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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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악몽
그것은 누군가에게는 달콤하고 뜨거운 밤이었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끔찍하고 냉혹한 밤이기도 했다.
“맙소사!”
“젠장! 왜 이제 와서!”
“지금 최선을 다해서… 큭…”
“한계입니다. 더는 못 버텨요!”
마침내 올 것이 오고 말았다. 물론 그것은 이 회사에 속한 자라면 이미 누구라도 예상하고 있었던 일이지만, 그렇게 이미 예감하고 있었던 일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눈앞에서 그 일이 벌어졌을 때의 파괴력은 상상을 초월한 수준이었다.
전화기는 내려놓는 순간 다시 맹렬하게 벨소리를 울려댄다. 회사에 비치된 전화기는 말할 것도 없고, 직원들의 전화기 역시 그건 마찬가지였다. 메신저에서는 친척들이나 친구들의 글이 초단위로 올라오고, 신문과 뉴스에서는 불난 집에 부채질하듯 그런 상황을 계속 내보내고 있었다.
게임에 접속한 이들 역시 혼란에 빠진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접속해 있는 유저들은 인던이나 필드에서 사냥하는 것을 멈추고 마을에 모여 현재 상태에 대한 대화를 나누느라 정신이 없었고, 그렇지 않은 이들은 SNS 상에서 떠도는 출처를 알 수 없는 괴담을 퍼담고 있었다.
“개인 정보는 당연히 털렸겠지?”
“멍청하긴. 지금 개인 정보가 문제야?”
“그럼?”
“이 게임이 어떤 게임인데. 이 정도 게임이라면 개인 정보는커녕 신체 정보까지 다 털렸어도 이상할 게 없다고.”
“헉!”
신체 정보라고 해서 단순히 키나 몸무게, 허리 사이즈 같은 걸 말하는 것이 아니다. 엘리시온은 홍채나 지문 인식 같은 것으로 개인을 판별하는 시스템 따위는 갖추고 있지 않다. 비록 거짓된 천국이라고 불리긴 해도 유저들에게는 신들이 쓰는 아바타를 다운그레이드한 수준의 것이 제공되고 있었고, 이런 아바타를 이용하기 위해 영혼 그 자체를 인식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직접 거짓된 천국을 구현한 허세와 망상이나, 그것을 빼앗은 공포와 죽음 정도만 아는 얘기. 하다못해 개발팀조차도 엘리시온이라는 이 게임이 접속자 개인을 어떻게 판별하는지에 대해서는 알 방법이 없었다.
“지금에서야 말이지만, 엘리시온의 시스템에 대해서는 참으로 기이한 부분이 많아요.”
“구체적으로 어떤 점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이를테면, 개인을 인식하는 시스템이 그렇습니다. 전문가들은 아마도 뇌파의 패턴을 지문처럼 인식하는 시스템이 아닐까 하는 의견이 대다수이긴 합니다만, 개중에는 그런 식으로 흔히 상상할 수 있는 시스템을 넘어선, 어쩌면 지금까지 인간이 상상하고 구현했던 시스템을 초월한 무언가가 적용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얘기도 있을 정도죠.”
“오오… 그건 참 대단하군요.”
“그것만이 아닙니다.”
“또 뭔가가 있습니까?”
“네. 다들 쉬쉬하고 있는 부분이긴 합니다만, 엘리시온은 사실 전 세계 유저들에게 단일 서버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건 참 대단한 일이군요.”
“근데 말입니다. 기이하게도 유저들 중 그 누구도 게임 안에서 외국어를 쓰는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습니다.”
“네? 그게 무슨…”
“단 한 사람도! 외국어를 쓰는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어요. 그 거대한 전 세계 단일 서버에서 게임을 하면서도, 유저가 적은 것도 아니고 추정되는 동접자 수만 천만 단위를 넘어 억 단위일지 모른다는 게임을 하면서도 말입니다. 이게 무슨 뜻인지, 이해하시겠습니까?”
“설마…”
“그렇습니다. 엘리시온은 이미 오래전에 완전한 실시간 번역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것도, 유저들이 그 누구도 위화감을 느끼지 못할 정도의!”
“세상에…”
“더 놀라운 것은 이런 것들이 엘리시온에 적용된 기술 가운데 아주 작은 단편에 불과하다는 점입니다. 이건 단순히 게임 하나가 해킹에 의해 털린 정도의 일이 아닙니다. 어쩌면, 인간의 향후 백년을 좌우할 수도 있는 어마어마한 기술의 결정체가 누군가의 손에 의해 털린 겁니다. 그 가치가 과연 어느 정도일지, 저는 감히 추산하기는커녕 상상하기도 어렵습니다.”
이 방송이 흘러나가는 순간, 증시는 미친 듯이 롤러코스터를 타기 시작했다. 게임이 털렸다는 사실에 놀라 매도를 넣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게임 그 자체보다 거기에 적용된 기술을 선점하려고 드는 자들이 앞다투어 매수를 시작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추세가 어찌되든 간에, 지금 이순간 엘리시온의 제작사 미라지 코어가 거대한 혼란의 중심에 자리하게 되었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일이다.
“쯧.”
허세와 망상은 그렇게 거대한 혼란에 빠져 버린 상황을 지켜보며 혀를 찼다.
“이제 슬슬 손을 털 때가 된 건가.”
이 신은 그리 인내심이 강한 신이 아니다. 공포와 죽음 같은 신이라면 이런 위기 상황 따위는 깔깔거리며 즐겁게 대처했을지도 모르지만, 허세와 망상은 토너먼트에 대한 부정이 발각되었을 때 자신의 추종자들에게 그 죄를 뒤집어씌운 채 도망쳐 버린 전력마저 있는 신이다. 귀찮고 짜증나는 일이 생기면 그것에 맞서 싸우기 보다는, 그냥 무책임하게 나몰라라 집어던지고 어딘가로 훌쩍 떠버리는 쪽을 선호하는 신이다.
“그래도 기왕이면 조금 더 버텨주길 바랬는데”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파편을 찾는 일에 더 이상 회사의 힘을 쓰지 못하게 되었다는 점. 어차피 회사야 엘리시온을 확장하고 관리하는데 조금 더 편하고자 만든 것이니 상관없다.
“할 수 없지.”
차라리 잘 된 것인지도 모른다. 인간 놈들과 얼굴을 맞대고 이런 식으로 어울리는 것 자체가 허세와 망상으로서는 솔직히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기에, 이참에 전부 훌훌 벗어던지고 스스로 파편을 찾아나서는 편이 나을수도 있다. 아니, 그게 지금의 자신으로서는 더 홀가분한 선택이다.
허세와 망상은 마침내 결정을 내렸다.
“청산 절차를 밟는다. 준비하도록.”
“네? 그, 그건…”
“못 들었나?”
“아닙니다. 들었습니다. 지시대로 준비하겠습니다.”
허세와 망상이 내린 결정이 외부로 흘러나가는 데는 채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당연하다. 아무리 내부에서 쉬쉬해서 잔뜩 신경을 곤두세운 채 지켜보고 있던 이들이 본격적인 청산 절차를 시작하는 움직임을 놓칠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이럴 수가! 청산 절차라니!”
“그럼 서버 종료란 얘기?”
투자자들과 유저들은 당혹해 했고, 제작사인 미라지 코어를 인수하기 위해 움직이던 자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그리고, 뒤늦게서야 한 가지 의문을 떠올렸다.
“어째서, 털린 상태로 서버를 계속 놔두고 있는 거지?”
“일단 서버를 끄고 회선 차단한 다음 복구하는 게 먼저 아닌가?”
“말이 돼? 차라리 유저들에게 좀 보상하고 넘어가면 될 일을 아예 청산이라니.”
“혹시 뭔가 더 엄청난 걸 숨기고 있는거 아니야?”
하나부터 열까지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 무수히 쏟아지기 시작했고, 그것은 다시 가짜 뉴스들과 뒤섞여 뭐가 뭔지 알 수 없을 정도의 거대한 수렁으로 바뀌어 갔다. 그리고 마침내, 청산 소식을 듣고 다 끝났다는 생각에 제작사에 속했던 자들이 하나 둘씩 입을 열기 시작하자, 그 혼란은 더욱더 크게 확산되기 시작했다.
“엘리시온의 서버 위치는 누구도 알지 못한다.”
“그래서 서버를 털리고서도 지금까지 전혀 손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서버를 털린 뒤 양방향 퀘스트라는 것이 업데이트 되었다.”
“개발팀이 있기는 하지만, 그들의 일은 기획팀의 일을 조금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실질적인 코딩이나 적용은 오직 한 사람, 제작사인 미라지 코어의 오너의 손에 이루어진다.”
“서버의 위치를 아는 이도, 오직 오너 뿐이다.”
“오너는 누구인가.”
“오너에 대해 아는 자 누구인가.”
“혹시, 이 모든 것이 오너의 자작극은 아닐까.”
“가능한 일이다. 서버에 대해 아는 것도, 엘리시온이 어떤 방식으로 구현된 것인지 아는 것도 오직 오너 뿐이다. 만약 누군가가 엘리시온을 털어먹으려 한다면, 그것이 가능한 것 역시 오너 뿐이다!”
“먹튀?”
“투자자의 입김이 세지는 것이 귀찮은 나머지 서버만 들고 튀려는 것 아닌가?”
“그럴 순 없다. 서버는 회사의 자산이다!”
“서버를 찾아야 한다!”
“오너를 찾아라! 법적인 책임을 물어야 한다!”
“찾아라!”
“찾아라! 찾아서 처벌하라!”
곧바로 미 연방 수사국 FBI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뭐? 출국금지? 내가?”
“죄, 죄송합니다.”
“허…”
허세와 망상은 갑자기 찾아온 변호사로부터 상황을 전해 듣고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고작해야 인간 나부랭이들이 감히 신의 행동을 제어하려 들다니, 그로서는 기가 찰 뿐이다.
“그래서, 다음 수순은?”
“아마도… 압수수색과 함께 서버의 위치를 확인하고 이번 일이 자작극이 아닌지 확인하는 조사가…”
“자작극이라고? 내가? 이번 일을?”
“죄송… 합니다. 하지만 서버의 위치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는 이상 이건 피할 방법이…”
“어이가 없군.”
“…”
허세와 망상도 미국 정부가 엘리시온에 사용된 기술에 대해 군침을 흘리고 있는 중이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다. 어쩌면 서버를 찾으려는 행위도 다른 기업들보다 먼저 거기에 적용된 기술을 선점하려는 의도는 아닐까.
그 때, 인터폰이 울린다.
“왜?”
“그, 그게… FBI가…”
“그래서?”
“회장님을… 꼭 뵈어야겠다고…”
“그래? 들여보내.”
허세와 망상은 비서에게 그렇게 말하고는 느긋하게 소파에 앉아 기다렸다. 그러자 곧바로 보란 듯이 검은 색 수트를 쫙 빼입은 남자들이 우르르 방 안으로 들어온다.
“무슨 일이지? 수색 영장이라도 들고 온 건가?”
“그건 아니고, 잠시 회장님을 모셔가고 싶어서입니다.”
“호오, 나를?”
그러자 옆에 있던 변호사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그럴 리가! 아직 체포 영장 같은 건 발부되지도 않았을 텐데? 더구나 긴급 체포 사유에도…”
하지만 바로 그 순간 앞에 서있던 남자 하나가 품에서 권총을 뽑아 변호사를 쏴버렸다.
“컥!”
갑작스런 총격에 변호사는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이미 총탄은 그의 심장을 꿰뚫어 버린 뒤였다.
“꺄악!”
놀란 비서가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자, 남자 가운데 하나가 시끄럽다는 듯이 얼굴을 찌푸리며 그런 그녀에게 방아쇠를 당긴다.
“네놈들 FBI가 아니군.”
“뭐… 그건 알아서 생각하고. 같이 좀 가줘야 겠다. 당신의 그 머리가 필요하다는 분이 계시거든.”
서버가 어디 있는지조차 불투명한 상황. 주식 시장은 요동치며 제작사를 매입하기 위한 아수라장으로 돌변했다. 그런 상황에서, 가장 간단하게 엘리시온과 관련된 모든 것을 손에 넣는 방법은 그것을 만든 사람을 빼돌리는 것.
이 남자들은 그런 판단을 내린 누군가가 보낸 사람들인 모양이다.
“이거 참…”
허세와 망상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어버렸다. 자신이 아무리 아바타를 통해 인간의 행색을 하고 있다지만, 이렇게 막무가내로 나오는 자들이 있을 거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한 탓이다.
바로 그때였다.
“으아아아악!”
검은 정장을 입은 괴한 가운데 하나가 온 몸에 시퍼런 불덩이를 뒤집어 쓴 채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나뒹굴기 시작한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그렇게 자지러질 듯한 비명을 흘리고 있는 와중에도 남자의 몸에 붙은 화염은 다른 곳으로 전혀 옮겨 붙지 않고 있었다.
“제시!”
아마도 몸에 불이 붙은 남자의 이름인가보다. 당황한 몇몇이 불을 끄기 위해 커튼과 양탄자 같은 걸 뜯어서 제시라는 남자의 몸을 덮으려 했지만, 그런 그들 사이로 또다른 불덩이 하나가 휙 하고 날아들었다.
“크악!”
“끄아아아악!”
시퍼런 불덩이는 마치 유성처럼 주위를 휘저으며 괴한들을 하나씩 불덩이로 만들어 버렸다. 갑작스런 그 사태에 놀란 괴한들은 당황해서 총을 마구 쏴댔지만 불덩이는 그들을 순식간에 제압해 버렸다.
“아사드.”
허세와 망상이 부르자, 도깨비불처럼 방 안을 휘젓고 다니던 불덩이는 이내 아랍계의 소년 모습으로 변화했다.
“괜찮으십니까.”
“후후…”
과연 파편은 파편인가. 빈민가에서 허드렛일을 하던 소년을 데려온 것이 바로 얼마 전 같은데.
허세와 망상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래도 당분간 좀 시끄러워지겠군.”
어느새 바닥을 뒹굴던 괴한들의 몸은 한줌 재로 변해가고 있었다. 허세와 망상은 그런 그들에게는 시선조차 주지 않은 채, 아사드를 데리고 어디론가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