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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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 확장
달칵.
형진의 명령과 함께 안전장치가 풀리는 듯한 작은 소음이 선체에서 흘러나왔고, 즉시 ‘이슬’호의 외형에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촤르륵! 덜컥! 덜컥!
접히고 펴지고 열린다. 그렇게 ‘이슬’호의 바깥을 뒤덮고 있던 목재 부분이 벗겨지자 그 안에 감추어져 있던 것들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배의 앞머리가 병정개미의 강인한 턱처럼 열리며, 그 안에 감추어진 우람한 포문이 시커먼 기운을 풍기며 실체를 드러낸다. 배의 옆구리 부분에서는 갈레온의 포열이 드러나듯 장갑이 젖혀지며 곤충의 겹눈 같은 느낌의 붉은 구슬들이 자리를 잡는다. 용골은 뒤로 젖혀지며 전갈의 꼬리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고, 용골과 함께 배의 무게를 지탱하던 늑골은 사마귀의 집게처럼 흉악한 무기가 되었다.
선체 위에 펼쳐져 있던 마스트에는 세인트 엘모의 불을 떠올리게 만드는 불길이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순백의 돛은 죽음을 의미하는 듯한 검은 빛으로 물들었고, 이내 그곳으로부터 알 수 없는 힘이 뻗어 나와 주위를 뒤덮어 버린다.
“뭐… 뭐야, 저게!”
아름다운 순백의 범선이 곤충을 닮은 기괴한 형태로 변화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하지만 위에서 아래쪽의 상황을 내려다보는 사람들은 그나마 나았다. 문제는 지상에서 그것의 분노를 받아내야 할 자들.
번쩍!
선수의 포구로부터 한 줄기 빛이 터져 나와 주석궁을 덮친다. 막고 말고 할 틈도 없었다. 방법도 없었다. 그저 번쩍하고 무언가 빛이 터져 나온 순간, 거대한 주석군이 모래성처럼 허물어지는 모습을 그저 멀거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쿠르르르르!
대기 중이던 전차들이 급히 ‘이슬’호의 앞을 가로 막으며 포를 쏘아댄다. 하지만 분노한 괴물 같은 형상으로 변화한 ‘이슬’호는 그 모든 공격을 가소롭다는 듯이 지켜보더니, 이내 옆구리에 드러나 있던 구슬 가운데 하나가 알 수 없는 빛을 번쩍 발했다.
“헛?”
“뭐, 뭐지? 안 보여!”
그 한 번의 공격으로 ‘이슬’호의 전면을 가로 막던 전차에 탑승한 자들의 눈이 멀었다. 아무리 최신식 병기를 들이밀어도 소용이 없다. 정작 그것을 운용하는 자들의 눈이 멀고 귀가 먹어 버린다면, 결국은 그럴 듯한 쇠깡통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콰득!
흉폭한 사마귀의 앞발과도 같은 ‘이슬’호의 다리 하나가 그런 전차를 위에서 내리찍자, 어이없을 정도로 간단하게 장갑이 관통되며 그대로 고철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뒤늦게 이륙한 공격 헬리콥터들이 이슬호의 주위에 모여들었다. 하지만 앵앵 거리는 모기 떼 같은 적의 출현을 인지하는 즉시, 다시 한 번 옆구리에 박혀 있던 구슬 가운데 하나가 사이한 빛을 번뜩였고, 뒤이어 높게 치솟아 있던 꼬리로부터 푸른 화염 같은 것이 채찍처럼 뿜어져 나오자 공격 헬기들은 변변한 공격 한 번 못하고 이미 무너져 내린 주석궁 주위에 줄지어 추락해 버린다.
“악취미에요.”
“뭐가?”
“이슬이가 이 모습을 보면 아마 울어버릴지도 몰라요.”
“크흠…”
순백의 날개를 지닌 아름다운 백조가, 지옥에서 기어 올라온 흉폭한 괴물 같은 모습으로 변한 것은 어디까지나 형진의 마이너한 취향 때문이다. 물론 개중에는 이런 식의 완전한 이미지 체인지를 마음에 들어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솔직히 꺼림직하게 느낄 수밖에 없는 일이다.
다행히 ‘하늘’호와 ‘세연’호는 이미 높이 떠올라 평양 상공으로부터 이탈한 뒤였기 때문에 ‘이슬’호의 이런 괴악한 변형을 지켜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갑작스런 사태에 놀라 모든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각국의 정부들은 이 모든 상황을 똑똑히 지켜보고 있을 터.
“정말… 마음에 드는군.”
러시아 대통령은 평양 주재 러시아 대사관에서 보내오는 영상을 향해 보드카가 담긴 잔을 들어 올리며 그렇게 말했다. 아름다운 순백의 백조가 탈피하여 지옥의 마수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는 그 모습이 그의 감성을 크게 자극한 탓이다.
가장 크게 부각되는 것은 역시 선수에 달린 크고 검은 포신과 용골이 변화한 꼬리, 그리고 사마귀의 앞발처럼 흉폭한 느낌의 다리겠지만, 실제로 ‘이슬’호의 주무기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다름 아닌 검게 변해 버린 돛과 옆구리에 달린 구슬들이다.
검게 변한 돛은 주위에 파장을 퍼뜨려 일정 반경 이내의 생명체들이 지닌 마법 저항력을 낮추는, 일종의 디버프 병기다. 귀뚜라미나 매미의 날개처럼 잘게 떨리며 인간의 귀에 들리지 않는 고주파 대역의 음파를 발산하는데, 필요할 경우 반대로 버프 능력을 부여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를테면 바드의 능력을 아티팩트로 구현한 형태라고나 할까.
옆구리에 박혀 있는 구슬들은 좀 더 다채로운 마법을 구현할 수 있다. 이 구슬들은 각자 다른 마법을 발현할 수 있으며, 한쪽에 열 개씩 모두 스무 개가 장착되어 있다. 다시 말해, ‘이슬’호는 최대 20가지의 서로 다른 마법을 동시에 발현할 수 있는 수단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방금 전에 전차와 공격 헬기에 탑승한 자들에게 발현한 것과 같은 상태 이상 마법은 물론이고 구체적인 공격 마법 또한 발현이 가능한 강력한 마도구인 셈이다.
순식간에 주석궁 주위를 초토화시킨 ‘이슬’호는, 이제 이 모든 일을 일으킨 원흉을 찾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만히 있으면 알아서 집행자들이 방문했을 텐데, 굳이 나를 움직이게 만들다니.”
당연한 얘기지만 이 땅의 독재자 역시 이미 집행자들에게 임무의 목표로 지정이 된 상태였다. 단지 어찌어찌 하다 보니 순위가 뒤로 밀렸을 뿐, 언젠가 처형이 될 운명이었다고나 할까.
어떻게 보면 그런 상황이 앞서와 같은 무모한 시도를 하게 만든 원인일 수도 있었다. 나름 친하게 지내던 각국의 독재자들이 하나둘씩 집행자들에게 당해 처참한 시체로 변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자신도 그런 꼴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인해 두려움에 떨다가, 다른 세상에서 뚝 떨어진 것 같은 신비하고 아름다운 범선이 근처를 지나자 그것을 이용해 이 지구라는 땅덩이로부터 도망치려고 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의도야 어찌되었든 건드려서는 안 될 것에 손을 대려 한 일은 분명한 사실.
형진 역시 상황 파악이 덜 된 멍청한 작자들 가운데 하나가 이런 식의 되도 않는 일을 저지를 것이라는 예상을 하고 굳이 ‘하늘’호의 항해를 은밀하게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지만, 하필 그 일이 벌어지게 될 장소가 이곳이 될 줄은 미처 예상치 못했다.
“위치는?”
“지하 통로로 이동 중입니다.”
“두더지 같은 놈.”
북한 지도부를 제거하기 위한, 일명 참수작전은 오래 전부터 한국과 미국에 의해 논의되어왔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런 정보를 듣고도 가만히 있으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 아마도 지금 탈출에 사용되고 있는 지하 통로 역시 그런 용도로 만들어진 것이리라.
“잘 됐군. 국지형 결계 발동.”
“국지형 결계 발동.”
요안나의 복창과 함께 마스트 위에서 빛나고 있던 불꽃이 확하고 피어오르며 주석궁 인근에 결계가 형성되었다. 이것은 평소에 ‘이슬’호 주위를 두르고 있는 황혼의 결계와 같은 종류의 것이었지만, 스스로의 선체를 보호하기 위함이 아니라 대량 파괴 병기를 사용할 때 주위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수단 가운데 하나였다.
결계가 발동되자 도망중인 목표 주위의 일정 공간이 황혼의 결계로 주위의 다른 공간들과 단절되었다.
“결계 완성되었습니다.”
“템페스트 발동.”
“템페스트를 발동합니다.”
형진의 명령이 떨어지자 ‘이슬’호의 옆구리에 박혀 있던 구슬들이 마치 전구에 불이 들어오는 듯한 느낌으로 하나씩 툭툭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목표 주위에 둘러쳐진 결계 안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구구구구구구!
가장 먼저 일어난 변화는 진동이었다. 결계 안에 존재하는 지표가 마치 경련하는 것처럼 부르르 떨렸고, 그것은 마침내 격렬한 지진으로 변화했다.
결계 안의 건물과 각종 구조물들은 그 강력한 지진을 견디지 못하고 힘없이 무너지기 시작했으며, 그것은 견고하게 구축된 지하 통로 역시 마찬가지였다.
차량을 타고 지하 통로를 이용해 도망치던 목표와 그 측근들은 비명을 질러대기 시작했지만, 지구상의 그 누구도 그들의 비명 따위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었다.
게다가, 템페스트라는 이름의 대마법은 이제 고작 시작된 것에 불과하다.
지진과 함께 지면에 들끓기 시작하고 구조물들의 붕괴가 시작될 즈음, 대기 역시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이내 강렬한 폭풍이 되었고, 결계 안의 모든 것을 날려버릴 것만 같은 거대하고 강렬한 회오리로 변화했다.
그렇지 않아도 이미 무너지고 부서져 있던 그 안의 물질들은 그 강렬한 폭풍에 휘말리며 하나씩 떠올랐다. 그리고 마치 거대한 믹서기에 넣어진 것처럼 맹렬하게 회전하며 서로의 몸을 부딪혀가며 더욱 잘게 파쇄되기 시작한다.
“맙소사…”
‘이슬’호의 변형 까지도 나름 느긋하게 지켜보던 러시아 대통령이었지만, 그 거대한 파괴의 현장에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하지만, 이것조차도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화륵!
결계 안에서 문득 불꽃이 피어올랐다. 그 안에 있던 인화성 물질이 이 거대한 파괴에 의해 불이 당겨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얼핏 떠올렸지만, 단순히 그런 우연의 산물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의 강렬한 불길이 이내 결계 안을 완전히 뒤덮어 버렸다.
그렇지 않아도 잘게 분쇄되어 가던 그 안의 모든 것들은 모든 것을 녹여버릴 것만 같은 강렬한 불꽃 속에서 급격하게 산화 현상을 일으키며 불타 버렸다. 나무도, 무쇠도, 바위도, 그리고 그 안에서 고통에 몸부림치며 허우적거리던 보잘 것 없는 인간의 육신도.
거대한 불의 회오리는 결계로 인해 구분된 공간 안을 맹렬하게 휘몰아쳤다. 안과 밖을 구분하는 결계의 영향으로 그것은 거대한 불의 구체를 연상시키고 있었다.
그렇게 휘몰아치던 불의 회오리는, 마침내 그 안에 더 이상 태울 것이 남지 않게 되고 나서야 서서히 멈추기 시작했고, 이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평온하게 가라앉았다. 휘몰아치던 폭풍, 템페스트가 가라앉고 나자 그 안에는 눈이 내린 것처럼 새하얀 잿가루만 소복하게 쌓여 있었다.
“물 좀 뿌려.”
“네.”
다시금 옆구리에 달려 있던 구슬 하나가 빛을 발하자, 결계 안에 물이 뿜어지며 잿가루들을 적셨다. 그리고 다시 차가운 한기가 그 안에 몰아치자, 촉촉하게 젖어든 잿가루들은 그대로 꽝꽝 얼어붙고 말았다.
평양 시내는 침묵에 잠겼다.
서둘러 달려오던 군인들도, 그들이 몰고 오던 장비들도 지금 이 순간 더 이상 움직일 엄두를 내지 못했다.
단순히 건물 같은 것을 부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일정 지역을 강렬한 폭발로 날려버리는 것도 아니었다. 아마도 그들의 수괴가 탈출하고 있었을 것이라 판단되는 지역 전체를 문자 그대로 갈아버리고 태워버리고 얼려버렸다. 그것도, 다른 지역에는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은 채.
그러니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엎드려 기원할 수밖에 없었다. 부디 저 지옥의 마수가 자신들에게로 시선을 돌려 또다시 그 강렬한 파괴의 권능을 발휘하지 않기를 그저 간절히 무릎 꿇고 기원하는 것 외엔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목표 소멸 확인.”
형진은 가볍게 주위를 한 번 둘러보고는 다시 명령을 내렸다.
“전투 상황 해제.”
“전투 상황을 해제합니다.”
요안나의 복창과 함께 ‘이슬’호는 다시 본래의 순백의 범선으로 변화했다. 하지만 이미 그곳의 누구도 이 아름다운 배를 그저 예쁘장하기만 한 장식품으로 보지 못했다. 감히 고개를 들어 바라볼 엄두조차 내지 못한 채 어서 자신에게 내려진 재앙이 물러가기만을 기원할 뿐이다.
“물러난다.”
“이대로요?”
“왜? 아까워?”
“그런 건 아니에요. 다만… 이 지역의 형세를 감안하면, 이후 큰 혼란에 빠질 가능성이 있어요.”
“글쎄. 예전이라면 몰라도 지금은 그렇지도 않을 걸.”
예전이었다면 확실히 요안나의 말대로 무주공산이 되어 버린 이 작은 땅덩어리에 주변 강대국들이 바로 손을 뻗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이번에 일어난 사건의 전모를 보고도 함부로 이 땅에 손을 뻗을 이가 과연 있을까. 공연히 욕심을 내다가 마침내 이빨을 드러내 보인 미라지 코어에게 트집이라도 잡히면 그게 더 큰 일이다. 솔직히 이 땅이 그 정도로 먹음직스러우냐고 묻는다면 그것도 아니지 않은가.
“이 땅에 퍼부을 돈이 있다면 차라리 엘 파르드에 쏟아 붓고 말지.”
“…”
자신의 나라인 엘 파르드조차 아직 개발이 제대로 시작되지도 않았다. 물론 그것은 기본적인 생활 여건을 먼저 갖추어 주고 교육등을 통해 국민들을 통합하는 일을 먼저 이룬 다음, 무리하지 않고 차츰 기반을 쌓아가고자 하는 생각에서였지만, 어쨌든 투자를 해야 한다면 명백히 자신의 나라가 되어 있는 엘 파르드에 먼저 손을 쓰는 것이 옳다.
“출발해.”
“네.”
형진의 명령에 따라 ‘이슬’호는 천천히 허공으로 떠오른 뒤, 이내 모습을 감추었다. 하지만 방금 전의 그 모든 것을 보고 들은 이들은 ‘이슬’호가 사라지고서도 한참이나 그 자리에 못박힌 채 차마 고개를 들지 못했다.
============================ 작품 후기 ============================
두편째.
밥먹어야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