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629
00629 143. 트레이드 =========================
그렇게 다른 이들과는 달리 조금 특별한 계약을 맺은 청렴과 절조였지만, 당분간은 그 사실에 대해 함구하도록 주의를 받았다. 출근도 마찬가지로 거짓된 천국 쪽으로 하게 되었는데, 이것은 제랄딘에게 인수인계를 받기 위함이기도 했다.
“이제 마음 놓고 당신과 하루 종일 있어도 되겠어.”
“정말이지. 당신이란 사람은. 꺅.”
형진이 그렇게 제랄딘을 안고 노닥거리는 중에도, 오디션에 참가한 신들에게 아침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다시 새로운 미션을 부여받기 위해 모였는데, 문득 이슬과 서릿발이 진지한 표정으로 손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형진에게 발언권을 청했다.
“말씀하십시오.”
형진이 허락하자,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더 이상의 본선 참여를 포기하겠습니다.”
“네?”
갑작스런 사태에 형진은 물론이고 다른 신들마저 놀라버렸다.
“진심입니까?”
“그렇습니다.”
“흠…”
뜻밖의 상황이긴 했지만, 역시나 가장 놀란 것은 아직까지 그녀와 같은 조에 속해 있는 뱀과 깃털이었다.
사실 이것은 단순히 본선 참여의 포기만을 위한 포석은 아니다. 단순히 그런 목적이었다면, 어제 청렴과 절조가 그랬던 것처럼 스스로 게임에서 패배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을 테니까. 하지만 그녀는 다른 조원들이 자신을 구축하려든다는 것을 깨닫자 이를 악물고 버텼고, 그 결과 3조의 탈락자는 이빨과 말뚝이 되어야만 했다.
그렇게 힘들게 살아남아 놓고 이런 식으로 보란 듯이 더 이상의 본선 참여를 포기하다니, 형진은 물론이고 다른 심사위원들 역시 그녀의 강단이 보통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본인의 의사가 그렇다면, 더 이상은 말릴 수 없는 일이겠군요.”
“제 철없는 억지를 받아들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괜찮습니다. 그럼 일단 이슬과 서릿발님은 자리를 옮기실까요. 계약에 관해 대화를 나눌 필요가 있을 테니까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슬과 서릿발이 한줄기 빛과 함께 모습을 감추자, 형진은 남은 다섯 명의 신을 향해 다시 말했다.
“원래는 다시 팀 단위의 미션을 수행할까 싶었습니다만, 이슬과 서릿발님이 스스로 사퇴 의사를 밝히신 관계로 그것은 더 이상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뱀과 깃털은 입술을 깨물었다. 자칫하면 그녀까지 덩달아 탈락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각 조원은 동고동락하는 사이라면서 한꺼번에 탈락시킨다 해도 당장의 그녀로서는 반박할 수단이 없었다. 어쨌든 불화를 자초해 이런 사태가 벌어지도록 만든 책임이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니까.
하지만 형진은 굳이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현재 구성되어 있는 조를 해체하고, 개인 자격으로 최종 결선을 치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유지되었던 조를 해체한다는 형진의 선언에 지금까지 우위를 점하고 있던 1조를 제외한 다른 조의 신들은 모두 반색했다. 바로 탈락되지 않을까 하며 불안해하던 뱀과 깃털은 말할 것도 없고, 지금껏 근근하게 버텨 가고 있던 4조의 두 신들 역시 팀 전으로는 1조를 이길 가능성이 매우 적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그 녀석이 일부러 양보한 의미가 없는데.”
“할 수 없죠. 최선을 다할 수밖에.”
“하긴.”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인 1조의 두 신은 그렇게 쓴웃음을 지었다. 지금 상황에서 자신들이 반대한다 해도 다른 조의 세 신이 찬성하는 이상 큰 의미가 없을뿐더러, 주최자인 형진의 의사를 무시할 수도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신들에게서 반발이 일어나지 않음을 확인한 형진은 곧바로 새로운 미션을 하달했다.
“먼저 이것을 받으십시오.”
형진은 종이조각 같은 것을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신들이 살펴보니, 이마가 벗겨지고 옆머리를 길게 기른 이상한 헤어스타일의 남자 그림이 그려진 것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것은 지구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통화 가운데 하나로서 백 달러라고 불리는 돈입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계신 에덴 아일랜드가 위치한 나라의 통화는 아닙니다만, 별다른 환전 없이 그대로 사용하실 수 있으니 문제는 없을 겁니다.”
“돈이라…”
“이게 바로 인간들의 돈이란 건가.”
신들에게도 돈이나 통화라는 개념은 분명히 존재한다. 딱히 이런 식으로 화폐를 만들어서 사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엄연히 그 역할을 하는 공헌도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이다. 게다가 거짓된 천국을 통해 캐시로 환전해서 사용하게 되면 공헌도로 바꿀 수도 있다. 물론 이 자리에 있는 신들은 거기까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인간들이 사용하는 화폐라는 말에 신기해하는 것이 고작일 뿐.
“이것이 마지막이 될지, 아니면 다른 미션이 더 남아 있을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번 미션부터는 실질적으로 공헌도 백만의 상금을 수령하게 될 대상 수상자를 뽑는 과정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므로, 지금부터 제가 내드리는 미션을 신중하게 수행하시기 바랍니다.”
본선이라고는 해도, 팀전으로 이루어졌던 지금까지의 미션과는 달리 이제부터는 철저하게 개인전으로 치러진다. 비록 팀전에서 다소 좋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해도, 이번 미션에서 역전할 기회가 생겼음을 신들은 모두 똑똑하게 인지했다.
“지금 제가 건네 드린 이 백 달러를 사용해 이 세상에 도움이 될 만한 일을 하십시오. 그것이 오늘의 미션입니다.”
마침내 미션이 하달되었다. 그 내용을 전해 듣는 순간, 신들은 이것이 단순히 성공과 실패로 결과가 나뉘는 그런 식의 미션이 아님을 이해했다. 또한 지금까지 며칠 동안 이 섬에 머물면서 그들이 지켜보고 들었던 인간에 대한 지식을 최대한 활용해야만 하는 것 또한 확실하게 이해했다.
“그럼, 다녀 오겠습니다!”
곧바로 성장과 질주가 벌떡 일어나 스스로의 신격처럼 어딘가로 달려갔다. 그러자 뱀과 깃털 역시 그 뒤를 따라 집을 나섰고, 잠시 무언가를 고민하던 벗과 추억, 그리고 반지와 거울이 함께 집을 나섰으며, 가장 마지막에 집을 나선 것은 다름 아닌 견고와 인내였다.
모두가 집을 나서자, 형진은 다시 엘리시온으로 돌아와 그들의 움직임을 살폈다.
“흠… 역시나 친구에게 도움을 청하는 건가.”
가장 먼저 달려 나간 성장과 질주는, 이제는 꽤 친한 친구가 되어 버린 이들에게 가서 자신이 받은 미션을 설명하고 도움을 청했다. 그의 부탁을 받은 젊은이들은 흔쾌히 이것을 받아들이고는 백 달러로 할 수 있는 좋은 일들을 함께 고민했다.
“나쁘지 않은데. 신이 자기 마음대로 세상에 좋은 일이 뭔지 결정해봐야 오히려 민폐가 될 수도 있는 일이니, 아예 그 도움이 필요한 당사자에게 직접 물어 그들의 뜻대로 처리한다. 나쁘지 않은 방법이야.”
희망과 생명의 말을 받은 것은 공포와 죽음이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매번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마다 그것을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해결하려 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어. 게다가 상담하는 대상이 특정한 누군가로 국한된다면, 그것은 또한 하나의 권력이 될 수도 있는 문제니까.”
“과연. 그런 문제가 있겠네. 친화력은 분명히 좋지만, 성장과 질주는 귀가 좀 얇은 면이 있으니까.”
가만히 두 여신의 대화를 듣고 있던 신뢰와 헌신 역시 한 마디를 거들었다.
“설마 신을 상대로 그런 일을 하려는 자가 있을까 싶기는 해도, 만약 그의 선의를 악용하려는 자가 생긴다면 그건 세상 전체에 있어 커다란 재앙이 되겠지.”
심사위원들의 시선은 이내 다른 신들에게로 옮겨갔다.
“응? 저건 반칙 아닌가?”
“정말.”
두 여신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4조의 인원들이었다. 그들은 개인전이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둘의 금액을 합쳐 무언가를 하려하고 있었다.
형진은 빙긋 웃으며 두 여신을 향해 말했다.
“딱히 반칙은 아니야.”
“어째서?”
“개인전이라고는 해도 둘의 자금을 합쳐서 미션을 수행해서는 안 된다고 못을 박지는 않았기 때문이지.”
“그거야 그렇지만…”
“자금이 두 배가 되면, 그만큼 할 수 있는 일도 많은 법. 게다가 나는 이번 미션이 최종전이 될지는 모르는 일이라고 미리 언질을 주었어. 즉, 저 둘이 함께 이번 미션의 승자가 된다 해도, 다시 한 번 최종 결선을 치를 수도 있다는 얘기지.”
공포와 죽음은 형진의 설명에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듯 해. 지금까지의 미션을 거치면서 제법 머리를 쓸 줄 알게 된 모양이야.”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면 결국 지혜를 짜낼 수밖에 없는 법이니까.”
그런 식으로 하루가 지나고 마침내 저녁이 되었다.
다시 집으로 돌아온 신들은 형진에게 자신이 그에게서 받은 백 달러로 한 일을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가장 먼저 나선 것은 성장과 질주였다.
“저는 이 돈을 받은 순간, 가장 먼저 밤의 신께서 처음 이 섬에 대해 소개할 때 하셨던 말씀을 떠올렸습니다.”
“그래요? 제 어떤 말을 떠올리신 겁니까.”
“밤의 신께서는 그러셨죠. 세상 모두가 이렇게 아름답고 풍요로운 것은 아니라고. 당장 이 섬 밖으로만 나가도, 월등한 빈부 격차로 인해 하루 한 끼를 걱정하는 사람도 있는 형국이라고.”
“그렇군요. 기억이 납니다. 분명 그렇게 말을 했었죠.”
형진은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얼핏 스쳐 지나가는 식으로 흘린 말인데, 그것을 잊지 않았다는 사실이 매우 만족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는 이 돈으로 그런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방법을 찾고자 했습니다. 물론 저는 이 세계에 대해 아직 아는 것이 많지 않기 때문에, 이전의 미션에서 사귀었던 친구들을 찾아가 제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도움을 청했고, 그 과정에서 친구들은 저에게 도움을 주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들의 용돈을 얼마간 내놓아 함께 그 일에 동참하기로 했습니다.”
성장과 질주는 그렇게 말하고는 형진에게 작은 증서와 같은 것을 하나 내놓았다.
“이것은… 그러니까, 이 지구라는 곳에서 제가 떠올렸던 일과 같은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집단에서 발행하는 증서입니다. 제가 받은 백 달러와 제 친구들이 모은 돈을 좋은 일에 쓰겠다고 약속하는 증서라더군요. 시간이 촉박해서 당장 제가 받은 돈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쓰였는지는 알 수 없는 것은 아쉬운 일이지만, 저는 일단 이것을 이번 미션의 결과물로서 제출하고자 합니다.”
형진은 성장과 질주가 내민 증서를 받아들고는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어 버리고 말았다. 그것은 천이백삼십 달러의 기부금을 받았다는 내용이 적힌 증서였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발행한 곳이 무려 희망과 생명이 설립한 재단이다.
“수고 하셨습니다. 그럼 자리에 앉아 주십시오.”
“네!”
성장과 질주가 자리에 앉자, 그 다음은 뱀과 깃털의 차례였다.
“저도 기부를 했습니다. 이건 그 증서입니다.”
“…”
뱀과 깃털은 자신만의 생각으로는 이 미션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고 판단했던 모양이다. 그런 그녀가 마침내 떠올린 것은 이슬과 서릿발이 1조와 동맹을 맺어 그들과 함께 함으로서 미션을 통과했었던 사실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성장과 질주가 하는 일을 몰래 훔쳐보고는, 그의 친구들 가운데 하나를 불러내어 자신 역시 같은 방식으로 기부를 하는 쪽을 선택한 것이다. 성장과 질주의 선택이 만약 가장 훌륭한 답이라면, 그녀 역시 같은 답을 내놓았으니 최소한 실패로 간주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식의, 아주 근시안적인 생각이었던 셈이다.
“알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자리에 앉아 주십시오.”
“네…”
하지만 딱 보기에도 성장과 질주의 발표 때와는 달리 형진의 반응은 그리 시원치 않았고, 뱀과 깃털은 풀 죽은 표정으로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세 번째는 4조에 속했던 두 신인 벗과 추억, 그리고 반지와 거울이었다.
둘은 한꺼번에 자리에 일어나더니 이렇게 말했다.
“저희는 둘의 자금을 합쳐 해안가에 작은 시설물을 설치했습니다.”
“시설물이요? 어떤 것입니까.”
“쓰레기통입니다. 주변을 쓰레기를 담아서 버릴 수 있는 장소죠. 그런 것이 해변에 설치되어 있다면 해변에 쓰레기를 막 버리거나 하는 사람도 줄어들지 않겠습니까.”
형진은 쓴웃음을 지었다. 누가 잘못 들으면 에덴 아일랜드는 쓰레기통조차 없는 그런 곳인줄 알겠다. 게다가 이런 식의 시설물들은 해당 지역의 관청에서 관리하기 마련. 아마도 이 두 신은 미처 그것까지는 알아보지 못한 채 자신들이 한 행동이 좋은 일이라고만 생각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알겠습니다. 그럼 자리에 앉아 주십시오.”
이제 마지막 한 사람의 발표만이 남았다.
견고와 인내는 조금 머쓱한 표정으로 앞으로 나서더니 이렇게 말했다.
“저는… 스타트업이라는 것을 만들었습니다.”
“네?”
형진은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지금… 스타트업이라고 하셨습니까?”
그가 일전에 함께 낚시를 갔던 친구 아버지를 찾아가는 것은 봤지만, 설령 이런 일을 벌였으리라고는 형진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그렇습니다. 뭐라더라… 회사의 한 형태라고 들었습니다.”
“재미있군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 회사입니까.”
이어진 질문에 견고와 인내는 조금 쑥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신으로서의 제 능력을 좋은 방향으로 사용하기 위한 회사입니다.”
============================ 작품 후기 ============================
일단 한편.
조금 늦었네요.
편안한 밤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