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4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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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 임무
아란은 손에 든 단검으로 상대의 뒷목을 가르고, 뒤이어 견갑골이 만나는 지점의 움푹한 지점을 찔러 심장을 관통시켰다.
“커헉!”
반응할 틈도 없이 연이어 급소 두 곳을 공격당한 목표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조차 인식하지 못한 채 그대로 앞으로 엎어지며 숨이 끊겼다.
순간 그가 느낀 감각이라고는 목 뒤가 뜨끔해지는 느낌 뿐이었다. 뒤이어 심장이 관통 당한 시점에서는 이미 두뇌와 육체를 연결하는 신경이 깨끗하게 절단 되어 고통을 느낄 틈조차 주어지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화악!
순간 튀어오르는 핏줄기와 그로부터 풍겨지는 비릿한 쇠냄새.
목표를 경호하고 있던 이들조차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제대로 상황을 인지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누구냐!”
“이런!”
정문으로 향하던 경호원들은 갑자기 문자 그대로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 같은 느낌의 누군가가 목표를 공격하는 모습을 보고 급히 무기를 꺼내들었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목표는 치명적인 급소를 두 군데나 거의 동시에 베이고 찔리면서 그대로 즉사해 버렸기 때문이다.
팍!
총소리보다는 작은, 하지만 무언가가 터지는 것이 분명한 소음. 하지만 그것이 울려 퍼지기도 전에 아란은 프리이의 도움을 받아 자신에게 무언가가 겨누어진다는 것을 인지했고, 그것을 확인한 순간 급히 옆으로 몸을 피했다.
티디디디디딕!
곧바로 전선을 통해 상대를 무력화시키기 위한 전격이 흘러들어갔지만, 그것에 맞아 몸을 부들부들 떠는 것은 이미 숨이 끊겨버린 암살 목표였다.
“이런!”
테이저건이 엉뚱하게 자신들의 호위 대상에게 날아가 박히자 경호원들은 당황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경호원들은 즉시 아란을 제압하기 위해 움직였다.
삼단봉이 날아든다. 검도를 단련했는지 제법 공격하는 기세가 날카로웠지만, 아란은 몸을 낮추며 상대의 다리를 후려쳤고, 그 타격력은 삼단봉을 휘두르던 경호원의 자세를 무너뜨리는 것을 넘어 두 발이 허공으로 떠오르도록 만들어 버렸다.
경호원을 죽일 생각이었다면, 이렇게 무방비가 된 상태에서 피할 수 없는 치명적인 일격이 터져 나갔겠지만 아란은 굳이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멈춰라! 움직이면 쏜다!”
다시금 누군가가 그렇게 외침과 동시에 프리이의 경고가 들려온다.
[조심하세요!]그 목소리에 반응해 시선을 돌리며 아란은 흠칫 놀랐다. 앞서 형진이 시범을 보여주었던 무기와는 어쩐지 생긴 모양이 달랐지만, 명백하게 같은 종류로 보이는 무기가 자신을 향해 겨누어져 있는 것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경호원이 든 권총의 총구가 자신을 향한 것을 인지함과 동시에 아란의 몸은 허깨비처럼 사라졌다. 이동 스킬을 사용해 총구가 가리키는 방향으로부터 급히 몸을 피한 것이다.
검은 색의 무언가로 몸을 감싼 범인이 갑자기 시야에서 훅 하고 사라져 버리자 총을 겨누었던 경호원은 일순 당황해 버리고 말았다.
“헉!”
하지만 급히 고개를 돌려 사라져 버린 아란의 모습을 찾기도 전에, 무언가 묵직한 타격이 손목에 가해졌다. 그리고 손목이 부러지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권총을 놓치는 순간, 아란의 자비없는 일격이 명치를 그대로 가격해 버린다.
“커흑!”
숨이 턱 하고 막혀온다.
찰나의 순간 짧게 끊어친 치명적인 타격. 그 한 번의 타격으로 복강 안에 숨겨져 있는 내장 전체에 충격이 가해진다. 숨조차 쉬기 어려울 정도의 극심한 고통에 경호원은 비틀거리며 한 걸음 뒤로 물러 났다가, 그대로 폭 고꾸라지며 의식을 잃어 버렸다.
자칫 단숨에 즉사할 수도 있을 정도의 타격이었으나, 다행히도 경호원은 정신을 잃기 직전 자신도 모르게 희망과 생명의 이름을 마음 속으로 되뇌였다.
“여자?”
그제서야 아란의 인상착의를 인지한 경호원 가운데 하나가 그렇게 외치는 순간, 다시 프리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임무는 완수되었습니다. 다른 자들이 몰려오고 있으니 이탈하세요.] [네.]아란은 건물 안쪽에서 다시 경호원들이 몰려나오는 모습을 스윽 살피고는 은신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그제서야 간신히 상황을 이해한 목표의 부인에게서 찢어질 듯한 비명 소리가 터져나온다.
“아아악!”
다급하게 몰려오던 경호원들은 아란의 모습이 눈앞에서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리자 크게 놀랐다.
“이, 이건…”
경호원들이 그렇게 당황해 있는 사이 아란은 나무 위로 슬쩍 올라간 다음, 지붕을 타고 넘어 프리이가 있는 옥상 위로 다가갔다.
[수고하셨습니다.] [별 말씀을요. 모두 프리이님 덕분입니다.]생각보다 임무는 꽤 쉬운 편이었다. 경호원들의 수가 예상보다 많기는 했지만, 굳이 지부장급이 나서야 할 필요가 있나 싶을 정도로 임무 자체의 난이도는 그리 높지 않았다.
하지만 프리이도 아란도 그것에 대해서는 그리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이런 식으로 평이한 목표를 배분한 것 자체가 의도적인 일이라는 것을 은연중에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숙련된 집행자라 해도 처음부터 총탄이 난무하는 전쟁터 한복판 같은 곳의 목표물을 하달할 수는 없는 일. 어차피 이번 임무 자체가 다른 세계에서의 임무에 익숙해지기 위한 체험 코스 같은 느낌의 일이다. 적어도 그들은 그렇게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지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애초에 지부장급의 집행자들은 그 자체로 초인이라 불리워도 좋을만한 자들. 그냥 사전 정보 없이 무작정 달려들어도 당하는 입장에서는 악몽일텐데, 2인 1조로 짝을 이룬 상태로 인지능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린 채 덤벼들었다. 그런 상황에서 임무가 어렵게 느껴지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속보입니다. 오늘 오전 10시 30분, 전규환 전 대통령이 연희동 자택에서 정체불명의 괴한에 의해 피살되었습니다. 다시 알려드립니다. 전규환 전 대통령이 오늘 오전 10시 30분 자택을 나서던 도중 정체불명의 괴한에 의해 피살되었습니다. 현지에 나가 있는 XXX기자를 연결해 자세한 상황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XXX기자?
-XXX입니다. 지금 이곳 연희동은 혼란으로 가득 찬 상황입니다. 경찰차와 구급차가 골목에 가득 들어차 있고, 용의자를 검거하기 위해 경찰 기동대 이천 명이 주변 도로를 통제한 채 검문검색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경찰은 아직 자세한 상화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만, 조만간 경찰청 대변인에 의해 자세한 사건 경위가 발표될 것으로 보입니다.
사람들은 DMB와 인터넷 등을 통해 갑자기 흘러나온 속보에 크게 놀랐다. 그리고 그 소식을 듣기가 무섭게 그들은 하나의 존재를 떠올렸다.
검은 날개를 드리운 그 존재의 이름은 다름 아닌 죽음의 천사.
하지만 뒤이어 공개된 CCTV 등의 화면에 사람들은 더욱 크게 놀라고 말았다.
“어? 죽음의 천사가… 아니네?”
“여자?”
그것은 누가 봐도 명백하게 죽음의 천사와는 다른 인물이었다. 다소 헐렁한 옷차림이고 머리에 두건을 쓰고 있긴 했지만, 사람들은 그런 옷차림에도 불구하고 전 대통령을 살해한 인물이 육감적인 몸매의 여성임을 어렵지 않게 알아보았다.
본래 이런 식으로 살해 장면을 공개하는 것 자체가 이례적인 일이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의혹등을 없애기 위해서도 백마디 말보다 직접 보여주는 것이 나았다. 적어도 이번 일이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살인사건과는 별개의 문제라는 것을 대중에게 알리는데 있어 이보다 확실한 증거는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된 거지?”
“중간에… 모습이 사라지는 거 봤어?”
“순백의 여기사는… 아닌 것 같고.”
새롭게 등장한 암살자의 모습에 어리둥절해 하고 있었던 것도 잠시, 곧바로 세계 각지에서 속보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법을 어기고서도 오히려 법의 보호를 받고 있던 학살자, 파렴치범, 연쇄살인마 등이 그날 하루 동안 약 오백명이나 죽음을 당했다.
게다가 그들을 살해한 자들 또한 각양각색이었다.
어떤 곳에서는 건장한 체구의 신사가, 또 어떤 곳에서는 아이처럼 작달막한 체구의 인물이, 어딘가에서는 무기보다는 꽃이 어울릴 것 같은 가냘픈 체구의 여성이.
그런 식으로 죽음의 천사라고는 생각하기 힘든 인물들이 세계 각지에서 동시다발적인 암살을 일으킨 것이다.
물론 공통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들 대부분은 얼굴이 드러나지 않도록 검은 두건을 쓰고 있었으며, 암살이 끝난 직후 마치 허깨비처럼 모습을 감추었다. 총기는 전혀 사용하지 않았으며, 대부분 깔끔하게 한두 번의 공격 만으로 목표를 단숨에 살해해 버렸다.
-이건 보통 실력이 아닙니다.
-그 말씀은?
-이들은 모두 오랫동안 무수한 경험을 통해 단련된 자들입니다. 모습을 드러낸 시점이라든가, 목표를 처단하는 방식. 그 어느 것에서도 망설임을 찾을 수가 없고, 무기를 세 번 이상 휘두르는 법도 없어요. 인체의 구조와 약점 등을 머리 속으로 생각할 필요조차 없을 정도로 살인 그 자체에 특화된 인간 병기입니다.
방청객들로부터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자 앵커가 질문을 던졌다.
-특수부대 같은 건가요?
-다릅니다. 명백하게 달라요. 특수부대에서는 이런 식으로 목표의 코앞으로 다가가서 암살하는 법 따위는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런 식으로 접근해서 성공한다고 해봐야 빠져나올 길이 없으면 기껏 열심히 가르친 부대원을 버리는 결과밖에 되지 않으니까요. 특수부대에서 접근전을 가르치는 것은, 정말 불가피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의 대처 요령일 뿐입니다.
-그럼, 테러리스트인가요.
앵커의 질문에 패널은 고개를 저었다.
-글쎄요. 어차피 다들 이미 눈치 채고 있을 테니 굳이 말 돌릴 필요 없을 것 같은데요.
-그건…
-모두 짐작하고 있듯이, 이 자들은 모두 죽음의 천사와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연계되어 있는 이들이 분명합니다.
듣고 있던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직접적으로 말은 하지 않아도 모두들 그런 추측을 머리 속에서 떠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단정하시는 이유는 뭔가요.
-그들이 나타나고 사라지는 방식. 그리고 그들이 목표로 삼은 자들. 그것만 봐도 분명해집니다. 이미 많은 전문가들이 예견하고 있었던 일입니다만, 이걸로 명백해진 것뿐이죠. 죽음의 천사는 혼자가 아니었던 겁니다.
-놀라운 얘기군요.
-혼자는커녕, 그는 수백… 아니 어쩌면 수천에 달하는 동료를 가지고 있었던 겁니다. 아니, 어쩌면 이들은 죽음의 천사가 되기 위한 과정에 있는 인물인지도 모르겠군요. 그렇게 되면, 우리들은 수천명이나 되는 죽음의 천사가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을 보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고 보면 죽음의 천사도 하나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얘기가 있었죠.
-그렇습니다. 며칠 전부터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죽음의 천사가 출현했다는 토픽이 계속 흘러나오고 있었으니까요.
-세상에…
-모르겠습니다. 지금으로서는. 이것이 앞으로의 우리 세계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지, 과연 누가 예측할 수 있겠습니까. 그 끝에 지옥이 기다릴지, 아니면 천국이 기다릴지. 오직 죽음의 천사만이 그것에 대한 해답을 가지고 있겠죠.
집행자들은 자신들이 그렇게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았으리라고는 미처 예상치 못한 채 속속들이 임무를 마치고 왕성 라이언하트로 귀환했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지구라는 곳이 그런 식으로 세계 각지의 소식을 실시간에 가깝게 전해 받을 수 있을 정도로 미디어나 통신수단이 발전해 있다는 것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출발은 거의 동시였지만, 성물이 위치한 곳과 목표의 위치가 상당히 멀리 떨어진 경우도 많아서 집행자들의 귀환은 상당한 시간차를 두고 이루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집행자들이 귀환하자, 형진은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 정도의 인원이 아무런 탈 없이 무사히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도록 그들의 상황을 파악하고 지켜보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새삼 존경스러워지는군요.”
[뭐가.]
“항상 이런 일을 해오신 것 아닙니까. 차라리 직접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낫지, 이것도 정말 못해먹을 일이네요.”
[흥.]
원래는 지구에서 임무를 한번 수행할 때마다 왕성 라이언하트에서 숙박 가능한 일수를 하루씩 늘려주기로 했었지만, 실제로 임무를 하달하고 그것을 수행하는 과정을 지켜보니 그런 식으로는 곤란하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성물로부터 목표가 가까운 거리에 있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추적만으로도 거의 반나절이나 걸려버리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형진은 임무 수행 당일은 숙박 일수에서 아예 제외해 버리는 방안을 내놓았고, 이것은 지부장들에게 큰 호응을 받았다.
“이거… 큰일입니다.”
“뭐가요?”
“지부로 돌아가기가 싫어질 것 같아요. 임무를 계속 수행하면 그냥 여기서 눌러 살아도 될 테니까요.”
“하하…”
사실 그건 형진으로서도 바라마지 않는 일이다. 말이 쉬워서 지부장급이지, 그런 인물이 천명 넘게 버티고 있는 장소라면 정말로 마왕 같은 게 나타나도 순식간에 가루가 되도록 쥐어 터지고 말 것이다.
몇몇 사람들은 수백명의 범죄자가 동시에 암살당한 이날을 가리켜 처형의 날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임무에 나섰던 집행자들을 따라 머리에 검은 두건을 쓰고 시내를 행진하기도 했다.
사람들이 예견했던 대로 이날의 사건은 대대적으로 지구라는 이름의 세계를 변화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공포와 죽음의 이름은 그렇게 지구 전역에서 사람들의 마음속에 완전하게 각인되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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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
수고하셨습니다.
어딘가의 누군가와 이름이 비슷하게 느껴지는 건 그저 뇌의 착각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