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589
00589 134. 돌격! =========================
기자회견은 그럭저럭 잘 마무리가 되었다. 하지만 그 내용이 사람들을 모두 만족시키고 납득시켰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글쎄라고 밖에는 답할 수가 없었다. 그런가보다 넘어가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자신이 보고 싶고 듣고 싶은 것만 믿는 일부의 사람들은 그러한 기자 회견 자체가 잘 짜여진 연극일 거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이다.
곧바로 인터넷 상에는 수많은 음모론과 여러 가지 가설들이 넘쳐 나기 시작했다. 물론 대부분의 것들은 허무맹랑하기 그지없는 것이 많았지만, 개중에는 꽤 예리하게 형진에 대한 것을 지적하는 내용도 꽤 많았다.
“음… 진과 프리츠가 사실은 연인 사이라는데요.”
“풉!”
간단하게 건전하고 즐거운 부부끼리의 아침 운동을 마치고 마눌이 정성스럽게 만든 과일 주스를 마시고 있던 형진은 뜬금없는 제랄딘의 말에 사래가 들리고 말았다.
“지, 지금 뭐라고.”
“왜 그렇게 놀래요?”
“그럼 안 놀라게 생겼어? 갑자기 그런 말을 들었는데.”
“쿡쿡.”
얼마 전 퍼레이드를 다녀오더니, 제랄딘은 이상한 쪽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물론 차별하지 말라고 이 세계에 선포를 한 것은 자신이지만, 느닷없이 엉뚱한 취향을 강요받는 건 여러모로 문제가 있는 일이다.
자신의 성적 취향이 조금 독특한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남녀의 한계마저 벗어날 정도는 아니라는 점을 이 엉뚱한 마눌에게 확실하게 주입시켜야겠다는 생각을 떠올리며 몸을 일으키고 있는데, 요안나가 샤워기의 물을 끄며 말했다.
“그쯤하고 준비하세요.”
“응? 뭘?”
“잊었어요? 오늘 쌍둥이들이 입국하기로 되어 있잖아요.”
“아… 벌써 그렇게 되었나.”
쌍둥이란 다름 아닌 아름과 새름 자매다. 둘은 앞으로 미국의 고등학교에서 지내게 되는데, 형진은 가능하다면 이 쌍둥이들이 제랄딘과 같은 학교로 진학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음… 그냥 다른 아바타를 보내면 안 되나.”
“저희들은 아바타를 쓰지 못하잖아요.”
“쳇. 할 수 없군.”
형진은 투덜거리며 침대에서 일어나더니, 여전히 노트북을 보며 혼자 킥킥거리고 있는 제랄딘을 번쩍 안아 올렸다.
“꺅! 갑자기 무슨 짓이에요?”
“무슨 짓이긴. 우리 예쁜 공녀님의 몸을 씻겨 드리기 위해 마당쇠가 힘 좀 쓰고 있는 중이지.”
“칫. 한참 재미있었는데.”
“그거 미안하게 되었군.”
그렇게 노닥거리며 몸을 씻고 준비를 마친 셋이 막 집을 나서려는데, 문득 예상치 못한 불청객이 들이닥쳤다.
“응? 여신님들? 어쩐 일로…”
“어쩐 일이긴. 놀러왔지. 여기가 요안나의 집이야? 꽤 멋지네.”
“…”
넉살 좋게 들어서는 그 인물은, 다름 아닌 요정 사이즈의 희망과 생명. 더구나 다른 꼬맹이 여신 셋까지 대동한 상태다.
“저, 저희는 괜찮다고 했는데, 쟤가 자꾸 고집을 부려서… 세 분을 방해할 생각은 아니었어요.”
보호와 균형의 변명이 아니더라도 대충 돌아가는 상황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보나마나 희망과 생명이 억지로 꼬맹이 여신들을 끌고 이렇게 나온 것이리라.
“무슨 소리야! 날도 좋으니 함께 어디 놀러 가면 좋겠다고 말한 건 그쪽이잖아?”
“그거야… 그렇지만.”
“일부러 민폐 끼치지 않으려고 꼬맹이 아바타도 일부러 만들어서 왔구만. 고마운 줄을 모르고.”
“미안.”
보호와 균형이 쩔쩔 매는 모습을 보며 형진은 피식 웃어 버렸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좀 곤란한데요. 손님을 마중 나가야 해서.”
“손님? 누구?”
“보호와 균형님의 추종자 둘이 이곳에 오기로 했거든요. 유학을 하러.”
“그래? 흠… 추종자라면 이미 관계자니까 상관없겠네. 우리도 같이 가지 뭐. 괜찮지?”
희망과 생명이 그렇게 물었지만, 보호와 균형은 그 질문을 듣지 못한 것처럼 형진에게 얼른 질문했다.
“아름님과 새름님이 오시는 건가요?”
“네. 당분간 이쪽에서 학교를 다니게 될 겁니다.”
“그럼 가야죠! 어서 가요!”
방금 전까지만 해도 미안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던 보호와 균형이었지만, 자신의 추종자가 온다는 말을 듣자 돌변하며 얼른 형진의 옷깃에 올라탔다.
“어휴. 하여튼. 아무튼, 그럼 우리도.”
“실례하겠습니다.”
“시, 실례하겠습니다.”
당연하다는 듯이 형진의 어깨 위에 옹기종기 자리 잡는 여신들의 모습에 제랄딘과 요안나는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형진은 다른 사람들의 눈에 그들이 보이지 않게끔 환상으로 적당히 가리고서야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와… 크다. 이거 타고 갈 건가요?”
“네. 모처럼 새로 만들었으니 시험을 해봐야죠.”
새롭게 선을 보인 탈 것은 대형 관광버스 형태의 부양형 자동차였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냥 관광버스와는 다르다. 정확히는 관광버스 크기를 지닌 럭셔리 캠핑카라고 부르는 편이 맞을 것이다.
“이 차의 놀라운 점 가운데 하나는 바로 이것이죠.”
형진이 다가서며 열쇠에 대고 무언가 명령을 내리자 아래쪽이 열리며 잘빠진 스포츠카 형태의 부양형 자동차가 모습을 드러낸다. 실로 놀라운 일이지만, 이 차량은 내부에 일반 자동차 하나를 수납할 수 있는 휴대용 주차장을 탑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애초에 이쪽 세계의 문물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꼬맹이 여신들이야 그런가보다 했지만, 이미 문화에 대한 적응도만 따지면 지구 사람이나 마찬가지인 희망과 생명은 눈빛이 번쩍 빛났다.
“대단해! 캠핑카에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싣고 다니는 경우는 봤어도 자동차를 싣고 다니다니! 엄청나잖아!”
“원래는 이런 기능을 지닌 차가 존재하고 있었습니다만, 이번에 기술 제휴를 하면서 부양형 자동차로 새롭게 선보이게 되었습니다. 물론 내부의 기능도 한층 업그레이드가 되었죠.”
형진은 다시 차를 수납해 넣고는 문을 열었다.
“타십시오. 이 차라면 굳이 작은 사이즈가 아니더라도 모두 함께 타고 갈 수 있습니다. 꽤 넓거든요.”
“그렇겠네. 가자, 얘들아!”
“어? 응…”
희망과 생명을 필두로 꼬맹이 여신들이 퐁퐁 거리는 소리와 함께 인간 사이즈로 변해 차량에 탑승했다.
“그런데 괜찮으시겠어요? 스캔들 터진지도 얼마 안 되어 같이 있는 게 찍히기라도 하면.”
제랄딘의 말에 희망과 생명은 아무 문제없다는 듯이 바로 답했다.
“괜찮아. 지금 또 하나의 내가 보스턴에서 잡지사와 인터뷰 중이니까. 그래도 혹시 몰라서 꼬맹이 사이즈로 온 거고.”
“아하.”
얼마 전에 형진이 말했던 알리바이에 대한 내용을 이렇게 바로 써먹을 줄이야. 물론 동일한 인물이 동시에 두 곳에 존재한다는 것이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음모론이 다시금 확산되는 결과를 가지고 오겠지만, 그런 문제에 대비해 일부러 꼬맹이 사이즈로 찾아오는 용의주도함까지 보여주고 있었다.
안에 타고 보니 내부의 모습도 실로 놀라운 정도다. 그렇지 않아도 크고 넓은 내부에 공간 확장 기술까지 적용해버리자 문자 그대로 호텔 스위트룸을 옮겨 놓은 듯한 모습이 되어 버렸다.
“우와. 이거… 직접 들어와 보지 않으면 차 안이라고는 절대로 믿지 못하겠는데?”
“덕분에 허세와 망상께서 코피 좀 쏟으셨습니다. 하하.”
사실 허세와 망상이 전부 만든 건 아니고, 내부 인테리어 같은 부분에 있어서는 형진도 손을 좀 썼다. 도면대로 구현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지만, 아무래도 허세와 망상은 예술적인 소양이 좀 부족한 편이라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형진이 손을 대고 나자 내부의 모습은 더욱 훌륭하게 변모했다. 뭐라 해도 그는 장인의 경지에 든 세공사이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안에서 축구를 해도 되겠는데.”
“축구는 좀… 배드민턴 정도면 몰라도.”
“차 안에서 구기 종목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일이긴 하지만요.”
희망과 생명을 비롯해 제랄딘과 요안나가 그렇게 주거니 받거니 하며 대화를 나누자, 살짝 주눅이 들어 있던 황혼과 망각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기… 배드민턴이 뭐에요?”
제랄딘이 바로 그 말에 답했다.
“음… 라켓이랑 깃털 달린 공을 가지고 하는 운동이에요. 말 나온 김에 한 번 해보실래요?”
“지금요? 여기서?”
“네.”
물론 농담이 아니다. 제랄딘은 이미 엘 파르드에 생활 체육을 도입하기 위한 공부를 시작한 상태였고, 그런 지식들 가운데는 배드민턴에 대한 것도 있었다. 곧바로 라켓과 셔틀콕이 꺼내지고 내부의 테이블 같은 것을 옆으로 밀어낸 뒤 간단하게 어떻게 하면 되는지 시범까지 보이기 시작한다.
형진은 곧바로 신이 나서 운동을 시작한 그녀들의 모습에 고개를 설레설레 저어 보이고는 운전석으로 향했다.
“직접 운전하게?”
그러자 희망과 생명이 슬며시 다가와 말했다.
“아쉽게도 전 대형 면허가 없어서 말이죠. 운전은 요안나가 할 겁니다.”
1종 면허가 있기는 해도, 이 차량은 버스 가운데서도 대형 관광버스 규모의 차량이라 1종 가운데서도 대형 면허가 있어야 한다. 게다가 그가 가지고 있는 면허 자체도 한국의 것이라 이곳에서는 사용하기가 곤란하다.
한국과 미국은 운전면허 상호 인정 협정을 체결하고 있는 주들이 많지만, 캘리포니아는 아쉽게도 그런 협정에 해당되지 않는다. 더구나 그런 것을 확인했다가는 대번에 미라지 코어의 경영 지원 실장인 진이 유형진과 동일 인물이라는 것이 드러나 버리고 만다. 여러모로 형진이 직접 운전하기엔 걸림돌이 많은 셈이다.
“자율 주행 모드가 있어서 괜찮지 않아?”
“아직 완전한 자율 주행 모드는 발표되지 않은 상황이라 어쩔 수 없어요. 무면허에 대한 처벌 자체는 그리 세지 않아도, 제 신분이 드러날 수 있는 경우는 가급적 피하고 싶은 것도 사실이고.”
“복잡하네.”
여신은 그렇게 말하고는 소매를 걷어 붙였다.
“할 수 없지. 그럼 내가 몰아주는 수밖에.”
“네? 그러지 않으셔도 요안나가 몰면 되는데.”
“몰아보고 싶어서 그래. 안 될까?”
마침 운전을 하기 위해 다가오던 요안나를 돌아보자 그녀는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희망과 생명께서는 비밀로 하고 오신 거 아닌가요? 혹시라도 공항 관계자가 차를 검문한다거나 하면.”
“아…”
그냥 보통의 캠핑카라면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지금 이 차량은 요즘 세간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는 부양형 자동차다. 조심조심 차도로 몰아도 시선을 잔뜩 끌어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교통 체증을 피해 하늘을 날기라도 하면 대번에 난리가 날 것이다.
“쳇.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희망과 생명이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며 물러나자, 요안나가 좌석에 앉았다. 그녀는 운전석에 앉자 우선 차량의 문이 모두 제대로 잠겼는지 확인한 다음에야 시동을 걸었다.
곧바로 차량이 둥실 떠오른다. 하지만 그런 감각은 차 내에서는 제대로 느끼기 어려웠다. 황혼의 결계를 통한 관성 제어 덕분에 탑승감이라는 말 자체가 의미 없는 일이 되어 버린 탓이다.
“출발하겠습니다.”
형진은 요안나의 말을 듣자 옆 좌석에 가만히 앉아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천천히 차량이 주차장을 벗어나 밖으로 나서는 것을 지켜보고 있는데, 문득 자신의 손 위로 누군가의 손이 감싸온다. 슬며시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그 손의 주인은 바로 고개를 돌린 채 자신을 외면하고 있는 희망과 생명이었다.
모르는 척 고개를 돌리고 있긴 한데, 목덜미는 물론이고 귀까지 새빨개져 있다. 어찌나 심장이 격하게 뛰는지 자신의 손을 감싼 그녀의 손으로부터 맥박마저 느껴질 정도다.
“…”
이쯤 되면 갑자기 왜 이러냐고 묻기도 민망하다. 괜히 여기서 말 한 마디 잘못 했다가는 난리가 나지 않을까 싶을 정도.
[어쩌지?]난감해 하며 메시지로 요안나에게 묻자, 그녀는 피식 웃으며 답했다.
[그냥 모른 척 해요. 괜히 반응하지 말고.] [이거… 아무리 봐도 신호 맞지?] [아마도요. 좋으시겠어요. 여신님께 사랑받으시고.] [끙.]둘이 그런 메시지를 주고 받고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채, 희망과 생명은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었던지 얼른 손을 빼버린다. 아무래도 더 이상은 견디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아우! 왜 이렇게 더운지 모르겠네. 안에 냉장고 있지?”
“물론입니다. 차가운 음료수라도 가져다 드릴까요?”
형진이 그렇게 답하며 일어서려 하자 희망과 생명은 화들짝 놀라며 얼른 그를 만류했다.
“괘, 괜찮아. 내가 알아서 할게. 그냥 가만히 있어.”
그리고는 뒤따라올까 무섭다는 식으로 얼른 안으로 도망쳐 버린다.
============================ 작품 후기 ============================
오늘은 여기까지.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