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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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 개척
하지만 막상 그 말도 안 되는 짓을 저지른 당사자는 그리 탐탁지 않은 표정이다.
“광속의 10분의 1. 이 정도가 현재로서는 한계인가.”
입맛을 다시는 형진의 말에 요안나는 어리둥절한 기색으로 물었다.
“이 정도면 굉장히 빠른 거 아닌가요?”
“빠르지. 태양계 기준으로는.”
문제는 이 우주라는 놈이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상상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넓다는 점이다. 태양에서 가장 가까운 항성인 알파 센타우리나 프록시마 센타우리까지의 거리만도 약 4.3광년. 현재 하늘호가 낸 속도라면 편도로만도 무려 43년이나 걸린다.
사실 광속의 10분의 1 수준은 이론상 인류가 이미 구현 가능한 속도이기도 하다. 단지 그 발상이 미친 짓이라서 시도를 하지 않을 뿐.
1946년에 처음 착안되었고, 1958에 시작되어, 1963년에 막을 내린 프로젝트가 있다. 이름 하여 오리온 프로젝트. 무려 핵폭탄을 추진동력으로 삼아 우주를 여행하는 방법이다.
이것은 60년대 기술로도 실현이 가능할 정도로 아주 단순하다. 핵탄두를 우주선에 싣고, 멀리 던져 놓은 다음 폭발시켜서 그 충격파를 타고 날아가는 방식이니까. 정신 나간 방식이지만, 이 방식을 썼을 때 낼 수 있는 최고 속도가 이론상 광속의 10분의 1이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앞서서 말했듯이 추진 방식이 핵폭발이라는 점. 그리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우주선의 제작비가 당시 미국의 1년치 GNP에 해당했었다는 점이다. 인류를 달 위에 올려놓은 아폴로 계획조차도 GDP의 0.75퍼센트 정도를 차지한 것이 최고치였던 것을 생각하면,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비용이 아닐 수 없다. 참고로 코카콜라가 자판기에 콜라 캔 쌓아 넣는 기술을 핵폭탄 집적기술 용도로 제공했다는 일화도 있다.
물론 이것은 상당히 극단적인 방식이기 때문에 당장 지구가 파탄 나서 인류가 멸망할 정도의 상황이 아니고서는 고려의 대상조차 아니다. 어떻게든 인류의 일부라도 생존시켜야만 하는 절박한 상황에야 실현 가능한 발상이라고나 할까.
둘의 대화를 지켜보던 프리츠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전 솔직히 좀 두렵습니다.”
“뭐가?”
“이 기술을 현재의 인류가 받아들일 수 있을까 싶어서요.”
이런 저런 일이 있기는 했지만, 과연 이런 것까지 보여줬어야 하나 싶은 생각을 떠올린 모양이다. 하지만 형진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이니까 공개해야 해.”
“어째서입니까.”
“지구가 수용 가능한 인구 한계 때문이지.”
학자마다 이견이 있지만, 지구가 수용 가능한 인구의 한계는 대략 100억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100억이라고 하면 엄청나다 싶을지도 모르지만, 최근 지구의 인구 증가 추이가 거의 1년에 1억씩 불어나는 수준임을 감안하면, 형진이 개입하지 않아도 30년 정도면 이미 수용 가능한 인구에 한계가 오게 된다. 최악의 상황을 가정했을 경우이긴 하지만.
물론 인류는 꾸준한 기술 개발 등을 통해 그런 한계를 조금씩 넓혀 왔지만, 기술의 개발 속도라는 것도 결국은 한계가 있게 마련이니 무작정 낙관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결정적으로, 최근에 또 다른 변수가 생겼거든. 바로 나라는 존재에 의해서.”
“변수라면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인지.”
“포션.”
“아…”
포션은 그 자체로 인간의 기대 수명을 증폭시키는 효과를 지닌다. 당장 ‘하늘’호만 보더라도 그렇게 죽었어야 할 아이들 수백 명이 탑승하고 있지 않은가.
곳간에서 인심난다는 말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일단 자신이 풍요로워야 다른 사람을 돌볼 여력이 생기는 법이다. 당장 내 자식이 굶어죽게 생겼는데, 다른 집 아이에게 먹을 것을 건네주는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이것은 지구 전체를 놓고 봐도 마찬가지다.
모처럼 희망과 생명의 이름과 힘을 빌려 지구에 사는 이들에게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도덕의 개념을 새겨 넣었어도, 그 모든 것이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일단 한정된 공간과 자원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 상황에서 포션만 던져 주고 나 몰라라 하는 것은 차라리 그렇지 않은 것만 못한 일이 되어 버린다. 굳이 타나토스가 아닌 지구에 이런 기술들을 먼저 시연하는 이유도 결국 이쪽의 상황이 훨씬 더 시급하기 때문이다. 지구를 벗어나 인류 자체의 생활권을 확장시킬 기술 없이 포션을 풀어 버리는 건, 오히려 더 큰 재앙을 몰고 올 수 있는 불화의 씨앗 내지는 황금 사과를 던져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 된다.
“그런 문제가 있군요.”
물론 이런 복잡한 방법 말고 지구와 타나토스의 통로를 열어 버리는 방법도 있긴 하다. 지구와는 달리, 타나토스라면 아직 인구를 부양할 수 있는 공간과 자원이 그럭저럭 넉넉한 편이니까.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이런 식의 급격한, 서로 다른 문화의 충돌은 결국 먹고 먹히는 경우로 발전하는 경우가 많다. 당장 지구 역사만 놓고 보더라도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지 않았던가. 그것이 행성 단위로 번진다면, 그 뒤에 어떤 참극이 벌어질 지는 신조차도 예단하기 힘들다.
“게다가 이건 우리들이 모시는 신에게도 도움이 돼.”
“어째서 말입니까.”
“인구가 늘어나면 그들을 통해 벌어들일 수 있는 신앙과 공헌도의 크기도 그만큼 커지게 될 테니까. 결국 신의 힘이란 것도 따지고 보면 거느리고 있는 사람의 수에 비례하는 셈이거든.”
“아…”
프리츠와 요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신들이 사용하는 이적의 근본은 결국 신앙과 공헌도. 이것을 생산해 내는 주체는 바로 인간이다. 다시 말해 따르는 인간이 많을수록 신의 힘 역시 강해지는 것이고, 이것을 위해 신들은 인간에게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감을 새겨 넣으려고 노력한다.
형진은 거기까지 말하고는 이내 누구에게 들으라는 듯이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정말 아무리 조정자니 대리자니 해도 이렇게 열심히 일해도 되는 건가 몰라. 이런 훌륭한 추종자에게는 상도 좀 더 팍팍 주고 그래야 하는데.”
“쿡.”
“하하하.”
잘 나가다가 자화자찬으로 빠지는 형진의 말에 요안나와 프리츠는 결국 웃어 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역시 걱정입니다.”
“또 뭐가?”
“이런 식으로 신의 힘을 빌려 모든 것을 즉석에서 해결하게 된다면, 인간의 발전 욕구는 그만큼 줄어들지 않겠습니까?”
형진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 정도로 마음씨 좋은 호구스러움을 갖춘 신은 보호와 균형님 정도 밖에는 없을 것 같은데.”
“그거야… 그렇긴 하죠. 하하.”
당장의 파국을 막기 위해 이런 저런 조치를 취하기는 했어도, 당장 호구신이라는 별칭을 가진 희망과 생명조차 실제로는 무언가를 베푸는데 상당히 인색한 편이다. 당장 형진이 명령서를 썼을 때의 여파를 느끼고 펄쩍 뛰었을 정도니까. 인격신이란 건 그만큼 변덕스러운 존재인지라 무조건적인 자애 같은 걸 기대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우주의 개척이란 건 그만큼 다양한 기술이 바탕이 되어야만 해. 우리가 기본적인 토양을 깔아줄 수는 있어도 그것을 본격적으로 개척하는 것은 인류의 몫이라는 거지.”
당장 형진의 경우만 놓고 봐도 태양계 안에서 행성들이 어떤 식으로 운행하고 어느 방향으로 날아가야 다른 행성에 도달할 수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달이야 일단 눈에 보이니까 보이는 대로 따라간다 치고, 화성까지도 그런 식으로 어떻게 어거지를 써서 가능할지는 몰라도 그 바깥의 경우에는 얘기가 전혀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류가 지금껏 지구 밖으로 나가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기술이나 용기가 부족해서가 아니야. 그것이 결국 현재의 그들에게 이득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지. 내가 한 일은 결국 그런 인류의 등을 떠민 것뿐이야.”
지금으로서는 장난감이나 다름없는 컴퓨터를 가지고도 인류는 달에 도달했었다. 손으로 일일이 깎아 만든 로켓을 가지고도 인류는 달에 도달했다. 지금은 그 당시와는 비교조차 하기 어려운 기술을 가진 상태. 다시 말해 갈 수 없어서 못 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한 번 더 인류의 등을 떠밀어야 할 것 같아.”
형진은 씨익 웃음을 짓고는 프리츠에게 말했다.
“자, 이번에도 잘 부탁해. 베커씨.”
하지만 프리츠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또 접니까?”
“왜?”
“그냥… 이번에는 보스가 나서는 편이 낫지 않나 싶어서요.”
솔직히 지금까지의 일 만으로도 프리츠는 세상에 너무 많이 이름을 드러내 버렸다. 그것이 온전히 자신의 성과라면 모르되, 누군가의 대리인이 되어 그 모든 성과를 자신의 것인양 드러내는 것은 역시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다른 사람들은 역사에 이름을 남기지 못해 안달인데, 자네는 욕심이 없군.”
“하하…”
모르긴 해도 이번 발표는 먼훗날 인류의 역사서에 기록될 만한 내용이다. 지금까지의 기술 발표나 시연도 분명 놀라운 것이지만, 이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때 옆에서 듣고 있던 요안나가 한 가지 제안을 했다.
“그럼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어떻게?”
“지금 ‘하늘’호와 ‘세연’호에 타고 있는 아이들 모두가 함께 발표하는 걸로.”
그 말에 형진과 프리츠는 서로를 마주보며 눈빛으로 의사를 교환했고, 이내 씨익 웃는 걸로 동의의 뜻을 확인했다.
“새로운 시대의 시작은 새로운 세대의 손으로… 라는 얘긴가.”
“세계 각지에서 모인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아이들이란 것도 중요한 점이겠죠.”
“나쁘지 않군. 아니, 이벤트로서는 더할 나위 없어.”
그렇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자니, 갑자기 공간이 열리며 누군가가 우르르 그들이 있는 ‘이슬’호의 객실로 밀려들어왔다. 바라보니 희망과 생명을 앞세운 꼬맹이 여신들이다.
“엇? 갑자기 무슨…”
형진이 놀란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자, 어느새 여신들 패거리의 대장이 되어 버린 희망과 생명이 되물었다.
“왜? 우리는 여기 오면 안 돼?”
“아니… 그건 아니지만.”
“또 무슨 말도 안 되는 짓을 벌이려고 하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모처럼의 역사적인 이벤트인데 그 자리에 나 같은 위대한 여신이 빠지는 것도 곤란한 일인 것 같아서 몸소 찾아와 줬어. 기쁘게 생각해.”
스스로 위대한 여신을 자칭하다니. 이 여신, 원래 이런 성격이었나.
형진은 한숨을 푸욱 내쉬고는 그녀의 말에 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선실 밖으로 나가지 마시고, 여기서만 지켜보세요. 희망과 생명께서 지금 여기 있는 것이 밝혀지면 문제가 상당히 곤란해집니다.”
희망과 생명은 바로 얼마 전에 실종 선고를 철회하면서 언론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 시점에서 그녀는 ‘하늘’호에 탑승하지 않은 상태였고, 지금 이순간에도 배 안에서 실시간으로 달의 모습을 방영하고 있는 기자들이 있는 이상 여기서 갑자기 희망과 생명이 툭 튀어 나와 버리면 그들이 타고 있는 배와는 다른, 그것도 지구와 달 사이를 순식간에 자유자재로 이동할 수 있는 또다른 기술이 있음을 자인하는 꼴이 되어 버린다.
만약 그런 사실이 드러나게 되면, ‘하늘’호가 몰고 온 충격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여파가 지구를 휩쓸게 될 것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기껏 가치를 있는 대로 끌어올린 ‘하늘’호조차 의미 없는 것이 되어 버릴 수도 있다.
그냥 한 걸음 내딛으면 바로 우주 저편으로 이동할 수 있는데, 누가 일부러 시간을 들여서 머나먼 우주를 탐사하려 하겠는가. 이미 가본 장소라든가 성물이 놓여져 있는 장소만 이동 가능하다는 식의 제약을 설명하는 것도 귀찮은 일이니, 일단은 자신들만 알고 있는 비밀로 남겨두는 편이 옳다. 부차적인 문제를 제쳐두고서라도 그것이 형진으로서도 이득인 건 말할 필요가 없는 일이다.
“걱정 마. 우리가 바본가. 그런 것조차 생각 못하게. 그렇지?”
그러자 희망과 생명을 앞세우고 이곳을 찾아온 세 여신이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맞아요. 진님은 가끔 저희들을 너무 바보로 보는 경향이 있어요.”
“저희들은 바보가 아니에요.”
“바보… 싫어.”
제법 항의조로 말하는 모습이 뭔가 색다르다. 머리띠만 안 했을 뿐이지, 작정하고 항의를 하러 나온 것 같은 모습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꼬맹이 여신들은 모처럼 정색한 모습으로 그렇게 말했던 것이 무색하게도,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얼른 형진에게로 다가와 그곳이 자신들이 있어야 할 곳이라는 듯이 자리를 잡았다.
영차거리며 어깨로 기어 올라와 앉은 그녀들에게 요안나가 전용의 찻잔을 건네자 여신들은 환호하며 그것을 만끽하기 시작한다. 아무리 봐도 방금 전에 정색했던 모습과는 너무 상반된, 그야말로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이다.
희망과 생명은 그것을 보고는 앓는 소리를 내버렸다.
“저 바보들. 이래서야 기껏 말을 맞춘 게 의미가 없잖아.”
“왜? 시킨 대로 말 했잖아.”
왜 그러는지 이해를 못하겠다는 식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는 보호와 균형의 모습에 희망과 생명은 한숨을 푸욱 내쉬고는 형진의 맞은 편에 털썩 주저 앉으며 대답했다.
“됐다. 평생 그러고 살아라.”
형진은 그 모습을 보고는 피식 웃어 버렸다. 보아하니 명색이 여신임에도 불구하고 지위에 걸맞은 대접을 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뭔가 일을 꾸민 모양. 하지만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 어쩔 수 없다. 꼬맹이 여신들과 이 츤데레 여신은 아무래도 처한 입장부터가 다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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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한편.
안녕히 주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