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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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확대
“에엣!”
막 구워내서 따끈따끈한 팝콘 조각 하나를 양손으로 움켜잡은 채 먹으려고 하던 보호와 균형은 갑자기 들려온 쌍둥이의 도움 요청에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여신님?”
콜라를 따라 주려던 카트린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여신은 그녀에게 먹으려던 팝콘 조각을 맡기고는 형진에게로 뽀르르 날아가 가만히 속삭였다.
“진님.”
“네? 무슨 일이십니까.”
“실은요…”
여신에게서 자초지종을 들은 형진은 별로 어려울 것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시합 시간까지는 시간이 얼마나 남았죠?”
“잠시만요… 음, 지금 하고 있는 경기가 끝나면 바로니까, 한 삼십분 정도 남았대요.”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형진은 그렇게 답하고는 왕성 라이언하트에 있던 본신을 통해 사제 가운데 한 명을 호출했다. 회복이야 신녀인 유아를 따를 자가 있을리 만무하지만, 임신 중이기도 하고 별 거 아닌 작은 부상에까지 그녀를 동원할 필요도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대리자님께 도움이 된다면 저야 기쁜 일이지요.”
“감사합니다. 다만, 장소가 문제인데… 일단 옷을 좀 갈아입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네?”
유아를 돌보기 위해 왕성 라이언하트에 체재 중이던 사제는 옷을 갈아입어야 한다는 말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고, 이내 중년 여성용의 단아한 원피스를 한번 꺼내주자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이건…”
중년 여성용이라고는 해도 종아리가 드러난 복장은 처음인지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형진이 재촉하자 사제는 마지못해 그것을 입었다.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그럼 가시죠.”
“네.”
형진은 곧바로 황혼과 망각의 힘을 발현해 지구로 향하고는 미리 장소를 물색한 채 대기중이던 아바타에게 사제를 인도했다.
“이, 이게…”
영문 모를 장소로 갑자기 이동한 사제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전에 요정의 문을 써본 일은 있어도 황혼과 망각의 힘을 통해 단숨에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경험은 처음이었기 때문입니다.
“필요한 것은 제가 말씀드릴 테니, 사제님께서는 간단하게 치료만 해주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한편, 여신으로부터 허락이 떨어지자, 쌍둥이들은 비로소 팀 동료들에게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다들… 제가 얼마 전에 부상당한 거 아시죠?”
“응.”
“빨리 나아서 다행이야.”
“그런데 그게 왜?”
아름은 새름을 보고는 가볍게 심호흡을 하더니 마침내 비밀을 털어 놓았다.
“실은… 제가 얼마 전에 여신님을 만났어요.”
“뭐?”
팀 동료들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여신이라니.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린가.
“어… 그러니까, 신발할 때 그 신이 아니라… 여자 신?”
“네. 정확히는 보호와 균형이라는 이름의 신이시죠.”
“…”
이쯤 되면 뭐부터 따지고 들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아름도 그런 동료들의 기색을 눈치챘는지 다시 열띤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믿기 어려우실지도 모르지만, 원래 완치되려면 몇 개월 이상 걸려야하는 부상이 단숨에 완치된 건 여신님과 만나고 난 뒤의 일이에요.”
“어… 그, 그래.”
진지하게 자신들만의 비밀이라는 듯이 얘기를 건네는 아름의 모습을 보니 뭐라 하기도 그렇고, 되도 않는 허튼 소리 말라고 하기도 그렇고 여러모로 난감해 하는 표정이다.
그런 팀 동료들의 모습에 새름이 허리에 손을 턱 얹더니 이렇게 말했다.
“말로만 해서는 믿기 어려울 테니 증거를 보여드릴게요.”
“증거?”
“네.”
새름은 그렇게 말하더니 곧바로 근처에 있던 긴 의자를 걷어찼다. 그것도 발로 대충 차는 시늉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정강이 부위로 힘껏.
“꺅!”
“무, 무슨 짓이야! 그러다 부상…”
그러다 부상이라도 당하면 어쩌려고 그러냐는 말을 꺼내던 동료는 그야말로 말짱한 새름의 정강이를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말끔하다. 보호대를 찬 것도 아닌데, 새름의 정강이는 아주 멀쩡했다. 솔직히 그 정도면 지금 당장 바닥을 뒹굴며 끙끙 앓아도 이상하지 않을 텐데.
새름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말했다.
“방금 보신 건 보호의 권능이에요. 그리고…”
그리고는 뒤이어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동료에게 다가가 균형의 권능을 사용했다.
“어?”
“좋죠? 딱 느낌 오죠?”
“그, 그게…”
요안나가 제공한 숙소는 충분히 고급스러웠지만, 갑자기 그런 좋은 숙소를 얻어 쓰게된 팀 동료들 대부분은 사실 잠을 설치고 말았다. 부담스러운 것도 그렇고 뭔가 어색하고 들뜬 기분 때문에 제대로 숙면을 취하지 못한 것이다. 사실 주장이 부상을 당한 것도 그렇게 제대로 휴식을 취하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아침 훈련을 하려다가 벌어진 일이다.
그런데 방금 새름이 어깨를 감싸 쥐는 순간, 무언가 청량한 기운 같은 것이 온몸으로 좌악 퍼져 나가며 찌부둥했던 뭔가가 싸악 쓸려나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마사지를 받았을 때랑 비슷하다고 해야 하나. 아니다. 그것과 비교하는 것조차 미안할 정도다. 기분 좋게 숙면을 취하고 아침 일찍 일어나 싱그러운 햇살과 꽃 내음을 만끽하며 조깅을 즐기고 나서, 미지근한 물로 말끔하게 샤워를 하고 시원한 음료수 한 모금을 들이킬 때의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시원한 음료수의 느낌이 전신으로 스며드는 그런 기분이라고 하는 편이 옳을까.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 알 수 없는 상쾌함을 즐기고 있는 동료에게 새름은 빙긋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이건 균형의 권능이에요. 신기하죠?”
“그, 그게…”
시선을 돌린 새름은 다른 동료들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 같은 운동선수들은 몸이 재산이잖아요. 부상 한 번 잘못 당하면 시즌 하나를 통째로 날려버리는 일도 부지기수고요. 하지만 보호와 균형님의 권능만 있으면 걱정 끝! 보호의 권능이면 부상당할 일도 없고, 균형의 권능은 언제나 최고의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이에요. 어때요. 대단하지 않아요?”
“…”
팀 동료들은 이제 홀린 듯한 표정을 지어야만 했다. 분명 쌍둥이들의 말대로라면 이것보다 더 좋은 일은 없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바로 믿어 버리기엔 너무 허무맹랑하다는 생각이 든 탓이다.
형진이 사제를 데리고 대기실로 들어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반갑습니다.”
“헉! 아, 안녕하세요!”
놀랜 선수들이 화들짝 놀라 부동자세를 취한다.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이등병들 모여 있는 휴게실에 사단장이라도 들어왔는줄 알겠다.
“편하게 계세요. 다치신 분이 계시다고 들었습니다만.”
“그, 그게… 제가…”
잔뜩 긴장한 주장이 겁먹은 얼굴로 손을 든다. 형진이 정확히 뭐하는 사람인지는 모르지만, 헬기 타고 이곳에 온 데다 자기들 숙소까지 순식간에 최고급 호텔로 바꿔 버렸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습니까. 아, 얘기는 들으셨나요?”
“그게…”
주장이 흘끔거리는 시선을 자신에게 던지자 아름을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일단… 설명을 하려고 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쉽게 믿기는 어려운 일이라.”
“그렇군요. 상관 없습니다. 일단 부상부터 치료를 하도록 하죠. 사제님. 그럼 부탁드립니다.”
“네. 대리자님.”
얼핏 보기엔 그냥 푸근한 인상의 외국인 중년 여성으로 보이는 사제가 조심스럽게 다가오더니 주장에게 물었다.
“아프신 곳이 어디시죠?”
“발목을 조금…”
“알겠습니다.”
사제는 곧바로 몸을 수그리더니 주장의 발목에 가만히 손을 댄 채 희망과 생명에게 기도를 드렸고, 그 순간 그녀의 손에서 옅은 빛이 흘러나오더니 주장의 부상의 씻은 듯이 나아버렸다.
“끝났습니다. 일어나 보세요.”
“어, 이게… 어떻게…”
“모두 여신의 은총입니다.”
“…”
뭔가 눈속임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떠올렸지만, 정말로 발목에서 찌릿찌릿 전해지던 통증은 이미 씻은 듯이 사라져 있었다. 그것만이 아니다. 슬슬 조금씩 올라오던 부기마저도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이쯤 되면 정말 귀신에게 홀린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
꿀꺽.
방금까지 울상을 짓고 있던 주장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서서 멀쩡하게 걷는 모습을 보자 동료들은 당황하고 말았다. 아름이 여신 어쩌고 할 때만 해도 이게 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싶었지만, 이렇게 눈앞에서 멀쩡하게 부상이 치유되는 모습을 보고 나면 더 이상 그런 생각을 떠올릴 수도 없다.
“아… 다행이다.”
그리고 바로 그때.
동료들에게 마지막 남아 있던 의심마저 단숨에 날아가 버리게 만드는 일이 발생했다. 지금까지 형진의 어깨 위에서 모습을 감춘 채 지켜보던 보호와 균형이 완치된 주장의 모습에 안도하며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어, 어어…”
“이건…”
튤립꽃을 뒤집어 놓은 듯한 연분홍빛 드레스를 입고 머리에 토끼 귀 모양의 띠를 쓴 여신이 모습을 드러내자, 동료들은 입이 떡 벌어진 채 연신 눈을 비비느라 정신이 없었다.
새름이 보여준 권능이라는 힘이라든가, 주장의 발목이 순식간에 나아버린 건 차라리 뭔가 속임수를 썼다고 생각할 수라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생동감 넘치는 표정을 지닌 작은 요정 같은 생명체가 눈앞에서 뽀르르 날아다니며 아름과 새름에게 뭔가 말을 건네는 모습은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하지만 보호와 균형은 그런 사람들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추종자인 쌍둥이들에게 다가가 균형의 권능을 베풀어 주었다.
“아름님, 새름님. 오늘도 좋은 경기 기대할게요.”
“감사합니다.”
똑같은 이름의 권능이라도 추종자가 쓰는 것과 여신이 직접 써주는 건 차원이 다르다. 사실 예전엔 별 차이가 없었지만 최근의 보호와 균형은 신도와 추종자가 급속하게 늘어나면서 그 힘의 크기도 점점 강해지는 중이다. 물론 어제 형진에게 주의를 받고 난 뒤라 버프까지 써주지는 않았지만, 그것만으로도 상당히 강력한 도움이 될 만한 일이었다.
“이쪽이 아까 말씀드렸던 보호와 균형님이세요. 여신님, 이쪽은 저희 팀 동료들이에요.”
“보호와 균형이라고 해요. 만나게 되어 정말 반갑습니다.”
귀, 귀여워!
당연한 얘기지만 유유상종이라고 쌍둥이들의 팀 동료들 역시 귀여운 거라면 죽고 못 사는 그런 성격들이다. 여신이라고 해서 뭔가 엄격하고 근엄하며 진지한 그런 걸 연상했던 이들에게 있어서 지금 눈앞에 드러난 보호와 균형의 모습은 그야말로 화끈한 충격을 선사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좀 과장 섞어 말하자면, 법열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의 그런 강렬한 기쁨이다.
“여신님이라면 저도 믿고 싶습니다!”
“저, 저도요!”
“믿습니다! 믿사옵니다! 허으윽!”
“힉!”
갑자기 눈빛을 빛내며 달려드는 팀 동료들의 모습에 여신은 화들짝 놀라 아름의 머리 뒤로 숨더니 겁먹은 표정으로 고개를 빠꼼히 내민다.
“정말요? 정말로… 저를 믿어 주실 건가요?”
“커흑!”
“크흑… 이젠 죽어도 좋아…”
얼핏 과장된 듯한 그녀들의 모습에 형진은 피식 웃어버렸다. 보호와 균형은 잠시 망설이다가 형진에게 다가가 말했다.
“괜찮을까요? 이분들을 받아들여도.”
“여신님께서 그러고자 하신다면, 제가 어찌 말릴 수 있겠습니까. 뜻대로 하십시오.”
“감사합니다!”
결국 그날 아름의 팀 동료들은 전원 보호와 균형의 새로운 추종자가 되었다. 갑자기 이 세계에서 추종자를 확 늘려 버린 보호와 균형은 아주 기쁜 표정을 지었지만,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저… 진님.”
“네. 말씀하십시오.”
“하지만… 이렇게 전부 제 추종자가 되어 버리면 상대팀 선수들에게는 불리한 것 아닌가요?”
역시 호구스러움이 철철 넘치는 신이다. 보통은 그냥 자기 추종자들만 잘되면 그걸로 끝일텐데.
“그것이 걱정스러우시다면, 상대 팀에게도 권능을 베풀어 주시면 되지 않으시겠습니까. 서로가 부상 걱정 없이 최고의 컨디션으로 시합을 펼칠 수 있다면, 그건 선수에게도 관중들에게도 크나큰 축복이 되겠죠.”
“아! 그러면 되겠네요!”
여신은 곧바로 자신의 추종자가 된 선수들에게 조건부의 권능을 부여했다. 그것은 그녀들이 앞으로 상대하게 될 선수들에게도 자신의 추종자와 같은 효과가 부여되도록 만드는 권능이었다. 예전 같으면 어림도 없겠지만, 지금의 여신이라면 이런 것도 가능하다.
“그럼, 오늘도 훌륭한 시합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