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4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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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취임
이번 주총의 최대 안건은 뭐니 뭐니 해도 경영진 교체. 잠적해 버린 허세와 망상을 밀어내고 새로운 대표 이사를 세운 뒤 경영을 전담할 CEO를 세우는 것이 가장 큰 목표다.
분산되어 있기는 해도 유효 지분의 55퍼센트를 확보하고, 여기에 추가로 우호 지분까지 20퍼센트가량 확보한 시점이니 목표의 달성은 큰 문제가 아니다.
엘리시온이 지닌 신기술들에 세계 각국의 기업들이 여러모로 큰 관심을 보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것은 사실 의외의 결과라고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엘리시온에 대한 문제가 불거져 나오는 순간 허세와 망상이 청산 절차를 밟았던 것이 요안나에게 호기로 작용했다. 그가 소유하고 있던 지분의 대부분을 효과적으로 매입하면서 단숨에 과반의 지분을 챙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승리요인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허세와 망상조차도 미처 몰랐던 일이지만, 요안나는 이미 이번 일이 벌어지기 전부터 미라지 코어의 주식에 어느 정도 투자를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정확히는 제이콥 퍼넬을 대리자로 내세워 아이리스 인터내셔널의 이름으로 투자를 했던 것이지만, 이런 식으로 투자된 양이 만만치 않았던 것 또한 과반 이상의 주식을 확보하는 것이 가능했던 원인 중 하나였다.
우호 지분까지 합쳐 75퍼센트의 지분을 확보했으니 이제는 허세와 망상이 와서 판을 뒤집지 않는 이상 원하는 결과를 도출하는 것은 사실상 기정 사실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그것이 임시 주총이 아무런 문제나 소란도 없이 부드럽게 진행된다는 뜻은 아니다.
남은 25퍼센트의 주주를 나눠가진 소액 주주들은 사실상 이번 주총에서 실질적인 영향력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어쨌든 주주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므로 질문을 통해 자신들의 의사를 전달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굳이 총회꾼 같은 것이 아니더라도, 작금의 상황은 여러모로 궁금한 점이 많을 수밖에 없으니 주주들은 이 기회를 이용해서 그런 의문들을 해소하고자 할 가능성이 높았다.
개회 선언이 끝나고 간단한 의례가 끝나자 출석주주 및 주식 수 보고가 이어진다. 보통 주주총회의 의장 역할은 대표 이사가 맞게 되지만, 허세와 망상은 이전부터 그 역할을 다른 이사에게 맡기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런 식으로 진행이 되고 있었다.
“…이로써 본 총회는 보통 결의 사항 뿐만 아니라 특별 결의 사항까지도 결의할 수 있는 요건을 갖추었음을 보고 드립니다. 이에 따라 지금부터 주식회사 미라지 코어의 임시 주주 총회를 개최하겠습니다.”
임시 의장은 인사말을 건너뛰고 가장 먼저 특별 결의 사항인 대표 이사 및 기존 이사회 소속 이사들의 해임 결의안을 상정했다. 간단한 보고가 이어지고 질의 시간이 주어지자 곧바로 소액 주주들이 벌떼같이 일어나 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정신없군.”
“워낙 뜨거운 이슈니까요.”
질문의 대부분은 회장인 허세와 망상의 소재나 서버의 위치 등에 집중되어 있었다. 회장이 잠적한 상황에서 회사의 경영권을 가져온다 한들 실질적으로 미라지 코어의 전부나 다름없는 서버를 들고튀어 버린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일 아니냐는 식의 질문이 바로 그것이다. 확실히 그런 일이 벌어질 경우 가진 주식이 순식간에 휴지조각이 되어 버리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니 그들로서는 당연한 질문이다.
“그것에 대해서는… 저희도 아직 확실하게 파악한 바가 없는 것으로…”
임시 의장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찌하겠는가. 그것이 이번 임시 주총에서 그에게 주어진 역할인 것을.
원래 요안나의 계획은 이번 임시 주총에서 형진을 등기 이사로 올려 업계에 정식으로 이름을 알릴 기회로 삼는 것이었지만, 형진 본인이 그것을 고사한 탓에 두 사람은 그냥 의자에 앉아 멀거니 주총이 진행되는 것을 지켜보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혹시라도 허세와 망상이 나타나 깽판을 치는 상황에 대비하는 것이 이 자리에 참석한 가장 큰 이유지만, 현재로서는 그런 식의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사실상 전무하다고 봐도 될 것 같다.
“질문 있습니다.”
그래서 형진은 의자에 앉아 이 소란스럽고 지겨운 회의가 언제 끝나나 하는 생각을 떠올리며 졸고 있었는데, 문득 흑인 소년 하나가 손을 번쩍 들고 일어나 질문을 청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고작해야 중학생쯤 되었을까. 서양 사람들은 동양인에 비해 나이가 들어 보이니 그보다 나이가 적을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아이가 튀어나와서 발언권을 청하자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어, 그러니까… 주주번호가?”
“XX번입니다.”
“케빈 제이슨 리… 맞습니까?”
“네.”
주주번호와 이름이 맞으니 주주 본인이 맞다. 소유한 주식 수가 달랑 한 주에 불과하더라도, 그것이 어린아이에 불과하더라도 주주인 이상은 발언할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케빈이라고 자신의 이름을 밝힌 흑인 소년은 마이크를 건네받자 자리에서 일어나 이렇게 질문했다.
“저는 엘리시온이 좋습니다. 그래서 부모님이 보관하고 계시던 용돈을 가지고 주식을 샀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그러더군요. 엘리시온이 망해서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저는 그렇게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더 많은 친구들이 엘리시온을 즐길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어요.”
딱히 특별한 의견이라고는 볼 수 없었지만, 순수한 아이의 목소리에는 다소 흥분해 있던 사람들의 마음을 가라앉히는 알 수 없는 힘이 담겨 있었다.
사실 엘리시온의 주식을 용돈 모아서 샀다는 말이 좀 의아하게 들리긴 했지만, 아마도 이 아이의 부모는 주주로서의 역할을 해보는 것도 앞으로의 삶에 있어 큰 경험이 될 거라는 생각에 그런 식의 선물을 해주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다른 주주들의 날선 질문에 식은땀을 흘리고 있던 임시의장은 귀여운 소년의 질문에 잠시 쓴웃음을 짓고는 이렇게 답했다.
“아마도 오늘 주총에 참석한 주주 가운데 가장 어린 분이 아니실까 싶습니다. 앞으로 미라지 코어가 케빈님 같은 젊은 층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회사가 되기를 저 역시 간절히 기원합니다.”
“…”
어떻게 보면 간단한 대답일 수도 있었지만 사실상 이번 주총을 끝으로 경영진에서 물러나게 되는 임시 의장의 입장이 역력하게 드러나는 말이었기에 사람들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따지고 보면 서버의 위치라든가 기타 다른 회사 기밀을 모조리 들고 튄 건 전대 회장이지 눈앞에서 식은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임시 의장이 아님을 이해한 것이다.
덕분이라고 해야 하나. 소액 주주들이 흥분을 가라앉히자 주총의 진행은 훨씬 원활하고 빠르게 이어질 수 있었다.
“아까 그 아이, 꽤 쓸만해 보이지 않아?”
“어떻게 하시려고요?”
“흠… 비와 낭만께서도 슬슬 추종자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서.”
“아하.”
요안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대기하고 있던 제이콥 퍼넬에게 간단하게 지시를 내렸다.
“방금 전, 케빈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던 그 아이. 만나볼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리’라는 성을 가지고 있어서 처음에는 혹시 한국계가 아닐까 싶었지만, 사실 이것은 아일랜드계 성씨다. 조상 중에 아일랜드계가 있거나, 미국에 정착하는 와중에 그런 성이 생긴 것일 수도 있다. 정확한 건 이후에 자세히 들어봐야 알 수 있겠지만.
곧바로 특별 결의 사항으로 기존 경영진 전원의 해임이 결정되고 새로운 이사들이 선임되어 이사회가 만들어졌다. 형진이 이사 취임을 승낙했다면 지금 주주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는 새로운 이사들 사이에 서 있었겠지만, 그렇지 않으니 이걸로 주주총회에서의 일은 모두 끝난 셈이다.
“진의 직급을 정했어요.”
“뭔데?”
“경영지원실장이요. 부사장급이에요.”
“헐…”
살다보니 이런 식으로 난데없는 낙하산 인사의 주인공이 될 줄이야.
“뭔가 거창해 보이네. 무슨 일을 하면 되는데?”
“음… 중장기 전략 수립 및 사업 계획 수립, 경영관리 업무, 글로벌 마케팅, 외부 협조 업무, 기타등등 기타등등.”
“…”
뭔가 그럴 듯 하긴 한데, 실질적으로 그런 업무를 맡긴다는 의미보다는 그냥 아무 말이나 막 끌어온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럼 부하직원도 거느리는 건가?”
“네.”
“얼마나?”
“한 명이요.”
“한 명? 누구?”
“저요. 집에서는 부인, 밖에서는 비서. 딱 좋죠?”
“맙소사.”
이래서 족벌 경영이 안 좋은 거다. 자기들끼리 다 해먹지 않는가.
“아, 물론 급여는 전액 사회단체에 기부할 생각이에요.”
“그건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지.”
말이 좋아서 월급 루팡이지 이렇게 대놓고 간판만 달아놓는 식이어서야 아무리 안면이 두꺼운 형진이라도 양심이 찔릴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그렇게 밖으로 나온 그들은 이내 호텔 앞에 대기 중인 리무진에 올라탔다.
“아이는?”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제이콥 퍼넬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차문이 다시 열리며 눈이 휘둥그레진 흑인 소년이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와 형진의 앞 자리에 엉거주춤한 자세로 앉았다.
“혼자 온 건가?”
“네? 마, 맞아요. ”
사실 심연의 눈가리개로 얼굴을 가린 형진의 모습은 다른 주주들에게도 관심의 대상이었다. 외모 뿐만이 아니라, 척 봐도 고가의 차량에 아름다운 미녀까지 대동하고 있으니 당연히 시선이 갈 수밖에. 그것은 지금 형진 앞에서 긴장한 모습으로 앉아 있는 케빈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곳은 대중교통이 별로 좋지 않은 곳인데. 오느라 고생했겠네.”
“좀 그런 면이 있긴 해요.”
“집까지 데려다 주려는 것뿐이니까. 너무 그렇게 긴장하지 않아도 돼.”
“감사합니다.”
대답은 하면서도 주머니 속에서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는 모습이 아무래도 완전히 경계심을 늦춘 건 아닌 모양이다. 하기야 이런 엄청난 차에 난데없이 납치당하는 듯한 느낌으로 끌려와 버렸으니 당연하다.
“마셔요.”
“감사… 합니다.”
요안나가 살짝 미소를 지으며 주스를 따라 건네자 케빈은 다시 휘둥그레진 눈으로 자신의 손에 쥐어진 잔을 바라보았다. 하기야 버스나 승합차도 아니고 세단에 냉장고까지 갖춰져 있는 건 형진도 처음 봤다.
자신도 모르게 잔을 입에 가져가려다 흠칫 놀라더니 그냥 입만 대는 척 하고 만다. 주스에 약이라도 탔으면 어쩌나 싶은 걸까. 낯선 사람에게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 건 분명 대견한 일이지만, 자신이 그렇게 악당 같이 느껴지나 싶어 조금 씁쓸해진다.
“엘리시온을 하는 중이라고?”
“네.”
“잘 하나?”
“그냥… 조금요. 너무 많이 하면 엄마한테 혼나요.”
“그거야 그렇겠지.”
형진이 피식 웃어 보이자, 케빈은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저기… 두 분도 엘리시온을 하시나요?”
“물론. 따지고 보면 너와 같다고 할 수 있지.”
“아… 그렇군요.”
공통의 관심사를 찾은 덕분일까. 케빈은 그제서야 조금 경계심을 풀고 엘리시온에 대한 이런 저런 얘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어찌 보면 정말로 엘리시온 유저인지 확인하고자 하는 느낌도 있긴 하지만, 요안나라면 몰라도 형진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인간보다도 엘리시온에 대해 많은 걸 알고 있는 사람이다.
“혹시 그 얘기 들으셨어요?”
“어떤?”
“얼마 전에 요리 달인이 생겼대요.”
“아하. 그 얘기.”
“아세요?”
“알다마다. 바로 나거든.”
“네?”
케빈은 갑작스럽게 흘러나온 형진의 말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 정말요?”
“왜? 거짓말일 것 같아?”
“그게…”
혼란스러워 하는 케빈을 향해 형진은 씩 웃으며 다시 말했다.
“의심스럽다면, 칸트라 제국의 수도 이슬라에 있는 타나토노트10 길드의 길드 하우스로 와. 그것이 우리 길드니까.”
“헉!”
이번에 새로 탄생한 요리 달인이 타나토노트10 길드 소속이라는 정보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고급 정보다. 케빈으로서도 그것까지는 알 도리가 없었지만, 이 소년도 타나토노트10 길드가 어떤 곳인지 정도는 잘 알고 있었다.
“마침 잘 됐군. 케빈. 우리 길드에 들어오지 않을래?”
“제가요?”
“그래. 우리 길드에는 여자애들이 아주 많아. 케빈이라면 좋은 친구를 많이 사귈 수 있을거야.”
“저, 정말요?”
“물론.”
혹시 자신을 속이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저버리지 못한 모습이었지만, 케빈은 결국 형진과 요안나에게 오늘 저녁에 길드를 한번 찾아가 보겠노라고 약속을 했다.
“문제는 다희한테서 어떻게 비와 낭만을 빼돌리느냐 하는 점인데…”
“그거… 절대로 쉽지 않을 것 같네요.”
============================ 작품 후기 ============================
오늘은 여기까지.
수고하셨습니다.
케빈의 모티브는 삼성 주총에서 발언했던 12살 주주입니다. 올해 초에 있었던 일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