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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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내가 버그 유저라고?
그는 다시 여우 앞에 섰다.
게임 상의 몹에 불과한 여우는 이전에 자신이 죽여 부활존으로 보내버린 이 사람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프로그래밍된대로 곧바로 공격을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의 그는 이전에 허무하게 죽어버렸을 때와는 이미 달라져 있었다.
“캐앵!”
여우는 흉폭한 모습으로 이빨을 드러내고 그에게 달려들다가, 갑자기 번뜩이며 날아드는 단검의 칼날에 공격이 저지되며 경직에 걸리고 말았다.
[인스턴트 킬! ‘물어뜯기 Lv.1’이 소멸했습니다!]공격이 인스턴트 킬에 의해 소멸하면 그 순간 공격의 시전자는 경직에 걸린다. 바로 그 순간이 반격을 가하기에 가장 좋은 순간!
[인스턴트 킬! ‘여우’가 죽었습니다!]경직으로 몸이 굳은 상태에서 약점을 정확히 찔리자 여우는 비명 소리조차 내지 못한 채 즉사하며 아이템을 토해냈다.
“하하하하하하하!”
그는 기쁨에 젖어 그렇게 웃었다. 제대로 약점을 찌를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일방적으로 얻어맞다가 죽어 버렸던 앞서의 상황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나 다름 없는 일이다.
“어디 보자…”
우선 여우가 드랍한 아이템부터 주워들었다.
[‘따뜻한 여우 목도리’를 획득했습니다.]효과는 냉기 저항 10퍼센트. 아직 저항 관련 아이템이 많이 풀리지 않은 상태라 마법이든 날씨로 인한 추위든 덜덜 떨며 스스로 견뎌내야 하는 걸 감안하면 이것도 충분한 가치가 있는 아이템인 것은 분명하지만, 카마이타치가 드랍한 아이템과는 역시 비교가 된다.
‘카마이타치의 섬뜩한 눈알’이라는 이름의 이 아이템은 복용 즉시 카마이타치와 족제비가 사용하는 히든스킬인 칼바람을 습득할 수 있다. 이 스킬은 투지를 소모하여 적에게 공격을 가하는 스킬로서 마법사가 아닌 자도 사용할 수 있는 원거리 공격 스킬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조건이 걸려 있긴 하지만, 이것은 족제비 꼬리를 장착해서 칼바람 스킬이 한 번 발동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니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니다.
카마이타치의 섬뜩한 눈알로 습득할 수 있는 스킬 레벨은 3까지이고 그 이상은 뭔가 다른 승급 조건이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일단 그는 복용하지 않고 보관만 하고 있는 상태다. 족제비가 사용하는 공격 스킬 따위 히든이라도 별 의미가 있겠나 싶은 것도 사실이지만, 카마이타치의 섬뜩한 눈알 자체도 등급이 매우 희귀로 책정되어 있는 것을 보면 단순히 히든 스킬을 배우는 용도만이 아니라 뭔가 특별한 것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의기양양하게 여우 목도리를 목에 두르고 난 그는 다시 시험 삼아 여우를 다섯 마리 정도 더 잡아 보았다. 혹시나 카마이타치 같은 필드 보스가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지만, 아쉽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여우 다음은 늑대다. 늑대는 초보존에서 가장 강력한 몹이고, 시간을 끌면 주위의 다른 늑대들이 무리 지어 공격하는 습성이 있기 때문에 튜토리얼에서는 가급적 파티 사냥을 권장하고 있다.
적정 전투 레벨은 5. 다행히 그의 경우엔 족제비를 하도 많이 잡은 덕분에 이 조건은 어렵지 않게 만족하고 있었다.
카운터는 분명히 훌륭한 공격 방법이지만,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이것은 일대일 상황을 전제로 한 것이기 때문에, 늑대처럼 무리지어 공격하는 몹을 상대할 경우 제대로 반격하지 못하고 허무하게 죽어버릴 위험이 있었다.
그는 일단 늑대라는 몹에게 익숙해지는 것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아무리 카운터라는 기술을 완성했다 할지라도 다짜고짜 늑대 무리를 상대하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한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활을 꺼내 들었다. 스킬 레벨 제한에 막혀서 더 이상 랭크업은 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전직 전에 이를 수 있는 최고 레벨에는 올라 있는 상태였으므로, 단순히 맞추기만 하는 것이라면 큰 문제가 없다.
화살을 먹인 후 시위를 당겨 늑대를 겨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일단 약점을 파악해 본다. 운이 좋아서 화살로 인스턴트 킬을 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좋은 일이니까.
하지만 아쉽게도 그가 기대하던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
“크앙!”
화살은 아슬아슬하게 빗나가 늑대의 어깨에 맞았다. 조금만 옆으로 빗겨 맞았어도 인스턴트 킬을 낼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을 떠올리기 보다는 활을 다시 등에 메고 단검을 뽑아드는 동작이 더 급하다.
고작 여우와 1레벨 차이의 몹인데도 불구하고 움직임 자체가 확연히 다르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는 미처 모르고 있었다. 애초에 여우와 늑대의 움직임 차이를 그 정도로 확연하게 구분할 수 있는 플레이어는 자신뿐이라는 사실이 바로 그것이다. 하기야 그런 고도의 집중력이 있으니 격렬한 전투 와중에 약점을 정확히 찔러 의도적으로 인스턴트 킬을 낼 수 있는 것이었지만 말이다.
자세를 잡고 늑대의 움직임에 집중한다. 호흡을 가다듬고 마음을 다잡자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늑대의 움직임이 마치 느린 영상처럼 또렷하게 인식된다. 단순히 달려오는 모습 뿐만 아니라, 자신을 바라보는 늑대의 눈이나 코와 입을 통해 터져 나오는 호흡, 그리고 달려오는 동작에 맞추어 격렬하게 움직이는 뼈와 근육은 물론이고, 세차게 맥동하는 심장의 고동 소리까지 마치 코앞에 들이댄 채 관찰하는 것처럼 그의 감각에 또렷하게 잡혔다.
이미 몇 번이나 인스턴트 킬을 통해 몹을 사냥한 경험이 있는 그였지만, 이렇게 또렷하게 상대의 모든 것을 느끼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런 일이 가능하다는 것은 물론이고, 고작 게임에 등장하는 몹에 불과한 늑대에게 이런 세세한 표현이 가해져 있다는 사실 또한 놀라울 뿐이다. 만약 이것이 게임이라고 자각하지 못한 채 그냥 무작정 던져진 상태라면, 과연 현실과 구분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하기야 이 게임에 빠져든 이유도 따지고 보면 이 무지막지한 현실성 때문이긴 하지만 말이다.
자신을 향해 달려들던 늑대의 눈알이 번뜩인다 싶더니 근육과 뼈의 움직임이 바뀌었다. 그는 이것이 공격을 위한 준비동작임을 깨닫고는 단검을 쥔 손을 꽉 움켜잡았다.
뽀드드득.
단검 손잡이를 감싼 가죽이 그의 손아귀 힘에 의해 죄여지며 비명을 터뜨리는 순간, 늑대는 지면을 박차고 곧바로 그의 목을 물어뜯기 위해 뛰어 올랐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보였다.
[인스턴트 킬! ‘물어뜯기 Lv.2’가 소멸했습니다!]“컹!”
인스턴트 킬에 의해 공격이 무효화되었다는 메시지가 터지자, 늑대는 울부짖으며 튕겨나갔다. 그리고 스킬 무효화에 의한 반작용으로 경직에 걸려 버렸다. 하지만 그의 집중력은 흩어지지 않았다. 충격으로 인해 흔들린 늑대의 뼈와 근육의 움직임 속에 감추어진 약점을 찾아내야만 하기 때문이다.
찾았다!
그는 늑대가 땅에 내려서는 순간 확연하게 눈에 들어오는 약점을 향해 단검을 찔렀다.
[인스턴트 킬! ‘늑대’가 죽었습니다!]“크하앗!”
등골을 따라 엉치뼈까지 짜릿하게 전해지는 어떤 쾌감에 그는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며 승리의 탄성을 토해냈다.
바로 이 맛이다. 이것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그 모멸스러운 시선을 견뎌가며 인스턴트 킬을 내려고 그렇게 노력했던 것이다.
그는 눈을 감은 채 아직 가시지 않은 짜릿한 쾌감의 여운을 잠시 즐기다가 늑대가 떨군 아이템을 집어 들었다.
[‘맹렬한 늑대 머리 장식’을 획득했습니다.]이 아이템은 뭔가 특이하다. 늑대 머리를 잘라 박제를 만든 뒤 벽에 걸 수 있도록 만든 장식품인데,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사용할 수 없는 대신 수면시 머리맡에 걸어두게 되면 다음날 하루 종일 공격 속도 1단계 상승의 버프 효과를 얻게 된다.
즉시 사용해서 효과를 얻을 수는 없지만, 무려 하루 동안 유지되는 버프가 부여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것 역시 대단한 아이템이 아닐 수 없다. 다만 문제라면, 영구히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10회의 사용 횟수 제한이 있다는 정도겠지만, 얼마든지 임의적으로 인스턴트 킬을 내서 동일한 아이템을 획득하는 것이 가능한 그에게는 큰 문제가 아니다. 막말로 늑대만 계속 잡아서 이 아이템을 모아다 팔기만 해도 그는 떼돈을 벌게 될 것이다.
공속이란 것은 일단 한 번 빨라지는 것을 경험하게 되면 그것이 사라졌을 경우 굉장히 답답하게 느려질 수밖에 없다. 한번도 사용하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한번만 사용하는 사람은 없다는 말이 이것만큼 적절한 경우도 없지 않을까. 영구 아이템이 아닌 점이 이런 부분에서는 오히려 큰 득이 되는 셈이다.
먹지 않아도 배부른 느낌이란 건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리라. 하지만 그는 여기서 멈출 생각이 없었다. 고작해야 초보존의 몹들이 이 정도 아이템들을 쏟아내는데 더 강한 몹들은 어느 정도이겠는가. 물론 이 쏟아낸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인스턴트 킬을 자유자재로 낼 수 있는 그에게나 해당되는 얘기. 모든 서버를 다 뒤져도 몇 개 될까 말까한 희귀 등급 아이템임을 감안하면 그는 이미 이것만으로도 사기라는 말을 듣기에 충분한 조건을 갖추었지만, 욕망이란 것은 한 번 불이 붙으면 쉽게 꺼지지 않는 법이고, 그의 욕망은 이제 막 불이 붙었을 뿐이다.
다섯 마리 정도의 늑대를 한 번 더 같은 방법으로 잡았다. 다소 아쉬운 것은 늑대 머리 장식 외의 다른 레어 아이템은 나오지 않았다는 정도. 어느 정도 늑대의 공격 속도나 움직임에 익숙해지자 그는 이제 두 마리 이상의 몹을 동시에 상대하는 것을 연습해 보기로 했다.
초보존 밖의 몹들은 오히려 한 마리가 어슬렁거리며 따로 노는 경우가 드물다. 늑대처럼 싸우다가 시간을 끌면 다른 몹들을 불러 모으는 경우도 있지만, 한 마리가 공격당하면 곧바로 근처의 몹들이 벌떼처럼 달려드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그런 상황을 상정한다면, 죽음에 대한 패널티가 없는 초보존에서 그와 같은 일들을 미리 경험하고 대비하는 편이 몇 배는 이득이다.
하지만 단 한 마리가 더 늘어난 것 뿐인데도 상황은 앞서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두 마리가 번갈아 가며 위치를 바꾸면서 공격과 수비를 병행하는 늑대들의 전술은 일대 다 전투를 경험해 본 적이 없는 그의 집중력을 갉아먹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큭!”
결국 그는 변변한 저항조차 해보지 못하고 또다시 부활존의 신세를 지고야 말았다.
“미치겠네.”
하나를 해결하면 다시 또 하나의 난관에 봉착한다. 이래서야 언제 초보존을 나갈 수 있을는지.
투덜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부활존을 나가려는데, 갑자기 누군가 그를 부른다.
“어이, 거기 너.”
다짜고짜 반말이라니. 그렇지 않아도 심기가 불편한 그는 고개를 돌려 자신을 부른 대상을 바라보았다.
“…”
고개를 돌려 바라보자 자신이 고렙임을 세상에 알리고자 작심한 듯이 번쩍이는 갑옷으로 중무장한 사내 하나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갖춰 입은 건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노출도가 높은 옷차림의 야시시한 여자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그거 매혹의 토끼 머리띠 맞지? 그거 팔아라.”
“…”
그가 처음 습득했을 때 떠올렸던 것처럼, 이 토끼 귀 아이템은 테이머 계열에게는 없어서 못 쓰는 아이템이었다. 매력을 올려주고 게다가 매혹 스킬의 레벨을 한 단계 올려주는 일명 부스터 아이템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보유한 스킬 레벨보다 한 단계 높은 수준의 몹을 테이밍할 수 있게 된다는 얘기는 그만큼 클래스 특화 스킬들을 단련하는 속도가 빨라진다는 얘기. 가뜩이나 스킬의 랭크업이 어려운 테이머 계열임을 생각한다면 그 가치는 입 아프게 설명하는 것이 불필요할 정도다.
그제서야 그는 아차 싶은 생각이 들었다. 다른 이들이 그냥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기에 지금까지 차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었지만, 가치를 알아볼 줄 아는 사람들은 역시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긴 팔아도 상관은 없다. 어차피 그의 인벤 구석에 토끼 머리띠는 십여 개나 쌓여 있었고, 구하고자 마음먹는다면 얼마든지 더 구할 수 있으니까. 다짜고짜 반말을 툭툭 던지는 건 짜증스러운 일이지만, 그의 마음은 이미 늑대밭에 가있었다. 이런 놈팽이들 따위에게 신경 쓸 여유 따윈…
툭!
…없어야만 하는데.
그는 자신의 얼굴을 향해 던져진 동전 하나를 받아들었다. 손바닥을 열어 살펴보니 무려 1쿠퍼짜리 동전이다. 물론 여기서 무려라는 부사를 쓴 것은 반어법의 의미다. 1쿠퍼 동전은 이 게임 안에서 통용되는 가장 가치가 낮은 화폐니까.
“그거면 충분하지? 자, 내놔.”
“…”
그는 늑대 밭에 가있던 마음을 다시 되돌렸다. 그리고 지금 눈앞에서 이죽거리는 놈팽이가 가장 속이 쓰릴 만한 일을 곧바로 떠올렸다.
============================ 작품 후기 ============================
아이템정보
명칭 : 따뜻한 여우 목도리
등급 : 희귀
착용제한 : 없음
설명 : 포근한 여우 털로 만든 목도리.
효과 : 냉기 저항 10퍼센트 증가.
강화시 효과 : 냉기 저항 증가.
아이템정보
명칭 : 카마이타치의 섬뜩한 눈알.
등급 : 매우 희귀
사용제한 : 칼바람 스킬을 어떠한 형식으로든 발동해 본 적이 있는 자.
설명 : 카마이타치의 섬뜩한 살기가 뿜어져 나오는 눈알.
효과 : 복용시 히든스킬 칼바람을 익힌다. (일회용)
이때 습득하는 스킬의 레벨은 1에서 3사이에서 임의로 결정된다.
만약 칼바람 스킬의 레벨이 3미만이라면 추가적인 복용으로 스킬 레벨을 향상시킬 수 있다.
단, 이 경우에도 습득할 수 있는 최대 레벨은 3으로 제한된다.
아이템정보
명칭 : 맹렬한 늑대 머리 장식
등급 : 희귀
사용제한 : 없음
설명 : 벽에 걸 수 있도록 만들어진 늑대 머리 장식.
효과 : 머리맡에 걸어두고 수면을 취할 경우, 다음 하루 동안 공격 속도 1단계 상승. (남은 사용 횟수: 10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