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627
00627 143. 트레이드 =========================
조금은 핀잔 섞인, 하지만 질투의 감정 역시 조금은 스며든 희망과 생명의 말에 형진은 어색하게 웃어 버렸다. 이미 태어난 미엘과 하엘의 아이들과는 달리 좀 특별대우를 하는 건가 싶기도 했다. 그러나 대비하고 말고 할 틈조차 없이 태어나는 바람에 변변한 선물조차 제대로 마련하지 못한 녀석들과는 달리 조금은 여유 있게 탄생을 준비할 수 있으니 그에 걸맞은 선물을 하려는 것뿐이다.
“이름도 잘 생각해 둬. 언니들처럼 열심이, 쑥쑥이 이런 이름으로 막 부르지 말고.”
“크흠.”
하엘의 다섯 아이들은 결국 어머니의 이름에서 하라는 글자를 따서 돌림자로 붙인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 여기에 태어난 순서대로 숫자를 의미하는 앞글자를 쓰는 방법도 생각해 봤지만, 이미 돌림자가 있는 상황에서 그런 식의 이름을 붙이는 건 너무 무성의한 것 아닌가 싶어서 조금 더 변화를 주었다.
기본적인 규칙은 발성 연습 등에 주로 쓰이는 아이우에오에 변형을 주는 것. 순서에 따라 모음을 이렇게 정하고, 임의의 자음을 포함시켜 이름을 완성하는 식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이름이 라하, 시하, 주하, 세하, 노하다. 하지만 막상 그렇게 힘들게 만들어도 이미 열심이, 쑥쑥이 같은 이름이 입에 붙어버린 탓인지 잘 쓰이지는 않고 있었다.
아무튼, 형진이 그렇게 마눌들에게 갈굼을 당하고 있는 동안 탈락의 위기를 넘긴 신들은 각자의 방에서 텔레비전을 통해 지구의 여러 문물들을 익히느라 여념이 없었다.
“우와… 이 세계의 인간들은 정말 대단하네. 달을 개조해서 영토로 삼을 생각을 하다니.”
“달이라니. 너무 거창해서 뭔가 확 피부로 와닿지가 않는 얘기네.”
아직 이들은 2조의 신들이 간 거짓된 천국을 만든 회사가 미라지 코어이고, 그 회사가 달의 개발을 주도 하고 있으며, 또한 그것을 소유한 이가 형진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들었어? 이 지구라는 곳의 인구는 무려 71억명이나 된다던데.”
“71억… 역시나 너무 숫자가 커서 오히려 실감이 오지 않는 숫자로군.”
“이런 곳에서 기반을 잡고 시작해서 아직 완전히 신격을 갖추지 않은 상태인데도 그렇게 힘이 강한 건가.”
“그럴지도. 그도 말했지만, 신의 힘이란 결국 거느린 인간의 숫자에 비례하기 마련이니까.
“아… 좋겠다. 나도 그 정도 힘이 있으면 해보고 싶은 것이 참 많은데.”
신들 가운데 하나가 그렇게 부러움 가득한 푸념을 하자, 가만히 듣고 있던 청렴과 절조가 이렇게 한 마디 했다.
“힘이 많아지면 그만큼 책임도 늘어나게 마련이지. 보호와 균형이 그러더라. 밤의 신은 지금 언데드의 영역까지 가서 타락한 파괴와 재생이랑 박 터지게 싸우는 중이라고.”
“파괴와 재생… 타락했었어?”
“몰랐냐? 꽤 유명했는데.”
“전혀. 이거 참. 정말이지 난 바깥의 일에 대해서는 아는 게 하나도 없군.”
“이곳의 인간들은 그런 걸 가리켜 우물 안 개구리라고 한다더라.”
“그럴 듯한 말이네.”
대화는 거기까지 이어지다가 잠시 맥이 끊겼다. 자신들이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는 것과 동시에, 오늘 탈락된 이들에 대한 생각이 겹친 탓이다.
특히나 간신히 탈락의 위기에서 벗어난 4조의 경우엔 더 심경이 복잡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간신히 살아남는다고 해도, 과연 다음에도 그런 일이 가능할지는 역시 미지수일 수밖에 없는 일. 그렇다면 차라리 이번에 탈락한 2조의 신들처럼 일찍부터 연습생의 일을 시작하는 편이 낫지 않겠나 싶은 것이 사실이다.
형진 나름대로의 복안이 있다고는 해도, 그것이 이들에게는 알려져 있지 않은 상태이니, 자연스럽게 생각이 복잡해질 수밖에.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다시 새로운 날이 밝았다.
어김없이 식사가 끝나고 모인 이들은 형진이 오늘은 무슨 미션을 내려줄 것인지 진지한 표정으로 기다렸다.
뭔가 하루만에 신들의 분위기가 꽤 달라진 느낌이다. 역시 이래저래 생각이 꽤 많았던 모양이다.
“오늘은 미션이 아닌 간단한 게임을 하겠습니다.”
“게임이요?”
밤새도록 이 세계의 인간들에게 공부도 하고 나름대로의 각오 또한 다진 채로 미션 수행을 준비하고 있던 신들에게 그것은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물론 형진은 그러거나 말거나 그들이 치러야할 게임을 알려주었다.
“이건 젠가라고 하는 게임입니다. 이렇게 쌓여있는 나무토막들 가운데 순서대로 하나씩 빼다가 마침내 탑이 무너지는 순간 패배자가 결정되는 식입니다. 지금부터 여러분들은 각조에서 경기를 치르게 됩니다. 여러 번 경기를 치러서, 마침내 같은 사람이 세 번 패배를 하게 되면 그 분은 탈락하게 됩니다. 즉, 각조에서 한 사람씩의 탈락자가 선정되는 방식인 셈입니다.”
“그런!”
이제까지와 같은 방식으로 탈락자를 가릴 거라고만 생각했던 신들은 얼굴이 핼쓱해지고 말았다. 설마 이런 식으로 같은 조에 속한 이를 떨어트리는 방식이라니!
“중요한 일이니 오전은 연습 시간으로 드리고, 오후에 본격적인 게임을 시작하겠습니다. 그럼, 모두 건투를 빌겠습니다.”
“…”
형진은 바로 자리를 비웠지만, 아 그렇구나 하고 곧바로 연습을 시작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두 번의 미션을 거치면서 나름대로 같은 조의 신들과 꽤 친해진 이들에게 있어서, 이번에 치르게 될 게임은 그들이 처한 현실을 다시 한 번 뼈저리게 깨닫게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아무리 팀웍이 좋고 사이가 좋더라도, 결국 여기 모인 신들은 하나 뿐인 대상이라는 자리를 놓고 싸우는 경쟁자라는 사실이 바로 그것이다.
이 게임이 복잡한 경우의 수를 지니게 되는 이유는 결국 그래서다.
강력한 경쟁자, 이를테면 현재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성장과 질주 같은 신은 당연히 견제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그렇게 위협적인 존재를 다른 두 조원이 합심해서 탈락시킨다 치자. 만약 그 뒤를 이어 다시 조원이 힘을 합쳐서 해결해야 하는 미션이 떨어지면 어떻게 될까. 그것은 곧바로 자신들의 발등을 찍는 행위가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당장 별 도움이 안 되는 조원을 떨어트리는 건 어떨까. 하지만 그렇게 될 경우, 나중에 다시 이번과 같은 게임이 벌어질 경우 가장 강력한 라이벌과 일대일 대결을 벌여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물론 게임의 결과라는 것은 함부로 예단하기 힘든 점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런 상황이 발생한다면 자신의 패배 확률이 확 올라가버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악랄하군.”
문득 누군가가 그렇게 중얼거리자, 모여 있던 신들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뭐지? 왜 다들 저렇게 심각한 표정인 거에요?”
엘리시온에서 그들을 살피던 이들도 드러난 형진의 마각에 전부 혀를 내두를 뿐이다. 상황 파악이 안 되는 보호와 균형만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을 뿐이다.
“어쩐지… 나 쟤들이 불쌍해지기 시작했어.”
“하하…”
희망과 생명의 말에 형진은 그렇게 웃을 뿐이다.
어떻게 보면 이것은 고대 그리스에 존재했던 도편 추방법과 비슷한 일면이 있는 상황이다.
도편 추방법은, 투표를 통해 독재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자의 이름을 도자기 파편에 적어서 일정 숫자 이상의 표를 획득할 경우 10년간 아테네 밖으로 추방되는 고대 그리스의 법을 말한다.
추방이라고 해도 시민권이 박탈되는 것은 아니고, 어디까지나 아테네로 들어오는 것이 10년간 금지되었을 뿐이다. 또한 국가의 존망 같은 위기 상황이 존재할 경우 그 기간을 단축시키는 것도 가능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법이 헐렁하게 집행되었냐고 하면 그건 아니다. 일단 뽑히고 나면 변론이나 항소는 불가능했고, 투표로부터 10일 이내에 아테네를 반드시 떠나야 했으며, 정당한 이유 없이 추방을 거부하거나 10년간의 추방 기간 중에 정당한 절차나 사유 없이 아테네로 몰래 들어온 것이 발각되면 사형에 처하도록 규정되어 있었다.
물론 인간이 만든 대부분의 법이 그러하듯 후에는 변질되어 악용되기에 시작했고, 그것을 가장 잘 악용한 인물인 페리클레스의 시대가 지난 뒤에는 중우정치의 기반으로 작용하기에 이른다.
분명한 것은 어떤 식으로든 이 법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독불장군처럼 혼자만 튀어서는 곤란하다는 뜻이다. 즉, 이번 게임에서 중요한 것은 어떻게 보면 같은 조의 인원들 가운데 다른 한 명을 자신의 편으로 확실하게 끌어들일 수 있는 정치력이 되는 셈이다.
신들은 일단 젠가라는 게임의 특성을 이해하기 위해 연습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것이 생각보다 훨씬 고난도의 게임이라는 것에 감탄해 버리고 말았다. 실제로 젠가는 지구에서 수천년 전부터 존재하던 게임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1983년에 만들어진 비교적 역사가 짧은 보드게임에 속한다.
단순히 탑을 쌓는 형식이 아니라, 그것으로부터 나무토막을 빼내는 방식의 게임은 이전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으으으…”
그리고 그렇게 연습이 진행될수록, 몇몇 신들이 이 게임에 터무니없이 약하다는 사실이 판명되었다. 이를테면, 바로 성장과 질주 같은 신이다.
다소 열혈 특성을 지닌 이 소년 신에게 있어, 한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조심조심 나무토막을 빼내는 이런 유형의 게임은 그야말로 쥐약이나 다름없었다. 오전 중에 벌어진 연습 시합의 성적은 무려 18전 1승 17패. 어떻게 필사적으로 1승은 손에 쥐었지만, 그것도 초반의 일이고 이후에 다른 두 신이 게임에 익숙해지자 승률은 극단적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1조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낸 것은 다름 아닌 견고와 인내. 두뇌파인 청렴과 절조가 그 뒤를 잇고 있었지만, 절반 이상의 승률을 보이며 압도적인 우위를 드러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압도적으로 이기고 있는 상황이라도 역시 마음이 복잡할 수밖에 없다.
첫 번째와 두 번째 미션을 그렇게 수월하게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성장과 질주 덕분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이 왔다고 헌신짝처럼 버려도 되는 걸까. 차라리 실력이 고만고만 했으면 그냥 운에 맡기자고 해버릴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압도적으로 차이가 나면 그것조차 어려운 일이다.
“저 녀석들이 차라리 부럽군.”
“그런가.”
실제로 4조 같은 경우는 누구도 압도적인 우위를 지니지 못한 채 팽팽한 접전을 이루고 있었다. 반대로 3조의 경우엔 이슬과 서릿발이 견고와 인내보다 높은 삼분의 이 이상의 승률을 기록하며 승승장구하는 상황.
어쨌든 그렇게 다소 복잡한 심정으로 오전의 연습 시합을 마치고 난 신들은 점심 식사를 마치고 난 뒤 각자 휴식을 취하고는 본 시합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런 식이 되었지만, 행운을 빈다.”
“나 역시.”
“자, 힘내자!”
이 와중에도 밝은 미소를 짓고 있는 성장과 질주의 모습에 견고와 인내는 쓴웃음을 지으며 게임을 시작했다.
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어김없이 두 판 연속 성장과 질주의 패배로 이어진 것이다.
“나름 열심히 연습했는데, 역시 무리였나 보네요. 하하…”
성장과 질주는 탈락을 예감했는지 그렇게 웃으며 다시 새로운 게임을 준비했다. 하지만 그 뒤 이변이 일어났다.
“어이쿠, 손이 미끄러졌네.”
갑자기 청렴과 절조의 패배가 이어지기 시작한 탓이다.
“너…”
하지만 그것은 또한 너무나 부자연스러운 모습이었기에 다른 두 신은 청렴과 절조가 일부러 지고 있다는 걸 단숨에 알아채고 말았다.
청렴과 절조도 너무 뻔히 보인다 싶었던지 머쓱한 표정이 되어 버렸다. 사실 성장과 질주가 어느 정도 실력만 있었어도 이렇게 대놓고 져주기 같은 일은 벌이지 않았겠지만, 녀석은 정말이지 이 게임에 대해서는 완전히 구멍이라 어쩔 수가 없다.
“무슨 생각이야?”
살짝 화마저 난 표정의 견고와 인내를 바라보며 청렴과 절조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생각해 보니까, 이 팀에서 당장 이 자리에 없어도 되는 인물은 역시 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어차피 본신이야 엘리시온에 다 같이 있으니, 상황을 보면서 조언을 해주는 정도는 그쪽에서도 가능하잖아.”
“뭐?”
“이건 단순히 성장과 질주를 동정해서가 아니야. 곰곰이 생각해 본 결과, 내가 지는 쪽이 우리 조에서 우승자가 나올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생각했을 뿐이라고나 할까.”
일리가 있는 얘기다. 특유의 친화력으로 인간과의 소통이 가장 원활한 성장과 질주, 그리고 현재 남은 참가자 가운데 가장 우월한 신체 능력을 지닌 견고와 인내. 이 두 신의 조합이라면 다른 조에서 누가 살아남든 간에 현재의 우위를 유지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렇게 되었으니, 나중에 대상 타면 잊지 말고 적당히 한 몫 떼어주길 바래. 무슨 말인지 알겠지?”
“너… 스스로의 신격이 뭔지는 알고 그런 소릴 하는 거냐.”
견고와 인내의 말에, 청렴과 절조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웃어 버렸다.
“가끔은 이런 것도 괜찮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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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편째.
오늘은 여기까지 해야할 것 같네요.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