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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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임무
헬기는 조용히 어두운 하늘을 날다가 산호세의 다운타운에 솟아 있는 빌딩 위에 내려앉았다. 산호세는 미국의 10대 도시에 속한 곳임에도 마천루 같은 것이 없고, 고만고만한 낮은 건물들만 들어차 있다. 시내가 공항 활주로 방면에 위치하고 있는 관계로 고도 제한이 걸린 탓이다.
헬기에서 내려 지하 주차장으로 가자 어느 틈에 가져다 놨는지 프리츠의 자동차가 세워져 있었다. 임무로 인해 시간이 소요되긴 했지만, 이쯤 되면 용의주도라는 말 정도로는 표현하기도 어렵지 않을까.
“수고하셨습니다. 필요하신 것이 있다면 이쪽으로 연락을 주시거나 게임 상에서 길드 하우스를 찾아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보스께서도 수고하셨습니다.”
“별 말씀을요.”
그렇게 간단하게 악수와 함께 인사를 나누고는 차에 올랐다. 악수를 할 때 서로의 손에 새겨져 있는 낙인이 잘게 공명하는 느낌이 뭔가 신기하다. 시동을 켜고 다시 한 번 살짝 목례를 해 보인 프리츠는 차를 몰고 주차장을 빠져 나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언제나와 그다지 다를 바가 없었다. 모든 것이 그대로인데, 자신만 커다란 전환점을 맞은 듯한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이대로 돌아가 잠이 들면 모든 게 사실은 꿈이었고, 아침이 되면 없었던 일이 되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집으로 들어가자 잠도 자지 않고 기다리고 있던 아내가 그를 맞이한다.
“수고하셨어요.”
“애들은?”
“일찍 잠들었어요.”
“잠깐 보고 와도 될까.”
“물론이죠.”
프리츠는 간단하게 손을 씻고는 아이들의 방에 들어가 잠들어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살폈다. 그렇게 잠시 아무 말 없이 아이들의 잠든 얼굴을 바라보던 프리츠는 이내 이불을 정돈해주고는 서재로 가서 메일과 메시지들을 확인했다.
업무 관련 이메일들을 그렇다 치고, 시간이 되었는데 왜 게임에 들어오지 않느냐는 메시지가 하나 가득 쌓여있는 모습에 프리츠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해당 보스와 거의 하루 종일 같이 있었는데, 이 메시지의 내용을 봐서는 오늘도 어김없이 공략 실패를 한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다른 이에게 캐릭터 운용을 맡긴 걸까. 하긴 동료가 있다고 했으니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
서재에서 메일 확인을 마친 프리츠는 욕실로 들어가 간단하게 몸을 씻은 뒤 침실로 들어갔다.
“갔던 일은 잘 됐어요?”
“응.”
“다행이네요.”
그것 때문에 하루 종일 조마조마했는지 아내는 안심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아내는 모를 것이다. 그가 오늘 얼마나 스펙터클한 일들을 겪었는지. 프리츠는 어쩐지 오늘 자신이 겪었던 여러 가지 일들을 그녀에게 말해주고 싶은 충동을 느꼈지만, 꾹 눌러 참았다. 어지간하면 성도임을 스스로 밝히지 말라는 공포와 죽음의 계율이 떠오른 탓이다.
“잘 자.”
“잘 자요.”
프리츠는 아내의 부드러운 머릿결을 쓰다듬으며 천천히 잠에 빠져 들었다.
오늘 겪었던 일이 꿈인지 현실인지는, 아침이 되어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은 푹 쉬도록 하자.
그렇게 프리츠 베커라는 이름의 새로운 집행자가 잠들고 있을 때, 한 편에서는 갑자기 터진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인해 자다 말고 달려나와 불면의 밤을 보내는 이들도 있었다.
“으음…”
수십 대의 차량이 도착해 사건 현장을 샅샅이 살피고 있다. 벌써부터 냄새를 맡고 달려온 기자들이 통제선 밖에서 아우성치고 있었지만, 일리노이 사건 때문인지 저돌적으로 달려드는 기자는 별로 없었다. 그때처럼 느닷없이 자신들 속에서 살인자가 튀어나오는 일은 그들로서도 경험하고 싶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어때, 뭔가 좀 나왔어?”
보안관 하나가 다가와 감식중인 수사관에게 묻는다.
“그게… 후우… 이거 참…”
하지만 수사관은 쉽게 대답하지 못하고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사실 살해 당시의 정황은 이미 파악이 된 상태지만, 이걸 어떻게 보고서로 작성해야 할지가 문제였다.
“어떻길래 그래?”
수사관은 대답하기 전에 자신의 일을 돕는 이들과 눈을 마주쳤다. 그들이 고개를 끄덕여 자신의 뜻에 찬성한다는 제스쳐를 취해 보이자, 그제서야 한숨을 쉬며 몸을 일으켰다.
“좀 더 정밀한 감식이 필요하긴 하겠습니다만, 현재 상황에서 보자면… 이 인물을 살해한 무기는 길이 약 80센티미터 안팎의 한손 도검입니다. 상처의 모양이나 쓸린 형태로 봐서는, 음… 아밍 소드 계열이 아닐까 싶군요.”
보안관은 잠시 아무 말도 못하다가 한 박자 늦게 반문했다.
“뭐?”
“아마도 왼손에는 방패를 들었을 것이고, 음… 다른 이들이 보지 못하게 좀 가려봐.”
“네.”
수사관 몇이 장막을 가져다가 주위를 가리자, 수사관은 보안관을 불러 자신의 정면에 세우고는 드러난 흔적을 통해 살해 당시의 상황을 재현해 보였다.
“발자국의 깊이나 보폭으로 보면, 이 인물을 살해한 이의 신장은 약 6피트 정도로 보여 집니다. 처음에는 문가에 숨어 있다가, 안에서 이 자가 나타나는 순간 튀어나가 몸통 박치기로 선수를 제압한 걸로 보이는 군요.”
“…”
“당황한 피해자가 총을 뽑아서 사격했습니다. 하지만 범인은 총구의 방향을 보고 몸을 돌려 이렇게 피한 다음 왼손에 들고 있던 무언가, 아마도 방패가 아닐까 싶은데요. 그걸로 총을 든 손을 쳐 올린 다음 오른손에 들고 있던 검으로 손목을 단숨에 날려 버리고, 곧바로 방향을 돌려 이런 식으로 목을 베어 마무리.”
보안관은 황당해 하는 표정을 지었다.
“뭐야, 그게. 지금 이 자를 죽인게 사무라이라는 얘긴가?”
“사무라이보다는 기사라고 하는 편이 맞을 것 같습니다.”
“기사?”
“사용한 무기나, 검을 다루는 방식은 전형적인 소드 앤 버클러 스타일의 유럽식 검술입니다. 자세한 건 전문가에게 문의를 해봐야겠지만, 이 정도면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단련한 실력이라고 봐야겠군요. 총을 든 상대를 맞이해서 단 두 번 검을 휘둘러 끝장내 버렸습니다. 격투라고 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빠르게 결판이 나버렸습니다. 이 정도로 깔끔한 흔적이라니, 솔직히 말하면 조작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입니다.”
“허…”
프리츠의 기대와는 다르게, 형진과 요안나는 사건 현장에 대해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단지 싸움을 지켜보면서 결정적 단서가 될 만 한 소지품이나 지문, 머리카락처럼 개인 식별이 가능한 흔적이 남지 않았는지 확인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남겨진 발자국이나 혈흔, 상처의 상태 등을 확인해서 이 정도로 살해 당시의 상황을 재구성 할 수 있는 것 자체가 엄청난 일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럼… 일단 근처에 검술을 수련하는 도장들부터 확인해 봐야 하는 건가.”
“글쎄요. 요즘의 검술 도장이라고 해봐야 일본의 검도를 수련하는 곳이 대부분이니까요. 이런 유럽식 검술을 다루는 곳은 오히려 보기 드물어요.”
“그건 차라리 다행이군. 미국 전체의 도장을 다 들쑤셔야 하는 건가 싶었는데.”
“아이쪽은 어떻습니까.”
“그게 말이지…”
이번엔 보안관이 난처한 표정을 짓는다. 보고가 들어오긴 했는데, 아무래도 믿기 어려운 내용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아이는 자신을 구한 것이 죽음의 천사라고 말하고 있어.”
“폐쇄 회로에도 그렇게 찍혔더군요.”
“문제는 아이의 몸을 살펴본 의사들의 소견이야.”
“어디 문제라도?”
“그게… 너무 말짱해.”
“말짱하다고요?”
“응. 분명히 몸에 먼지와 상처에서 배어나온 것으로 보이는 혈흔이 있는데, 실제로 씻겨 보니 작은 생채기 하나조차 남지 않았더군. 정밀 검사를 해봐야겠지만, 살펴본 의사의 소견으로는 또래의 어떤 아이보다도 건강한 상태라던가.”
“그건 뭔가 미묘하군요.”
이들은 안쪽의 토굴 역시 확인해 보았고, 아이가 묶여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장소라든가 잘려진 밧줄 같은 것도 증거품으로 이미 확보한 뒤다. 밧줄에는 옅은 혈흔이 남아 있었고, 정황상 아이의 것으로 추측하고 있었다. 오래된 먼지가 가득한 창고에서 그런 식으로 상처가 방치되었다면 파상풍을 염두에 둬야 하는 상황인데, 오히려 작은 생채기조차 남지 않았다니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 좋단 말인가.
“아이는 뭐라던가요.”
“그게… 구출되었을 때만 해도 굉장히 몸이 아팠는데, 천사가 준 약을 먹고 말끔하게 나았다는군.”
“허…”
“일단 입고 있던 옷에 먹다 흘린 약의 흔적이 있어서 성분 분석을 시켜보긴 했는데, 곧바로 정보 기관에서 달려와 가져가 버렸다는군.”
“뭐… 사실이라면 세상이 뒤집힐 일이니까요.”
천사의 약이라. 그런 것이 정말 있다면 자신을 괴롭히는 이 만성 편두통도 좀 나으려나. 수사관은 그런 생각을 떠올렸다.
이들이 나눈 대화는 각종 증거물과 함께, 그 밤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상부에 전달되었고 곧바로 주정부를 거쳐 연방정부로 넘어갔다.
자다 말고 일어나서 사건 보고를 받은 대통령은 심각한 표정으로 급히 소집된 안보 회의 각료들에게 물었다.
“이 보고서가 사실이라면, 우리는 지금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목격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군요.”
“…”
각료들은 쓴웃음을 지었다. 신과 종교가 지배하던 중세를 지나, 인간과 과학이 지배하는 시대를 맞이한지 수백년. 그런데 이제 뜬금없이 죽음의 천사라 불리는 존재가 나타나 버렸다.
일리노이에서의 사건이 일어난 뒤, 연방정부는 우선 흐물흐물 녹아버린 잭 더 리퍼의 시체를 분석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정말로 천벌을 받아 시체가 녹아버린 것인지, 아니면 그렇게 보이도록 트릭을 쓴 것인지 확인해 보기 위함이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사실은 그 모든 것이 속임수라는 쪽의 의견을 내놨었지만, 실제 분석 결과는 그런 의견을 완전히 뒤집어 버렸다. 놀랍게도 녹아내린 흔적에서 추출된 증거들은 그 흔적이 본래 사람을 구성하고 있던 조직이 붕괴되어 만들어진 것임을 증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놀라운 점은 그렇게 죽어버린 살인마가 사람들을 죽인 흔적에서도 나왔다. 고작해야 작은 과도로 사람을 완전히 토막토막 썰어 내버렸다. 그런 것은 전문적인 공구를 가져다 써도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이었는데, 남아 있는 흔적은 칼로 잘라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깔끔했다.
죽음의 천사 역시 그렇다. 당시 기자들이 촬영한 여러 가지 영상이나 증언들을 종합해 봐도, 상대가 어떤 식의 속임수나 특수 효과로 그와 같은 장면을 연출한 것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것만이 아니다. 갑자기 그 많은 이들의 시야에서 모습을 감춘 것 역시 현재로서는 어떤 기술이 사용된 것인지 전혀 실마리를 찾을 수가 없었다.
만약, 정말로 만약의 경우지만, 죽음의 천사라고 불리는 그 존재가 중요한 통치기관이나 정보기관, 또는 핵무기 저장소 같은 중요 시설에 침입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과연 미국은 현재 상황에서 그와 같은 일이 벌어졌을 때 그것을 인지하는 것이 가능할까.
지금 이 순간 다시금 나타난 죽음의 천사에 대한 보고가 도달하자마자 대통령을 비롯한 안보 회의 각료들이 자다 말고 일어나 이렇게 회의를 열고 있는 건 바로 그래서였다.
물론 죽음의 천사가 미국 정부를 적대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은 아니지만, 법이라는 테두리를 벗어나 사적으로 두 명이나 되는 사람을 죽인 것은 틀림없는 일이다.
“만약 죽음의 천사가 미국을 적대하게 된다면, 어느 정도의 피해가 생길 것 같습니까.”
대통령의 질문에 각료들은 잠시 서로를 돌아보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추산할 수 없습니다. 그런 상황은 최대한 피해야만 합니다.”
“후… 곤란하군. 정말로 곤란해.”
대통령은 피곤한 표정으로 이마를 감싸 쥐었다. 그렇게 잠시 고민하던 그는, 이내 이렇게 결정을 내렸다.
“알겠소. 그렇다면, 최대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죽음의 천사와 은밀하게 접촉할 수 있도록 해보시오.”
“직접… 만나시려는 겁니까?”
“상대는 그럴 마음만 있다면 백악관에서 자고 있는 나를 찾아올 수도 있을 거요. 그렇지 않소?”
“아마도…”
“숨어도 소용없다면 차라리 드러내놓고 만날 수밖에.”
그 말에 각료들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대통령은 그들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짓고는 다시 작은 목소리로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다만 만나는 순간 천벌이라는 것을 받지 않기를 기원해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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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편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