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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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 확장
평양에는 모두 이십여 개의 외국 공관이 존재하고 그들은 이 삭막한 동토를 방문한 아름다운 범선의 모습을 담기 위해 이목을 집중하고 있다가 예상외의 첩보를 손에 넣었다. 당국이 ‘하늘’호 나포를 위해 외국 기자의 접근을 불허한 탓에, 이들이 생각지도 않은 정보를 손에 넣은 것이다.
러시아나 중국, 영국 등은 북한과 상호 대사 파견국이라 별 어려움 없이 직접 정보를 얻었지만, 미국의 경우 기자들의 접근이 불허된 상황에서는 위성 외에 다른 정보 획득 수단이 없었다. 지금까지는 ‘하늘’호에 탑승한 이들 가운데 FBI 요원이나 연방 정부 관계자, 그리고 기자들을 통해 정보를 얻고 있었지만, 그들이 탄 ‘하늘’호가 평양에서 이탈한 뒤의 구체적 상황을 파악하는데 위성은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미국은 외교 채널을 총동원해서 상주 공관을 가진 나라들과 접촉했고, 상당한 수준의 대가를 제시하고 나서야 문제의 영상을 획득할 수 있었다.
“…”
그리고, 그들 역시 침묵에 잠겼다.
그것은 지금까지 그들이 알고 있던 어떠한 무기와도 궤를 달리하는 것이었다. 역시나 그 방면의 전문가들답게, ‘이슬’호의 충격적인 변형보다도 그 뒤에 일어난 강력한 파괴 능력이 그들을 사로잡고 있었다.
“일단… 이 공격은 크게 몇 단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하늘’호를 감싸고 있는 무언가와 동일한 원리의 것으로 보이는, 차폐막… 정확한 명칭은 아닙니다만 일단 차폐막 정도로 칭하겠습니다. 아무튼 그것의 형성이 첫 번째 단계로 추정됩니다.”
“이 차폐막의 형성으로 공간이 단절된 다음, 지진이 발생합니다. 물론 다른 지역에는 영향을 주지 않고 차폐막 안쪽에만 영향을 주는 형태입니다. 제 주관적인 판단으로는 이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지진과는 달리, 일종의 공명 현상을 이용한 진동 유발이 아닐까 싶습니다.”
“세 번째 단계는 돌풍입니다. 지진으로 인해 부서진 지반 위에 토네이도를 연상시키는 거대한 돌풍을 만들어내 그 안의 물질들이 서로 부서져 파쇄되도록 만드는 형태입니다. 믹서기를 연상하면 쉽겠죠.”
“네 번째는 화염입니다. 내용물 간의 상호작용으로 인한 우발적인 화재의 가능성도 있습니다만, 역시 지금으로서는 인위적인 화염 발생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이상의 네 가지 단계로 이루어진 복합적인 공격이라는 것이 저희들의 판단입니다.”
보좌관들이 그렇게 단계별로 공격 방식을 분석하자, 대통령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그 뒤에 물 세례라든가 냉동 같은 공격도 있지 않았나?”
“그것은… 저희들 판단으로는 그저 타고 남은 재가 아무렇게나 날리는 것을 막고자 한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실제로 그 시점에서 이미 차폐막 안쪽의 물질들은 모조리 한줌 재가 되어 버린 상황이었으니까요.”
“그거 참…”
그 외의 공격 무기로는 선수의 대형 무기와 사마귀의 집게를 연상시키는 다리, 그리고 용골이 변화한 것으로 보이는 꼬리와, 솔라 세일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던 돛 등이 있었다.
“저 무기 체계가 사용되었을 경우 방어 가능성은?”
“…”
보좌관들은 서로 눈치를 보기 시작했고, 결국 옆에서 그것을 지켜보던 국방 장관이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현재로서는… 현존하는 어떤 무기 체계로도 저 배를 막을 방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현존하는 무기 체계라면… 핵으로도?”
“네. 핵으로도.”
“어째서?”
대통령의 물음에 국방부 장관은 다시 보좌관에게 고개를 끄덕였고, 눈짓을 받은 보좌관은 ‘이슬’호의 전투 영상을 분석한 화면을 다시 전면의 스크린에 띄웠다.
“처음 이 세 번째 선박이 주석궁 위로 돌입할 때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그 뒤에 전차들이 공격을 가하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폭풍형태의 공격을 가할 때의 모습입니다. 이것을 잘 살펴보면, 앞서 말씀하셨던 차폐막이라는 것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방어막과는 다른 종류의 것임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보통 무언가를 막아내기 위한 방어재의 대부분은 내구성이란 것을 지닙니다. 아무리 강력한 장갑판이라도 계속 두들기게 되면 언젠가는 뚫릴 수밖에 없는 법입니다, 이것은 전함이나 전차의 장갑판은 물론이고 핵 방어 능력을 가진 벙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현재의 방어재들이 모듈 장갑과 같은 형식을 통해 일회성으로 바뀌어 가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죠. 천년만년 모든 것을 다 막아내는 방어재가 아니라, 차라리 내구성을 포기하고 한 번의 치명적인 공격을 확실하게 막아내는 쪽으로 선회한 것이라고나 할까요. 무기의 공격력이 월등하게 높아진 관계로 이런 차선책을 취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차폐막은 반대라는 건가?”
“그렇습니다. 이 차폐막은 기본 개념부터가 우리가 알고 있는 방어재와 다릅니다. 기존의 방어재들이 공격을 ‘견뎌내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이 차폐막은 문자 그대로 공격을 ‘거부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보여집니다.”
“으음…”
대통령이 작게 신음을 흘리자 다른 보좌관이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사실 문제는 이 차폐막만이 아닙니다.”
“그럼?”
“다음의 영상을 봐주십시오.”
보좌관은 미국이 애써서 입수한 ‘이슬’호의 전투 영상이 아닌, ‘하늘’호의 기자 가운데 하나가 찍은 영상을 스크린에 띄웠다.
“이건…”
해당 영상은 프리츠가 최초 ‘하늘’호를 나포하려고 의사로 위장한 채 탑승했던 적부대의 지휘관을 날려버리는 장면으로부터, 간호사로 위장한 여성 부대원이 쏜 탄환을 맨몸으로 받아내는 장면까지를 담고 있었다.
“으음…”
분명히 명중 했음에도 불구하고 옷조차 뚫지 못한 채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는 탄환의 모습에 대통령은 침음성을 흘렸다.
보좌관은 영상이 끝을 맺자 모두를 바라보며 말했다.
“얼핏 생각하기에는 앞서의 영상과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만, 이 영상과 이전 영상에는 명백한 차이가 있습니다.”
“어떤?”
“앞서의 영상에서 이른바 차폐막은 선체에서 일정 거리가 떨어져 있었고, 또한 복잡한 형상 대신 단순한 형태를 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하지만 뒤의 영상을 보면, 명중된 탄환이 프리츠라는 이 인물의 몸에 닿았다가 떨어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얼핏 생각하기에는 별것 아닌 차이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만, 실질적으로는 매우 중대한 차이입니다.”
“잘 이해가 안 가는군. 어쨌든 공격 효과를 거부하는 것은 마찬가지로 보이는데?”
“다릅니다. 앞서의 영상에서 보여진 차폐막의 효과가 ‘거부’라면, 뒤의 영상에서 보여진 무언가의 효과는 명백한 ‘무효화’이기 때문입니다.”
“무효화? 공격 자체를 없던 일로 돌려 버린다는 말인가?”
대통령이 놀란 표정으로 되묻자 보좌관은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그덕였다.
“그렇습니다. 앞서 차폐막에 도달한 공격을 보면 내부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튕겨나가거나 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것이 아니더라도, 이른바 폭풍 공격을 가했을 때 내부에서 소용돌이 치던 물질들도 차폐막에 닿는 순간 그 위력이 현저하게 감쇄하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런 ‘거부’효과가 있었기 때문에 폭풍이라든가 화염 같은 효과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감쇄되는 일 없이 계속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이죠.”
보좌관은 그렇게 말하고는 프리츠가 탄환에 맞을 때의 모습을 다시 비췄다.
“하지만 이 탄환은 전혀 다른 반응을 보였습니다. 프리츠라는 인물의 몸에 맞는 순간, 지니고 있던 모든 운동 에너지가 소멸된 채 그냥 바닥에 툭 하고 떨어지고 말았죠. 물론 입고 있던 옷이나 피부에 충격파 같은 것이 전달되는 모습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문자 그대로 지니고 있던 위력 자체가 소멸해 버린 겁니다.”
“그래서 무효화라고…”
“그렇습니다. 저는 아마도 이 선박들의 방어 체계가 이렇게 ‘거부’와 ‘무효화’의 두 가지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고 판단합니다. 이 거부와 무효화가 지닌 효과가 어디까지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만약 일각에서 추측하는 것처럼 대기권 외부에서의 활동까지 전제한 것이어서 방사선 같은 것 또한 훌륭하게 차폐할 수 있을 정도라면, 당연히 핵에 의한 공격도 의미 없는 일이 되어 버립니다.”
“맙소사…”
거부와 무효화의 범위가 열과 폭풍을 넘어 방사선까지 적용된다면, 이것은 틀림없는 일이 되어 버린다. 물론 확인하려고 핵무기를 때려 넣을 필요도 없다. 지금의 상태로 우주 항해가 가능하다는 것만 증명되어도 충분한 일이니까.
모든 것을 막아낼 수 있는 절대의 방패, 그리고 현재로서는 막아낼 도리가 없는 절대의 무기. 보통 창과 방패 중 무엇이 우월한지에 대한 논쟁은 인류의 역사가 이어지는 동안 끊임없이 계속되어 온 일이지만, 절대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의 창과 방패가 하나의 무기 체계에 집적된 것은 어쩌면 이번이 처음이 아닐까.
하기야 그토록 우월한 기술력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무기에 손을 대지 않았으리라 생각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애초에 엘리시온은 전투의 측면이 상당히 강조되어 있는 게임이기도 하고. 문제는 설마 게임 속의 여러 가지 공격 수단들이 이런 식으로 현실화될 거라고 미처 예상치 못했다는 정도겠지만.
“저… 약점이라고 하긴 뭐하지만 단점이 없는 건 아닌 듯 합니다.”
“단점? 저들에게?”
“그렇습니다.”
“그게 뭔가.”
한쪽 구석에 앉아 있던 안경 쓴 여성 보좌관 하나가 자신 없는 모습으로 일어나 더듬더듬 자신의 생각을 설명한다.
보좌관은 조심스럽게 ‘이슬’호의 전투 영상 가운데 최초 주석궁으로 돌진하는 모습을 비추었다.
“이거…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지 않으시나요?”
“어떤 점이?”
“그러니까… 이렇게 강력한 무기 체계를 가지고 있는데 굳이 이런 식으로 돌진할 필요가 있나 싶어서요.”
“그건…”
회의 참석자들은 그제서야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이 여성 보좌관의 말대로, 이런 강력한 무기들을 보유하고 있다면 그냥 조용히 하늘에 뜬 채로 지상의 목표물들을 하나씩 파괴하는 편이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저… 사실은 엘리시온을 플레이 하는 유저인데요. 그 중에서 마법사를 하고 있거든요. 마법사는 공격력이 뛰어난 클래스지만, 문제가 하나 있어요. 어떤 목표를 공격하기 위해선 그 목표를 자신의 인지 범위 안에 넣어야만 해요. 게다가 거리가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마력의 소모가 커지는 단점도 있구요. 그러니까 제 말은…”
더듬더듬 말을 이어가는 여성 보좌관의 말이 답답했던지 듣고 있던 장관 가운데 하나가 얼른 이렇게 덧붙인다.
“그러니까. 요는 저 배가 사용하는 기술들이 엘리시온에서 마법이라 불리는 기술들과 같은 종류의 것이라 이 말인가? 거리가 멀어질수록 무기들의 효율이 떨어지는 문제가 있어서 저렇게 일부러 돌진을 한 것이고?”
“네, 뭐… 일단은…”
“과연… 그렇군.”
마법이라니. 확실히 그 단어만 놓고 보면 허무맹랑하기 그지없는 일이지만, 이미 미라지 코어는 자신들의 기술에 엘리시온에서 이미 시험 중인 것들을 현실화시킨 것이라고 공언한 바 있다. 결국 그런 관점에서 보면 게임 안에서 사용되는 마법이 저 배에 적용된 기술의 근간이라고 인식해도 무리가 없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호버 보드라는 물건도 결국은 마탑이라는 곳에서 먼저 만들어내기 시작했던가.”
“확실히…”
그렇다면 저 기술을 막아내는 방법도 결국은 게임 안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런 생각을 떠올린 정보 기관의 수장들이 부하들을 게임에 투입시키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눈치를 보며 자리로 가서 앉으려던 여성 보좌관이 다시 뭔가를 떠올렸는지 이렇게 말했다.
“저… 한 마디만 더 해도 되나요?”
“뭐지? 말해 보게.”
막막하기만 했던 문제의 실마리를 제공한 당사자이기에, 조금 답답한 느낌의 말투에도 회의 참석자들은 얼른 그녀에게 이목을 집중시켰다.
“저기… 실은 이번에 엘리시온이 정상화되기 전에… 해커가 이벤트를 연 적이 있어요.”
“해커가? 무슨?”
“그냥… 이벤트 던전 공략 같은 거였어요. 캐시로 코스튬을 사면 던전 공략이 가능하도록 해주는…”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가.”
“그러니까요… 그 때 일인데… 그 당시 마지막 나왔던 보스가 너무 강해서 결국 아무도 공략에 성공하지 못했거든요. 근데, 그 진 보스가…”
여자 보좌관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죽음의 천사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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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