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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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 개척
‘하늘’호의 항해는 이제 종반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참으로 많은 일이 있었다. 사실 이 배가 처음 돛을 부풀린 채 항구에 모습을 드러낼 때만 해도, 사람들은 이 배의 여정 중에 자신들이 속한 세계가 어떤 식으로 변화하게 될지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짧은 기간의, 채 한 달도 되지 않는 세계 일주 속에서 ‘하늘’호는 이제 새로운 시대의 지평을 여는 기수와도 같은 존재가 되어 있었다.
인도를 지날 때는 ‘하늘’호가 모습을 드러내자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숙이며 절을 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물론 그것은 갑자기 하늘에서 나타난 하얀 범선의 모습에 놀랐다기 보다는, 그 뒤에 버티고 있는 신에게 경의를 표하는 행위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이번 일로 인해 인도에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흔히 일컬어지는 카스트 제도, 인도 사람들 스스로는 바르나라는 계급제의 붕괴를 들 수 있다.
인도는 식민시대 때부터 꾸준하게 계급제의 철폐를 위해 노력해왔고,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유입으로 인해 현대에는 많이 희미해진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경전을 보면 눈을 뽑는다든가 손이 닿으면 잘라버린다든가 하는 식의 극단적인 제재는 사라졌다 해도, 여전히 그 폐해가 남아 있었던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일로 인해, 차별하지 말라는 규범이 사람들의 머리 속에 박힘으로서 그런 잔재들은 일단 모습을 감추게 되었다. 물론 그들 가운데는 그렇지 않아도 희미해져 가는 자신들의 문화를 이런 강제적인 방법으로 단숨에 철폐시키는 것에 불만을 가진 자도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도 인구의 4명 가운데 3명이 수드라인 현실을 감안한다면, 계급제의 철폐는 인도의 발전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인도를 통과한 ‘하늘’호와 ‘세연’호는 이제 중국으로 들어섰다.
중국 역시 이번 사태에서 천벌이 특히 많이 떨어진 나라 중 하나다. 게다가 그 이유도 각양각색. 그렇지 않아도 집행자들의 처벌이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와중에, 다시 한 번 그런 수많은 천벌들이 쏟아져 내리자 어째서 자신들이 이런 상황에 처했는지 중국인들 또한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세계의 중심이라 스스로를 일컫던 자존심이 상처를 입자 그런 지경에 처하게 된 원인에 대해 분노하는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이러한 중국의 상황은 정부로 하여금 지금까지 억눌러왔던 대중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조금씩 만족시키는 쪽으로 선회하도록 만들었다. 세계 인권 선언에서 요구하는 여러 가지 기본 요건들을 충족시키기 위해 정부 정책을 선회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변화해 가는 중국의 모습을 지켜보며 ‘하늘’호와 ‘세연’호는 마침내 태평양으로 진입했다.
이제부터는 거대한 태평양을 통과해 처음 출발했던 샌프란시스코로의 귀환만을 남겨둔 상태인 것이다.
“북한 문제에 대해 어떻게 처리를 하는 것이 좋을지 미국 정부로부터 문의가 들어왔는데요.”
요안나의 말에 형진은 얼굴을 찌푸렸다.
“그걸 왜 우리한테 물어? 자기들이 알아서 할 것이지.”
퉁명스런 형진의 대답에 요안나는 쓴웃음을 지어야만 했다.
“알아서 하기엔 눈치가 보이니까 묻는 거잖아요.”
“죽음의 천사와 연관이 있는 것이 확실하니까?”
“그런 거죠. 괜히 트집 잡혔다가 백악관에 다시 벼락이 떨어지면 곤란하니까.”
이번에 내리꽂힌 천벌은 백악관에도 예외 없이 떨어져 내렸다. 물론 미친 듯이 퍼붓는 수준은 아니고, 관료 가운데 몇 명이 한두 방 정도 두들겨 맞은 수준에 불과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백악관의 입지는 꽤 좁아져 버린 상황. 민주주의에서 권력이란 결국 지지율로부터 나오는 것이기에, 세계 최강국의 수장이라도 결국은 미라지 코어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사실 미국의 이러한 문의는 미국만의 뜻은 아니었다. 어쨌든 형식상 미라지 코어가 미국의 기업으로 등록되어 있는 상황이라 북한의 주변국들에게 등을 떠밀려 총대를 맨 것이라고나 할까.
“알아서 하라 그래. 관심 없으니.”
“그들로서는 제일 곤란한 대답이겠네요.”
여전히 쓴웃음을 짓고 있는 요안나를 향해 형진은 불퉁거리며 답했다.
“애초에 원인을 만든 것이 그들이니 매듭도 스스로 지어야지.”
“그거야 그렇지만.”
따지고 보면 남북분단의 원인 자체가 주변 강대국에 의한 것이니, 그 뒷감당도 그들이 하는 것이 맞다. 형진의 뜻이 그러하다는 것을 이해한 요안나는 미국에게 그 내용을 전달했다. 그 말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미국을 비롯한 주변국들에게 던져진 숙제가 된 셈이다.
“아, 그리고 하나 더.”
“뭔데?”
“허세와 망상이 하달했던, 파편에 대한 리스트를 확보했어요.”
“오, 그래?”
또 무슨 귀찮은 일인가 하는 생각에 퉁명스런 표정을 짓고 있던 형진은 요안나의 말에 반색했다.
“네. 하지만 아무래도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는 데는 조금 시간이 걸릴 것 같아요.”
“그거라면 내가 알아서 할게.”
“그러실래요?”
“파편은 파편이 찾아나서는 것이 가장 확실하니까.”
“하긴, 그건 진의 말대로죠.”
파편을 찾을수록 형진은 보다 신에 가까워지게 된다. 신위를 얻기 위해 정확히 어느 정도의 파편을 모아야 하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모으면 모을수록 그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보스. 태평양으로의 진입이 끝났습니다. 3단계로 이행해도 되겠습니까.”
프리츠로부터 전해진 보고에 형진은 두 말 할 것도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물론. 바로 시작하도록.”
“알겠습니다.”
형진의 허락이 떨어지자, 프리츠는 ‘하늘’호와 ‘세연’호의 갑판에 홀로그램으로 동시에 모습을 드러낸 채 공지 사항을 전달했다.
“지금부터 저희들은 항행 계획 3단계를 진행합니다. 승객 여러분께서는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너무 놀라거나 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기자가 질문을 던진다.
“3단계라면, 역시 그건가요?”
프리츠가 주위를 돌아보니, 어느 정도 다들 예상하고 있는 분위기다.
“글쎄요.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아마도 예상하신 내용이 맞지 않을까 싶군요.”
“역시!”
“그럼, 마지막까지 즐거운 여정이 되기를 기원하며 잠시 물러가 있겠습니다.”
프리츠의 모습이 사라짐과 동시에, ‘하늘’호와 ‘세연’호는 천천히 고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와아…”
“이건…”
그렇게 고도를 높여가다가 어느 시점에 이르자 푸른 하늘이 사라지고 수많은 별들이 그 자리를 가득 메우기 시작한다. 지상에서는 아무리 공기가 좋은 곳이라도 보기 힘든, 그런 아름다운 별의 바다.
잠시 홀린 듯이 그 별빛을 바라보고 있던 사람들은 이내 아래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니나 다를까. 그곳에는 사파이어처럼 푸르게 빛나는 아름다운 자신들의 고향 지구가 자리잡고 있었다.
“세상에…”
“너무 아름다워요.”
샌프란시스코로부터 ‘하늘’호의 여정을 계속 함께 했던 노부부는 눈물마저 글썽인 채 아름다운 지구의 광경을 홀린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모두가 예상했던 대로, ‘하늘’호는 마침내 우주로 발을 내딛었습니다. 이것으로 인류는 마침내 대우주시대의 서막을 열게 된 것입니다!”
기자의 열띤 목소리를 들으며, 사람들은 비로소 앞서 ‘하늘’호의 여정 중에 벌여졌던 그 모든 일들이 새로운 한 발을 딛기 위해 자신을 되돌아 보는 과정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우주 저 너머에 있을지도 모르는, 또다른 누군가를 만나기 위한 그런 준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떠올리게 된 것이다.
광활한 우주에 비한다면 지구는 너무나도 작은 곳. 어찌보면 지금까지 그들이 겪었던 문제들은 한정된 공간에서 한정된 자원을 나누기 위한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겪을 수 밖에 없었던 부분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그들에게 닥칠 새로운 시대에는 그것에 걸맞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게 마련. 인류는 ‘하늘’호의 여정을 통해 자신들이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고쳐야 할지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처음으로 마주한 우주, 그리고 처음으로 마주한 지구의 모습에 서로 깊은 생각을 떠올리고 있을 때, 다시금 프리츠가 모습을 드러냈다.
“지금부터 저희는 달로의 여정을 시작합니다. 이것은 저희들이 타고 있는 함선의 항행 능력을 확인하기 위한 과정이기도 합니다. 그럼 즐거운 시간되시길 기원합니다.”
“자, 잠깐만요!”
기자가 급히 소리쳐 불렀지만 프리츠는 대답대신 씩 웃기만 하고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들으셨습니까! 달입니다! 방금 미라지 코어는 이 함선이 달로의 여정을 시작한다고 선언… 으앗! 여, 여러분 보십시오!”
열띤 목소리로 그렇게 떠들어 대던 기자의 외마디 소리와 함께 카메라는 다시 지구로 향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터뜨렸다.
“세상에!”
시야를 가득 채우고 있던 지구가 멀어져 가고 있었다. 누가 봐도 확연하게 지구로부터 멀어지고 있음을 인지할 수 있을 정도로 빠르게. 하지만 그것은 겨우 시작에 불과했다.
파라락!
마스트 위에 달려 있던 돛대로부터 옅은 빛이 뿜어져 나온다고 느낀 순간, 지구는 더욱 빠른 속도로 멀어져 가기 시작했다.
“이, 이 속도는…”
보통 사람들은 그저 지구가 멀어지는 모습을 보고 빠르긴 빠르구나 할 정도의 감상을 떠올리는 것이 고작이었지만, 천문학이나 우주 과학을 연구하는 사람들로서는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날 정도의 일이었다.
“지금, 지금 속도가 얼마나 되는지 계산할 수 있겠나?”
“자,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자기가 싼 똥은 자기가 치우라는 식의 답변을 듣고 난감해 하던 미국 대통령의 외마디 외침에, 장관들을 비롯한 보좌관들이 급히 나사에 영상 분석을 의뢰했고, 그들은 오래지 않아 답을 전했다.
“어느 정도 오차가 있습니다만, 영상을 통해 분석한 바로는 시속 8천 6백 4십만 킬로미터 정도인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보고를 하는 보좌관의 목소리가 은은하게 떨리고 있었다.
“천만?”
너무 숫자가 크니 그게 어느 정도 속도인지조차도 감이 잡히지 않는다.
“뭔가 비교될 만한 수치가 있겠소?”
그러자 다른 보좌관이 급히 계산기를 두드리더니 대통령의 질문에 답했다.
“음속으로 따지면… 물론 온도나 대기 상태를 고려하지 않고 그냥 초속 340미터로 기준했을 때의 얘기입니다만, 대략 음속의 7만배 정도 됩니다.”
“허…”
“이 속도로 달까지 간다고 치면 약 15초 정도가 걸립니다. 참고로 현재의 우주 로켓으로는 약 삼사일 정도가 걸립니다.
“광속으로 치면 0.08배 정도로 추산됩니다.”
이렇게 비교를 하니 감이 잡힌다. 대통령은 그제서야 입이 떡 벌어지고 말았다.
“거의 광속의 10분의 1에 근접했다는 소리잖소!”
“그렇습니다. 솔라 세일이 낼 수 있는 이론상의 최고 속도가 광속의 4분의 1 수준임을 감안하면 적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만, 그 최고 속도라는 건 어디까지나 한 방향으로 오랜 시간 계속해서 가속했을 때 이론적으로 얻을 수 있는 속도입니다. 저렇게 순식간에 가속해서 도달할 수 있는 속도가 아니라는 얘깁니다.”
자동차의 성능 지표 가운데 제로백이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정지 상태에서 시속 백킬로미터 까지의 가속에 걸리는 시간을 말하는 것인데, 이제는 그 개념을 차용한 새로운 개념이 등장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를테면 정지 상태에서 광속의 10퍼센트에 도달하는 시간 정도면 되려나.
“지구에서는 일부러 속도를 줄여서 운항했다는 건가.”
말이 음속의 7만배지, 그런 속도로 지구상에서 무언가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야말로 재앙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물론 ‘하늘’호는 미국 영토 횡단 당시 대기권내 음속 돌파로 인해 생길 수 있는 문제를 해결했음을 충분히 보여주었지만, 그런 대책이 이런 무지막지한 속도 하에서도 적용될지에 대해서는 역시 미지수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
“나사로부터의 연락입니다.”
“뭔가.”
“이미 ‘하늘’호가 달 궤도에 도달했다고 합니다.”
이로써 명확해졌다.
인류가 바야흐로 새로운 시대에 진입했다는 사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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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
더위 먹었나 봅니다.
오늘은 바깥에 볼 일이 있어서 일찍 일어났었는데…
계속 몸이 늘어지는게 꼼짝도 하기 싫네요.
아무래도 일정은 내일로 미뤄야 할 것 같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