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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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페스타
현재의 상황을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던전을 탐사하러 들어갔던 모험자들이 쓸 데 없는 것을 건드리는 바람에 비정상적으로 언데드가 확산되는 사태가 발생했다는 소리다.
형진은 살짝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자면 언데드는 엄연히 공포와 죽음에 속한 권속 정도가 어울리지 않을까 싶었는데, 지금 상황을 보니 권속은커녕 감히 동류로 취급되는 것조차 수치라는 듯한 감정이 집행자들에게 서려 있다.
하지만 이건 집행자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다시 되새겨 보면 간단하게 이해될 수 있는 부분이다.
집행자는 올바른 죽음으로 인도하는 자.
이것은 생각하기에 따라 저승사자 같은 역할로 이해될 수도 있다. 그런 집행자들에게 있어 온전한 죽음을 거부하고 추한 모습으로 지상을 더럽히는 망자들은 공포와 죽음에 반기를 든 반역자나 다름없는 존재들이라 할 수 있다.
일부러 긴급 상황까지 발령해서 집행자들을 모아 이렇게 신속하게 처리를 하고자 하는 데는 그런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대충 돌아가는 상황을 이해한 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자니, 문득 기젤 선트가 다시 말했다.
“아직 하급 성도에 불과한 진님은 이번 임무를 굳이 의무적으로 수행해야할 필요가 없습니다. 원하신다면 열외 하셔도 좋습니다.”
그 말에 다른 집행자들의 시선이 일제히 형진에게로 향한다.
지부장인 기젤 선트 외에 이 자리에 모인 집행자들은 진을 제외하고 모두 네 명이다. 모두들 모자나 두건 등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체구나 몸집으로 대충 어떤 인물인지는 파악할 수 있었다.
형진을 향해 빙글빙글 웃고 있는 소년이 하나, 검과 방패를 등에 메고 중갑으로 무장한 건장한 체구의 남자가 하나, 날렵한 밤고양이 같은 느낌의 검은 옷으로 몸을 감싼 여자가 하나, 두건 달린 망토로 몸을 감싸고 마법사용의 물품으로 보이는 완드를 쥐고 있는 성별 확인이 어려운 인물이 하나. 그리고 마지막으로 외알 안경을 끼고 카이저수염을 멋들어지게 기른 신사차림의 지부장 기젤 선트까지 합해서 모두 다섯 명이다.
드러난 외모만 봐도 예상외로 제법 균형 잡힌 파티 구성임을 추측할 수 있다. 하기야 집행자라고 해서 죄다 단검 들고 뒤통수만 노리는 그런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니란 건 이전에 아란을 통해서도 확인한 바가 있다.
“많이 위험한가요?”
“그건 들어가 봐야 알겠습니다만, 지금 모인 면면이라면 큰 문제는 없을 거라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견식도 해볼겸 함께 해보고 싶습니다. 문제가 생길 것 같다면, 바로 빠지도록 하겠습니다.”
형진의 말에 기젤 선트는 바로 결정을 내리지 않고 다른 이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실질적으로 임무를 수행해야 할 이들에게 의견을 묻기로 한 것이다.
“상관없지 않을까? 낙인을 가지고 있다면 최소한 시체들의 모습에 놀래서 패닉을 일으키진 않을테니까.”
검과 방패를 등에 맨 중갑의 사내는 대수롭지 않은 듯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고,
“난 상관없어요.”
검은 옷으로 몸을 감싼 날렵한 몸매의 여자는 조금 차가운 목소리로 그렇게 대답했다.
“저도 괜찮아요. C급 정도라면야.”
소년이 씩 웃으며 그리 말하자,
“저, 저도… 다른 분들이 괜찮으시다면…”
망토를 뒤집어 쓴 이 역시 앳된 목소리로 그렇게 작게 대답했다.
모두의 의견을 들은 기젤 선트는 다시 형진을 돌아보며 말했다.
“딱히 반대 의견이 없으니 이번 임무에는 진님도 함께 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다만 문제의 소지가 생길 경우, 책임은 자신의 몫입니다. 진님도 집행자라면 이것이 무슨 의미인지 아시겠지요?”
“물론입니다.”
“좋습니다. 그럼 바로 출발하도록 하지요.”
기젤 선트의 말이 떨어지자, 곧바로 머리 위에 나타나 있던 화살표가 멀리 산기슭 너머로 옮겨간다. 바로 이번 사건이 벌어진 장소다.
“저, 잠시만요.”
급히 이동을 시작하려던 사람들은 갑자기 그렇게 모두를 불러 세우는 진의 목소리에 반사적으로 우뚝 멈춰서며 돌아보았다.
“무슨 일입니까.”
“이걸 드십시오.”
“…”
진은 인벤토리에 유아 몰래 쟁여뒀던 음식들을 그들에게 건넸다.
“아저씨. 지금 신참례 할 틈 없거든요? 바로 움직여야 한다고요.”
소년이 그렇게 투덜대며 말하자, 형진은 씩 웃으며 대답했다.
“닥치고 먹어. 그럼 왜 먹으라고 그랬는지 알 테니까.”
“…”
소년은 얼굴을 찌푸렸지만, 이내 손에 들린 야채 튀김을 와삭 깨물었다.
그러자, 눈앞에 나타나는 메시지.
“어?”
“이건?”
뭔가 하고 튀김을 입에 넣었던 집행자들은 놀란 표정이 되어 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음식을 섭취하는 순간 무려 세 가지나 되는 버프 효과가 그들의 신체에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생명력 회복 증가, 최대 정신력 증가, 이동 속도 증가? 이건 도대체…”
그리칸에는 실력 좋은 요리사들이 몇몇 있고, 그들 중에는 이런 식으로 버프 효과를 일으킬 수 있는 요리를 만들 수 있는 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들이 체험하는 것처럼 무려 세 가지나 되는 버프를 한 번에 불러일으킬 수 있는 요리를 만들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원래대로라면 장인 등급은 되어야 가능한 얘기니까.
조금 얼빠진 표정으로 소년이 묻자, 형진은 그거 보라는 듯이 씩 웃었다.
“별로 대단한 것도 아니야. 그럼 이동하죠.”
“…”
형진이 제공한 야채 튀김 덕분에 그들의 이동 속도는 눈부실 정도로 빨라졌다. 물론 형진은 그런 식의 이동 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기젤 선트와 중갑 사내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지만, 어쨌든 예상보다 훨씬 빠른 시간 안에 목표 지점의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놀라워요. 마법도 아닌데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한 거죠?”
망토를 뒤집어 쓴 앳된 목소리의 주인공이 흥분한 기색으로 그렇게 물어온다. 아까는 말도 더듬고 목소리도 굴을 파고 들어가 숨어서 속삭이는 것처럼 작았지만, 지금은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또렷한 소녀의 목소리로 말하고 있다.
“글쎄요. 뭐든 경지에 도달하면 아무리 사소한 것으로라도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법이지요.”
“와아아…”
그러자 중갑 사내가 넌지시 말했다.
“혹시 밤눈 좋아지는 음식도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형진은 인벤토리에서 고구마맛탕을 꺼내어 한 조각씩 돌렸다. 곧바로 야간 시야 거리 증가의 버프가 그들에게 생겨난다.
“대단해요! 요리란 거 정말 대단한 거였군요?”
꺄꺄거리며 흥분하는 꼬마 마법사 외의 다른 사람들도 역시나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기젤 선트가 눈짓을 보내자 꼬마 마법사는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진지한 모습으로 돌아가더니 임무 참가자 모두에게 적외선 시야의 버프를 걸어주었다. 여섯이나 되는 인원에게 한 방에 버프를 거는 걸 보니 생각보다 훨씬 대단한 수준의 마법사인 모양이다.
꼬마가 이 정도 마법 실력을 지녔다는 건 정말 대단한 천재이거나, 아니면 본래부터 그런 외모를 타고는 아인종이거나 둘 중 하나가 아닐까. 물론 본래의 정체를 확인하지 않는 이상 알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일행은 누가 말하지 않았음에도 곧바로 대열을 형성하여 지하로 열려 있는 동굴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가장 앞에 선 것은 날렵한 몸매의 여성, 그 뒤를 중갑 사내와 기젤 선트가 따르고, 중앙은 꼬마 마법사와 형진이 자리했으며, 일행의 후미를 지키는 것은 바로 소년이었다.
형진은 조심스럽게 일행의 뒤를 쫓으면서 사냥개의 코장식으로 현재 그들이 위치한 곳의 정보를 수집했다.
입구로부터 나 있는 흔적에 따르면, 앞서 이 동굴 안으로 들어간 모험가의 수는 모두 다섯이다. 남겨진 발자국이나 체향 등의 크기로 미루어 성별 구성은 남자 넷에 여자 하나 정도. 하지만, 기이한 것은 여자의 움직임이 모험가라고 하기엔 너무 부자연스럽다는 점이었다.
마치, 구속되어 억지로 끌려간 것 같은 모양새라고나 할까.
아무래도 이상하다는 생각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형진은 잠시 고민하다가 이 내용을 지부장 기젤에게 말했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말씀하십시오.”
“아무래도, 먼저 들어간 모험가들의 흔적이 이상합니다. 마치, 여자 하나를 납치해서 들어간 듯한…”
“…”
순간 조심스럽게 움직이던 집행자들의 발걸음이 우뚝 멈춘다.
“확실합니까?”
어떻게 알았냐는 식의 쓸데 없는 질문은 돌아오지 않았다. 대신 확실한 정보인지를 재확인할 뿐.
“확실합니다.”
형진이 확신을 담아 답하자, 집행자들은 긴장하기 시작했다.
“진님의 말대로라면, 이것은 우연한 사건이 아닙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페스타를 유도했다고 봐야겠죠.”
“제물이라니, 미친 거 아닙니까?”
제물을 통해 의도적으로 페스타 상황을 일으킨 것이라면, 출현할 수 있는 망자의 등급도 상승할 수밖에 없다. 적어도 방황하다 얻어걸린 언데드 몇 정도 해결하는 것으로 끝날 일이 아닌 것이다.
기젤 선트는 그 말들을 들으며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다시 이렇게 말했다.
“현 시간부로 상황을 B등급으로 상향합니다. 진님, 제라님과 함께 선두에 서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하겠습니다.”
너무 쉽게 자신의 말을 믿어서 형진으로서는 솔직히 좀 얼떨떨한 기분이 되었지만 두 말 없이 지부장 기젤의 제안을 받아들여 앞으로 나섰다.
“잘 부탁해요.”
“저야 말로.”
제라라는 이름으로 불린 날렵한 몸매의 여성과 형진은 남겨진 흔적을 추적하며 빠르게 동굴을 내려갔다. 정석적인 도적의 스킬들을 연마한 것으로 보이는 제라와 남겨진 냄새로 주위의 상황을 빠르게 인지할 수 있는 진의 조합은 상당히 강력해서 그들은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동굴 최하층에 진입할 수 있었다.
이제부터는 가급적 목소리가 아닌 메시지를 통해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누군가 접근하고 있습니다.]형진이 메시지를 통해 그렇게 의사를 전달하자, 모두는 일사분란하게 은신으로 모습을 숨긴다. 과연 공포와 죽음의 권능이 담긴 스킬. 순식간에 인기척은 물론이고 존재감이나 냄새와 같은 흔적마저 사라져 버린다.
다른 이들의 그와 같은 움직임에 형진 역시 은신으로 모습을 숨기고 다가오는 존재에게 신경을 집중했다. 하지만 형진이 미처 정체를 확인하기도 전에, 앞에서 섬뜩한 파육음이 들리는가 싶더니, 곧바로 메시지를 통해 제라의 의사가 전달된다.
[처리되었습니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는 조금 더 앞으로 전진 하고서야 알 수 있었다. 그곳에는 막 언데드화 되기 시작한 시체가 둘 있었는데, 사지 육신이 무언가에 찢긴 것처럼 조각나 흩어져 있었다.
죽은지 오래된 시체도 아니고, 막 언데드화 되기 시작한 사람의 몸을 이렇게 단숨에 박살낼 수 있는 기술이 뭘까. 형진은 자신의 옆에서 기척을 죽인 채 움직이고 있는 제라라는 여자를 조금 경이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고는 다시 전진을 시작했다.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자 형진의 후각에 옅은 피비린내가 느껴지기 시작한다.
[저쪽에서 피 냄새가 느껴집니다. 움직임은 없습니다.]곧바로 기젤의 지시가 이어진다.
[크루그님 확인하십시오.] [네.]후미에서 따라오던 소년이 바람처럼 움직이며 형진이 가리킨 방향으로 향하더니, 이내 빠르게 돌아와 기젤에게 보고한다.
[모험가로 보이는 사체가 있어서 처리하고 왔습니다. 죽은지는 대략 사오 분. 사인은 도검에 의한 관통상. 뒤에서 기습당한 것으로 미루어 내분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수고했습니다.]그렇다면 남은 것은 제물로 보이는 여자 외에 두 명 뿐. 그런 생각을 떠올리며 다시 움직이려 할 즈음, 동굴 속 깊숙한 곳에서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로 소름끼치는 여자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 한다.
============================ 작품 후기 ============================
작가: 쩔중에 쩔은 공쩔이라던가.
주인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