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639
00639 144. 재격돌 =========================
짙은 어둠 속에서도 가장 어두운 심연, 심연 속에서도 가장 허무가 가득 찬 공허, 공허 속에서도 가장 정적이 들어찬 그곳에 포트니아 테론은 잠들어 있었다.
그것이 얼마나 오랫동안 그 안에서 잠들어 있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언데드의 영역에서 그런 식의 역사를 기록한 자도 없고 일일이 그 시간의 흐름을 기억하고 있는 자들 또한 없었기 때문이다.
인지할 수 있는 그 어떤 것, 하다 못해 공간이나 시간의 변화조차 느낄 수 없는 그곳의 모습을 보는 순간 파괴와 재생은 흠칫 몸을 떨었다. 신인 그조차도 이해하지 못할, 근원적인 두려움이 스멀스멀 몸을 타고 기어오르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시하고 그는 계속해서 그 끝없는 허무 속으로 다가섰다. 도대체 얼마나 다가섰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혹시나 자신이 이미 죽어버린 티폰의 무의식이 남겨둔 함정에 빠져 버린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느낄 즈음이 되어서야 마침내 파괴와 재생은 포트니아 테론이라 불리는 모든 티폰들의 어머니와 조우할 수 있었다.
그것은 용솟음치는 구름 같기도 했고, 가만히 지상으로 내려앉은 안개와도 같았다. 소용돌이 치며 흐르는 계곡의 물 같기도 했고, 산들 바람에 작은 파문을 일으키는 호수와도 같았다. 지금까지 파괴와 재생이 보았던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그래서 한 가지 단어로 표현하는 것이 절대로 불가능한 그런 기이한 존재가 바로 포트니아 테론이었다.
그러나 또한 분명한 사실도 있었다. 파괴와 재생은 그것을 보는 순간 무한이라고 해도 좋을 거대한 힘을 느꼈다. 그리고 지금 자신이 보고 있는 이것이야 말로, 언데드의 영역 그 자체를 태동시켰거나 그러한 현상과 연결된 무엇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신격이 찢겨져 나가는 바람에 겪어야 했던 그 모든 고통들이 사그라 든 것 또한 깨달았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파괴와 재생의 신격은 본래부터도 온전한 상태가 아니었다. 미처 완전한 회복을 이루기 전에 방해를 받고 언데드의 영역으로 와버린 탓이다. 게다가 수차례 형진과 싸움을 벌이다가 그 온전하지 않은 신격마저 갈기갈기 찢겨져 버렸다. 때문에 그의 신격은 지금, 완전한 신이라고 부르기조차 민망할 정도로 넝마처럼 변해 버린 상황. 오죽하면 대대적인 침공이 시작된 지금 더 이상 맞서 싸울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이렇게 다른 방법을 찾기 위해 도망쳐 왔을까.
그런데 그 모든 고통이 사그라들고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찢겨진 신격이 본래대로 돌아온 것은 아니다. 완전히 사라진 것도 아니다. 그저, 고통이라는 형태의 거대한 불꽃이 알 수 없는 무언가에 짓눌려 점차로 작아지는 듯한 그런 느낌일 뿐이다.
그것을 깨달은 순간, 파괴와 재생은 자신의 고통을 짓눌러 버리는 무언가가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이 존재임을 이해했다.
신격이 찢겨나간 고통조차 감히 항거하지 못하고, 스스로 고개를 수그리는 존재라니. 그런 것 따위 들어본 적조차 없다.
파괴와 재생은 자신이 터무니없는 무언가와 조우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는 망설였다. 이대로 다시 등을 돌려 이곳을 벗어나자니, 다시 그 끔찍한 고통이 엄습해올 것이 두려웠다. 게다가 이곳을 나간다 한들, 그에게 남은 것은 이미 파멸뿐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의 근거지는 하나 둘 파괴되어 가고 있었으며, 애써서 마련한 군세 또한 각개격파 당하고 있었다. 정보와 기회를 한꺼번에 포착한 놈의 공세는 실로 한 점 자비조차 없었다.
본래부터 미쳐 있던 신답게, 파괴와 재생은 그렇게 내면으로부터 치밀어 올라오는 경고를 무시한 채 그 무언가를 향해 한층 다가섰다. 만약 알 수 없는 이 무언가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면, 이 빌어먹을 세상 따위 단숨에 뒤집어 엎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떠올린 것이다. 신격이 찢겨나간 고통마저 머리를 수그릴 정도의 이 무언가와 하나가 될 수 있다면, 과연 무엇이 두렵겠는가.
그가 그런 생각을 떠올렸을 때, 조용히 잠자고 있었던 것 같았던 그 무언가가 눈을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헉!”
파괴와 재생은 헛숨을 들이켰다. 사방에서 죄어오는 시선들이 그를 살펴보고 있었다. 그저 겉모습만이 아니라, 그 내면까지도 단숨에 꿰뚫어 보고 있었다. 그제서야 그는 또한 비로소 깨달았다. 자신이 무언가라고 생각했던 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으며, 어떤 것도 느낄 수 없었던 그 공간마저 전부 눈앞의 무언가에 속해 있었다. 이미 그는 무언가의 뱃속에 들어와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원한이 깊은 아이로구나. 네 이름이 무엇이냐.]신격이 갈기갈기 찢겨져 결코 정상이라고 할 수 없는 상태라 할지라도 파괴와 재생은 신이다. 비록 언데드의 힘에 취해 타락해 버렸다고는 하지만 파괴와 재생은 신이었다. 그런 그를 아이라고 부르다니. 본래대로라면 불같이 화를 냈어야 할 일이다. 이미 미쳐 버린 파괴와 재생이라면 더 이상 말을 들어볼 필요조차 없이 대뜸 싸움부터 걸었어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파괴와 재생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이미 눈앞의 무언가가 뿜어내는 존재감에 짓눌려 그런 식의 반항을 떠올리지도 못하고 있었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바로 그 파괴와 재생이.
“파괴와 재생…입니다.”
일이 잘못되어도 한참이나 잘못 되었음을 깨달았지만, 도망칠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럴 생각만 있다면, 이미 뱃속에 들어와 버린 자신은 순식간에 이 존재에 의해 소화되어 버리고 말 것만 같았다.
그래서 경어를 쓰고 말았다. 스스로도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미쳐버린 신이 맞나 싶을 정도로 겸손하게.
[너는 무엇에 대해 그토록 분노하고 있는가.] “저는…”파괴와 재생은 자신도 모르게 대답하려다가 입을 꾹 닫았다. 그리고 되물었다.
“너는… 당신은… 누구십니까.”
일반적인 존재라면 이런 일이 가능할 이유가 없다. 단순히 티폰을 낳은 괴수들의 어미가 신인 자신을 이렇게 위압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이 존재는 어쩌면 신을 넘어선 보다 근원적인 존재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런 파괴와 재생의 의문을 담은 질문은 철저하게 묵살되었다.
[대답하라.]마치, 너 따위는 자신에게 질문할 자격조차 없다는 듯이.
파괴와 재생은 모멸감에 입술을 깨물었지만, 이 정도로 강력한 존재라면 자신을 압박하고 있는 지금의 사태를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당장 자신은 신격이 갈기갈기 찢겨진 탓에 변변하게 대항조차 할 수 없는 상태지만, 이 존재라면 지금 그의 군세를 부수고 근거지들을 침탈하고 있는 존재를 물리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떠올린 것이다.
“저는…”
그는 최대한 구구절절하게 자신이 겪었던 일들을 상대에게 설명했다. 누이이며 또한 반려였던 공포와 죽음에게 뒤통수를 맞은 일부터 시작해서, 그 동생이 다른 누군가와 붙어먹고 또한 그 누군가가 자신을 이렇게까지 궁지로 몰아넣었다는 사실을 끓어오르는 감정을 여과 없이 표출하며 설명했다.
사실 파괴와 재생의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었다. 자신의 정신에 다소 결함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하잘 것 없는, 실로 하찮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의 미물들 때문에 누이이며 또한 반려이기도 했던 공포와 죽음이 뒤통수를 친 것부터 시작해서, 자신의 찢겨져 나간 신격을 통해 성장한 하찮은 미물이 동생과 붙어먹으며 그것으로부터 힘을 전해 받아 다시금 자신을 이렇게 궁지로 몰고 있으니, 파괴와 재생의 입장에서는 그 분노와 억울함이 실로 형용하기 어려울 정도다.
포트니아 테론은 가만히 파괴와 재생이 늘어놓는 하소연을 경청했다. 적당한 추임새조차 없이, 하지만 사방으로부터 쏟아지는 듯한 시선을 끊임없이 보내며, 그 모든 것을 조용히 듣고 있었다.
“그리하여… 저는 당신을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부디 저를 가엾게 여기시어, 저 무도한 자들을 벌해 주십시오. 그렇게 해주신다면, 이 은혜는 제 신격에 걸고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나름 세계를 쥐고 흔들던 신으로서는 구차하고 한심한 일이었지만, 자신에 대한 얘기를 늘어놓다가 스스로 그 얘기에 도취되어 버린 파괴와 재생은 이제 복수를 위해서라면 자존심 따위 개나 줘버리라는 식의 심정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네 이야기. 잘 들었다.]그것은 마치 초대 받아 들어간 어떤 집에서 내놓은 식사를 맛있게 먹고 나서 건네는 답례 인사와도 같은 말이었다. 앞서의 위압적인 느낌에서 벗어나, 약간 누그러진 것처럼 느껴지는 그 대답에 파괴와 재생은 자신의 의도가 먹혀 들었다고 생각했다.
일단 지금의 상황을 벗어나고, 또한 이 강대한 존재의 힘을 빌려 자신의 군세를 부수고 있는 놈을 저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과정에서 놈에게 타격을 입혀 빼앗겼던 신격의 일부를 되찾을 수 있다면 더 좋은 일이고. 일단 그렇게 신격을 되찾고 힘을 비축하고 나면, 이 강대한 존재의 실체를 찾아내 그 힘마저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버리고 말리라. 그리 된다면, 과연 무엇이 있어 그를 막아설 수 있겠는가.
그렇다. 전부 부숴버리고 말 것이다. 전부 태워버리고 말 것이다. 그렇게 철저하게 부수고 파괴하여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을 때, 그는 이 세상을 다시 재생할 것이다. 원래의 세상을 모두 부수고, 자신의 의지가 절대적인 법으로 작용하는 그런 세상을 만들어 낼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자신은 더 이상 파괴와 재생이 아닌 새로운 세상의 창조주로서 군림하게 될 것이다.
자신의 누이이자 반려였던 공포와 죽음에게 저지당했던, 그 모든 일들을 비로소 현실로 만들 실마리를 찾아냈다. 언데드의 힘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고 느꼈던 그 모든 것이, 지금 이 순간 하나로 충족되어 가고 있음을 파괴와 재생은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가슴 속에서 오랜 만에 끓어오르는 희열을 느끼고 있던 그에게 무언가는 다시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아이야. 너는 또한 네가 지은 죄를 먼저 청산해야겠구나.] “뭐라고?”이게 무슨 뜬금없는 소린가.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공감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던가. 자신이 느끼고 있는 그 모든 분노를 이해한 것이 아니란 말인가.
[너의 가장 큰 죄는, 네 아이를 하찮은 분노의 제물로 삼으려 했다는 점이다.] “헉!”파괴와 재생은 공포와 죽음이 자신의 아이를 낳은 것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안식과 동굴을 범해 아이를 낳게 하고 그 아이로 하여금 자신의 신격을 보충하려 한 것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파괴와 재생은 방금 전 자신의 이야기를 무언가에게 전할 때, 그것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자신이 생각하기에는 당연하고 정당한 일이었지만,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파렴치한 죄악으로 인식될 수 있음을 또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이 존재는 그것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
“너… 넌… 도대체…”
이야기를 하는 와중에 계속해서 사방에서 무언가가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것이 눈앞의 무언가인지, 아니면 무언가와 함께하는 또다른 무언가인지는 알 수 없는 일. 하지만 파괴와 재생은 무시했다. 그런 식으로 바라본다 한들, 신의 마음 속 깊은 곳에 담겨진 무언가를 꿰뚫어 보지는 못하리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틀렸다. 이 존재는 생각보다 훨씬 더 엄청난 존재였다. 스스로 감추고 말하지 않은 신의 내면을 꿰뚫어 볼 수 있을 정도로, 이 존재는 기존에 알고 있던 그 어떤 존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초월적인 존재였던 것이다.
[자신의 신격을 보충하기 위한 수단으로 아이를 이용하려 하다니, 이것은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크나큰 죄악. 하물며 너는 그러한 자신의 죄를 스스로 죄로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다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크나큰 죄악. 아이야. 너는 스스로의 죄악에 대한 벌을 받아야만 한다.] “웃기는 소리!”파괴와 재생은 일이 틀어진 것을 알았다. 아마도 이 존재의 역린은 바로 아이였던 모양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티폰을 멋대로 이용한 것을 문제 삼지 않는 것이 뭔가 기묘했지만, 어쨌든 예상과는 다른 상황이 되었으니, 일단 이곳을 벗어나야만 한다.
이야기를 하는 와중에도 파괴와 재생은 눈앞의 무언가가 지니고 있을 약점을 끊임없이 찾아보았다. 만에 하나라도 빈틈이 보인다면, 그것을 찔러 자신을 눈 아래 두고 내려다 보는 이 존재를 단숨에 쓰러뜨릴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의 눈에는 이 무언가의 약점은커녕 그 실체조차 전혀 파악이 되지 않고 있었다.
쓰러트릴 수 없는 상대라면, 맞서기보다는 일단 피하는 편이 옳다.
하지만 파괴와 재생이 그 생각을 떠올리는 순간, 지금까지 아무것도 없는 곳이라고 생각했던 공간 그 자체가 그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너무나도 자연스러워서,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허무라고 생각했던 그 모든 것이 그의 육체는 물론이고 정신마저 단숨에 짓누르고 있었다.
“아, 안 돼…”
파괴와 재생은 자신을 집어 삼키는 허무 속에서 그렇게 말하며 허우적거렸지만, 다음 순간 그의 모습은 서서히 잠식되어 사라져 갔다.
그리고, 그렇게 사라져 간 허무 속에서 다시금 누군가의 음울한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사라져 버린 누군가를 위한 장송곡처럼.
그리고 사라져 갈 누군가를 위한 장송곡처럼.
무녀가 서서 저택을 보매
태양에게서 떨어져 있으며
시체의 해안가에 서 있도다.
그 문은 북쪽으로 나 있는데.
거기서 지붕의 구멍을 따라
독액이 방울방울 떨어지고
저택의 뼈대는 배암의
등뼈를 엮어 만들었네.
무녀가 거친 시냇물을 헤치며
걸어가 거기서 보매
위증을 저지른 사기꾼들
늑대 같은 살인마들
그리고 다른 이의 신뢰받는 아내를
유혹해 꾀어낸 자들
거기서 삼켜지는 것은
죽은 자의 시체요,
어둠은 생명을 찢는도다.
그대 아직도 앎을 원하는가? 그리고 무엇을 알려는가?
============================ 작품 후기 ============================
두편째.
요즘 날씨는 도대체 중간이 없군요. 어휴.
뒤에 나온 노래는 Voluspa 38-39 입니다.
노르드 신화에 나오는 무녀의 예언이죠.
원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Sal sa hon standa
solo fiarri,
Nastr?ndu a,
norðr horfa dyrr.
Fello eitrdropar
inn um liora.
Sa er undinn salr
orma hryggiom.
Sa hon þar vaða
þunga strauma
menn meinsvara
ok morðvarga
ok þannz annars glepr
eyraruno.
Þar saug Niðh?ggr
nai framgengna,
sleit vargr vera.
Vitoð er enn, eða hv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