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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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페스타
미칠 듯한 요리 머신의 폭주는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겨우 멈추었다. 형진 자신도 이렇게 몰두할 수 있을 줄은 미처 몰랐기 때문에, 그 모든 일이 끝났을 때 거두어들인 성과를 보고는 눈이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었다.
“이상한데. 내가 좀 열심히 만들긴 했지만 이 정도로 올라갈 리가 없는데?”
“네?”
“아, 아니야. 신경 쓰지마.”
이미 한 번 게임에서 가봤던 길이라, 오늘 만든 요리의 양으로 어느 정도의 경험치와 레벨을 올릴 수 있을지는 이미 대충 가늠하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요리를 마치고 보니 그것보다 거의 두 배는 더 많은 경험치를 얻은 것으로 보인다.
도대체 이게 어찌 된 일일까.
이건 형진 자신도 모르는 일이었지만, 이 세계가 게임과 다른 점은 발효처럼 시간이 걸리는 요리 같은 패널티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중에도 특히 다른 점 하나가 바로 평가의 개념이다.
엘리시온에서는 요리를 만들어내면 그것으로 끝이다. 그것을 팔아먹든, 인벤토리에 쟁여놓든, 그냥 폐기해 버리든 추가로 경험치를 얻는다거나 하는 시스템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 세계에서는 다르다. 단순히 요리를 만들기만 하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먹은 사람이 어떤 느낌을 받고 어떤 평가를 내리는지에 따라 가산점이 주어진다. 즉, 먹지도 않을 음식을 미친 듯이 만들기만 하는 것보다, 정성들여 만든 음식으로 한 사람에게 큰 감동을 줄 수 있다면 그것이 오히려 더 큰 경험치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신전에서 기르고 있는 아이들은 요리 스킬을 올리는데 있어 무엇보다 좋은 경험치의 원천이 될 수 있었다. 돌조각이나 스티로폼 조각 같은 빵도 감사히 먹는 아이들에게 형진의 현란한 기교로 만들어진 음식을 먹인 시점에서 이미 폭렙은 기정사실화되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걸신들린 아이들도 하루에 먹을 수 있는 양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다시 사제들이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누어주자, 이 음식들은 신전에서 제공된 여신의 은혜라는 식의 포장이 되면서 사람들에게 일반적으로 접할 수 있는 음식보다 훨씬 고급으로 인식이 되었고, 이것은 다시 한 번 고평가의 원천이 되었다.
형진은 이런 식의 선순환 구조까지는 미처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집중력과 지구력 외에 다른 도핑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 정도로 많은 경험치를 얻을 수 있었던 이유가, 분명 신전에 음식을 제공한 것과 무관하지 않으리라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었다.
“흐흐… 이 속도라면…”
미처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형진의 요리 등급은 이미 숙련 단계에 접어들어 있었다. 각 등급 별로 필요한 경험치의 양이 대폭 늘어나긴 하지만, 이 속도라면 못해도 이번 주 안에는 충분히 장인을 찍을 수 있을 것 같다. 아니, 이번 주가 다 뭔가. 고작 한나절 만에 숙련 등급이라면, 각 등급별로 경험치가 배씩 들어난다고 계산하더라도 사나흘이면 충분히 가능하다.
대박! 대박이다!
“자, 오늘은 수고했다. 일단 저녁부터 먹고 푹 쉬도록 하자. 내일도 힘내야 할 것 같으니.”
“네?”
유아는 식겁했다. 설마 오늘 같은 짓을 내일도 또 하겠다고 하는 건가, 지금 이 남자는?
“왜 그런 눈으로 봐?”
“아니… 그게… 아무리 그래도 그건 너무 무리한 거 아닌가 싶어서. 돈이라든가, 여러모로…”
무리는 무슨. 물론 돈을 좀 많이 쓰긴 했지만 신전에서 보내준 돈을 계산하니 재료비가 두 배로 불어서 돌아왔다.
원래 식당 같은 곳에서 음식값을 정할 때 재료비의 세 배 정도로 책정한다. 여기서 나머지 인건비나 건물 임대료 등 제비용을 제하고 난 것이 가게의 수입이 되는데, 미끼 상품 같은 것은 재료비의 비율이 50퍼센트에서 70퍼센트 정도가 되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형진이 신전에 보낸 음식들은 앞으로의 사업을 위한 미끼 상품 같은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게다가 제대로 된 상품도 아니고, 숙련도를 올리기 위한 연습용 요리들로 그렇게 수익을 낸 것이니 형진으로서는 그야말로 길 가다 돈 주운 셈이나 다름없다. 무리는커녕 전부 순수익으로 잡아도 문제가 없는 것이다.
“괜찮아. 괜찮아. 어차피 신전 애들이 남도 아닌데, 그 정도야 뭐. 아주 이번 주 내내 배터지게 먹여 줄 생각이니까.”
“…”
다른 사람이 이런 얘기를 했다면 그냥 농담이나 과장된 비유라고 생각하고 넘어갔으리라. 하지만 이제는 유아도 안다. 이 사람이 이런 식으로 말을 했다면, 정말로 애들의 배를 터뜨려 버릴 기세로 음식을 만들어댈 것이라는 사실을.
“그, 그래도 좀 적당히 조절하는 편이.”
약간의 두려움마저 담긴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자, 형진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웃었다.
“글쎄. 그건 그때 봐서 결정할 일이고. 일단 우리도 저녁이나 먹자. 하루 종일 요리를 만드느라 정신없었는데, 정작 제대로 먹은 건 없네.”
“그러게요.”
둘은 만들어진 요리를 적당히 식탁에 차려놓고는 식사에 들어갔다.
“어? 어? 허으어어엇!”
거참 리액션 한번 거창하다.
점심 때 먹었던 타코 같은 것을 떠올리고 음식을 입에 넣었던 유아는 갑자기 밀려드는 감동의 회오리에 놀라며 몸을 떨더니 이내 꽃밭 속을 노니는 듯한 리액션을 선보인다.
역시나 하는 표정으로 형진은 씩 웃었다. 숙련 단계의 음식을 만들어 놓고 저 반응을 보지 못하면 뭔가 섭섭한 느낌 아니겠는가. 뭔가 오늘 하루 노력한 것에 대한 결과를 그런 식으로 확인하는 느낌이라 제법 흐믓한 기분마저 든다.
하지만 이게 전부가 아니다. 아니, 이제 겨우 시작이다. 이번 주 안으로 저 리액션은 별빛 속을 떠도는 듯한 모습으로 바뀌고, 또한 지금까지 본 적이 없었던 장인 등급의 리액션으로 변화할 것이다.
“어때. 먹을만 해?”
“어, 어떻게 된 거에요?”
놀라서 어쩔 줄 몰라하는 유아를 향해 형진은 씩 웃으며 대답했다.
“어떻게 되긴. 열심히 만들었으니 그만큼 실력이 좋아진 거지. 조금만 기다려봐. 이번 주 안으로 이제껏 경험해 보지 못한 맛의 비경을 선보여줄 테니까.”
“…”
유아는 자신도 모르게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이것보다 더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니. 도대체 그게 얼마나 대단한 맛일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만드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배가 부르다고 느끼고 있었던 유아였지만, 숙련 단계의 실력으로 만들어진 만찬은 결국 그녀를 또 한 번 고뇌의 나락으로 밀어 떨어뜨려 버렸다.
“자, 할 일은 알고 있겠지.”
“네에…”
식사가 끝나자 유아는 어김없이 저택 뒤의 물통을 채우는 일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요리를 하려면 그만큼 많은 물이 필요하고, 먹은 것이 전부 살로 돌아가는 비극을 막기 위해서는 조금 고될 정도로 몸을 움직여야만 하니까. 이대로라면 이브닝드레스는커녕 메이드복도 입기 어려운 처지가 될 것이다.
문득 그런 상상이 떠오른다. 마침내 형진과 서로 마음을 확인하고 식을 치르기 위해 웨딩드레스를 맞추러 갔는데,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지금보다 두 배는 옆으로 퍼져 있는 그런 상상.
“그건 안 돼!”
“뭐?”
“아,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하하하하…”
“…”
유아는 누가 봐도 수상하다는 느낌이 팍팍 올 정도로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얼버무리고는 열심히 물 긷기를 시작했다.
형진은 그런 유아의 모습에 피식 웃음을 짓고는 수련복으로 갈아입고 지하로 내려가 마찬가지로 수련을 시작했다.
“후아…”
오늘은 매크로 수련에 이어 은신과 잠행의 수련 역시 병행한다. 영문은 모르겠지만 생각보다 요리 스킬이 더 잘 오르고 있으니 당장은 물들어 올 때 노 젓는 느낌으로 최대한 숙련도를 쌓아야겠지만, 적당히 때를 봐서 이곳의 지부장인 기젤에게 전투 관련 스킬도 배워둘 필요가 있다. 아무리 집행자의 임무 수행이 자유롭다고는 해도, 만약의 사태라는 건 언제든 벌어질 수 있으니 그에 대한 대비를 해둘 필요가 있다.
수련을 끝내고 나오자 여전히 물을 긷고 있는 유아의 모습이 달빛 아래 드러난다. 그래도 어제는 시키니까 한다는 느낌이 좀 남아 있었는데, 오늘은 어찌된 영문인지 아주 열의가 펄펄 넘쳐흐른다. 또 무슨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는 건가 싶어서 형진은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어버리고 말았다.
“빨래 주세요.”
“빨래?”
“네! 내일은 또 바쁠 테니까, 지금 아예 해버리려고요. 어서요!”
“…”
물 긷기가 끝나자 유아는 형진에게 들이닥쳐서 빨래거리를 요구했다. 지금처럼 먹어대는 상태에서 현재의 몸매를 유지하자면 단순히 물 긷기 한 번 빡세게 하는 정도로는 아무래도 부족하다는 판단을 스스로 내린 것이다.
어차피 그렇지 않아도 빨래거리가 슬슬 쌓여가기 시작한 참이라 형진은 자신의 일을 찾아서 하는 참 기특한 메이드라는 생각을 떠올리며 원하는 대로 하도록 두었다.
빨래 거리를 넘기고, 요리하면서 미리 데워둔 따뜻한 물로 몸을 씻은 뒤 침대에 눕자 몸이 다 가뿐한 느낌이다.
“그럼 수고해라.”
아래층에서 열심히 빨래를 하고 있는 유아에게, 그렇게 혼잣말처럼 한 마디 건네고 잠에 들기 위해 눈을 감는다.
하지만 그렇게 눈을 감고 잠이 막 들랑말랑 할 즈음, 갑자기 형진의 감각을 강타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긴급 사항! 그리칸 지부 인근에 페스타 발생!] [현 시간부로 그리칸 지부에 속한 집행자들 가운데 특별한 사유가 없는 자는, 지금 즉시 집결지로 모여 지부장에게 신고할 것!] [페스타 상황을 해결하는데 공헌한 집행자에게는 특별한 보상이 지급됩니다.]“응?”
갑작스럽게 감각을 교란시키는 그 강렬한 메시지에 형진은 자신도 모르게 몽롱하던 정신이 번쩍 깨어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고 말았다.
“페스타?”
파스타를 말하는 것은 아닐 테고, 페스타라고 하면 축제나 뭐 그런 뜻의 말을 뜻하는 것 아닌가? 그리칸 인근에서 페스타 상황이 발생했다는 건 또 무슨 소린지.
어쨌든 긴급 상황이라고 했으니 일단 급히 몸을 일으키고는 옷을 갖추어 입고, 장비를 챙긴다. 장비라고 해봐야 당장 가지고 있는 건 광폭한 숲의 주인을 죽이고 얻었던 멧돼지의 귀걸이와 사냥개 코장식, 그리고 무기로 쓸 단검 정도가 고작이긴 하지만 말이다.
옷을 챙겨 입은 다음, 코장식과 귀걸이를 하고 목토시로 얼굴을 반쯤 가린 형진은 곧바로 은신으로 모습을 감춘 뒤, 아래층에서 한창 빨래삼매경에 빠져 있는 유아가 눈치 채지 못하도록 잠행으로 저택을 빠져 나왔다. 그리고 이전에 전직 퀘스트 당시 그랬던 것처럼 하늘에 둥실 떠서 아래를 콕콕 찌르고 있는 화살표가 가리키는 집결지를 향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먼저 가요.”
“…”
그렇게 거리를 질주하고 있는데, 문득 작은 몸집의 누군가가 형진을 스쳐 지나가며 그렇게 말을 건넨다. 흘깃 드러난 모습을 바라보니, 역시나 이전에 자신의 집에 배달 왔던 그 소년이었다.
쳇. 잘난 척 하기는.
일부러 존재감을 드러내며 그렇게 말을 건넨 이유야 뻔하다. 모처럼 전입 온 신입인 그 앞에서 자신의 실력을 자랑 하고 싶은 것이겠지. 그 나이 또래라면 가지고 있을 법한 호승심과 자기과시, 그리고 유치함이 살짝 뒤섞인 그런 행동인 셈이다.
그런 작은 도발에 일일이 발끈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그래도 살짝 기분이 나쁜 건 사실이라 형진은 툴툴거리며 어쨌든 집결지를 향해 최선을 다해 달려갔다.
“헉헉…”
집결지에는 이미 다섯 명 정도의 사람이 모여 있었고, 그들 중에는 여전히 멋진 정장 차림의 기젤 선트가 가운데 자리 잡고 있었다.
“진님이 마지막인 듯 하군요. 그럼 간략하게 상황을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기젤 선트는 급히 뛰어오느라 숨이 턱까지 차있는 진을 흘깃 보고는 현재 벌어진 상황에 대해 언급했다.
“현재 확인된 바에 따르면, 모험가 가운데 한 무리가 고대 유적을 탐사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 것으로 보입니다. 추정 등급은 C. 하지만 내부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힘들기 때문에 이 등급은 상향 조치될 수 있습니다.”
다른 집행자들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모양이었지만, 초짜인 형진은 좀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해다.
“저, 페스타 상황이란 것이 무엇입니까.”
“아… 진님이 집행자가 된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깜빡 했군요. 죄송합니다. 다시 설명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기젤 선트는 정중한 태도로 진에게 사과하고는 다시 이렇게 말했다.
“페스타란, 온전한 죽음으로의 인도와 손길을 거부하고 거짓된 불멸을 선택한 망자들이 출몰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풀어 말하자면 망자의 제전, 그것을 우리들 집행자는 페스타라고 부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