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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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정벌
아침이 되었을 때, 프리츠는 가장 먼저 오른손을 들어 자신의 손등에 남아 있는 낙인을 살폈다. 흐릿한 시선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바라보자, 공포의 낙인은 마치 자신이 거기 있다는 듯이 반응하며 모습을 드러낸다.
“음…”
남편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잠이 들어있던 아내가 그의 움직임에 잠을 깼는지 작은 목소리와 함께 몸을 움직인다. 프리츠는 홀린 듯이 손등에 새겨진 낙인을 바라보다가 화들짝 놀래 얼른 손을 내렸다.
사실 굳이 낙인을 보고 말고 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그가 원하면 언제든 임무라든가 인벤토리 같은 메뉴들이 시야 한쪽에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역시 꿈이 아니었다. 그렇게 잠시 멍한 표정으로 천장을 바라보고 있던 프리츠는 아차 싶은 생각에 화들짝 몸을 일으켰다.
“여보?”
갑작스럽게 몸을 일으키는 그의 모습에 아내가 부스스한 표정으로 눈을 뜬다. 프리츠는 그녀의 이마에 살짝 입을 맞추어 주고는 작게 속삭였다.
“오늘은 일찍 가봐야 할 것 같아.”
“그래요? 그럼…”
“아, 일어나진 말고. 알아서 할테니까.”
“음… 그럼 그렇게 해요. 후아암…”
아내는 비몽사몽한 표정으로 다시 베개에 머리를 묻었다. 자칫하면 그가 실직자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라 어제는 잔뜩 긴장해버렸고, 그 여파로 인해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한 모양이다.
프리츠는 일단 욕실로 들어가서 급히 몸을 씻고, 옷을 챙겨 입은 다음 여전히 쿨쿨 자고 있는 아이들의 침실에 들어가 마찬가지로 이마에 입을 맞추고는 일찍부터 출근을 서둘렀다.
“이거라도 먹고 가요.”
아침도 못 먹이고 보낼 수는 없었던 모양인지, 작은 꾸러미를 내민다. 안을 살펴보니 샌드위치와 함께 텀블러 하나가 담겨 있다.
“고마워.”
“너무 무리하진 말고요.”
“응.”
아내의 허리를 끌어당겨 잠시 키스를 나눈 프리츠는 곧바로 차를 타고 회사로 향했다. 그리고 도착하자마자 자신의 사무실로 들어가 한곳에 던져두었던 엘리시온의 기획서들을 살폈다.
정체불명의 해커에 의해 엘리시온이 털린 시점에서, 이 기획서들은 사실상 가치를 잃은 채 아무렇게나 방치되고 있었다. 게임 자체에 대한 운영권을 잃은 시점에서 업데이트 역시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다르다. 자신이 최고 기술 책임자로 내정된 이상, 앞으로의 업데이트 로드맵 정도만이라도 미리 준비를 해두어야만 했다.
“프리츠?”
팀원 중 하나가 그의 사무실 문을 가볍게 노크하고는 고개를 내민다.
“어제는 어떻게 된 겁니까?”
“아… 급한 용무가 있어서.”
“…”
팀원은 묵혀 두었던 서류에 얼굴을 처박고 있는 프리츠의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이내 조용히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가까운 사이라도 프리츠가 뭔가 일을 시작한 이상, 방해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서 스스로 물러난 것이다. 대신 팀원은 생각했다. 아마도 자신들의 팀장이 어제 자리를 비웠던 것은 재취업 자리를 알아보기 위해 움직인 것일지도 모른다고. 최후의 보루처럼 남아 있던 프리츠마저 재취업을 결정한 것이라면, 자신도 더 이상은 시간을 끌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물론 그건 터무니없는 착각이었지만 팀원 입장에서는 당연한 추측일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경영진이 어떤 식으로 나올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해커에게 게임이 털린 것에 대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개발팀이 책임을 질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는 서버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프로그래머가 단 하나도 없이 시스템에 대한 정보 전부를 이미 잠적해 버린 회장이 틀어쥐고 있었다 하더라도 말이다.
어쨌든 프리츠는 그렇게 잠시 자신의 사무실에서 업데이트 계획을 비롯한 기획서들을 살펴보며 필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정리하느라 꽤 긴 시간을 소모했다. 확실히 보스의 말대로였다. 집행자가 되어 공포와 죽음의 입장에서 기획서를 살펴보니 더하고 빼야 할 것이 제대로 구분이 되었다.
그렇게 오전을 서류와 씨름하던 프리츠는 점심 식사를 하고 난 다음에야 엘리시온에 접속할 수 있었다.
“타나토노트10…”
칸트라 제국의 수도 이슬라. 그곳에서도 가장 비싸고 화려한 길드 하우스, 통칭 길드성. 그곳을 장악한 신생 길드의 얘기는 엘리시온을 즐기는 이라면 누구든 한번쯤 들어봤을 만한 내용이었다. 물론 그것은 프리츠도 마찬가지.
원래대로라면 이런 식으로 게임 내에 존재하는 길드들의 동향은 주요 모니터링 대상이었겠지만, 그 사건 자체가 누군가에 의해 엘리시온이 털린 사건 전후로 벌어졌기 때문에 프리츠로서도 소문만 들어봤을 뿐 미처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헤드폰처럼 생긴 접속기를 머리에 쓰고, 의자를 뒤로 젖혀 편안하게 몸을 기댄 상태로 접속을 시도한다. 생체 정보의 확인이 끝나고, 접속이 허가되자 곧바로 하나의 메시지가 나타난다.
[인벤토리 동기화가 시작됩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인벤토리 동기화? 엘리시온의 개발자중 하나인 그로서도 처음 보는 메시지라서 잠시 어리둥절해 있는데, 문득 완료되었다는 내용과 함께 또다른 안내 메시지가 나타난다.
[게임 내에서 사용하는 인벤토리와, 집행자의 인벤토리가 동기화 되었습니다. 게임 내의 인벤토리는 오직 게임 안에서만 사용할 수 있으나, 집행자의 인벤토리는 현실과 게임 양쪽에서 사용가능합니다. 다만 집행자의 인벤토리는 제한적인 용적과 무게만을 수용할 수 있으니 효율적인 사용을 부탁드립니다. 집행자의 인벤토리를 확장하기 위해서는 상급 성도로 승급하여 공헌도 상점을 이용해야만 합니다.]“이런 것도 가능한 건가.”
프리츠는 작게 감탄하다가 화들짝 놀랐다. 이 말대로라면, 평소에는 게임 내의 인벤토리에 물건을 담아두었다가 정말 중요한 것만 집행자의 인벤토리로 옮겨 사용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이를테면, 자신의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장비라든가.
“허…”
최초 제공되는 인벤토리의 공간은 열 개. 현재 그 공간에는 앞서의 임무에서 사용했던 검과 방패, 그리고 회복약이 담겨 있었다.
프리츠는 얼른 자신의 장비를 벗어 집행자의 인벤토리로 옮겼다. 혹시 안 되면 어쩌나 싶었는데 의외로 쉽게 옮겨져서 살짝 놀라버렸다. 집행자의 인벤토리에 장비가 옮겨진다는 건, 바꿔 말하면 이 장비들을 현실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하하… 이거 참.”
원래 가지고 있었던 것을 현실에서 사용할 수 있게 되었을 뿐인데도, 프리츠는 책갈피에 꽂아 놓은 채 잊어버리고 있던 백 달러짜리 지폐를 운 좋게 찾아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장비 착용에 문제가 없는지 잠시 확인한 프리츠는 곧바로 길드성이 위치한 칸트라 제국의 수도 이슬라로 향했다.
워프 포인트를 이용해 이슬라에 도착한 프리츠는 맵을 살펴 길드성의 위치를 확인하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조금 걷다보니, 길드 하우스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크고 화려한 건물 하나가 모습을 드러낸다.
“…”
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이 문 너머가 자신이 알던 엘리시온과는 다른 무언가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그런 판단을 내리게 만든 가장 큰 요소는, 다름 아닌 문을 지키고 있는 토끼들이다. 선글라스를 끼고 턱시도를 낀 채 쓸데없이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 토끼들은 총괄 개발팀장인 그로서도 처음 보는 종류의 것이다. 적어도 자신의 손을 거쳐 구현된 엘리시온의 그 어떤 컨텐츠에도 저런 종류의 생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문으로 접근하자 토끼들이 선글라스 너머로 찌릿 시선을 보낸다. 아무래도 쉽게 들여보내줄 것 같지 않은 모양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응? 누구세요?”
그때 귀여운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온다. 얼른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예쁘장한 소녀 하나와 살짝 얼굴을 찌푸린 소년 하나가 그를 바라보고 있다.
“저, 죄송하지만, 이곳에 진이라는 분이 계십니까?”
프리츠의 말에 소녀는 고개를 귀엽게 갸웃거리더니 되물었다.
“오빠요? 아… 오늘 오기로 했다는 그 분이에요? 이름이…”
오빠라는 말에 프리츠는 화들짝 놀라 자세를 바로하고는 얼른 이름을 밝혔다.
“프리츠입니다. 프리츠 베커.”
조금 경직된 그의 반응에 소녀는 까르르 웃으며 대답했다.
“아, 맞네요. 근데 오빠는 지금 없을 걸요. 대신 오귀스트 아저씨가 기다린다고 했던 것 같은데.”
“안 계시다고요?”
“일단 들어오세요. 안내해 드릴게요. 아, 저는 카트린이라고 해요. 이쪽은 제 오빠인 크루그에요.”
“크루그입니다.”
“프리츠 베커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아직 어린 소년 소녀지만 보스의 동생이라는 말에 프리츠는 함부로 대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조심스럽게 카트린의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자, 오솔길 양 옆에서 토끼들이 나타나 그들을 바라본다.
“괜찮아. 손님이야.”
카트린이 그렇게 말하자, 토끼들은 그제서야 다시 나무속으로 모습을 감춘다. 역시 보통 토끼들은 아닌 모양이다.
그렇게 건물에 도착하자 뒤쪽에서 무언가를 수련하는 듯한 짧은 기합 소리 같은 것이 들려온다. 듣기로는 아주 적은 인원만으로 구성된 소수정예 길드라고 했던 것 같은데, 지금 들리는 기합 소리는 얼핏 듣기에도 인원이 꽤 되어 보인다.
응접실로 들어가자 건장한 체구의 남성 하나가 그들을 맞이한다.
“오귀스트 아저씨. 손님이에요.”
“수고하셨습니다. 공주님. 크루그님도 수고하셨습니다.”
“별 말씀을요. 그럼 얘기 나누세요.”
“네.”
공주님이라고?
프리츠는 오귀스트가 카트린을 부른 호칭의 의미를 깨닫고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보스를 오빠라고 부른 카트린이 공주라면, 보스는 왕자라는 얘긴가. 그렇다면 어제 그 금발의 미녀는 단순한 비서가 아니라 호위 기사 같은 역할인 셈인가.
그렇게 프리츠가 제멋대로 추측을 하고 있을 때, 오귀스트가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해왔다.
“오귀스트입니다. 새롭게 집행자가 되셨다지요?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프리츠 베커라고 합니다. 그럼 오귀스트님도…”
“네. 저 역시 집행자입니다.”
오귀스트는 사람 좋은 표정으로 웃어 보이고는 그에게 자리를 권했다.
“일단 앉으시지요.”
“네.”
서로 자리를 나누어 앉자 오귀스트는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시작했다.
“사실 진님께서는 지금 다른 일 때문에 조금 바쁘십니다. 그래서 제가 대신 프리츠님에 대한 스킬 교육을 맡게 되었습니다. 제 전투 방식이 프리츠님과 비슷한 점이 많으니 잘 지도해 달라고 부탁하시더군요.”
“그랬군요.”
조금 아쉬운 느낌이 든다. 하지만 보스가 일부러 사람을 데려와 교육을 맡겼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을 터.
딱 봐도 눈앞의 남자는 상당히 강해 보인다. 다부진 체격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분위기 자체가 일반인과는 뭐가 달라도 다르다고 해야 하나. 보스를 처음 봤을 때처럼 강렬한 느낌까지는 아니지만 은연중에 주위를 압도하는 느낌을 가진 남자다.
“은신과 잠행은 전수 받으셨습니까?”
“네. 하지만 수련은 아직…”
“그렇다면 우선 그것부터 시작을 해야겠군요. 지하에 수련장이 있으니 그곳에서 시작하면 될 것 같습니다. 가실까요.”
“알겠습니다.”
프리츠가 그렇게 오귀스트의 도움을 받아 스킬 수련을 시작할 즈음, 형진과 요안나는 전투 준비를 마치고 미국 남부의 접경지대에 도착해 있었다.
“에효…”
한숨을 푹푹 쉬고 있자니, 공포와 죽음이 핀잔섞인 목소리로 말을 걸어온다.
[왜 또 한숨을 푹푹 쉬고 난리야.]형진은 투덜거리며 대답했다.
“저기요. 저 그렇지 않아도 일 많거든요?”
[무슨 일?]
“요리 대회도 코앞으로 다가 왔구요. 임시 주총도 코앞이구요. 좀 있다가는 이벤트 보스 역할도 해야 하구요. 아이들도 봐야 하구요. 설거지도 해야 하구요. 우리 이쁜 마눌들 안마도 해줘야 하구요…”
[시끄러.]
“쳇…”
요안나는 긴장감 없는 태도로 자신의 신과 그렇게 투닥거리고 있는 형진의 모습에 피식 웃다가 연락을 받고는 형진에게 그 내용을 전했다.
“포착되었습니다.”
“아… 빨리 사람을 뽑던가 해야지. 이래봬도 한 나라의 왕인데, 이런 식으로 직접 전쟁을 치르는 게 말이 되냐고.”
[그만 쫑알대고 빨리 움직여!]
“넵!”
공포와 죽음의 외침이 울려 퍼지자 형진은 전신을 검은 기운으로 감싼 채 국경을 넘어 멕시코 북부로 넘어갔다. 오늘 그가 상대할 적은, 다름 아닌 멕시코의 마약 카르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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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