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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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내가 버그 유저라고?
그가 늑대 세 마리를 클리어 하고 네 마리째에 도전할 즈음, 온라인 게임 엘리시온의 운영진들은 긴급회의를 열었다.
“이것이 현재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그 동영상입니다. 일단 보시죠.”
한 사람의 말에 회의실의 불이 꺼지고 이른바 아머 브레이커라는 별명이 만들어지게 된 동영상이 프리젠테이션 화면에 흘러나온다. 사람들은 잠시 말을 잊고 눈앞에서 펼쳐지는 영상에 집중했다.
그렇게 잠시의 정적이 흐른다. 그리고 마침내 영상이 끝나고 다시 불이 켜지자, 회의에 참석한 운영자들은 비로소 입을 열었다.
“왜 그렇게 게시판이 시끄럽나 했더니 저래서였군.”
한 사람이 말문을 열자 운영자 중에 하나가 그 말을 받는다.
“저거 혹시 아머 브레이크 아닌가요? 저번에 보니까 스킬 중에 그런 것이 있었던 것 같은데.”
하지만 그 말은 개발팀에 의해 바로 반박되었다.
“아머 브레이크라는 기술이 있긴 합니다만, 그건 2차 전직에 포함된 히든 클래스 데스트로이어의 스킬입니다. 게다가 저렇게 단숨에 박살나는 기술도 아니고요. 더구나 아직 해당 직업으로 전직한 사람도 없는 걸로 압니다.”
“저 플레이어가 데스트로이어로 전직 중인 건 아니고요?”
곧바로 진행자가 질문에 답했다.
“아닙니다. 확인해 본 결과 아직 1차 전직도 하지 않았습니다. 전투 명성 보다는 생활 명성 위주로 플레이 했고, 그나마도 최근 왕실 의뢰를 포기하면서 명성이 대폭 깎였습니다. 일단… 생활 스킬 가운데 특히 석재 가공 분야에서 명장 등급을 최초로 달성한 것은 특기할 만한 사항이군요.”
진행자의 대답을 들은 참석자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아니, 그럼… 1차 전직도 하지 않은, 생판 지금까지 전투 자체를 한 적도 없는 플레이어가 갑자기 현존 최강의 갑옷을 박살내 버렸다는 겁니까? 그게 가능해요?”
“개발 쪽에서는 뭐라던가요?”
그러자 회의석 구석에 앉아 있던 사람 하나가 자리에서 일어나 진행자 옆으로 다가가더니 질문에 답했다.
“개발부 제2팀장입니다. 저희들도 이번 일에 상당한 흥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앞서의 질문에 대한 답을 드리자면, 일단 버그나 핵 같은 것은 아닙니다.”
확정적인 그 발언에 회의에 참석한 이들은 다시 한 번 술렁거렸다.
“아니라고요?”
“네. 혹시나 해서 해당 플레이어를 모니터링하고, 기기에 대한 역추적까지 시행해 봤습니다만, 적어도 프로그램 상으로는 문제가 될만한 부분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럼 저건 뭡니까?”
“그렇지 않아도 그것을 설명 드리기 위해 제가 온 것입니다.”
개발팀장은 가볍게 헛기침을 하고는 찬찬히 설명을 시작했다.
“기억하실지 모르지만, 엘리시온에는 현실감을 높이기 위한 수단 중 하나로 인스턴트 킬 시스템이 추가되어 있습니다. 불사신이라 불리던 아킬레스가 결국 약점을 찔려 죽었던 것처럼, 아무리 강대한 적이라도…”
팀장은 인스턴트 킬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이어가려 했지만, 듣고 있던 상급자 가운데 하나가 그의 말허리를 자른다.
“아, 그건 됐고. 아무튼 결론은 지금 저 플레이어가 인스턴트 킬 시스템을 자유자재로 쓰고 있다는 얘기 아닙니까?”
“네, 뭐… 그렇습니다.”
운영자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들도 인스턴트 킬 시스템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있었고, 실제로 그것이 얼마나 달성하기 어려운 일인지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다니, 그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말이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그렇다면 가능성은 보통 하나다.
“핵인 것 같은데.”
“그렇습니다. 핵이 아니고서야 인스턴트 킬을 원하는 대로 일으킬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됩니다.”
중간에 설명을 잘라 먹은 것 때문에 투덜거리던 팀장은 그 말에 급히 답했다.
“저희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신고가 들어오자마자 급히 모니터링을 시작했고, 기기를 역추적까지 했던 겁니다. 하지만, 결론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이걸 봐 주십시오.”
“…”
곧바로 화면에 복잡한 코드들이 하나 가득 도배되기 시작한다. 엘리시온은 기존의 MMORPG보다 훨씬 복잡하고 다양한 것을 다룬다. 단순히 게임 내용의 문제만이 아니라 유저가 체감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에 대한 상호 작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그만큼 로그 역시 복잡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운영자 대부분은 이렇게 가공되지 않은 통짜 로그를 일일이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의 전문성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적어도 QA까지 업무 영역을 확장하지 않는 이상, 일반적인 운영자들이 반드시 이러한 것을 알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흥분해서 로그를 보여주는 팀장한테 대고 이게 뭐냐고 물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난감해 하는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자니 문득 진행자가 개발팀장에게 뭔가 귓속말을 전한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흥분했군요. 일단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이런 얘깁니다.”
팀장은 가볍게 헛기침을 한 뒤 말을 이었다.
“크흠! 인스턴트 킬을 발동시키기 위해서는 해당 개체의 약점을 정확하게 찌를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약점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개체의 움직임이나 상태에 따라 변화합니다. 딱히 외형적으로 드러나지도 않고, 이 때문에 인스턴트 킬을 따내는 것이 로또에 맞는 것과 같은 확률이라고 알려져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팀장은 화면에 나타난 그의 모습을 가리키며 외쳤다.
“이 플레이어는 토끼부터 시작해서 족제비, 여우, 늑대에 이르기까지 죽고 살아나기를 반복하며 오직 인스턴트 킬을 따내는 것만을 집중적으로 수련하고 있습니다. 맞아 죽는 한이 있더라도 헛된 칼질은 최대한 삼가고 오직 몹의 약점만을 노리고 있는 거죠. 그 어떤 외부 프로그램의 도움도 없이 말입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놀라운 건 둘째치고… 확실합니까? 정말로 외부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지 않은 겁니까?”
“확실합니다. 제 손모가지를 걸어도 좋습니다. 저나 다른 개발부 직원들을 속일 정도의 프로그래밍 능력자라면, 차라리 저를 자르고 그 프로그램을 만든 사람을 영입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릅니다.”
“…”
과격한 발언이었지만, 바꿔 말하자면 그만큼 자신들이 만든 프로그램의 보안 능력을 자신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버그 사용자도 아니고요?”
“네. 아닙니다.”
“…”
하지만 이렇게 되면 얘기가 많이 매우 굉장히 엄청 복잡해진다.
핵이나 버그 사용자라면 그냥 적발해서 영정이든 뭐든 먹이면 그만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딱히 제재를 가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냥 놔둬도 문제다. 개발부 쪽에서는 단순히 이런 능력을 가진 사람이 나타났다는 것에 흥분하는 모양이지만, 운영진 쪽에서 보자면 이 플레이어는 자칫 게임 그 자체를 박살낼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존재다.
간단하게 생각해 보자. 모든 몹에게서, 그 몹이 드랍하는 최상위 아이템을 자기 주머니에서 물건 꺼내듯이 얻을 수 있다면 과연 그 아이템의 희소 가치는 어떻게 될까. 바로 땅에 떨어져 버릴 것이다. 레어가 무슨 뜻인가. 희귀하다는 뜻 아닌가. 희귀하다고 정해진 아이템이 더 이상 희귀하지 않다면, 그것에 맞추어 짜넣은 난이도나 플레이 흐름, 클래스의 분포 등 게임을 구성하는 요소 대부분이 흐트러지고 만다. 이래서야 머리 아프게 그 모든 것을 디자인한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다.
막말로 이 플레이어가 하루종일 죽치고 앉아 토끼만 잡는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게 되면 토끼가 드랍하는 레어 아이템인 토끼 머리띠의 가치는 대폭락할 수밖에 없다.
아이템이 구하기 쉬워지면 좋은 거 아니냐고 할 지 몰라도, 문제는 그것이 테이머 계열의 부스터 아이템이기도 하다는 뜻이다. 좀 과장되게 말하자면 개발자들이 심사숙고해서 짜넣은 게임내 파워 밸런스가 자칫 그것 하나 때문에 헝클어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
차라리 초보존의 최약체 몹인 토끼는 그렇다 치고 넘어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약 월드 보스 같은 상대를 대상으로 이런 짓을 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그렇게 해서 월드 보스가 드랍하는 최상위 아이템이 게임 상에 대량으로 풀리게 된다면, 게임 내의 경제와 파워 밸런스는 수습하기 어려울 정도로 순식간에 붕괴해 버릴 것이다.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다.
만약 이 플레이어가 공성전에 나선다면 어떻게 될까.
앞을 가로막는 것은 모조리 일격으로 끔살시켜 버리는 이런 존재 앞에서 과연 성이 의미나 있을까.
그렇게 혼자서 성을 때려 부수고 유저들을 학살한다면, 과연 다른 이들이 그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아, 저 인간은 열라 강하니까 그냥 닥치고 죽는 수밖에 없겠구나’ 하고 받아들일까.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얘기다. 당연히 유저들은 이런 상황에 의문을 품고 항의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원인을 밝히지 않는다면 운영진이나 개발진을 의심할 것이고, 그것은 게임 운영 자체의 신뢰도 붕괴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아무리 게임을 잘 만들어도 운영이 그런 식으로 돌아간다면, 과연 남아 있고자 하는 유저가 있기는 할까.
게임도 결국은 사업이고, 사업은 고객을 필요로 한다. 유저가 모두 떠나 버린다면, 잘 만들었든 못 만들었든 그 게임은 이미 생명이 다한 것이다.
물론 이것은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것이다. 하지만 대책을 마련할 때는 어떠한 낙관적인 희망도 섞여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해도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일이 세상사니까.
“제재해야 합니다.”
마침내 운영자 가운데 하나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하지만, 명분이 없지 않습니까.”
“명분이야 있지요. 버그 사용자.”
“네? 하지만 버그를 사용한 정황이 없지 않습니까.”
“버그를 사용한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존재 자체가 버그나 다름 없는 사람이란 말이죠.”
“…”
어떻게 보면 말장난에 가까운 얘기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이 플레이어를 내버려 뒀다가는 게임 자체가 망할 수도 있다. 운영진들이 이 사안에 대해 느끼는 위기감은 그 정도로 위중했다.
운영진들은 곧바로 갑론을박하며 서로 의견을 개진하기 시작했다. 사안이 위중한 것은 알겠지만, 확실한 명분이나 근거 없이 제재를 가해서는 안 된다는 측과, 근거야 어찌 되었든 사안의 위중함을 봐서라도 당장 제재를 가해야만 한다는 측, 이렇게 두 가지 의견으로 나뉘어 버린 것이다.
“저, 죄송합니다만, 이것을 봐주시겠습니까?”
그때 회의 진행자가 앞으로 나서며 한 가지 자료를 화면에 나타냈다.
“이쪽은 이번에 갑옷이 파손된 것으로 인해 신고를 넣은 플레이어이고, 이쪽은 문제가 된 플레이어입니다.”
“…”
그것은 하나의 도표였다. 어느 쪽이 얼마 만큼의 캐시를 구매했는지 기간별 통계와 총액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만든.
갑옷을 부숴먹은 유저는 도대체 일상 생활은 가능한 걸까 싶을 정도로 엘리시온에 돈을 때려 붓고 있었고, 문제가 된 유저는 게임 오픈 이후로 단 한 번도 과금을 한 적이 없었다.
그것을 본 순간, 둘로 갈라져 대립하던 운영진들의 의견은 단숨에 하나로 합쳐졌다.
“제재합시다.”
당연하다. 둘 중 하나를 살려야 한다면, 당연히 자신들의 회사에 돈을 물어다 주는 호구를 살려야만 한다.
“사유는 버그 사용자. 곧바로 조치하고 공지 때립시다.”
그의, 그리고 그가 키우던 캐릭터의 운명은 그렇게 단숨에 결정되어 버리고 말았다.
“어?”
늑대 네 마리와 숨막히는 혈전을 벌이고 있던 그는 갑자기 화면이 멈추며 나타난 메시지를 확인한 순간 잠시 정신이 멍해지는 기분을 느껴야만 했다.
[모험가님의 계정은 ‘버그 사용자’ 사유로 인해, 엘리시온 운영정책에 따라 ‘계정 영구정지’ 중입니다.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시다면 엘리시온 홈페이지의 1:1 문의나 상담원 문의를 통해 말씀 주시기 바랍니다.]잠시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접속이 해제되고 나서도 그는 멍하니 눈앞에 나타나 있는 그 메시지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게 무슨 소린가. 버그 사용자라니. 계정 영구 정지라니. 마른 하늘의 날벼락도 유분수지, 내가 뭘 어쨌다고? 내가 언제 버그를 썼다고?
그는 곧바로 홈페이지를 확인했다. 하지만 그곳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그가 본 메시지가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 반쯤 블라인드된 그의 계정명과 함께 앞서의 내용과 같은 공지가 올라와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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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근데 솔직히 사기인 건 맞잖아.
주인공: 어이, 당신이 그렇게 말하면 안되는 거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