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5
5====================
0. 내가 버그 유저라고?
거창하게 심상수련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더라도, 그 비슷한 일은 경험한 것 같다. 고작 5레벨의 늑대 상대로 뭐하는 짓이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이것은 단순히 늑대와의 싸움이 아니라 일대 다수의 전투를 상정한 시뮬레이션이기도 하다.
그는 자리에서 툭툭 털고 일어났다. 그가 아무것도 않고 계속 버티고 앉아 있자, 주위에 모여들었던 사람들은 어느새 다들 사라진 뒤였다. 실제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난 건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얼핏 생각하기에도 꽤 시간이 흐른 듯한 느낌이다.
등에 메고 있던 활을 집어 들어 시위를 당겼다. 그리고 가장 가까이 있는 늑대 두 마리를 연속으로 맞추었다.
인스턴트 킬을 노리고 쏜 것이 아니라 단순히 몹을 끌어 오기 위한 행동이었기 때문에 그리 큰 피해는 주지 못했지만, 늑대들은 상처 입은 것에 분노하며 급히 그를 향해 달려왔다.
여기까지는 앞서와 같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다르다.
그는 천천히 활을 다시 등에 메고는 단검을 손에 쥐었다. 그리고 호흡을 정돈했다.
집중이 시작되자 얼핏 시간이 느려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갑자기 많은 양의 정보가 쏟아지자 일시적으로 병목현상이 일어나며 그런 기분이 느껴지는 것 뿐이다.
일반적으로 게임에서 경험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것에 전혀 위화감을 느끼지 않고 있었다. 사실 처음도 아니다. 실제로 그는 생활러를 하는 와중에도 종종 지금과 같은 경험을 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도 으레 이런 일을 경험하는 줄 알고 있었다. 아주 깊게 집중하면, 당연히 따라오는 일종의 특수 효과 같은 거라고 이해하고 있을 정도다. 어찌 보면 다른 생활러보다 훨씬 빠르게 명장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이런 현상 때문은 아니었을까.
어쨌거나, 그렇게 다가오는 두 마리 늑대에게 집중하던 그는 문득 한 마리가 옆으로 빠지며 그의 이목을 끌려 하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기만 행위였다. 앞선 늑대의 공격으로부터 상대의 이목을 떼어 놓기 위한 기만행위.
뭔 놈의 초보존 늑대 나부랭이가 이런 기만전술까지 부리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지만, 사실 대부분의 유저는 그러거나 말거나 무시하고 치고받으며 싸운다. 그렇게 싸워도 어떻게든 두세 마리 정도는 이길 정도의 난이도라고나 할까. 물약까지 빨면서 싸우면 네다섯 마리의 협공 정도는 버틸만 하다. 어떻게 보면 애초에 가만히 맞으면서 인스턴트 킬만 노리는 그가 이상한 사람이다.
모처럼 늑대가 서로 좌우로 갈라지며 그렇게 기만 행위를 했지만, 그는 현혹되지 않았다. 이미 두 번이나 이런 식의 기만 행위에 휩쓸려 집중력을 잃고 맞아 죽은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냥 버티고 서 있기만 한 것은 아니다. 움찔거리며 마치 상대의 움직임에 현혹된 듯이 역으로 기만 동작을 취한다.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앞서서 달려오던 늑대가 벼락같이 뛰쳐 오르며 그의 목을 노리고 달려든다.
기회다.
그는 달려드는 늑대를 향해 똑바로 단검을 찔러갔다.
[인스턴트 킬! ‘물어뜯기 Lv.2’가 소멸했습니다!]성공이다. 이전에는 두 마리의 연계 플레이에 현혹되어 이것조차도 성공하지 못했지만, 이번에는 마침내 성공을 거두었다.
“컹!”
선제 공격을 가했던 늑대가 튕겨 나가며 경직에 걸렸다. 그는 곧바로 약점이 드러난 늑대에게 최후의 일격을 날리고자 했지만, 옆에서 다른 늑대가 곧바로 달려들었다.
공격을 무시하고 그대로 한 마리를 먼저 쓰러뜨리는 것이 옳을까. 아니면 새로운 공격 또한 무효화시키는 것이 옳을까.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는 우선 공격을 무효화시키는 것을 선택했다.
다소의 피해를 입더라도 우선 하나를 쓰러뜨리는 쪽이 나을 것 같기는 하지만, 튕겨나가 경직에 걸린 늑대 쪽이 더 멀리 있는 탓에 타이밍이 맞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인식이 다소 늦었던 탓에 그의 반응이 늑대보다 조금 느렸다. 그래서 마치 늑대를 껴안는 듯한 자세로 단검을 찔러야만 했다.
[인스턴트 킬! ‘돌진 Lv.1’이 소멸했습니다!]실패하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히 성공했다. 애초에 늑대가 사용한 공격 방법이 이전과는 달랐고, 스킬레벨도 한 단계 낮았던 탓에 좀 더 쉽게 대응할 수 있었던 모양이다.
“크헝!”
역시나 스킬이 무효화되자 늑대는 대번에 경직에 걸렸다. 게다가 이 녀석은 품에 안기다시피 달려들었기 때문에 앞서의 늑대처럼 멀찍이 튕겨나가지도 않았다. 완전히 손 안에 든 과녁이나 다름없는 꼴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그가 가차 없이 단검을 찌르자 역시나 메시지가 터져 나왔다.
[인스턴트 킬! ‘늑대’가 죽었습니다!]그렇게 옆에서 끼어든 놈을 처리하는 동안 선제공격을 가했던 늑대의 경직이 풀렸다. 하지만 이미 다른 한 마리의 늑대는 죽어버린 뒤였고, 일대일 상황에서라면 그도 꿀릴 것이 없었다.
결국 그렇게 두 마리의 늑대를 전부 처리하자, 그는 팽팽하게 당겨졌던 긴장을 풀고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하… 하하…”
해냈다. 그것도 단순한 성공이 아니라, 한 번의 공격조차 허용하지 않은 완벽한 승리다. 두 마리 늑대의 연계 플레이에 당황해서 손과 발이 뒤엉켜 두 번이나 부활존의 신세를 졌던 것에 비하면 괄목상대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의 발전이다. 물론 이 한 번의 전투에 마치 수명이 줄지는 않았을까 싶을 정도의 집중력을 소모하긴 했지만, 이것은 단순히 늑대 두 마리를 쓰러뜨린 것 이상의 가치가 있는 결과였다. 일대 다 상황에서 어떻게 대응할 지에 대한 실마리를 찾았기 때문이다.
“좋아. 한 번 더!”
하지만 한 번 성공했다고 두 번째도 성공한다는 보장 따위 처음부터 없었다. 성공했다고 잠깐 마음을 놓은 탓에 두 번째에는 다섯 번이나 공격을 허용한 끝에 겨우 늑대들을 잡을 수 있었다. 그나마 한 마리는 인스턴트 킬조차 내지 못했으니 잠깐 마음을 놓은 결과 치고는 참담하게 느껴질 정도다.
“후우… 집중하자. 집중.”
그렇게 한 번 호되게 당하고 나니 잠시나마 풀어졌던 정신이 바짝 조여진다. 그 덕분인지 세 번째는 그럭저럭 앞서보다 수월하게 늑대들을 잡을 수 있었다.
“쉽지 않네.”
그는 세 번째 전투가 끝나자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잠시 휴식을 취했다. 게임이라 육체적인 피로는 느끼지 못하더라도, 정신적인 피로만큼은 부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상당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그렇게 쉬고 있자니 한 무리의 파티가 늑대존으로 들어왔다. 아마도 초보존의 마지막 사냥을 위해 마을에서부터 파티를 짜고 왔던 모양이다.
“응? 사람이 있는데요.”
“정말이네. 혼자인 것 같은데 파티 요청이라도 해볼까요.”
“아, 잠시만… 저 사람, 아머 브레이커 같은데?”
“어? 정말이네.”
그들은 흘끔거리며 그를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한켠으로 물러나 사냥을 시작했다. 아마도 괜히 성질 건드렸다가 해코지라도 당하면 어쩌나 싶었던 모양이다.
“아머 브레이커라…”
자기들딴에는 조용조용 속닥거렸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지만 그의 확장된 감각은 그런 소리마저 알아들어 버렸다.
아까 갑옷을 부숴버린 일 때문에 그런 별명이 붙은 건가 하고 그냥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다른 이들의 사냥 모습을 지켜보았다.
하지만 그건 단순히 아까의 모습을 지켜본 사람들에 의한 입소문 정도로 치부하고 말 일이 아니었다. 황금빛 고딕 플레이트를 부수는 장면을 직접 본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대신 그들 가운데 몇이 자신이 보았던 장면을 영상으로 저장했고, 그것을 인터넷상에 올린 것이 문제였다.
+8 황금빛 고딕 플레이트는 그것을 띄운 순간 월드 채팅에 축하 메시지가 빗발쳤을 정도로 유명한 물품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누군가에 의해 부서지는 영상이 올라온 것이다. 당연히 사람들은 이 영상에 크게 놀랐고, 현존하는 가장 비싼 갑옷을 가차 없이 부숴버린 그에게 아머 브레이커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그 일이 일어난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음을 감안하면, 이 사건이 얼마나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는 그런가보다 하고 말았다. 당장 그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어떤 별명이 붙었는가보다 어떻게 하면 보다 어떻게 하면 보다 효과적으로 사냥을 이어갈 수 있을까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신기한 일이다. 이 정도로 사냥에 몰입할 줄은 스스로도 몰랐다. 지금까지 다른 수많은 게임을 겪어오면서도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 반복된 사냥은 생각만 해도 지겹다는 느낌이 강했다. 오죽하면 처음부터 사냥을 때려 치우고 생활부터 시작했겠는가.
그는 다시 눈을 감고 방금 전까지의 상황을 반추했다. 어떤 동작이 일어났을 때 집중력이 흐트러지고, 또 어떤 상황이 예상대로 돌아갔는지 하나 하나 떠올렸다. 고작해야 프로그램된 움직임이라고 깔봤던 것을 반성하며, 차라리 정말로 살아있는 생명체라는 전제하에 그 모든 것을 분석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작은 단초에 지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대를 단순한 프로그램이 아닌 생명체로 인식하는 행위 자체가 그의 생각을 완전히 바꾸어 버렸다. 물론 이것 역시 스스로는 깨닫지 못하는 변화였지만 말이다.
잠시 동안의 반추를 끝내고 그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앞서와 마찬가지로 다시 두 마리의 늑대를 활로 꼬여내어 사냥을 시작했다.
“어, 사냥 시작했다.”
열심히 파티 사냥 중이던 사람 가운데 하나가 그의 움직임을 눈치 채고 그렇게 말했다. 마침 한 무리의 늑대를 막 처치한 참이기에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그 말에 이끌려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가만히 자세를 낮추고 서 있는 것 같은데, 느릿한 칼질 한번에 늑대들이 튕겨 나가고 찌른다기 보다는 누른다는 느낌으로 단검을 가져다 대자 늑대들이 그대로 죽어버린다.
“뭐지?”
“방금 봤어요?”
“그, 그게…”
“늑대를 한 방에 죽이려면 공격력이 얼마나 되야 하지?”
“근데 저거 초보자 단검 아닌가요?”
“어? 정말이네?”
초보자 단검. 정확한 이름은 예리한 철제 단검이다. 클래스나 레벨 제한이 없고, 공격 속도가 빠르며, 이런 저런 용도로 사용하기 편리한 데다, 치명타 확률이 높아서 그럭저럭 공격력도 준수한 덕분에, 전직 전의 플레이어들이 주무기는 아니더라도 부무장이나 기타 용도로 많이 사용하는 무기다.
하지만 공격력이 준수하다고 해봐야 결국 초보자 무기. 전직 이후엔 무기라기보다는 차라리 도구로써 더 많이 쓰인다.
문제는 그것을 사용하고 있는 인물이 바로 아머 브레이커라는 별명까지 붙은 사람이라는 점.
“그러고 보니… 동영상에서 사용한 무기도 저거 아니었어?”
“그, 그러네?”
“…”
예리한 철제 단검이 지닌 공격력이라고 해봐야 뻔하다. 그런 무기를 가지고 갑옷을 부수고 늑대를 일격에 죽인다? 그것은 다시 말해 캐릭터의 기본 공격력이 높거나, 강화 수치가 높거나, 아니면 둘 다인 경우, 그것도 아니면 저런 무기로도 그런 일이 가능할 정도의 특별한 스킬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하는 정도가 바로 떠올릴 수 있는 가능성의 전부였다.
“동영상으로 찍어서 올려볼까요?”
“화내지 않을라나.”
“아머 브레이커 영상도 별 얘기 없었던 걸로 알아요.”
“…”
사람들은 서로를 돌아보다가 서둘러 동영상 촬영 기능을 켜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제히 아머 브레이커의 사냥 영상이라는 제목으로 업로드했다.
그렇지 않아도 갑옷 파괴 영상으로 한창 뜨겁게 달아오르던 상황이라, 반응이 득달 같이 달라붙기 시작한다.
-늑대 정도야 어느 정도 레벨 되면 다들 한 방에 죽이지 않아?
-중요한 건 무기잖아. 저거 예리한 철제 단검이라고.
-별다른 이펙트도 없는 걸 보니, 딱히 강화 수치가 높은 것 같지도 않아.
-어, 정말 그러네. 어떻게 된 거지?
-스킬 아닐까요?
-스킬 이펙트가 없잖아. 눈은 장식이야?
-저 사람 초보존에선 전부터 꽤 유명했어. 족제비나 여우한테도 맞아죽고 그래서.
-엥? 그게 정말입니까?
-정말임. 내가 봤음. 족제비 필드 보스한테 빈사 상태로 두들겨 맞는 걸 구해준 적도 있음.
-헐. 그럼 뭐야. 그럼 완전히 허접이잖아.
-어쩌면 뭔가 특별한 스킬을 수련하는 걸지도. 맷집 수련처럼 두들겨 맞거나 아니면 몹한테 맞아 죽어야 숙련도가 올라가는 뭐 그런 걸지도 모르잖아요.
설마 이런 식으로 자신의 존재가 인터넷상에서 뜨거운 감자가 되어가고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한 채, 그는 전투에 전념하고 있었다. 휴식중이라면 근처의 사람들이 동영상을 찍는다든지 하는 행동을 하는 것을 눈치 챘을지도 모르지만, 전투중의 그는 오직 눈앞의 늑대에만 모든 정신을 집중하는 상황이라 그렇지도 못했다.
그런 노력이 빛을 발한 것일까. 마침내 그는 두 마리의 늑대 정도라면 언제 어떤 상황에서라도 능히 대처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에 도달했다.
“후아…”
하지만 아직 멀었다. 두 마리 다음은 세 마리고, 세 마리 다음은 네 마리다. 그리고 그렇게 수를 늘려가다가, 마침내 근처에 존재하는 모든 몹을 끌어 모아 상대하는 것이 그가 초보존에서 마무리 지어야 할 최종 목표였다.
그 정도 숫자를 동시에 상대하면서 모조리 인스턴트 킬을 성공시킬 수 있다면, 어떤 상황 어떤 적이 눈앞에 나타나더라도 상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원론적인 얘기이고, 실전은 또 다를 수밖에 없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는 모르고 있었다. 갑옷이 부숴진 그 놈이 자신을 버그 사용자로 운영자에게 신고해 버렸으리라고는 정말 꿈에도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아이템정보
명칭 : 예리한 철제 단검.
등급 : 일반
착용제한 : 없음.
설명 :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유용한 단검. 무기뿐만 아니라 도구로서도 유용하다.
효과 : 공격력, 치명타 발생 확률 증가.
강화시 효과 : 공격력 증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