음은 그런 형진의 생각을 읽었는지 이내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벼룩의 간을 빼먹어라. 걔들이 공헌도가 어딨다고 그걸 공짜로 만들어 줘?] “아… 그건 좀 그런가. 그럼 원가만 내는 식으로 하면 되지 않을까요.”[끙…]
잠시 앓는 소리를 내던 공포와 죽음은 결국 항복을 선언하고 말았다.
[지독한 놈.] “하핫. 아껴야 잘 살죠.”[안 아껴도 어차피 남아돌아서 주체를 못하면서.] “에이… 저보다 부자시면서.”
[들어오는 만큼 쓸데도 많아. 너처럼 남아도는 게 아니란 말이다.] “아, 그런가요.”
투덜대는 공포와 죽음의 말을 귓등으로 흘려들으며 형진은 공헌도 백만을 들여 아바타를 열 개나 추가로 구매했다. 아무리 그래도 열 배로 뻥튀기를 시키시다니. 너무 한 거 아닙니까.
[쳇.] “킥킥.”투덜거리는 공포와 죽음의 목소리에 웃으며 형진은 아바타를 하나 꺼내어 보았다.
“흠… 이건…”
작동하기 전의 아바타는 그냥 뿌연 안개 같은 느낌을 지닌 사람 형상의 무언가였다.
“이거… 어떻게 쓰는 거죠?”
[꼬맹이 여신님께 여쭈어 보지 그러냐.]
“에이… 삐지신 거에요?”
[쳇. 손을 대봐.]
“넵.”
투덜대면서 알려줄 건 다 알려주는 공포와 죽음의 반응에 형진은 다시금 킥킥 웃으며 희뿌연 사람 형상의 아바타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그러자 아바타는 이내 옅은 빛을 뿜어내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그의 모습으로 바뀌어 간다.
“으음…”
하지만 다음 순간, 형진은 현기증을 느끼며 감각에 혼란이 오는 것을 느껴야만 했다.
“윽…”
안 되겠다 싶어서 급히 새로 만든 아바타를 회수하자 그제서야 어지러움증이 멈춘다.
“이거… 한계 용량을 넘어서 그런 건가요?”
[맞아.]
“음… 아쉽네요. 아바타도 따로 성장을 시켜야 하니까 미리미리 한꺼번에 불러내서 써보려고 했더니.”
[이전의 아바타는 넣어두고 새것을 꺼내 수련 시키면 되잖아.]
“역시 그 방법 뿐인가요.”
형진은 입맛을 쩍쩍 다시며 첫 번째 아바타를 넣어두고 새 아바타를 꺼내 매크로 체조를 시켰다. 자신이 직접 움직이고 있는 것이긴 해도, 펄쩍 펄쩍 뛰며 매크로 체조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는 건 어쩐지 꽤 민망한 일이다.
아니, 단순히 행동 이전에 옷을 안 입힌 것이 문제 아닐까. 만약 다른 누군가가 지금의 자신을 봤다면 아마도 변태의 새로운 경지에 들어섰다는 생각을 떠올릴 것 같다.
형진은 얼른 다시 인벤토리에서 옷을 꺼내 입히는 일부터 시작했다.
“아, 마지막으로 질문 하나만 더요.”
[뭐냐.]
“그 핵이라는 걸 만들어 주고, 인형술도 가르쳐 주면 다른 사람도 이런 식으로 아바타를 활용할 수 있는 건가요?”
이런 질문을 떠올린 것은 바로 유아 때문이다. 임신 때문에 바깥 출입을 삼가고 있긴 하지만 그렇게 집안에만 처박혀 있으면 우울증 같은 것에 걸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고나 할까. 물론 유안의 굵은 신경줄을 생각해 보면 집안에서도 할 거 다 하면서 사제들과 즐겁게 지낼 것 같긴 하지만, 첫 임신이니 무작정 안심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다.
[무슨 생각인지는 알겠다만, 무리다.] “어째서요?”[…]
공포와 죽음은 다시 말문을 닫았다. 하지만 이건 아까의 침묵과는 또 다르다. 형진은 어쩐지 자신이 뭔가 건드려서는 안될 영역을 건드린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을 떠올렸다. 파편이라는 것과 혹시 관련이 있는 것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
“그럼 질문을 바꾸죠. 요안나는 가능한 겁니까?”
어찌 보면 그건 노골적으로 파편이라는 것이 본신과 아바타를 동시에 다루는 일의 전제가 아니냐고 묻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공포와 죽음은 잠시 머뭇거리는 듯 하다가 이렇게 답했다.
[가능하다.] “흠…”생각 같아서는 파편이 도대체 무엇이냐고 묻고 싶었지만, 지금 분위기를 봐서는 물어도 굳게 입을 닫을 것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꼭 공포와 죽음이 아니더라도 답할 대상이 없는 건 아니다. 보호와 균형이라든가, 꽃과 바람이라든가, 황혼과 망각이라든가. 이 왕성에는 상시 거주하는 신만 셋이나 되기 때문이다.
[후…]그런 형진의 생각을 읽은 것인지, 공포와 죽음은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너란 녀석은 정말 어디로 튈지 모르겠구나.] “톡톡 튀는 매력이 있다는 말씀이십니까?”[말이나 못하면.]
공포와 죽음은 피식 웃더니 다시 이렇게 말했다.
[의외랄 것도 없다. 따지고 보면 황혼과 망각이 그렇게 방구석에 처박힌 생활을 했던 것도 단순히 자신의 힘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만약 그것을 주체하지 못했을 때 자신에게 닥쳐올 상황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니까.] “…”
형진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닫았다. 어쩐지 생각보다 일이 훨씬 더 심각한 내용일지도 모른다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아직 때가 이르다. 넌 아직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까.] “때가 아니라…”[이것만은 약속하마. 때가 되면, 나는 모든 것을 하나도 숨김없이 너에게 말해 줄 것이다. 아니 네가 그러한 자격을 갖추게 된다면, 내가 숨기고자 해도 그것 자체가 불가능해지겠지.]
뭔가 의미심장한 말. 형진은 그 말을 듣고 잠시 뭔가를 생각하다가 이렇게 물었다.
“그럼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묻겠습니다.”
[아까도 마지막이라고 하지 않았나?]
“하하… 기억하고 계셨습니까. 크흠…”
[그래서, 뭔데?]
형진은 가만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이렇게 물었다.
“공포와 죽음께서 저를 특히 이렇게 항상 지켜보시는 이유는, 제가 위험한 존재이기 때문입니까?”
[…]
공포와 죽음은 그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침묵은 이미 대답을 한 것이나 다름 없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적어도 형진은 그것을 확실하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