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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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내가 버그 유저라고?
+8 황금빛 고딕 플레이트.
그는 어렵지 않게 상대가 입고 있는 갑옷이 무엇인지 알아보았다. 그럴 수밖에 없다. 얼마 전에 무려 월드 채팅으로 이 갑옷의 강화 성공에 대한 축하가 빗발쳤을 정도니까 모르면 그게 간첩이다.
현재 발견된 갑옷 가운데 최상위 티어에 속하는 황금빛 고딕 플레이트도 어지간한 사람은 꿈도 못 꿀 아이템인데, 그것을 +8까지 강화시켰으니 그 가치가 어느 정도이겠는가.
참고로 방어구나 무기 같은 아이템들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강화석이 필요한데, 이것은 사냥 중에 아주 드물게 드랍되는데 매물을 구하기도 어렵고, 실패하면 아이템의 최대 내구도가 떨어진다는 문제도 있다. 그나마 무기나 방어구 같은 아이템은 최대 내구도가 높아서 단번에 파괴되거나 하지는 않지만, 악세사리 같은 경우는 최대 내구도가 낮아서 자칫하면 한 번의 강화 실패만으로도 파괴되는 경우가 있을 정도다.
“게임 계속 하고 싶으면 좋은 말 할 때 내놓고 꺼져.”
이곳은 부활존이다. 그것도 초보존과 연동되는 부활존. 다른 곳도 아니고 초보존에서 죽어서 부활존 신세를 질 정도면 얼마나 허접한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는 일. 물론 그의 경우엔 그런 일반적인 경우와는 조금 상황이 다르긴 하지만, 결국 초보존에서 죽어서 부활존 신세를 진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지금 놈의 눈에 그는 운 좋게 초보존에서 토끼 머리띠를 먹은 얼치기 초보로 보일 것이다. 토끼 머리띠는 원래대로라면 돈이 있어도 못 구하는 아이템. 여자 앞에서 자신의 위세를 드러내 보일 수도 있고, 얼치기 초보를 을러서 비싼 아이템을 공짜로 구할 수 있으면 그것도 좋은 일이다.
“왜? 꼬우냐. 꼬우면 쳐보든가.”
“…”
실실 약을 올린다. 욱해서 정말로 치기라도 하면 정당방위를 발동해서 성향 하락 없이 상대를 죽일 수도 있고, 그 과정에서 토끼 머리띠를 떨구기라도 하면 일거양득. 물론 황금빛 고딕 플레이트를 갖춰 입은 상대에게 선빵을 날릴 멍청한 초보라면 더할 나위 없는 일이고, 아니라도 이런 식으로 따라다니며 스트레스를 주면 더러워서라도 아이템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 막말로 이 놈들 정도 되는 녀석들이 따라 붙으며 사냥을 방해하기 시작하면 렙업은 물 건너가는 거나 다름없는 일이니까. 아니, 사냥 방해만 하면 다행이다. 따라 붙으면서 무한 척살이든 몹사 유도든 시작하면 그건 정말 그냥 게임 접는 수밖에 없다.
“자기야. 불쌍하다. 그냥 돈 좀 더 주고 걍 사.”
그러자 옆에서 보고 있던 여자가 콧소리를 내며 그런 말을 던진다.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더니 딱 그 꼴이다. 아마도 그가 불쌍하다기 보다는 정말 걍 게임을 접어 버리면 토끼 머리띠를 구할 방법이 없어지니 그게 걱정되는 거겠지.
“그래? 그럼 자기 말대로 해볼까.”
놈은 다시 1쿠퍼짜리 동전 몇 개를 그의 발치에 집어 던졌다.
“그 정도면 됐지? 자, 이제 내놔.”
“…”
하지만 그는 말없이 단검을 만지작거리며 놈을 계속 바라보았다. 누가 보면 영락없이 한번 들이받아 볼까 고민하는 듯한 모습. 놈도 그렇게 판단했는지 더욱더 그의 신경을 긁었지만, 불행히도 그의 의도는 전혀 다른 곳에 있었다.
보였다!
순간 보인 한 점을 향해 그는 단검을 찔렀다. 그러자 놈은 씩 웃으며 정당방위가 성립되었다는 메시지를 기다렸다.
물론 놈의 의도대로 그 메시지는 어김없이 흘러나왔다. 문제는 그것 외에 다른 메시지까지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는 점이다.
[다른 이에게 공격 받았습니다! 30초내에 반격할 경우 정당방위가 성립됩니다!] [‘+8 황금빛 고딕 플레이트’가 파괴되었습니다!]“뭐?”
앞의 메시지야 그렇다 쳐도 뒤의 메시지는 뭐란 말인가.
당황한 놈은 자신도 모르게 기겁하며 한걸음 물러섰고, 바로 그 순간 놈이 걸치고 있던 화려한 황금빛 갑옷이 쩍쩍 갈라지더니 조각조각 부서지며 바닥에 떨어진다.
“…”
놈은 물론이고, 방금까지 놈의 팔에 매달리며 콧소리를 내고 있던 여자, 그리고 부활존 앞에서 벌어진 실랑이를 팝콘까지 곁들여 가며 흥미로운 시선으로 지켜보던 이들까지 잠시 아무 말도 못한 채 멍한 표정으로 서있었다.
“후우…”
힘들었다. 강화수치가 꽤 높은 아이템이라 약점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은 탓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점을 찾아낼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명장까지 오른 그의 생활렙이나 높은 손재간 수치 덕분이 아니었을까 싶긴 하지만 정확한 건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는 가슴을 당당하게 폈다. 회심의 일격을 가했으니, 이제 죽일 테면 죽여보란 식으로 가슴을 쭉 내민다. 하지만 놈은 속옷차림이 된 것조차 깨닫지 못한 채 부서진 갑옷조각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이 갑옷 하나를 띄우기 위해 한 달 월급을 통째로 쏟아 부었으니 넋이 나가지 않으면 그게 이상한 일이다.
그렇게 놈이 얼빠져 있는 동안 정당방위의 효력 시간이 지나 버렸다.
그는 놈이 반격을 가하지 않자,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단검을 수습한 뒤 다시 늑대존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놈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을 뿐 감히 따라갈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리고 +8로 강화된 갑옷조차 한 번에 부숴버리는 상대에게 그런 식으로 도발을 한 자신의 멍청함을 저주했다.
개운하다. 반격을 가했으면 곤란한 상황에 처했을지도 모르지만, 다행히 놈은 움직일 엄두도 내지 못했다. 하기야 자신 같아도 그랬을 것이다. 죽는 것은 둘째 치고 다른 아이템까지 부숴먹으면 답이 안 나오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다시 늑대밭에 왔다. 그리고 다시 두 마리의 늑대를 활로 끌어내어 싸움을 벌였다. 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 다시 한 번 부활존으로 돌아가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
드러누운 상태로 다시 부활존에 모습을 드러내자, 주위에서 웅성거리고 있던 사람들이 화들짝 놀라는 기척이 느껴진다. 늑대 따위에게 또다시 누워버렸다는 사실이 짜증나서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주위를 둘러보자 슬금슬금 눈을 피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바라보니 앞서 그에게 시비를 털다가 애꿎은 갑옷을 깨먹고 주저앉아 있는 놈 주위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모습이 보인다. 아마도 길드든 클랜이든 같은 패거리의 놈들이 얘기를 듣고 모여든 것이겠지.
차라리 잘 됐다. 그렇지 않아도 늑대 떼를 어떻게 상대해야 하나 막막한 처지인데 한바탕 싸움이라도 하면 어떨까 싶은 생각도 든다.
어차피 생활 명성은 인스턴트 킬에 꽂혀서 계약 파기 하는 바람에 대폭 깎아 먹은 상태고, 전투 레벨이나 명성은 이제 막 쌓기 시작하는 처지다. 아이템에 조금 돈을 들이기는 했지만 그래봐야 전직 후에 착용하는 아이템도 아니라서 떨궈도 다시 구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다. 강화된 아이템이라면 골치가 좀 아프겠지만, 막말로 단검 하나만 있으면 토끼 머리띠 노가다를 해서라도 다시 맞추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혹시 아는가. 카마이타치를 상대했을 때처럼 놈들과 싸우다보면 다구리에 대응하는 방법을 깨우칠지도 모르는 것 아닌가. 설령 지니고 있는 아이템과 지금껏 쌓은 전투 레벨과 명성을 다 까먹는 한이 있더라도 그 비결을 알아낼 수 있다면 그가 이득이다.
에이, 몰라. 배째라 그래.
늑대 떼에게 죽나 이 놈들에게 죽나 그게 그거다. 칠 테면 쳐라.
짜증이 팍팍 묻어나는 얼굴로 그런 생각을 떠올리며 다가섰지만, 이게 어찌된 일일까. 놈들은 감히 시비를 걸 엄두도 내지 못한 채 흠칫하며 물러선다.
하기야 그럴 수밖에 없다. 잃을 것이 없는 그와는 달리, 놈들은 잃을 것이 아주 많기 때문이다. 당장 몸에 걸치고 있는 아이템만 하더라도 그렇다. 황금빛 고딕 플레이트 정도는 아니더라도, 그런 식으로 깨먹으면 피눈물 깨나 쏟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솔직히 놈들은 강화에 실패한 것도 아닌데 아이템이 그런 식으로 깨질 수 있다는 것조차 처음 알았다.
새가슴 같으니.
간이 배 밖으로 나와 버린 그는 입맛을 다시며 다시 늑대 밭으로 발걸음을 옮기려 했다. 하지만 바로 그때였다.
“자, 잠깐만요.”
“헉! 어, 어쩌려고.”
돌아보니 아까 놈 옆에 있던 여자다. 사람들은 얼른 뜯어 말리려고 했지만, 그 여자는 허리를 살랑살랑 흔들어 대며 그에게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
“아까는 미안했어요.”
“…”
그래서 뭐 어쩌라고. 그게 끝이냐는 뜻을 담아 뚱하게 바라보자, 여자는 어쨌든 말이 씹히지 않은 것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는지 얼른 그를 야릇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다시 말했다.
“그 머리띠, 어차피 필요 없잖아요. 그렇죠?”
“…”
그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여자는 그런 반응을 긍정이라고 생각했는지 다시 말했다.
“저는 그것이 굉장히 무척 엄청 필요해요. 그러니 방금 전의 불미스러운 일은 잊고 우리 건전한 거래를 해봐요. 어떻게 생각해요?”
건전한 거래라고 말은 했지만 별로 건전하지 않은 방식이 동원될 것 같은 느낌이다. 애초에 그런 의도로 단어 선택을 한 것 같기도 하고.
그는 머리에 쓰고 있던 토끼 귀 머리띠를 벗어서 손에 들고는 물끄러미 그것을 바라보았다. 여자는 탐욕으로 가득한 시선으로 그 손이 자신에게로 뻗어오기를 기다렸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그는 단검을 뽑아들었다.
“다, 당신…”
갑자기 무기를 뽑아들자 여자는 기겁한 표정을 지으며 뒷걸음질 쳤지만, 단검이 향한 곳은 그녀가 아니었다.
[인스턴트 킬! ‘매혹의 토끼 머리띠’가 파괴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잠시 말을 잃었다. +8 황금빛 고딕 플레이트만큼은 아니지만, 돈이 있어도 구할 길이 막막하다는 레어 아이템 하나가 눈앞에서 파괴되는 광경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는 손에 남은 머리띠의 부서진 파편을 그녀의 발아래 흩뿌리고는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거라도 필요하면 가지던가.”
“…”
여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그는 그러거나 말거나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들 사이를 빠져 나가 다시 늑대 밭으로 향했다.
하지만 아까처럼 다짜고짜 늑대와 싸움을 벌이지는 않았다. 이번에도 역시나 근본적으로 뭔가 해결책을 찾지 않으면 또다시 부활존의 신세를 지게 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는 일단 바닥에 털썩 주저앉은 채 멀찌감치서 어슬렁거리며 움직이는 늑대들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런다고 딱히 뾰족한 묘수가 떠오르지는 않는다.
차라리 테이머 계열 스킬을 익혀 보는 건 어떨까. 뭐든 몹들을 다른 무언가로 현혹시킨 다음, 일대일 상황만 만들어낼 수 있다면 인스턴트 킬을 뽑아내는 건 어렵지 않을 것 같은데.
그는 인벤토리에 쌓여있던 토끼 머리띠를 다시 하나 꺼내 들었다. 하지만 매혹 스킬은 족제비나 여우에게도 시험해 본 전력이 있다. 물론 결과는 대실패. 아마도 매력 수치가 너무 낮아서가 아닐까 싶은데, 늑대라고 해서 딱히 효과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지금이라도 매력을 찍어봐야 하는 걸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건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팔짱을 낀 채 혼자 그렇게 끙끙거리고 있는데, 아마도 그를 따라온 것이 아닐까 싶은 사람들 몇몇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역시 뭔가 수련을 하고 있는 걸까.”
“그러게. 족제비한테 맞아죽는 게 이상하다 싶긴 했는데, 단순한 초보는 아니었던 모양이야.”
“전에 카마이타치 잡을 때 스틸한 거 기억하고 화풀이라도 하면 어쩌지?”
“에이… 그게 언제 일인데. 벌써 잊었겠지.”
“그렇겠지?”
잊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저렇게 다 들으라는 식으로 수군거리면 잊었던 기억도 다시 새록새록 떠오를 것만 같다.
짜증이 나서 고개를 홱 돌리던 그는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바로 옆에 몰려와서 수군거린다고 생각했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사람들은 혹시라도 그가 방해 받아서 짜증을 낼까 싶었는지 상당히 먼 거리에 떨어져 있었고, 일부러 큰 소리로 수군거리는 것도 아니었다.
“…”
내가 미친 건가. 아니면 저 정도 거리에서 수군거리는 소리조차도 확연하게 들을 정도로 감각이 날카로워진 걸까.
뭔가 좀 이상하다. 이런 건 아무리 생활 명성이 높고 손재간이 높아도 가능한 일이 아닌 것 같은데.
그러고 보면 늑대를 잡으면서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긴 했다. 아무리 정교하게 프로그래밍 되었더라도 뼈와 근육과 혈류의 움직임이 그렇게 생생하게 느껴지다니, 게임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미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아니, 미친 게 아니라면?
만약 그것이 약점을 보는 능력의 핵심이라면?
그는 하나의 가능성이 떠오르자, 눈을 감고 앞서 두 마리의 늑대와 싸웠던 상황을 반추해 보았다.
역시나 문제는 두 마리의 움직임으로 인해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것이다. 상대가 한 마리든 두 마리든 집중력이 흩어지지만 않는다면 어떻게든 상대가 가능할 것 같은데.
그는 천천히 한 손을 뻗어 보았다.
손에 쥔 단검이 닿을 수 있는 거리는 어차피 정해져 있다. 그 거리가 자신의 범위. 이론적으로 그 범위 안에 들어오는 무언가의 약점을 바로 파악할 수 있다면 그는 무엇이든 단숨에 파괴할 수 있게 된다.
물론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단지 범위 안에 들어온 것을 콕 하고 찌르기만 하면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약점을 찾아야하고 찾아낸 약점을 한치의 빈틈조차 없이 정확하게 찔러야만 한다.
“집중. 집중.”
그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앞서 늑대와 벌인 두 번의 전투를 몇 번이고 반추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지켜보던 사람들이 지루한 나머지 하나둘 씩 떠나가다가 마침내 주위에 아무도 남지 않게 되었을 때, 감겨져 있던 그의 눈이 번쩍 뜨여졌다.
그렇게 뜨여진 그의 눈빛은 이전과 달라져 있었다. 차갑게 가라앉은, 어쩐지 시린 느낌의 푸른빛이 언뜻 그의 눈동자에 어렸다가 사라졌지만, 정작 당사자는 자신에게 그런 변화가 있었음을 인지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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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템정보
명칭 : +8 황금빛 고딕 플레이트
등급 : 희귀
착용제한 : 나이트, 클레릭 계열.
설명 : 황금빛으로 도금된 화려한 고딕 플레이트. 신성한 임무를 일정 횟수 이상 수행한 자에게 수여되는 보상이다. 사용자의 회복 능력을 끌어올린다.
효과 : 방어력, 생명력 회복 증가. (클레릭 계열일 경우 신성력 회복 증가 효과 추가)
강화시 효과 : 방어력 증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