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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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탐색
지구에서라면 허세와 망상에게 감지될 위험이 있으니 쓰기 어려운 면이 있지만, 타나토스에서라면 그런 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것은 다시 말해, 필요할 경우 그에게 종속되어 있는 5대 마탑의 마법사 같은 이들도 불러내 병력으로 삼을 수 있다는 뜻이 된다.
마법사만이 아니다. 물론 그에 걸맞은 업데이트가 이루어져야겠지만, 필요하다면 원격으로 거래소나 창고처럼 게임 내의 기능등을 사용할 방법을 마련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정말로 현실과 가상의 구분이 애매해지는 그런 상황마저 초래하게 될 것이다.
“이거… 몇 개 더 만들 수는 없을까요.”
공포와 죽음은 대뜸 이렇게 대답했다.
[허세와 망상한테나 물어봐.] “하하, 그게 그렇게 되나요.”망상구현의 단장은 따지고 보면 허세와 망상의 신물 내지는 성물이라고 할 수 있는 물건. 그런 기능을 가진 물건을 양산하려면 역시나 지금 형진에게 의탁하고 있는 여신들과 마찬가지 조건이 되어야 가능하다.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현재의 대립 상황이 끝나고 허세와 망상이 더 이상 재기가 불가능할 정도의 상황에 처하면, 회생 절차를 돕는답시고 대리자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이 터무니없는 기능을 가진 성물을 얼마든지 양산할 수 있게 된다.
[너란 놈은…] “크흠. 죄송합니다. 제가 좀 심했나요.”아무리 그래도 신인데 그런 식으로 부려먹는 건 좀 심한가 싶어 흠칫하며 사과했다. 하지만 공포와 죽음의 반응은 그가 예상했던 것과 전혀 달랐다.
[아니다. 아주 좋은 생각이야. 그런 놈은 자신의 힘을 좀 더 세상에 이롭게 쓰는 방법을 배울 필요가 있지. 내가 적극 밀어 주마. 과연 언제 실현될지 미지수긴 하지만.] “…”뭐랄까. 지금 이 순간 형진은 한 가지 이미지를 떠올렸다. 얼굴을 나비 가면으로 가린 채 허세와 망상의 등을 밟으며 어서 일하라고 소리치며 깔깔거리며 웃는 누군가의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다음 순간 형진은 얼른 그 상상을 머리 속에서 허겁지겁 지워버리며 다른 말을 꺼냈다.
“크흠. 그런데… 망상구현의 단장으로 그런 일이 가능하면, 허세와 망상 스스로도 그런 일이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그거 생각보다 꽤 큰 위협이 될 것 같은데요.”
[…]
공포와 죽음은 잠시 말이 없었다. 얼른 상상을 지운다고 지우긴 했는데, 이미지가 워낙 강렬해서인지 어느 정도 생각이 흘러들어간 모양이다. 묘하게 침묵을 지키는 모습이 어쩐지 천벌을 때릴까 말까 고민하는 것 같아서 불안하다.
“그렇지 않습니까?”
다시 한 번 묻자, 공포와 죽음은 그제서야 한숨을 푸욱 내쉬며 대답했다.
[상관 없다.] “어째서요?”[네가 지구라는 곳에서 그 힘을 쓰지 못하는 이유와 마찬가지다.] “아…”
현실에 환상의 힘을 지속적으로 유지 시키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능력은 그렇다 치더라도, 그런 식으로 인과율을 제멋대로 뒤집어엎기 위해서는 그만큼 소요되는 신앙과 공헌도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이다.
물론 희망과 생명이 함께 있을 때라면 잠시나마 그녀의 힘을 빌려 유지하는 것이 가능할지는 몰라도, 지금처럼 여신이 유아의 몸에 억류된 상태에서 허세와 망상이 지닌 힘만으로 그런 일을 벌이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힘의 소모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도 이미 만들어진 거짓된 천국의 무언가를 현실로 끌어오는 방법을 써야 한다. 하지만 거짓된 천국은 이미 공포와 죽음에게 장악된 상태. 그것을 끌어오는 행위를 하는 순간 허세와 망상은 자신의 위치를 공포와 죽음에게 노출시키게 된다.
현재 상태에서 그런 일을 벌이는 건 그야말로 자살 행위나 다름없다. 적어도 파편들을 필요한 수만큼 모으고 충분히 능력을 배가시킨 다음이라면 몰라도, 지금으로서는 아무리 멍청해도 그런 식으로 스스로의 위치를 드러내는 행위는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허세와 망상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참으로 열불 나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고생고생해서 힘들게 만들어 놨더니 중간에 톡 튀어나와 한입에 쏙 털어 넣은 형국이 아닌가. 좀 찌질하긴 하지만 그렇게 원망을 하는 것도 조금은 이해가 된다.
어쨌든, 형진은 곧바로 괴조의 둥지에 성소를 일으켜 세웠다. 꽃과 바람이 기존의 괴조 가족들을 모조리 펫으로 만들어 버린 상황에서 다시 리젠이 될지는 미지수지만, 혹시라도 찾아올지 모르는 파편의 소유자를 발견하기 위해서도 이것은 필요한 조치다.
“일단 역소환 하세요.”
“네.”
여신들은 아쉬운 표정으로 역소환을 실행했다. 그러자 커다란 괴조 가족들이 거짓말처럼 모습을 감추어 버린다.
곧바로 다음 목표를 향해 이동하려는데, 문득 황혼과 망각이 머뭇거리며 말을 걸어온다.
“저…”
“네. 말씀하십시오.”
“아이들은… 꺼내 놔야 성장하지 않을까요? 이런 식으로 놔두면 지금 모습 그대로 계속 유지되어 버릴 것 같은데.”
확실히 그건 황혼과 망각의 말대로다.
“하지만 그게 오히려 낫지 않겠습니까. 커버리면 귀여움도 그만큼 줄어들 테니까.”
하지만 한번 불붙어 버린 여신들의 호구스러움은 이미 그의 생각보다 훨씬 더 맹렬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그거야 그렇지만, 역시 아이들이 성장하는 걸 일부러 막아버리는 건 불쌍한 생각이 들어서…”
다른 여신들을 돌아보니 그녀들 역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렇다면, 일단 길드성에 데려다 놓도록 하죠. 그곳이라면 위험할 일도 없을 테니.”
“그래도 되나요?”
아무래도 무리한 부탁이다 싶었는지 조심스럽게 묻는 여신들의 모습에 형진은 피식 웃으며 답했다.
“네. 다만 그렇게 계속 소환 상태를 유지하면 먹이라든가 이런 저런 것들을 계속 신경 써줘야 합니다. 원래는 부모들이 지금처럼 사냥해서 먹이를 가져다 줘야 하는데, 길드성에서라면 그런 식으로 사냥하도록 놔둘 수가 없으니까요.”
“그거라면 저희에게 맡겨주세요!”
가만히 듣고 있던 보호와 균형이 당연하다는 듯이 눈을 빛내며 그렇게 큰 소리 친다. 괜찮을까 싶긴 하지만, 정 안되면 다시 역소환시키면 되는 일이니 상관없겠지.
“알겠습니다. 그럼 일단 돌아가도록 하죠.”
괴조들이 뜯어먹던 들소 시체까지 도축해서 말끔하게 챙긴 형진은 곧바로 길드성으로 귀환해서 옥상에 괴조 가족과 아기 호랑이를 풀어놓았다.
괴조들은 아기 호랑이의 모습을 보고는 흠칫했지만, 같은 처지임을 알아차렸는지 딱히 공격 의사를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꽃과 바람이 거듭 친하게 지내야 한다고 설교까지 하자 결국 견디지 못하고 자신의 새끼들과 함께 지키기 시작한다.
“일단 먹이는… 그냥 놔두면 사라질지도 모르니 길드 창고에 넣어두도록 하겠습니다. 여신님들이 때 되면 가져다가 챙겨 주도록 하세요.”
“네!”
형진은 일단 길드 창고에 들소 고기를 넣어 두었지만 어쩐지 이거 가지고는 며칠 버티지도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거래소에서 아무 고기나 좀 사다가 넣어둬야 하나 생각하고 있는데, 문득 인벤 안에 들어있는 무지막지한 양의 고기 한 가지가 떠올랐다. 바로 먹구렁이의 고기다.
아까워서 일단 도축을 해두긴 했어도, 여신들의 반응을 봐서는 요리를 해도 소용없을 것 같다. 그럴 바에야 모처럼 길드성을 차지하고 들어온 식충이들 먹이로나 쓰면 되지 않을까. 덩치 하나는 무지막지하게 크니까 이 녀석 만으로도 먹이 걱정은 상당히 줄어들 것이다.
먹구렁이의 고기를 길드 창고에 채워 넣자 그것만으로도 금새 가득 차 버린다.
창고에 먹이를 채워두고 여신들과 함께 올라오자, 어느 틈에 알아차렸는지 크루그와 카트린, 그리고 그들이 가르치는 왕족 나부랭이들이 옥상으로 올라와 괴조 가족과 아기 호랑이를 살펴보고 있었다.
그의 모습을 확인하자 카트린이 득달같이 달려와 궁금함을 가득 품은 다른 이들을 대표해 질문을 던졌다.
“오빠! 얘들 뭐에요?”
“뭐긴. 여신님들 펫이지.”
“우와!”
카트린은 물론이고 다른 왕족 나부랭이들도 부러운 표정이 역력하다. 눈이 부신지 낑낑대는 아기 호랑이들이라든가, 털북숭이 아기 괴조들. 그리고 공연히 머리를 꼿꼿하게 세운 채 거드름을 피우고 있는 검독수리 형상의 괴조들까지. 어느 것 하나 마음에 들지 않는 녀석들이 없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어지간한 일에는 반응하지 않는 크루그조차 시선을 떼지 못할 정도이니 말 다한 것 아니겠는가.
마침 잘 됐다.
여신들에게 관리를 맡기긴 했어도 형진과 함께 다니다 보면 아무래도 계속 신경을 쓰기 어려운 경우가 많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 있는 왕족 나부랭이들이라면 어차피 시간이 남아돌테니 이 녀석들의 관리를 맡기기에 부족함이 없다.
형진은 씩 웃으며 말했다.
“타보고 싶어?”
“응? 타도 돼?”
“아기들은 무리지만 이 덩치 큰 녀석들이라면 안 될 것도 없지.”
형진의 말에 머리 빳빳이 세우고 있던 괴조 부부들은 흠칫하는 기색을 보였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계속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세상 일에 공짜는 없는 법. 그에 걸맞은 대가를 치러야겠지?”
음흉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자 옆에서 듣고 있던 크루그가 얼른 카트린의 앞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그 옷은 안 됩니다.”
“그 옷이라니?”
“그 토끼 귀 달린 물건 말입니다.”
순간 형진은 눈이 반짝 빛났다.
“오, 그러고 보니 그게 있었군. 솔직히 말해서 잊고 있었는데, 말해줘서 고맙다.”
“…”
순간 크루그의 얼굴이 뭐 씹은 표정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공연히 말 안 해도 될 일을 끄집어 내는 바람에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음을 깨달은 것이다.
“큭큭큭. 뭐… 원래는 이 녀석들 먹이주고 씻기고 하는 일을 맡기려 했는데, 그렇게 알아서 말해주니 빼놓으면 곤란하겠지.”
“…”
“당번을 정해서 먹이를 주고 씻기는 일을 맡아라. 당연한 얘기지만 당번은 반드시 바니걸 슈트를 착용해야만 한다.”
“맙소사…”
그러나 예상 외로 여자들은 그다지 큰 반발을 하지 않았다. 형진이 바니걸 슈트를 꺼내놓은 시점에서 어차피 언젠가는 입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식으로 마음의 준비를 하기도 했고, 실제로 시험 삼아 입어 본 녀석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남자다. 왕족들이라고 해서 전부 여자만 있는 건 아니기 때문에, 이번에 형진이 건 조건에는 남자들도 포함이 되어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건 이곳에 와 있는 왕족 나부랭이들은 우락부락한 성인남성이 아닌 아직 한창 자라나는 미소년들이라는 것 정도.
“아, 걱정 마. 내가 아무리 변태라지만 남자애한테 여자옷 입히고 좋아할 정도는 아니야. 남자애들 입을 건 따로 만들어서 보내주마. 그럼 괜찮겠지?”
그러자 갑자기 여자애들의 눈이 번쩍하고 빛나더니 형진에게 다가와 이렇게 외쳤다.
“그 옷! 크루그님도 입는 건가요?”
“응? 그거야… 녀석이 저 녀석들을 타보고 싶다면 그렇겠지. 어쨌든 예외는 없으니까.”
“그렇다면, 그 옷! 저희들이 만들게 해주세요!”
“…”
뭔가 건드려서는 안 될 영역을 건드린 것 같은 이유는 뭘까. 순간 왕족 나부랭이들 가운데 섞인 미소년이라든가 그들의 우두머리나 다름없는 크루그가 필사적으로 손과 고개를 저어 보인다. 하지만 형진이 누구인가.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어지는 그런 아주 나쁜 장난꾸러기 변태가 아니었던가. 지금 이 순간, 번쩍번쩍 빛을 발하는 눈빛 속에 담긴 소녀들의 비틀어진 욕망을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그는 순수한 어른이 아니었다.
“나는 눈이 아주 높다.”
“알고 있습니다.”
“내 심미안을 만족시킬 수 있을 정도의 작품이 나온다면, 나로서도 거부할 이유는 없지.”
“그렇다면…”
“윤허하노라! 엘 파르드의 왕으로서 그대들의 비틀어진 욕망을 허락하노니, 세상에 다시 없을 옷을 만들어 진상하도록!”
“명을 받들겠습니다!”
크루그는 이마를 감싸 쥐었고, 그를 따르던 왕족 나부랭이들 역시 절망적인 표정을 지었다. 이제 그들은 갈림길에 서버렸다. 괴조를 타보고 싶다면, 저 여자 왕족들이 만든 옷을 입어야만 하는 절대적인 위기에 빠져 버린 것이다.
“오빠.”
형진은 문득 옆에서 들려오는 카트린의 말에 아차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응?”
조심스럽게 돌아보았다. 그러자 카트린은 잠시 눈을 감고 뭔가를 생각하더니 말없이 엄지손가락을 척 들어 보였고, 그 모습을 본 크루그는 카트린 너마저라는 대사를 얼굴에 써붙인 듯한 표정으로 털푸덕 주저앉고 말았다.
============================ 작품 후기 ============================
@리아카에린// 죄송합니다. 그 부분은 제가 잘못 쓴 것이 맞습니다.
해당되는 부분은 277, 283, 287편이며
주머니 토끼는 현실에서는 소환할 수 없는 것으로 수정되었습니다.
지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죄의 뜻으로 연참을 해야할텐데…
지금 상태에서는 여력이 없는지라 일단 적립해두는 걸로;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