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649
00649 147. 생존자 =========================
문제의 여성을 길드성에 데려다 놓은 뒤, 형진은 새롭게 발견한 고리 형태의 거대 구조물을 탐사하기 위한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예상대로 고리 형태의 거대 구조물, 편의상 유적이라고 칭하겠습니다. 유적의 대부분은 언데드에 의해 장악되어 있었습니다.”
“그 여자가 발견된 지역을 제외하고는 죄다 되살아난 시체들이 바글거린다는 얘기군.”
시험 삼아 몇 개 지역 무인기를 들여보냈는데, 역시나 결과는 마찬가지. 대부분의 구역에서 언데드들이 발견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게다가 오랜 시간 동안 사기에 노출된 탓인지 단순히 되살아난 시체만 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세계에서 넘어온 것으로 보이는 강력한 언데드의 존재들도 몇몇 지역에서 확인되었다.
“언데드도 문제지만, 역시 가장 큰 문제는 이 무지막지한 크기입니다.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과연 얼마나 걸려야 탐사가 끝날지조차 미지수입니다.”
“그거 참.”
가만히 형진의 보고를 듣고 있던 허세와 망상이 혀를 찬다. 차라리 행성의 경우라면 인공위성과 무인기를 뿌려 넣고, 그것만으로는 확인하기 어려운 지역에 주시자들을 얼마 정도 파견하면 대략의 탐사는 끝이 난다. 파괴와 재생의 근거지를 공략하면서, 이런 식의 과정은 제법 체계화되어 있는 상태라서 어지간한 행성 정도는 일주일이면 지형이나 기후 등 기초적인 정보 수집은 끝이 날 정도다.
하지만 이번에 발견한 유적은 그런 식의 방법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 대략적으로 확인해 본 바에 따르면, 이 유적의 반지름은 약 0.9AU 정도인데, 이것은 태양과 지구 거리의 0.9배라는 의미이다. 킬로미터로 환산하면 반지름만 1억 3천만 정도. 지구의 지름이 일만 이천 킬로미터 정도인 걸 고려하면, 이번에 발견한 유적이 얼마나 무지막지한 규모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이 유적의 가장 큰 특징은 고리가 하나 뿐인 것도 아니고 여러 개의 고리가 다층 구조를 이루고 있다는 점인데, 이렇게 되면 탐사해야할 면적은 그야말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버린다. 단순계산으로도 지금까지 했던 방식의 탐사로는 답이 나오지 않는 수준이다.
“미치겠네.”
“…”
현재 파악한 바로는 약 4분의 1가량이 극심한 파괴를 겪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지만, 그래봐야 그 모든 지역에서 탐사와 함께 언데드를 지워버리는 작업을 거쳐야 하는 건 마찬가지다. 게다가 중심이 되는 항성 역시 불안정한 상태인 것도 문제. 형진의 생각으로는 이 문명이 종말을 맞은 원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중심에 위치한 항성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정확한 것은 좀 더 확인을 해봐야 할 문제다.
“이 정도 문명이라면 외우주로의 확장도 시도했을 것 같습니다.”
“그럼, 이 유적을 만든 장본인들이 아직 생존해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긴가?”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다만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가 발견한 여성이 그렇게 버려져 있던 이유를 설명하기가 어렵겠지만요.”
“흠…”
결국 자세한 건 직접 들어보든 탐사를 해서 남겨진 기록 같은 것을 찾아보든 둘 중 하나란 얘기다. 그러나 발견한 여성이야 그렇다 쳐도, 탐사는 역시 쉽게 손을 뻗기 어려울 정도로 막막한 느낌이 든다. 크고 아름다운 것도 정도껏이지, 이건 이미 상식을 벗어나 있는 규모다.
“저…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뭔가 좋은 방법이 없을까 하고 고민하고 있는데, 문득 황혼과 망각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어 보인다.
“뭔가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까? 말씀해 주십시오.”
“음… 그러니까, 예전에도 사람이 많이 모자랐을 때가 있었잖아요. 그때처럼… 엘리시온, 아니 거짓된 천국의 유저들을 동원해 보면 어떨까 싶은데…”
확실히,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일정 영역의 언데드를 퇴치하고 지도를 작성하게 만드는 식의 이벤트 퀘스트를 하달하면 되는 일이니까. 습득한 물건의 경우엔 퀘스트 종료시 일괄 회수되도록 하고, 유저들이 보고 들은 것 역시 일괄적으로 보존해 정보로 활용하면 된다. 물론 이렇게 모인 정보를 정리하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일단 정보부터 획득하고 정리는 차근차근 이어가도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발견한 여성과 같은 생존자가 더 남아 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할 것 같군요. 필요한 경우 적절히 개입해서 보호 조치를 취하려면 유저들이 퀘스트를 수행할 때 지켜보는 이가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형진은 요정 정도를 생각하고 꺼낸 얘기였지만, 곧바로 공포와 죽음이 손을 들고는 다른 제안을 내놓았다.
“그거라면, 엘리시온에서 놀고 있는 신들에게 맡겨 보면 어떨까. 공헌도 얼마 정도 쥐어주고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다가 보호해야할 무언가를 찾으면 개입하는 역할을 맡기면 아주 좋아할 것 같은데.”
“신들 말이야?”
요정들이 쓰기 편한 노동력인 것은 사실이지만, 요새는 형진의 손에 들어온 세계가 많아지자 여기저기서 모여든 정보들을 수집하고 정리하는 일에 대부분 투입되어 있어서 가용 인력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에 반해 엘리시온의 신들은 지난 번 오디션 이후 뭔가 재미 있는 일이 없나 하고 계속 기웃거리고 있는 중. 이 게으름뱅이 백수 신들에게 있어 인간 유저들이 벌이는 전투와 탐험은 꽤 자극적인 오락거리가 될 것이다. 게다가 그들을 내려다보며 적절한 시점에 개입하는 역할이니, 신으로서의 자존심도 어느 정도는 충족될 것이고.
게다가 이번에 발견한 유적은 당장 형진이나 그의 추종자들이 전력을 다해 탐색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당장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어딘가로 종적을 감춰버린 파괴와 재생을 찾는 일과, 녀석이 향했으리라 생각되어지는 포트니아 테론의 위치를 확인하는 일이다. 게다가 새로 복속시킨 영역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주시자들을 함부로 빼내기는 어려운 점이 있다.
“훌륭해. 아주 좋은 방법이야.”
이렇게 해서 인간 유저와 신급 운영자의 콤비네이션을 기반으로 한 유적 탐사가 본격적으로 입안되었다.
오디션 이후로 형진이나 심사위원을 맡았던 신들 주위를 기웃거리던 잡신들은 이 새로운 소식에 대번에 반색했다.
“멋져. 역시 밤의 신이야. 이런 재미있는 일을 가져오다니.”
“지켜보다가 필요한 상황에 슬쩍 개입하는 식의 역할이라니. 딱 신 그 자체잖아.”
“이거야! 이게 바로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라고!”
게다가 무료 봉사도 아니고 건당 얼마 정도의 공헌도가 지급되는데다, 발견된 인원이나 물품을 확보하면 특별 수당까지 지급된다. 공헌도 하나 없이 빈털터리 상태로 엘리시온에서 뭉개고 있던 신들은 그 얘기가 흘러나가기가 무섭게 서로 자기가 먼저 하겠다고 아우성을 치기 시작했다.
유저들의 반응도 마찬가지로 폭발적이었다.
일전에 타나토스에서 일어났던 대규모 페스타 사태를 겪었던 터라, 유저들은 이벤트 퀘스트의 내용이 발표되기가 무섭게 역시나 발 벗고 나서서 그것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그때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주된 적은 언데드인지라 이전에 수행했던 퀘스트의 확장판 정도로 이해하는 유저들도 많았다.
“와… 이거 혹시 링월드인가?”
“맙소사. 이전에 수행했던 이벤트 퀘스트의 세계도 아직 오픈되지 않았잖아?”
“이거 판타지 아니었어?”
“도대체 세계관이 어디까지 연결되어 있는 거야?”
처음에는 그래봐야 게임이라는 생각을 가졌던 유저들도 몇몇 열성적인 유저들이 탐사 지역에 대한 정보를 모아 사이트에 게재하기 시작하자 그 방대한 규모에 크게 놀라고 말았다.
“세상에! 겹치는 지역이 하나도 없어!”
“설마… 진짜 링월드 규모로 구현을 한 건가?”
“역시 갓게임! 엘리시온 찬양해!”
여성이 깨어난 것은 그렇게 유저와 신들이 한껏 유적 탐사로 달아올라 있을 때였다.
“…”
인형 같이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침대에 누워있던 여성의 눈이 가만히 떠진다. 잠시 흐릿한 시선으로 천장을 바라보고 있던 그녀는, 이내 자신이 처음 보는 장소에 자리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몸을 일으킨다. 하지만 상반신을 일으켜 앉으면서도 그런 일을 자연스럽게 해냈다는 사실에 흠칫 놀라버리고 만다. 그녀는 자신이 동면 상태에 빠져 있었음을 알고 있었고, 그것이 지닌 후유증도 이해하고 있었다. 그런 후유증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이른바 근무력증이라고 하는 중증의 질환으로서, 성공적으로 동면 상태를 유지하더라도 이런 증상 때문에 간혹 사망자가 나오는 경우마저 있을 정도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상태는 어떤가. 동면이 아니라, 그냥 기분 좋게 낮잠을 푹 자고 일어난 것 같은 그런 느낌마저 받을 정도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그리고 여긴 어딘가.
슬쩍 고개를 돌려 창문 쪽을 바라본다. 아주 작은 움직임이었지만, 그로 인해 무게 중심이 이동하며 침대가 출렁거린다. 뭔가 신기하다. 이건 설마 물인가.
잠시 침대의 출렁임을 즐기던 그녀는 그제서야 비로소 자신이 무언가를 입고 있음을 깨달았다. 부드러운 소재로 만든 속옷과 잠옷. 뭔가 신기하다. 자신이 옷을 입고 있다는 사실이.
가만히 침대 밖으로 다리를 뻗는다. 천천히 몸을 일으켜 두 발로 서 보았다. 다른 자들은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이런 감각조차도 그녀에게는 너무 신기하고 생경하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그녀는 자신의 발로 딛고 서서 걸어본 적조차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장애가 있어서가 아니라, 너무 귀하게 여겨지다 보니 스스로 걷는 것조차 금기시되었던 것이다.
천천히 걸음을 옮겨 햇살이 가득 새어 들어 오고 있는 창가로 다가갔다.
무심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가 눈부신 태양빛에 눈을 찌푸리고 말았다. 눈물이 찔끔 날 정도였지만, 이것 역시 그녀에게는 신기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적어도 그녀가 기억하는 태양이라는 존재는 크고 붉은 구체의 불덩어리 같은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그녀는 자신이 이전에 살던 세계와는 다른 곳에 와있음을 명백하게 인식했다.
“교관님! 저 이게 잘 안 되는데 좀 봐주세요!”
“알아서 해. 귀찮게 하지 말고.”
“아이잉. 교관니임.”
“달라붙기만 해봐. 날려버릴 테니까.”
“히잉…”
창문 아래쪽의 널따란 정원에서는 십여 명의 소년 소녀들이 귀찮은 기색이 역력한 또다른 소년에게 무언가를 배우는 듯한 모습이 보인다. 서로 다른 문화권 출신인지 외모는 물론이고 옷차림조차 각양각색. 이렇게 다양한 인종이 뒤섞여 무언가를 함께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는 그녀로서는 절로 눈이 휘둥그레질 만한 일이다.
“…”
타나토스 각지에서 몰려온 왕족 나부랭이들에게 오늘도 스킬 수련을 시키고 있던 크루그는 문득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느끼고는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단상에 서있던 소년이 자신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돌아보자 화들짝 놀래서 얼른 커튼을 닫아 버렸다.
“깨어난건가.”
크루그는 얼핏 보였던 외모와 함께, 닫혀진 커튼의 위치를 가늠하고는 방금 자신을 보았던 것이 얼마전 형진이 데려온 다른 세계의 여성임을 알아챘다.
“형.”
“응? 왜? 무슨 일이야? 네가 일부러 나에게 연락을 다 넣고.”
곧바로 메시지를 넣자, 형진은 호들갑스러운 목소리로 그에게 답했다. 사춘기가 절정에 달한 것인지 요즘 들어 더욱 무뚝뚝해진 크루그가 스스로 자신에게 먼저 메시지를 넣은 것이 어지간히도 놀라고 기뻤던 모양이다.
크루그는 자신도 모르게 그런 형진의 반응에 피식 웃어버렸다가, 이내 아무렇지도 않은 척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이 본 것을 그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길드성에 모셔둔 손님이 깨어난 것 같아서요.”
“그래? 알았어. 바로 가마.”
형진은 허둥지둥 연락을 마치고는 자신의 앞에 평소와는 달리 인간 사이즈로 다소곳이 앉아 있는 보호와 균형에게 양해를 구했다.
“손님이 깨어났다는 군요. 아무래도 바로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아, 아뇨. 괜찮아요. 진님은 원래 많이 바쁘신거 잘 아니까…”
괜찮다고 말하고는 있지만 역시나 시무룩한 기색은 감추지 못한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단둘이서 제대로 얘기를 해보려고 어렵게 자리를 마련한 것인데, 본격적으로 대화를 시작하기도 전에 방해가 들어온 탓이다.
형진은 그런 보호와 균형의 모습에 쓴웃음을 짓더니, 이내 손을 내밀어 보였다.
“괜찮으시다면, 함께 갈까요?”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수그리고 있던 보호와 균형은 그 말을 듣는 순간 산책 하러 가자는 말을 들은 강아지마냥 눈을 빛내며 얼른 대답했다.
“네! 기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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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