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591
00591 134. 돌격! =========================
지금까지 미라지 코어의 아이콘에 해당하는 인물은 프리츠 베커였다. 사실상 현재까지 등장한 대부분의 물품은 그의 손에 의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으니까. 하지만 며칠 전의 일로 인해 사람들의 뇌리 속에는 진이라는 이름이 박혀 들었다. 무려 세계 최고의 여배우로 이름 높은 헐리웃의 여신 엘피스 리페 에스페란토와의 스캔들을 통해서다.
반가면을 쓴 신비한 분위기부터 시작해서, 사나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꿈꾸어 보았을 만한 멋진 차량과 함께 모습을 드러내고, 여배우와의 스캔들까지 일으키며 모습을 드러냈으니 이슈가 되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바로 그 인물이 지금 이 자리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거대한 버스 형태의 육중한 차량으로부터 아름다운 미녀 둘과 함께 내려서며 손을 들어 보이는 모습에, 사람들은 다시 한 번 환호하며 들고 있던 휴대폰으로 그들의 모습을 촬영했다.
“미스터 진! 새로운 차량의 시연인가요?”
“시연이라기 보다는 운행 시험입니다.”
누군가의 외침에 그렇게 대답하자, 사람들은 평소에 궁금하던 의문들을 해소할 기회라고 여겼는지 열심히 소리내어 외치기 시작했다.
“함께 하신 두 분은 비서입니까?”
“나이가 몇이나 되세요?”
“동양계라는 말이 있던데 정말입니까?”
“게임 속에서 죽음의 천사 역할을 하셨던 것이 사실인가요?”
“엘리시온을 장악했던 해커와 아는 사이입니까?”
기자들도 아닌 것 같은데, 질문이 상당히 예리하다. 하지만 형진은 웃으며 차근차근 그 질문들에 대답했다.
“이 둘은 제 비서가 맞습니다. 나이는 비밀입니다. 동양계 맞습니다. 게임 속 이벤트에서 죽음의 천사 역할을 했던 것도 맞습니다. 해커에 대해서는 알지 못합니다. 저도 당시 반강제로 참여했던 것이라. 용무가 있으니 그럼 또 나중에. 감사합니다.”
“와아아아!”
경찰들이 호위하고 있는 덕분인지, 끈덕지게 달라붙으며 질문 공세를 이어가는 사람은 없었다. 다만 환호하며 진과 새로운 버스 형태의 부양형 자동차를 자신의 휴대폰으로 촬영하느라 정신없을 뿐이다.
“사람들이… 뭐랄까. 좀 무서워 보여요.”
“그런가요.”
어깨 위에 올라탄 보호와 균형이 형진의 귀옆에 찰싹 달라붙은 채 떨리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한다. 열광적인 사람들의 모습과 그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여러 가지 감정들이 꼬맹이 여신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흥. 이 정도가 뭐라고. 내가 모습을 드러냈으면 훨씬 더했을걸.”
“하긴. 그렇겠군요.”
제랄딘의 어깨 위에 앉은 희망과 생명이 으스대며 그렇게 말하자, 제랄딘과 요안나는 그 모습이 귀엽다는 듯이 웃음을 지었다.
어쨌든 경찰들의 호위를 받으며 공항 출입문을 통과해 입국장으로 향하자, 미처 밖에서의 일을 알지 못하고 있던 이들의 놀란 시선이 쏟아진다.
“저 사람들… 얼마 전에 텔레비전에 나왔던 그 사람들 아닌가?”
“아… 맞아. 엘피스랑 스캔들 났던 그 남자. 진이라고 했던가?”
적어도 스캔들로 인해 한 가지 만큼은 확실한 효과를 봤던 모양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눈가리개를 쓴 진의 모습을 보고 한눈에 그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 그것이다.
“역시 헐리웃의 여신이시네요.”
“흥. 이제 알았어?”
“네. 미처 몰라 뵈어서 죄송합니다.”
“이제라도 알았으면 됐어.”
그렇게 대화를 나누며 입국장에 다가 서는 그들의 모습에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출국장에 가는 것도 아니고 입국장에 서 있는 모습이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한 모양새인데, 얼마 전 세계를 들썩이게 만든 유명 인사가 직접 마중을 나올 정도의 인물이 누구인지 좀처럼 예상이 되지 않는다.
“짜안.”
그 때, 제랄딘이 품에서 커다란 피켓 하나를 꺼낸다. 정확히는 품 안에서 꺼낸 것이 아니라 그런 척 하며 인벤토리에서 꺼낸 것이지만, 어쨌든 사람들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피켓에는 삐뚤빼뚤한 한글로 ‘이아름, 이새름 두 분의 방문을 환영합니다!’라고 써있었다.
“뭐야? 그게.”
“제가 썼어요. 어때요. 그럴 듯 하죠?”
“그, 그러네.”
일전에 보았던 제랄딘의 글씨는 라야바르트 최고 귀족의 영애답게 상당히 기품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들고 있는 피켓의 글씨는 어쩐지 어린 아이가 땀을 뻘뻘 흘리며 써내려간 듯한 느낌. 지금껏 봐왔던 그녀의 이미지와는 완전히 다른,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썼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나는 글자라 형진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피켓을 들고 잠시 기다리니, 입국장으로부터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인형처럼 꼭 닮은 쌍둥이들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자신들의 이름이 써진 피켓을 들고 있는 제랄딘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발견했다.
“안녕하세요!”
“마중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뭔가 대단한 사람의 마중을 나온 것이 분명하다고 기대했던 사람들은, 예쁘고 귀엽긴 해도 세계 굴지의 대기업 경영진이 직접 마중을 나올 정도로는 보이지 않는 쌍둥이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구지?”
“글쎄. 모르겠는데.”
이곳에서 아름이나 새름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나름 국가대표면 뭐하나. 자국에서도 알아보는 사람이 드문 판에.
아름과 새름은 형진과 요안나, 그리고 제랄딘에게 인사를 하다가 그들의 어깨 위에 자리 잡은 채 손을 흔들어 보이고 있는 꼬맹이 여신들을 보고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러다 다른 사람 눈에 띄기라도 하면 어쩌나 싶어 잠시 당황했던 그녀들은 이내, 뭔가 형진이 손을 썼다는 것을 깨닫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차로 가죠.”
“네!”
그들은 인파를 뚫고 다시 주차장으로 향했다. 쌍둥이들은 커다란 버스의 내부를 보고는 입이 떡 벌어졌고, 이내 그곳에서 사람 크기로 변한 여신들과 해후의 시간을 가졌다.
“꺄! 여신님! 보고 싶었어요!”
“나도요!”
신과 추종자라기보다는 오랜만에 상봉한 자매 같은 느낌이다. 형진은 쌍둥이가 자신들의 신인 보호와 균형이랑 그렇게 꺅꺅거리며 부둥켜안고 소리를 지르는 모습을 잠시 지켜보다가 말했다.
“부모님은 같이 오시지 않은 건가요?”
“네. 사실, 그것 때문에 설득이 좀 오래 걸렸어요. 한사코 엄마가 따라 오겠다고 그러셔서.”
“결국은 요안나님에게 도움을 받아야 했지만요.”
“쉽지 않은 일이었겠군요.”
남자도 아니고 여자. 게다가 아직 미성년인 쌍둥이를 둘만 보내는 것은 부모들로서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난리가 난 건 사실 그녀들의 가족만이 아니었다. 당장 최고 기대주로 손꼽히며 그녀들의 드래프트만을 기다리고 있던 팀들은 갑작스런 유학 소식에 당황해 버리고 말았다. 곧바로 여자 프로 리그 관계자들이 그녀들의 집을 방문해서 어떻게든 미국행을 막아보려고 했지만, 이것 역시 요안나가 나서서 잡음이 생기지 않도록 처리했다.
한국 내에서 날고기는 기업이라고 해봐야 미국이나 러시아, 중국 같은 강대국들도 꼼짝 못하는 미라지 코어의 이름 앞에서는 어깨를 움츠릴 수밖에 없는 일. 어떻게 보면 쌍둥이의 부모가 마지 못 한 기색으로라도 이번 유학을 받아들인 건 요안나가 보여준 능력 덕분인지도 몰랐다.
“모처럼인데, 좀 더 드라이브를 해볼까요?”
운전석에 앉은 요안나가 시동을 걸며 그렇게 말했다.
“어디 갈 만한 데가 있나?”
“좀 더 남쪽에 프라이빗 비치가 있어요.”
그러자 뒤쪽에서 여신과 부둥켜안은 채 꺅꺅거리고 있던 쌍둥이들이 귀신 같이 알아듣고 외쳤다.
“프라이빗 비치가 그거죠? 별장에 딸린 해변!”
“비슷해요.”
“가 볼래요! 가 보고 싶어요!”
열광적인 쌍둥이의 반응에 형진은 피식 웃어버렸다.
“그럼 결정이군. 모처럼 여신들께서도 오셨으니 나쁘지 않겠지.”
“알겠습니다.”
요안나는 천천히 허공으로 떠올라 남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교통경찰들이 허겁지겁 호버 보드를 타고 따라 붙는 모습에 쌍둥이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우와… 저 사람들 경찰이죠? 지금 호위를 해주고 있는 건가요?”
“네. 따로 요청한 것도 아닌데, 저렇게 죽자 사자 따라붙네요.”
“하하…”
귀찮다는 듯한 형진의 대답에 쌍둥이는 그냥 입을 다물어 버리고 말았다. 이 두 사람은 아직 형진이 신의 위계를 얻었다는 사실까지는 몰랐지만, 그래도 그가 소유한 미라지 코어가 이 세계에서 어느 정도의 위상을 가졌는지는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요안나가 모는 부양형 버스는 공항에서 벗어나자 조금씩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호위랍시고 따라붙은 경찰들 때문에 제대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해안을 달리며 주위의 경치를 살피는 데는 이 정도가 딱 적당했다.
그렇게 꽤 오랜 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말리부 해변. 형진은 그런가보다 하고 있었지만, 쌍둥이들은 포인트 듐이라는 지명을 확인하는 순간 기뻐서 비명을 터트렸다.
“여기 거기죠? 영화에 나오는.”
“아, 아마도?”
영화라고 해도 형진으로서는 뭔지 알 수가 없었지만, 일단은 식은땀을 흘리며 그렇게 대답했다. 요안나는 그런 형진의 모습에 빙긋 웃으며 해안가 한쪽에 위치한 별장으로 들어섰다.
경찰들은 버스가 사유지로 들어서자, 감히 그 안으로 들어설 생각은 하지 못하고 급하게 어딘가로 연락을 취하기 시작했다.
“보나마나 집주인이 누군지 확인하려고 할 텐데. 괜찮을까.”
“상관없어요. 빌린 거니까.”
“…”
하기야 요안나가 자신의 이름이 드러나도록 일을 처리했을 리가 없지. 형진은 쓴웃음을 지으며 차에서 내리고는 일단 별장의 담장을 경계로 다른 이들이 함부로 출입하거나 안의 모습을 보지 못하도록 결계를 만들었다.
“됐습니다. 이제 이곳은 위성으로도 안의 모습을 살필 수 없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모두 나오셔도 됩니다.”
“와아!”
형진의 말이 끝나자 어느 틈에 안쪽에서 수영복으로 갈아입은 쌍둥이들이 보호와 균형의 양팔을 잡은 채 달려 나와 해변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자, 잠깐만요. 아름님. 새름님. 꺄악!”
보호와 균형은 자신의 추종자들에게 팔을 잡힌 채 꼼짝없이 함께 물로 뛰어들어 버리고 말았다.
“흥. 뭐… 그럭저럭 괜찮네. 여기도 요안나의 집이야?”
“네.”
희망과 생명 역시 어느 틈엔가 하얀색 비키니 수영복을 입고 선글라스를 쓴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형진이 모델을 연상시키는 그녀의 모습을 조금 놀란 눈으로 바라보자, 희망과 생명은 그제서야 조금 부끄러워하는 기색을 보이며 몸을 움츠렸다.
“이, 이상해?”
“설마요. 아주 아름다우십니다.”
“크흠. 내가 좀 아름답긴 하지. 아하하…”
“…”
스스로 그렇게 자화자찬을 하던 희망과 생명은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었던지 그를 외면하고는 어느새 물싸움을 하고 있는 쌍둥이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다른 여신들과 마눌들은 뒤늦게서야 버스에서 빠져 나왔다. 완강하게 버티는 다른 두 여신에게 수영복을 입히느라 시간이 좀 걸려버린 탓이다.
“어때요?”
“오, 정말 아름다우시네요.”
“감사합니다…”
불처럼 새빨간 비키니를 입은 꽃과 바람이 얼굴을 붉힌 모습은 무척이나 요염했고, 쇄골 근처가 망사 스타일로 되어 있는 검은 색 홀터넥 비키니를 입은 황혼과 망각의 모습도 생각보다 훨씬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노출도가 높은 수영복을 입은 여신들에 반해 정작 제랄딘과 요안나는 하얀색과 검은색이 섞인 래시가드를 입고 있었다.
“이게 뭐야! 왜 래시가드 따위를!”
“왜요? 이게 어때서요. 얼마나 편한데.”
“크윽…”
바닥을 짚으며 좌절하는 형진의 모습에 두 마눌은 키득거리며 웃음을 터트리더니, 이내 그를 덮쳐서 팔다리를 잡고는 그대로 해안가로 달려가 바다에 빠트려 버렸다. 어찌나 동작이 빠른지 저항할 틈도 없었다.
“컥! 이게 무슨!”
물에 빠진 생쥐꼴로 허우적거리며 몸을 일으키자, 두 마눌은 까르르 웃으며 말했다.
“이렇게 눈호강을 시켜주고 있는데, 감사할 줄도 모르고!”
허리에 손을 척 얹은 채 그렇게 제랄딘이 외치자, 여신들은 물론이고 쌍둥이들까지 맞장구를 친다.
“맞아요.”
“변태 길마는 각성하라!”
“새름아. 각성하면 안 되지. 그러다 덮치면 어쩌려고.”
“아, 맞다. 그럼 각성은 빼고, 감사하라!”
“킁.”
형진은 피식 웃어 버렸다. 하기야 자신 이외의 달리 누가 이런 진풍경을 볼 수 있겠는가. 아리따운 마눌들은 물론이고 천상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여신들의 수영복 차림까지. 이 장소에 오직 남자가 자신 뿐이란 걸 생각하면, 확실히 복에 겨운 상황인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아무래도 머슴 역할로 확정되어 버린 것 같기는 해도.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머슴으로서의 소질은 아주 충분하다 못해 넘칠 정도다. 혼자서 10인 분 역할은 충분히 할 수 있을 정도니까.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 작품 후기 ============================
두편째.
드르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