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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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나들이
잠시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던 수빈은 얼른 직각으로 허리를 굽히며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수빈은 대관식에도 참석한 적이 있기 때문에 형진이 왕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현실에서 직접 얼굴을 마주하니 느낌이 그때와는 또 완전히 다르다. 뭐랄까. 갑자기 꿈 속의 인물이 현실로 튀어나온 듯한 느낌이랄까.
“반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카트린, 너도 인사해야지.”
그제서야 매미마냥 형진에게 찰싹 달라붙어 있던 카트린이 조심스럽게 수빈과 눈을 맞춘다. 형진의 말에 슬그머니 고개를 들던 수빈은 살짝 겁먹은 초식 동물 같은 카트린의 그런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터뜨릴 뻔 했다.
“수빈 언니?”
“반가워요. 카트린.”
“안녕하세요.”
카트린은 그제서야 수빈을 바라보며 방긋 웃음을 지었다. 수빈은 물론이고, 그 모습을 지켜본 주위의 모든 사람이 절로 미소를 지어버리고 말 정도로 카트린의 귀여움은 독보적이었다.
엘리시온에서부터 나름 친했던 카트린과 그렇게 인사를 마치자, 수빈은 요안나와 서먹하게 인사를 나누고는 허둥대며 말을 이었다.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어디로 들어가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어떠신지.”
자꾸만 주위에서 쏟아지는 시선이 부담스러웠는지 수빈이 얼른 그렇게 제안을 했다. 그렇지 않아도 지하철역 입구를 지나는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럽던 참인데 형진과 카트린, 그리고 요안나까지 나타나 버리자 더 이상 감당하기가 어려워졌다. 무슨 방송 촬영이라도 하는 건가 싶었는지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기 시작한 탓이다.
“좋군요. 그런데 승희님은…”
“연락을 다시 하긴 했는데 시간이 좀 걸릴 거에요.”
“알겠습니다. 그럼 안내 부탁드립니다.”
“네.”
수빈은 허둥대며 근처의 카페로 그들을 안내했다. 형진이 만들어주는 맛있는 음식에 익숙해진 카트린이나, 미국에서 초호화 생활을 누리던 요안나로서는 그런가보다 싶은 느낌이랄까. 여전히 주위에서 흘깃거리는 시선이 쏟아지고는 있었으나 그래도 바깥에 서 있는 것보다는 나으니 다행이다.
“그런데… 어째서 이렇게 갑자기…”
아까는 미처 눈치 채지 못했지만, 수빈은 형진이나 요안나가 걸치고 있는 옷이나 소품들이 보기 드문 명품이라는 것을 어찌어찌 알아챘다. 물론 얼마나 비싼 물건인지는 알아볼 안목이 없었지만 눈대중으로라도 뭔가 범상치 않다는 것 정도는 파악했다고나 할까. 사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카페로 안내를 할 때 주위의 사람들 가운데 몇이 중얼거리는 소리를 은연중에 들었을 뿐이지만 말이다.
형진 역시 그런 수군거림을 진작에 알아들었지만 모르는 척 파르페에 정신을 팔고 있는 카트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 녀석이 아름님과 새름님의 시합을 꼭 보고 싶다고 그래서 말이죠. 오빠 체면에 안 된다고 하기도 그렇고 해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아…”
형진은 그렇게 말하고는 슬쩍 자신의 어깨 위를 가리켜 보였다.
“그리고, 여기 이렇게 여신님들도 동행을 하셨지요.”
“헉!”
카트린의 얘기까지야 그런가보다 하던 수빈이었지만, 형진의 어깨와 상의 주머니에서 고개를 쏙 내미는 여신들의 모습에는 다시 기함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저기… 그러니까…”
몰래 숨어 있는 모양새인 것 같으니 그냥 모르는 척을 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아무리 그래도 여신인데 인사를 해야 하는 건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 하고 있자니, 꽃과 바람이 손가락을 입에 가져가며 조용히 말했다.
“쉿. 우리가 여기 있는 건 비밀이에요.”
“아, 예…”
수빈은 그렇게 말하고는 입을 다물었다가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었던지 조향사 메뉴를 열어 자신이 섬기는 꽃과 바람에게만이라도 일단 인사를 건넸다.
그렇게 차가 입으로 들어가는지 주차장으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고 앉아 있는데, 문득 휴대폰을 통해 승희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지하철역에 도착했다네요. 잠시만요. 여기가 어딘지 좀 알려줘야 할 것 같아요.”
“그렇게 하십시오.”
형진에게 양해를 구한 수빈은 얼른 승희에게 메시지를 넣어 자신들이 있는 카페의 위치를 알려주었고, 조금 지나자 카페의 문이 열리더니 야구 점퍼에 스냅백을 눌러쓴 쾌활한 인상의 소녀가 그들에게 다가왔다.
“와! 진짜 오셨네요. 반갑습니다. 승희에요. 이렇게 보는 건 처음이죠?”
“반갑습니다.”
“승희 언니. 반가워요.”
“와! 카트린! 이렇게 보니까 진짜 귀엽다. 수빈 언니, 그렇지?”
“어? 응…”
수빈에 비하면 조금 호들갑스럽다고 느껴질 정도의 쾌활함이었지만, 덕분에 조금 어색했던 분위기가 많이 완화되었다.
“먼저 식사를 하고 출발하기로 하셨다고 했죠?”
“네. 그게… 하지만…”
그냥 대충 패스트푸드로 때울 생각이었던 수빈은 울상이 되었다. 카트린이야 그렇다 쳐도 저렇게 고급 정장을 차려입은 진과 요안나를 패스트푸드점에 데리고 가는 건 뭔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로 그때, 승희가 이렇게 말했다.
“저기, 진님.”
“네?”
“진님… 지금도 그 음식들 가지고 계세요?”
“아…”
수빈은 그제서야 놀란 표정을 지으며 형진을 바라보았다. 형진이라면 언제든 도핑용 음식을 잔뜩 가지고 다닐 거라는 사실을 뒤늦게서야 깨달았기 때문이다.
“물론입니다. 하지만 좀 질리지 않으신가요. 자주 먹었던 음식들이라.”
형진의 그런 대답에 승희는 얼른 고개를 붕붕 내저었다.
“아뇨! 절대로 아니에요. 게다가 저희들은 지금 몸으로는 진님의 음식을 먹어본 적이 없는 걸요. 부디! 제발! 한번만 저희들에게 기회를!”
“킥!”
승희의 호들갑스러운 말에 카트린이 웃음을 터뜨리자 형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여기서 이럴 것이 아니라 일단 움직이죠. 마침 저희들이 탈것도 준비를 한 상태니까, 타고 가면서 식사를 하면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카페를 나온 형진은 수빈과 승희를 데리고 헬기가 내렸던 호텔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수빈과 승희는 탈것을 준비했다는 말에 자동차 같은 걸 생각했던 모양이지만, 그들의 발걸음이 호텔 로비를 지나 VIP 전용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옥상으로 향하자 뒤늦게서야 뭔가가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마침내, 옥상의 헬리포트에 대기 중인 커다란 헬기를 보는 순간 수빈과 승희는 입이 떡 벌어지고 말았다.
“헤, 헬기다….”
“그러네…”
“나 헬기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거 처음이야.”
“그러게…”
하지만 놀라기엔 아직 이르다.
“내 방보다도 더 커…”
“그러네…”
헬기라고 하면 좁은 좌석에 안전벨트를 하고 앉아서 시끄러운 로터 소리를 들으며 소리 바락바락 지르는 그런 것을 연상하기 마련인데, 이건 어찌 된 영문인지 호화롭기가 말도 못할 지경이다.
형진이 왕인거야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저쪽 세계에서의 일. 왕성 라이언하트의 훌륭함은 수빈이나 승희도 잘 알고 있는 일이지만 이런 최첨단 현대 문명을 아무렇지도 않게 쓰는 모습은 역시 이질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러고 보면, 대관식 때 유명한 영화 음악이 행진곡으로 쓰였었다. 혹시나 했었지만, 이 사람들은 의외로 지구의 문명에 익숙한 것이 아닐까.
자리를 나누어 앉자, 요안나가 테이블을 펼쳐 놓았고 형진이 그곳에 기사단의 전투식량을 꺼내 펼쳐 놓았다.
“와아아…”
“이걸… 실제로 먹어볼 수 있게 되다니…”
형진이 엘리시온에서 만든 요리를 타나토스에서도 꺼내 먹는 모습을 보고 수빈과 승희는 게임 상에서처럼 현실에서 요리를 만들어 보려고 시도한 적이 있었다. 물론 결과는 대실패. 아쉽게도 지구인들에게 지급된 아바타는 그런 식으로 게임 상의 능력을 현실까지 끌어오는 능력이 주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지금 눈앞에 펼쳐진 요리들이 더욱더 신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찌 보면 이건 그녀들에게 있어 여신들의 능력을 현실에서 쓸 수 있는 것에 버금갈만한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갑작스런 형진의 출현에 놀라 배고픈 것도 잠시 잊고 있었던 수빈과 승희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허겁지겁 식사를 했다. 형진의 무릎 위에 앉은 채 비행 중인 헬기의 움직임에 겁먹은 기색이 역력하던 카트린도, 그런 두 사람의 모습에는 까르르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아름이나 새름이가 보면 뒤집어 지겠네요.”
“카트린도 그렇지만, 이렇게 헬기를 타고 갈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할 테니까.”
흡족한 식사가 끝나자 수빈과 승희는 그런 대화를 나누며 쓴웃음을 지었다. 솔직히 말해서 이미 헬기에 타고 있는 자신들조차도 지금의 상황이 믿기지 않는데, 그들이야 오죽하겠는가.
“아… 그러고 보니 여기 계신 분들은 그 두 사람의 실제 모습을 본 적이 없겠네요.”
“네. 그렇습니다.”
“놀라실 거에요. 게임에서와는 완전히 딴판이거든요.”
“어떤 종목의 선수입니까.”
“농구에요. 아세요?”
“호오. 그거 참 재미있군요.”
게임 상에서는 카트린과 또래로 보일 정도의 꼬맹이 자매였던 그들이, 장신 선수들의 주종목인 농구 선수라니. 형진은 의외의 반전에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오빠.”
“응?”
“농구가 뭐에요?”
“음… 뭐라고 설명을 해야 하나. 높은 곳에 달아둔 바구니에 이만한 공을 집어넣는 경기?”
“그런 게 재미있어요?”
“글쎄. 그건 역시 직접 봐야 확실히 느껴지지 않을까.”
“하긴.”
카트린과 그렇게 대화를 나누던 형진은 엘 파르드에 스포츠 문화를 도입하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현재의 엘 파르드는 오랜 내전을 끝내고 재건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정치 체제의 기반 자체가 신전을 중심으로 한 지방 자치이기에 나라 전체를 하나로 묶을 만한 무언가는 상대적으로 빈약할 수 밖에 없었다.
하기야 봉건제 기반 하의 다른 국가들을 생각하면 우편이나 물류가 활성화되기 시작한 엘 파르드는 상대적으로 사정이 나은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내전으로 인해 각 지역 간의 감정을 해소하는 의미에서라도 스포츠를 매개로한 통합은 한 번쯤 시도해 볼 만한 일이다.
게다가 각 지역의 도로 건설의 뒤를 이어 포로들에게 줄 일거리도 필요하다. 지구에서처럼 대규모 종합 운동장 같은 걸 지을 필요는 없겠지만, 학교 강당 정도 규모의 체육관이라면 각 지역마다 하나씩 지어도 괜찮지 않을까. 좀 더 본격적인 경기장은 선수층이 마련된 다음에 손을 대도 괜찮을 테니까.
어쨌든 그런 생각을 떠올리는 중에도 헬기는 빠른 속도로 비행을 계속해 마침내 천안에 있는 종합 운동장 인근에 도착했다.
“어쩐지… 떨리네요.”
“그러게요.”
얼결에 같이 타고 오긴 했지만, 헬기를 타고 온 모습을 다른 사람들이 보면 어떻게 생각할까. 뒤늦게서야 그런 생각을 떠올린 수빈과 승희는 난처한 표정이 되었고, 이내 아름과 새름에게도 어쩐지 미안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형진은 그런 둘의 생각을 손금 보듯이 들여다보면서도 재미있겠다는 듯이 빙긋 웃기만 했고, 요안나는 수신기를 들어 뭔가 지시를 내리더니 미녀 여비서 같은 느낌으로 보고했다.
“확인해 봤는데, 아름님과 새름님의 경기가 시작하려면 아직 시간이 좀 남은 것 같습니다.”
“그래? 다행이네. 경기 전에 잠깐이라도 만나볼 수 있으려나.”
“조치할까요?”
“가능해?”
“물론이죠.”
“그럼 부탁할게.”
요안나는 다시 어디론가 연락을 취했고, 헬기는 마침내 주경기장이 있는 장소에 내려앉았다. 그리고, 요안나와 카트린을 대동한 채 헬기에서 내리던 형진은 헬기가 내려선 곳 근처에 멍한 표정을 지은 채 우두커니 서있는 장신의 여자 선수 두 명을 발견할 수 있었다.
확실히 게임에서 봤던 것보다 키는 훨씬 컸지만, 서로 닮은 자매의 앳된 얼굴은 꽤 낯이 익었다.
넋이 나간 표정으로 하늘로부터 내려와 경기장에 착륙한 헬기와, 그 안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는 두 사람에게 천천히 다가간 형진은 느긋한 표정으로 인사를 건넸다.
“반갑습니다. 아름님과 새름님이신가요?”
그제서야 화들짝 정신을 차린 쌍둥이 자매는 마치 사단장을 만난 이등병 같은 느낌으로 부동자세를 취한 뒤 인사인지 고함인지 모를 소리를 질렀다.
“이, 이아름입니다!”
“이새름입니다.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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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편째는 새벽중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