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592
00592 134. 돌격! =========================
“좋아. 그럼 오랜만에 일 좀 해볼까.”
형진은 젖어버린 웃옷을 벗어 던지며 물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지켜보고 있던 여신들이 꺅꺅거리는 소리를 내며 얼른 눈을 가린다.
“뭘 새삼스럽게 난리야. 남자 웃통 벗은 거 처음 보나.”
희망과 생명은 그렇게 말하며 핀잔을 주었지만, 그녀 역시 감히 형진의 몸을 똑바로 볼 엄두는 내지 못하고 있었다. 헐리웃의 여신이 남자를 보고 내외하다니, 기자들이 봤다면 어떻게든 사진을 찍고 싶어서 안달이 날 만한 모습이다.
형진은 그런 여신들을 보고 빙긋 웃고는 별장 안에서 무언가를 가져다가 뚝딱 뚝딱 조립하기 시작했다. 다름 아닌 비치 파라솔이다.
비치 파라솔과 벤치 같은 것을 주욱 늘어놓고 테이블과 이동용 화덕 같은 것까지 차려놓는다. 그것만이 아니다. 안에서 침대를 번쩍 들고 나와서 모래사장이 내려다보이는 정원에 내려놓더니, 쇠파이프 몇 개와 흰색 천을 엮어 그럴듯한 캐노피를 만들어 씌운다.
순식간에 그럴 듯한 카바나가 완성되자, 이런 식으로 형진이 솜씨를 부리는 일을 별로 본 적이 없는 쌍둥이들은 눈이 휘둥그레지고 말았다. 뭔가 잠시 뚝딱거리는 것 같더니, 해변을 바라보는 그럴 듯한 공주님 침대가 완성되어 버렸다. 어지간한 손재주로는 실로 어림도 없는 일이다.
“우와…”
“마술 부리는 것 같아.”
열심히 일하는데 옆에서 그럴 듯한 추임새가 더해지면 머슴도 힘이 나는 법. 형진은 곧바로 별장 안의 침대를 모조리 꺼내다가 모두 정원에 가져다 놓고는 캐노피를 씌워 버렸다. 손재주는 물론이고, 커다란 이인용 침대를 혼자서 번쩍 번쩍 들어 옮기는 형진의 모습에 쌍둥이는 그냥 입만 쩍 벌린 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일단 잠자리를 만드는 일이 끝나자, 다음에는 장작을 준비한다. 형진은 별장 한켠에 쌓여 있는 통나무 더미로 다가가더니 현란한 도끼질로 그것을 순식간에 장작으로 만들어 버렸다.
“스흡!”
도끼를 한번 내리칠 때마다 불끈거리는 등근육의 향연에, 쌍둥이들은 물론이고 여신들마저 홀린 듯한 시선을 던진다.
“아주 그냥 신났네. 침까지 흘려가면서.”
희망과 생명이 혀를 차며 그렇게 말하자, 관객들은 그제서야 화들짝 놀라며 딴청을 부린다.
“누, 누가 침을 흘렸다고 그래요.”
“맞아요. 조, 조금 흐를 뻔하긴 했지만 정말로 흘리진 않았다고요.”
“아, 그러세요.”
흘리진 않았다. 흘릴 뻔 하긴 했지만. 희망과 생명은 그걸 변명이랍시고 늘어놓는 여신들의 모습에 혀를 차고 말았다.
가만히 그들을 지켜보며 웃고 있던 요안나가 문득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열심히 일하고 있는 진을 위해 저녁 거리 장만하러 가지 않으실래요?”
“저녁 거리요?”
“네. 저쪽 모래사장을 파보면 조개들이 꽤 많이 있거든요. 사람 손이 거의 닿지 않은 곳이라 거의 모래 반 조개 반이에요.”
대번에 쌍둥이들이 손을 번쩍 들며 대답했다. 그녀들은 이런 식의 새로운 도전을 아주 좋아하는 쪽이다.
“갈래요! 해볼래요!”
“저도요!”
그렇게 몇 사람이 바람을 잡자, 결국 모두 함께 뭉쳐서 조개를 캐러 가기로 했다. 형진은 흐뭇한 표정으로 그녀들이 도구를 챙겨 한쪽으로 몰려가는 것을 바라보다가, 다시 일을 시작했다.
장작의 준비를 끝나자, 형진은 벽돌을 가져다가 간단하게 화덕을 만들었다. 모래를 조금 파내고 그 위에 벽돌을 차곡차곡 쌓자, 금새 그럴 듯한 화덕 하나가 완성된다. 여기에 준비한 장작을 가져다 우물 정 형태가 되도록 쌓고 그 안쪽에 얇고 길쭉한 장작 몇 개를 세워서 넣고, 장작을 패면서 나온 부스러기들을 밀어 넣으면 끝.
딱!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자 형진의 손으로부터 불의 속성력이 라이터처럼 솟아나서 장작에 불을 붙인다. 원래는 불쏘시개가 될 만한 것들이 더 필요하지만 형진의 속성력이 워낙 강력해서 이 정도만으로도 충분히 불이 붙는다.
화덕에 불을 붙이는 작업이 끝나자, 바람에 날려간 불씨들이 모처럼 예쁘게 만들어진 침대나 차양에 떨어지지 않도록 조치를 취한 다음, 요리에 쓸 야채와 다른 재료들을 바로 요리할 수 있도록 준비한다. 자신까지 합쳐서 아홉 명. 특히나 여신들의 경우엔 꼬맹이 사이즈에서도 상당한 먹성을 발휘하곤 했기 때문에 충분하게 재료를 준비할 필요가 있다.
잠시 그렇게 재료를 준비하고 기다리는데, 문득 결계 바깥쪽에서 누군가 접근하는 기색이 느껴진다.
인벤토리에서 휴대용 위성 발사기 하나를 꺼내 사용했다. 탁구공 같은 느낌의 소형 위성들은 하늘로 둥실 떠올라 별장 근처의 상황을 형진에게 알려왔다.
“흠… 누구지?”
고급 승용차 몇 대가 별장 근처에 멈추어 선 것이 보인다. 차에서 내린 사람들은 주위를 둘러보더니 별장 입구로 다가와 안쪽을 기웃거리기 시작한다.
별장에 접근하는 사람들은 그들만이 아니었다. 망원 렌즈를 장착한 카메라를 들고 별장 안의 모습을 찍으려고 기웃거리는 사람들이 네 팀 정도. 드론을 가지고 와서 그것을 띄우려고 하는 이들이 두 팀 정도. 보트를 끌고 나와 바다 쪽에서 얼쩡거리는 사람들도 세 팀 정도 된다.
“인기가 너무 많아도 골치군.”
단순한 파파라치일 수도 있고, 다른 나라에서 보낸 첩보원일 수도 있다. 정문에서 기웃거리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주정부와 관계된 사람들로 보이고.
가만히 지켜보고 있자니, 그들 중 하나가 드론을 날렸다. 드론 하나가 그렇게 날아오르자, 뒤이어 다른 팀에서도 또 다른 드론이 날아올랐고, 바다 쪽에 떠있던 보트에서도 경쟁하듯 드론 하나가 더 날아올랐다.
물론 제 아무리 드론이라고 해도 별장 안의 모습은 촬영할 수 없다. 이미 빈틈없이 황혼의 결계가 설치되어 있어서, 형진이 허락하지 않는 이상 그를 능가하는 힘을 지닌 신이 아니라면 절대 안으로 비집고 들어올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대로 가만히 두고 보는 것은 역시 좋지 않은 일이다. 세상에는 가만히 있으면 힘이 없어서 그런 줄 아는 사람들이 의외로 꽤 많기 때문이다.
형진은 인벤토리에 담겨져 있던 물건 하나 꺼냈다. 일명 다리미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근접 항공 지원용 무인기이다. 크기는 작지만, 12.7 밀리 전열 화학포에 JDAM 48발을 탑재한 무시무시한 무기다. 비록 크기는 작지만 이거 하나면 대대 규모의 기갑 부대 하나는 감당할 정도의 화력이 나온다.
솔직히 과잉 화력이긴 하지만, 힘을 과시하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형진은 드론들이 별장 안으로 침입하려는 기색을 보이자 곧바로 그것을 하늘로 날려보냈다.
“뭐야. 왜 안쪽의 모습이 보이질 않는 거야?”
“모르겠습니다. 그냥 안개가 낀 것처럼 뿌옇기만 하고 상이 잡히질 않습니다.”
“고장 난 건 아니고?”
“아닙니다.”
“젠장… 할 수 없지. 안으로 밀어 넣어봐.”
“네? 하지만 그러다가 사유지 침입으로 걸리기라도 하면.”
“어차피 물은 엎질러졌어. 여기까지 와서 빈손으로 갈 수는 없다고.”
최초 드론을 날린 사람들은 중국에서 파견된 첩보원들이다. 본래는 실리콘 밸리에서 신기술들을 빼돌리는 임무를 맡고 있었지만, 최근에는 미라지 코어 쪽에 집중하고 있는 상황. 그들에게 있어 미라지 코어의 중요 인물은 무엇보다도 먹음직스러운 먹이감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죽음의 천사와 미라지 코어의 연계설이 거의 확실하다고 여겨지는 상황에서 이것은 매우 위험천만한 일이지만, 그렇게 따지면 원래 첩보 활동이란 것 자체가 위험한 일이다. 그런 일을 하는 이들이다보니, 막연한 위험성 정도로는 쉽게 물러나지 않는다.
그들이 조종하는 드론은 천천히 별장의 담장 안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마침 석양이 지고 있는 상황이라 하늘 위에 뜬 작은 비행체는 신경 써서 확인하지 않는 이상 발견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상대는 미라지 코어. 당장 외부에서의 시야를 차단하는 이 기이한 기술만 봐도 상대는 결코 만만치 않다. 때문에 첩보원들은 최대한 신중을 기해 드론을 접근시켰다.
“조금만 더…”
하지만 드론이 담장 안으로 막 진입하려던 순간 이변이 일어났다.
퍽!
갑자기 잘 날고 있던 드론이 그대로 박살이 나며 구겨지듯 지면으로 추락하고 만 것이다.
갑작스런 사태에 드론을 바라보던 이들은 그대로 흠칫 굳어버리고 말았다.
“지금… 그게?”
“격추된 건가?”
총성이나 포성 같은 것은 들리지도 않았다. 하지만 부서져 흩어지는 모양새는 영락없이 무언가에 맞아 격추되는 듯한 꼴이다.
해안에서 접근하던 드론과, 다른 팀에서 띄운 드론은 그 모습을 확인하자 화들짝 놀라 별장으로부터 떨어졌고, 정문 근처를 서성이던 사람들 가운데 몇이 급히 권총 같은 것을 꺼내 들더니 추락한 드론을 향해 달려갔다.
“젠장. 텄다. 철수해!”
“네? 하지만…”
“어쩔 수 없어. 지금 상황에서 막무가내로 돌입할 수도 없잖아. 단순한 방범 시스템 이상의 무장까지 갖추고 있는 것이 확실한 이상, 더 이상은 무리다. 일단 철수해서 상부의 명령을 기다린다.”
“알겠습니다.”
중국쪽 첩보원들이 급히 자리를 벗어나자, 또다른 팀 역시 급히 드론을 회수해 물러났다. 정문을 서성이던 사람들은 격추된 드론의 잔해를 수거하고는 다시 어디론가 연락을 취했고, 바다 쪽에서 기웃거리던 보트들은 해안 경비대의 순찰정들이 나타나자 역시나 꽁지에 불이 붙은 것처럼 도망쳐 버리고 말았다.
일단 주위를 기웃거리던 불청객들이 사라지자, 정문을 기웃거리던 사람들 중 몇몇이 정문에 장치된 초인종을 눌렀다. 아마도 방금 전의 일을 기회로 삼아 말이라도 한 번 걸어보려는 모양이다.
형진은 직접 나가 살피는 대신 무인기를 정문으로 보냈다.
-누구시죠?
갑자기 다리미를 닮은 무인기 하나가 나타나고, 다시 그것으로부터 변조된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정문을 기웃거리던 사람들은 화들짝 놀랐다.
“크흠. 저희는 캘리포니아 주정부에서 나왔습니다. 혹시 지금 이곳에 미라지 코어의 경영지원실장께서 머물고 계십니까?”
-그렇습니다만.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잠시 얘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지금 이곳에 주지사께서 와계십니다.”
보통 이런 식의 요청을 하면 일단 인사 정도는 나누는 것이 일반적이다. 상대의 직위를 생각하면 문전박대가 쉽지 않은 탓이다. 자고로 권력자는 무시당하는 일에 익숙하지 않은 법이니까.
하지만 형진은 그런 일반적인 상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쪽이다. 특히나 상식적이지 않은 상대가 강요하는 상식에 대해서는 더욱더.
-실례지만 약속을 하셨습니까?
“그건… 아닙니다만.”
-미리 약속을 잡으신 것이 아니라면, 돌아가 주십시오.
“네? 하지만…”
-미리 약속을 잡으신 것이 아니라면, 돌아가 주십시오.
“…”
강경한 어조의 대답에 사람들은 난처한 표정으로 서로를 돌아보았다. 무슨 영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무작정 밀고 들어갈 수 있는 권한 따위 그들에게 있을 리가 없다. 그렇다고 권위나 직위로 밀어 붙였다가는 그 후폭풍 또한 감당하기 힘든 일. 애초에 아쉬운 건 주지사 쪽이지 형진이 아니다.
하지만 기왕 여기까지 왔는데 얼굴도 보지 못하고 그냥 돌아가 버리는 건 역시 아쉬운 일.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 우왕좌왕하고 있는데, 문득 비서 가운데 하나가 누군가에게 연락을 받았다.
볼 것도 없이 그건 연방 정부의 관계자로부터 온 연락이었다. 이런 식으로 미라지 코어의 고위 인사와 개별적인 접촉을 취하려는 시도를 연방 정부에서 확인하고는 불쾌감을 표시한 것이다.
문도 열리지 않는데다, 그런 식으로 외부에서 압박까지 들어오자 주지사는 결국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알겠… 습니다. 그럼 나중에 정식으로 약속을 잡고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그런 식으로 주지사 일행까지 돌아가고 나자, 별장 주변은 마침내 다시 평온을 되찾을 수 있었다.
“진! 이것 좀 봐요! 이만큼이나 잡았어요!”
방금 전까지 별장 주위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꿈에도 모른 채, 여신들은 양동이에 하나 가득 주먹만한 조개들을 담아서 가져오고 있었다.
형진은 얼른 다가가 그녀들에게서 양동이를 받아들었다.
“어이쿠. 아주 묵직하군요. 이 정도면 오늘 저녁은 아주 푸짐하겠습니다.”
“그렇죠? 처음에는 찾기가 어려웠는데, 이것도 요령을 아니까 아주 쉽더라고요.”
“이거 제가 잡은 거에요. 엄청 크죠?”
“정말이군요. 대단합니다.”
형진은 일단 커다란 대야를 꺼내 바닷물을 담은 다음 조개들을 거기에 쏟아놓았다. 해감을 시키기 위해서다.
“수고하셨습니다. 일단 간단하게 씻으시고, 바로 저녁을 먹도록 하죠.”
“네!”
============================ 작품 후기 ============================
오늘은 여기까지.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