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663
00663 150. 대면 =========================
호위병들은 그런 일이 벌어지는 와중에도 침입자에게서 시선을 떼지 앉고 있었다. 마법을 파훼하기 위한 호부를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침입자의 모습은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그것은 다시 말해 지금 그들이 보고 있는 것이 환각이 아닌 실체이거나, 자신들이 지니고 있는 호부 따위로는 파훼할 수 없는 아주 높은 수준의 마법이라는 얘기가 된다,
어느 쪽이 되었든 그들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호위병들은 얼른 증원 병력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필요하다면, 자신들의 목숨을 바쳐서라도 시간을 끌 각오로.
물론, 그건 헛된 희망이었다. 처음부터 그들이 있는 이 공간은 다른 이들이 도달할 수 없는 상태로 격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행히도 호위병들이 발동한 경보 장치의 신호는 황성 안에 대기중인 근위대는커녕 문 밖을 지키고 있는 병사들에게조차 전해지지 않았다. 안에서 이 난리가 났는데도 아무도 들어오는 사람이 없는 건 그래서였다. 물론, 당연히 도망치듯 방을 빠져 나가려 했던 소녀도 그 뜻을 이룰 수가 없었다.
“윽… 이거… 왜 안 열려?”
문손잡이를 잡고 낑낑거리는 소녀의 모습에 사람들은 자신들이 완벽한 함정에 빠졌음을 비로소 깨달았다.
형진은 사람들이 천천히 황제 주위로 모여드는 모습을 보며 피식 웃더니, 허공에서 고풍스런 의자 하나를 꺼내고는 그곳에 앉았다.
“그리 겁먹을 것 없어. 애초에 너희들이나 거기 있는 꼬마에게 위해를 가할 생각이었다면, 이런 식으로 시간을 끌 이유조차 없었을 테니까.”
의자에 앉기가 무섭게 티 이블을 꺼내고 그 위에 다과를 늘어놓는 형진의 느긋한 모습에, 지금까지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라만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목소리에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다. 하긴 이런 상황이라면 누구라도 그럴 수밖에 없겠지만.
형진은 가만히 자신의 잔에 차를 따르며 말했다.
“말해 주는 거야 쉽지만, 기왕이면 서로 마주 보며 대화를 나누는 편이 좋지 않을까?”
“…”
라만은 작게 한숨을 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폐, 폐하! 안됩니다!”
“그렇습니다. 이건 놈의 간교한 속임수입니다.”
“조만간 황실 근위대가 이상을 알아차리고 이곳을 들이칠 것입니다.”
“부디 인내심을 가지시옵소서. 폐하.”
어릴 때부터 함께 지내왔던 시종들이 일제히 소년 황제를 만류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라만은 천천히 걸음을 옮겨 앞으로 나왔다. 차마 그를 붙잡을 엄두조차 내지 못한 채 시종들은 물론이고 호위병들마저 발만 동동 굴러야만 했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상태에서도 최대한 의연한 모습을 보이려 애쓰는 라만의 모습에 형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에 들어. 적어도 운 좋게 좋은 핏줄을 타고난 애송이는 아니었던 모양이군.”
“…”
라만은 대답 없이 일단 형진과 마주 보는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호위병들이 뒤에 자리하려 했지만, 그들은 보이지 않는 벽 같은 것에 막혀 뜻을 이룰 수가 없었다.
“저들의 충정은 인정하지만, 그래도 비밀은 적게 아는 편이 좋은 법이지.”
당황한 호위병들이 어떻게든 자신에게 다가서려고 애쓰는 모습에, 라만은 살짝 얼굴을 찌푸린 채 질문했다.
“당신의 정체가 그토록 중대한 비밀입니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비밀이란 언제나 상대적인 거니까.”
그렇게 대답하며 형진은 라만 앞에 놓여진 잔에 차를 따라 주었다.
“마셔. 긴장을 푸는데 도움이 될 거야.”
“…”
살짝 망설이는 기분이 들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이 남자는 스스로 말했던 바와 같이 자신에게 위해를 끼칠 생각이라면 훨씬 간단하게 목적을 이룰 수 있을 테니까.
그런 생각을 떠올리며 눈을 질끈 감고 잔을 기울인다.
“음?”
하지만 다음 순간, 라만은 자신도 모르게 눈을 크게 뜨고 말았다.
“어때?”
“그, 그게…”
라만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독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입술을 가져다 댔는데, 그 안의 액체가 입안으로 흘러들어오는 순간, 그는 잠시나마 다른 세상으로 가버리는 듯한 착각마저 느껴야만 했기 때문이다.
“나와 차를 나눌 수 있는 기회는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야. 감사하도록.”
“…”
잠시 예상치 못했던 향기로운 맛의 향연에 충격을 받았던 라만이지만 얼른 정신을 차리고는 다시 말했다.
“아직 당신이 누군지 듣지 못했습니다만.”
“이미 어느 정도는 짐작을 하고 있을 텐데?”
“…”
기대했던 대답은 아니지만, 또한 어렴풋이 예상했던 대답이기도 하다.
앞서의 그 거대한 무언가. 그리고, 황성의 보안을 가볍게 무력화시키며 등장한 정체불명의 인물. 연관성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떠올리지 못한다면, 어지간히 둔감한 사람일 것이다.
“그 거대한 무언가와 관계가 있는 겁니까?”
“맞아. 나로서도 이건 예상치 못한 사태지만.”
“…”
형진은 들고 있던 찻잔을 가만히 테이블에 올려놓고는 간략하게 말했다.
“내가 누구냐고 물었지?”
“네.”
“대답하마.”
“…”
“난 신이다.”
라만은 그 말을 듣는 순간 얼굴을 찌푸렸다.
분명 이 남자의 능력은 대단한 바가 있었다. 황성 안에서 가장 엄중한 보안을 자랑하는 자신의 거처를 다른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간단하게 외부와 고립시키고, 오직 자신만을 위해 준비된 호위병들이 옷깃조차 건드리지 못할 정도라면, 그 능력이 실로 어느 정도일지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일.
하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스스로 신을 자칭하다니.
“왜? 믿기지 않아?”
“단숨에 믿으면 그게 이상한 일 아니겠습니까?”
“그런가. 그럼 이렇게 하는 건 어때.”
은근한 표정으로 입가에 미소를 짓는 형진의 모습에 라만은 자신도 모르게 흠칫 몸을 떨었다. 어쩐지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자신의 몸을 조여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이 아니다. 단지 자신을 향해 말려올라가는 형진의 입술을 보는 순간 그런 느낌이 들었을 뿐이다.
형진은 살짝 겁먹은 표정의 소년 황제를 향해 제안했다.
“네 소원을 한 가지 들어주겠다. 물론 공짜는 아니야. 댓가를 받을 거니까.”
그러자 라만은 미심쩍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영혼을 달라거나, 황위를 넘기라거나 하는 식의 댓가라면 거절하겠습니다.”
“뭐라고? 넌 날 도대체 뭘로 보는 거냐?”
“…”
뭘로 보긴.
앙그릴은 지구나 타나토스와는 다른 문화를 지니고 있지만, 꿈속에 나타나 거래를 제안하는 악마 이야기 정도는 이 세계에도 있었다. 라만이 보기에, 형진은 딱 그런 부류의 존재 같았다.
“어디보자. 이렇게 하면 되겠군. 괜찮은 별궁이 있으면 하나 넘겨. 이곳에 막 온 직후라 머물 집이 없거든. 어때. 이 정도면 되겠나?”
“…”
뭔가 상당히 현실적이다. 집을 요구하는 악마라니, 그것도 황성이 아닌 괜찮은 별궁이라니. 적어도 라만이 아는 얘기 중에 이런 걸 요구하는 내용이 나오는 건 하나도 없다.
“제가 뭘 요구할 줄 알고요?”
라만의 말에 형진은 씩 웃었다.
“얼른 자라고 싶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건…”
앞서 혼잣말로 중얼거렸던 내용이다. 형진은 움찔하는 라만을 보며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장 누구 앞에 서더라도 부족함이 없는 훌륭한 어른의 몸을 주도록 하지. 어때.”
“정말… 입니까?”
“물론. 난 거짓말을 아주 싫어해. 특히나 거래나 계약에 관해선. 이런 방면으로 상당히 깐깐한 신이 있거든.”
“…”
라만은 자신도 모르게 그러자고 대답할 뻔 했다. 당장 어른이 된다면 할 수 있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니까.
하지만 라만은 자신의 허벅지를 꽉 움켜잡으며 그러자고 대답하려는 충동을 꾹 억눌렀다.
“죄송하지만, 거절하겠습니다.”
“응? 어째서?”
“제가 갑자기 어른이 되어 버린다면, 사람들은 제 정체성을 의심하게 될 것입니다. 누군가와 바꿔치기가 된 것은 아닐지, 혹은 질 나쁜 악마와 손을 잡은 것은 아닐까 하는 식으로.”
“…”
형진은 물론이고 그의 옷깃 속에서 이 모든 대화를 지켜보고 있던 여신들마저도 라만의 그런 태도에 작게 감탄했다. 이미 주관이 확실하게 자리잡은 어른이라면 모를까, 아직 제대로 성장하지도 않은 소년이 유혹을 견디고 그런 식의 답을 내놓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하하하. 재미있어. 아주 재미있어.”
“…”
“좋아. 그럼 제안을 좀 바꿔 보도록 하지.”
“무슨…”
“네 목숨을 살려주겠다. 그러니 적당한 별궁을 하나 다오.”
“…”
라만은 얼굴을 찌푸렸다.
“협박입니까?”
소년으로서는 형진의 말이 이렇게 들릴 수밖에 없었다. 원래는 죽일 생각이었는데, 죽이지 않겠다. 그러니 목숨을 살려준 대가로 적당한 별궁을 내어 놓아라. 만약 거절한다면, 넌 죽을 것이다. 라는 식으로.
하지만 형진은 라만의 말에 얼른 손을 내저었다.
“잠깐. 아무래도 오해를 하는 모양인데, 그런 의미가 아니야.”
“그럼요?”
“너, 이대로라면 10년 안에 확실히 죽는다. 그걸 막아주겠다는 얘기야.”
“네?”
차라리 협박이라고 하는 쪽이 더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10년 후에 죽을 걸 막아주겠다니, 이건 또 무슨 뚱딴지같은 말인가.
“신이라더니, 미래도 볼 수 있는 겁니까?”
“설마. 아무리 신이라도 그건 무리야. 적어도 내가 아는 한, 그런 식의 권능을 지닌 신은 존재하지 않아.”
농담이라고 하기엔 너무 진지한 얘기다. 그래서 라만은 미심쩍어 하면서도 다시 물어보았다.
“그럼 10년 후에 제가 죽는다는 얘기는 무슨 의미입니까.”
그러자 형진은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간단해. 너, 지금 중독되어 있어. 그것도 10년 후에 죽게끔 정밀하게 조절된 그런 독이야.”
대수롭지 않은 듯한 대답이었지만 라만은 다시 한 번 크게 놀랐다.
“네? 그게 정말입니까?”
신에게 진위를 되묻는 건 무척이나 무엄한 일이지만, 형진은 마음 좋게 부연 설명을 덧붙여 주었다.
“아주 강력한 마법사가 손을 쓴 것 같군. 혹시 짐작 가는 일 없나?”
라만은 입술을 깨물었다. 있다. 있다 뿐인가. 아주 차고 넘친다.
“설마… 차에 독을 탔던 겁니까?”
짐작 가는 일이 없느냐고 물었더니 방금 전에 마셨던 차를 먼저 떠올렸던 모양이다. 뭐, 당연한 의심이긴 하지만, 형진으로서는 살짝 짜증이 날 수 밖에 없는 일이다.
“끙. 그런 식으로 의심을 하는 거냐.”
형진은 그렇게 말하고는 느닷없이 라만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쿡 찔렀다. 그러자 그의 손을 따라 작은 은빛의 실 같은 것이 라만의 이마로부터 뽑혀져 나오더니, 이내 은빛의 작은 구체로 변화했다. 형진은 작은 앰플에 그것을 담은 뒤 라만의 뒤에 다가서려고 여전히 낑낑거리고 있던 호위병에게 던졌다.
“너. 그거 가져가서 내용물 확인해봐.”
호위병이 얼떨결에 앰플을 받아들자, 형진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어린 녀석이 일찍 죽는 걸 보는 건 달갑지 않은 일이라서 선심 쓰는 셈 치고 독은 완전히 빼냈다. 거래할 생각이 없다는 녀석을 붙잡고 시간 낭비할 필요는 없는 것 같으니 난 이만 가보마. 잘 살아라.”
그리고는 라만이 다시 뭐라 답하기도 전에 모습이 사라졌고, 그제서야 호위병들은 그의 곁으로 다가설 수 있었다.
“괜찮으십니까. 폐하.”
“어디 불편하신 곳은 없으십니까. 폐하.”
“괜찮아. 일단은.”
라만은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엉거주춤한 모습으로 서 있는 호위병 한 명에게 명령을 내렸다.
“가서 궁정 마법사들을 불러오도록. 하나도 빠짐없이 모조리.”
“네. 폐하.”
“나머지는 물러서라. 지금부터 이 방 안의 물건은 무엇 하나 손을 대선 안 된다. 알겠느냐!”
“명을 받들겠습니다. 폐하.”
어느 틈엔가 부양형 자동차로 돌아와 라만이 그렇게 호위병과 시종들을 부려 무언가를 진행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는 형진에게, 보호와 균형이 조심스럽게 모습을 드러내며 물어보았다.
“거래는 실패한 건가요?”
“아니.”
“아니라고요?”
“그래. 진짜 거래는 지금부터라고 해야겠지. 방금 전의 일은 그저 밑밥을 뿌린 것 뿐이니까.”
형진은 옷깃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여신들이 퐁 하는 소리와 함께 인간 사이즈로 변해 옆에 앉자 그녀들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대답했다.
“녀석은 날 다시 부르게 될 거야. 난 그걸 느긋하게 기다리기만 하면 돼.”
============================ 작품 후기 ============================
두편째.
자, 이젠 주무세요.
설문 참여 하지 않으신 분들은 꼭 참여하시고요.
안하면 미워할거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