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4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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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 임무
아란과 프리이는 곧바로 황혼의 권능을 통해 지구로 이동했다.
“음… 별로 공기가 좋지 않네요. 콜록.”
“그러게요.”
지구로 이동한 순간 그들이 가장 먼저 느낀 점은 탁한 공기였다. 프리이는 대륙 북쪽의 소도시 기르카에 위치한 지부에서 살던 사람이고, 아란은 아예 도시라고도 할 수 없는 작은 마을 그란웰의 지부장이다. 당연히 이런 종류의 매연 같은 것에 익숙할 이유가 없다고나 할까.
하지만 가장 먼저 엄습해 오는 탁한 공기에 얼굴을 찌푸리던 것도 잠시, 그들은 이내 눈앞에 드러난 거대한 빌딩숲의 모습에 압도되고 말았다.
“…”
“엄청… 나군요.”
높이가 얼마나 되는지 내려다보는 것만으로도 현기증이 나는 것 같은 느낌이다. 특히 아란은 안색마저 창백해진 상태였다.
여기엔 비밀이 한 가지 있다. 아란은 사실 고소 공포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이 수상 가옥의 최상층을 선택했을 때 얼굴을 찌푸린 것도 따지고 보면 그래서인데, 느닷없이 하늘 높이 솟은 마천루 꼭대기에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으니 오죽 당황스럽겠는가.
하지만 프리이는 그런 아란의 기색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임무를 확인했다.
[복수] -수많은 시민들이 학살자에 대한 정당한 심판을 원하고 있다.-제한계급: 상급성도
-보수: 은화 29개, 팩션 공헌도 50.
보수가 상당히 높다. 수배자 처형 같은 임무의 보상이 보통 은화 열 개 안팎에 불과한 것에 비하면. 다른 세계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보통 수준의 살인지는 아니라고 봐야 한다.
다만 이상한 점은 수배자 처형이나 암살 의뢰가 아니라 복수라고 지정되어 있는 점. 복수는 사적 제재를 공포와 죽음의 이름으로 실현하는 의뢰인데, 지부장급인 아란이나 프리이도 이런 의뢰 종류가 있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 실제로 맡아본 것은 사실상 이번이 처음일 정도로 드문 의뢰 가운데 하나이다.
“음… 아무래도 이곳에서 일단 내려가는 편이 좋을 것 같네요.”
의뢰 목표와의 거리를 확인한 프리이가 그렇게 말하자 아란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요.”
문제는 어떻게 이곳을 내려가는가 하는 점. 지금까지 두 사람은 의뢰를 수행하면서 건물 내부의 계단 같은 걸 이용해서 내려가 본 적이 없다. 어지간한 수준의 높이라면 그냥 이동 스킬만으로 해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그들이 있는 이 건물은 감히 그런 상상을 떠올리는 것조차 난감할 정도로 높이 솟아 있다.
잠시 고민하던 두 사람은 결국 계단을 통해 내려가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곧바로 문제가 발생했다. 아래로 내려가는 문을 찾는 것조차 쉽지 않았던 탓이다.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 해도 안심해서는 안 됩니다. 그곳에는 카메라라는 설비가 있어서 사람이 없이도 감시가 가능합니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설치되어 있는 카메라만으로도 범죄자의 행적을 추적하는 것이 가능할 정도죠.
지구라는 곳에서 임무를 수행할 때 주의해야 할 점으로 형진이 말해준 내용 가운데는 카메라라는 기물에 대한 것도 있었다. 마법도 아니고 그런 것이 가능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던 지부장들이었지만, 곧바로 형진이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 보여주자 그들은 이 기이한 장치가 자신들의 인지능력을 벗어난 물건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란과 프리이는 그런 주의사항을 바로 떠올리고는 조심스럽게 은신과 잠행을 펼쳐 출입문을 탐색했다. 하지만 너무 조심한 나머지 고작 옥상과 건물 내부로 이어진 출입문을 찾는 데만 십여분의 시간을 소비해 버리고 말았다.
[만만치 않네요. 이거.] [뭐가 이렇게 복잡한지.]프리이는 곧바로 손잡이로 보여지는 물건을 비틀어 문을 열려다가 다시 흠칫 해버렸다.
-지구에서 범죄자를 찾는 방법 중 하나는 지문이라는 것을 탐색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손에는 각기 서로 다른 무늬가 있는데, 맨손으로 무언가를 만지게 되면 땀이나 기름기등이 물건에 묻으면서 그 무늬가 남게 되죠. 물론 여러분의 지문에 대한 정보를 그들이 알고 있지는 않겠지만, 그렇게 남은 지문으로 인해 나중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 역시 다분합니다. 그러니 임무 중에는 절대로 맨손으로 물건을 만지거나 하지 않으시는 것이 좋습니다.
[깜박할 뻔 했네요.] [조심해야 겠어요.]프리이는 얼른 장갑을 손에 낀 다음에야 조심스럽게 건물 내부로 통하는 방화문을 열고자 했다. 하지만 손잡이를 비틀어도 문은 열리지 않았다. 잠겨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죠?] [음… 부수게 되면 나중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렇겠네요.]이곳은 황혼의 성물이 배치된 곳이니 가급적 이 세계의 사람들이 그것을 눈치 채지 못하도록 조심할 필요가 있다. 잠시 고민하던 두 사람은 결국 내부 구조를 살핀 다음 순간 이동 스킬로 이 난관을 돌파하기로 결정했다.
다행히 안쪽을 살필 수 있는 창문이 근처에 있어서 내부 구조를 확인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안쪽을 살피던 두 사람은 마침내 다른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는 천천히 자신들이 보유한 순간 이동 계열의 이동 스킬을 사용해 방화문 안쪽으로 이동했다.
이동 직후 잠시 그대로 멈춰선 채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다른 반응을 기다렸지만 다행히 그들의 행동은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은 모양이다.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킨 두 사람은 끝도 없이 이어진 것 같은 계단을 천천히 내려갔다. 불행히도 그들은 엘리베이터라는 문명의 이기에 대한 정보는 전혀 알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고, 그래서 수십층이 넘어가는 마천루의 계단을 오직 자신의 발로만 걸어 내려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기이하군요. 이 정도로 거대한 건물인데 오가는 사람이 이렇게 없다니.] [그러게요. 뭔가 특별한 목적이 있는 건물인건 아닐까요.] [그럴 수도 있겠군요.]수십층짜리 건물을 걸어서 오르내리는 사람이 많으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가끔 운동한다고 계단을 이용하는 사람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나마도 식사 시간 같은 때나 볼 수 있는 모습이고 지금 같은 업무 시간이라면 비상 계단은 텅텅 비어 있는 것이 오히려 일상적인 모습이다.
어딘가 있을지도 모르는 카메라의 위협에 긴장하며 두 사람은 결국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건물을 내려오는데 성공했다. 다행히 아래층의 비상계단 출입구는 활짝 열려져 있는 상태라서 문을 열고 들어가거나 이동 기술을 쓰지 않아도 되었다.
[많네요.] [정말요.]건물의 1층은 그들이 지나왔던 비상계단과는 다르게 사람들의 움직임이 꽤 많았다. 두 사람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모습에 조금 당황했지만, 역시나 은신 상태로 조심스럽게 출구를 향해 움직였다.
하지만 여기서 또다시 문제가 발생했다.
띠링링!
[헉!] [이, 이건…]유리벽인줄 알고 지나치는데 갑자기 벨소리와 함께 자동문이 열리며 그리로 사람들이 들어온다. 프리이와 아란은 크게 놀라며 얼른 몸을 피해야만 했다.
근처에 그렇게 두 사람이 몸을 숨기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사람들은 뭐라 뭐라 떠들며 안쪽에 위치한 커피숍으로 향했다.
스르르르.
사람들이 지나가자 문은 다시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닫힌다.
놀란 나머지 잠시 몸을 움츠리고 있던 두 사람은 한참이나 지난 뒤에야 겨우 숨을 돌렸다.
[신기하네요.] [역시 카메라라는 것이 지켜보고 있는 걸까요.] [그런지도 모르겠군요.]공포와 죽음이 하사한 스킬인 은신의 효과는 너무나 탁월해서, 자동문의 적외선 센서도 그들을 탐지하지 못했다. 여기까지는 괜찮았지만, 문제는 어떻게 이 문을 통과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점이다. 자동으로 문이 열리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손잡이가 있는 것도 아니니 둘은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이곳의 보안은 참으로 대단하군요.] [이런 식의 문이라면 보통 사람은 은밀하게 침입하는 것도 쉽지 않겠어요.]그렇게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를 주고 받고 있는데, 마침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한 사람이 다가왔고, 그제서야 두 사람의 앞을 가로막고 있던 문이 다시 한 번 열렸다.
[지금!] [넷!]둘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열려진 문틈으로 재빨리 건물을 탈출했다.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던 사람은 갑자기 뭔가 옆을 스쳐 지나가는 기척을 느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는 바람이라도 부는 건가 싶은 생각을 떠올리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어찌 어찌 탈출은 했습니다만, 이래서야 돌아갈 때가 문제네요.] [뭔가 다른 대책을 생각해 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렇게 탈출로가 고립되어 있는 건 문제의 소지가 있어요.] [그렇겠네요. 돌아가면 진님에게 건의하도록 하죠.] [네.]프리이의 이에서 진의 이름이 나오자 아란은 거의 조건 반사 같은 느낌으로 움찔했지만 모른 척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도시에는 높게 솟은 건물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바쁜 시간이 지나서 그나마 좀 한적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오가는 사람들을 피하는 것이 쉽지 않다.
게다가 옆을 지나가는 수레와 같은 거대한 탈것 또한 쉽게 익숙해지기 어려웠다. 강철과 유리로 이루어진 그 탈것이 스쳐지나갈 때마다 둘은 그곳으로부터 적이 튀어 나와 총이란 것을 쏘아대는 것이 아닌지 몰라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후… 쉽지 않네요. 정말.] [사람들에 탈것에… 신경이 타들어 가는 것만 같아요.]어쨌든 그렇게 도심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던전을 가까스로 돌파한 그들은 마침내 목표가 있는 주택가에 도착했다.
목표의 저택은 두 채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입구로 들어가는 골목의 양 끝에는 경비 초소가 자리 잡고 있었다.
두 사람은 오가는 행인들과는 확연하게 다른 제복 차림의 사람들이 지키고 있는 초소의 모습을 보고는 다시 긴장을 바짝 당겼다.
프리이는 주위를 둘러보고는 목표의 저택 근처의 건물 하나를 지정했다.
[저쯤이 좋을 것 같군요. 일단 올라가보죠.] [네.]두 사람은 일단 저택이 잘 내려다 보이는 건물 위로 올라갔다. 하지만 생각보다 담장 안쪽의 모습은 확인하기가 어려웠다. 앞서와 같은 높은 건물이라면 몰라도 대부분 고만고만한 주택들이 늘어선 곳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프리이는 일단 건물 옥상 위에 몸을 숨기고 들어앉아 본격적인 임무 보조의 수행에 들어갔다.
[저는 준비 되었습니다. 그럼 무운을 빕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프리이가 임무 보조에 들어가자 시야에 지금까지와는 다른 다양한 정보들이 표시된다. 일반적으로는 인지하기 힘든 범위의 다양한 정보들이 시각화 되어 아란의 시야에 링크되기 시작한 것이다.
다소 생소한 느낌에 잠시 머뭇거리던 아란은, 이내 건물 위를 조심스럽게 이동하여 목표를 나타내는 화살표가 있는 건물 위로 이동했다.
지잉.
문득 나무들 틈에서 작은 소음이 들려온다. 바라보니 길쭉한 형태의 기계 같은 것이 천천히 움직이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저게 바로 카메라라는 건가.
잠시 그렇게 카메라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는데, 문득 안쪽에서 들려오는 말소리가 아란의 예민한 청각에 감지되었다.
“그냥 집에 있는 것이 좋지 않겠어요? 요즘 하도 뒤숭숭해서.”
“그런 소리 말아. 이런 때 움츠러들고 그러면 오히려 안 좋아. 이런 때는 오히려 당당하게 나서야 하는 거라고.”
“그래도…”
아란이 시선을 돌리자 목표가 천천히 움직이고 있는 것이 감지되었다. 그리고 지하로부터 무언가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더니 앞서 길거리에서 그들을 놀라게 했던 탈것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조심해요.”
“사람 참. 걱정 말라니까.”
뒤이어 문이 열리며 머리가 벗겨진 인물 하나가 모습을 드러낸다. 화살표는 그 인물이 바로 목표라는 듯이 아래를 콕콕 찌르는 느낌으로 머리 위에 떠 있었다.
그냥 모습만 봐서는 딱히 학살자스러운 느낌은 들지 않는다. 젊었을 때는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저 노쇠한 남성에 불과하다고나 할까. 하지만 아란은 방심하지 않았다. 일부러 지부장급을 불러들여 처리하게 할 정도의 인물이니까.
목표가 모습을 드러내자, 곧바로 검은 옷차림의 남자들이 나타나 정중하게 인사를 건네고, 차량 하나가 담장 밖에 자리 잡는다. 모습을 보아하니, 탈것을 이용해 어딘가로 이동하려는 모양이다.
“자네들이 수고가 많아.”
“별 말씀을.”
“그래. 고생해.”
남자들에게 그렇게 인사를 한 목표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아란은 나무 위에 표범처럼 웅크린 채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목표가 자신의 아래쪽을 지나가자 마치 유령처럼 등 뒤로 떨어져 내렸다.
============================ 작품 후기 ============================
두편째.
센스8 보다가 늦잠 자버렸습니다. 쿨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