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664
00664 150. 대면 =========================
별로 급할 것 없다는 듯이 느긋한 태도를 보이는 형진과는 달리, 황성 델 아운은 뜻밖의 사태를 맞이해 큰 혼란에 빠져 있었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제국의 황제가 그 심장부라 할 수 있는 황성의 내전 안에서 누군가에게 감금당했다. 실제로 감금당한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지만, 만약 상대에게 그럴 마음이 있었다면 아운 제국은 유일한 황족인 황제의 시해로 인해 단 한 명의 황족조차 존재하지 않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것은 자칫 제국의 붕괴로 이어질 수도 있는 중대한 사안이기 때문에, 동부에서 출현한 거대한 무언가로 인해 급히 휴가를 취소하고 돌아와 있던 대신들은 숨 돌릴 틈도 없이 다시 모여야만 했다.
“그 자가 스스로를 신이라 칭했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다.”
“음…”
터무니없는 일이다. 신이라니. 이 얼마나 끝 모를 자신감이란 말인가.
하지만 신하들도 황제 앞에 모습을 드러냈던 그 인물이 진짜 신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사실 스스로를 신이라고 칭한 마법사가 처음인 것도 아니다. 앙그릴은 물론이고 아운 제국의 역사 속에서도 그런 인물은 몇 명이나 있을 정도니까.
하지만 이번에 나타난 자는 그런 허세 가득한 자들과는 본질적으로 뭔가가 달랐다. 앙그릴 전체에서도 마법 문명으로 손꼽히는 아운 제국이다. 그 나라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내전에서 잠시 동안이나마 외부의 어떤 자도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황제를 완전히 고립시켰다. 도대체 어느 정도의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그런 일이 가능한지, 지금 소년 황제의 앞에 모인 신하들은 물론이고 사건이 벌어진 곳을 확인하고 있는 궁정 마법사들조차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다.
일단 황제의 거처를 다른 곳으로 옮기고 혹시라도 흔적이 남았는지, 내통한 자는 없는지 면밀하게 수사가 이어지고 있었지만 아직까지 제대로 된 단서는 나오지 않고 있는 중이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문제는, 만약 다시 한 번 이런 상황이 발생했을 때 과연 그것을 사전에 막아낼 수 있겠는가 하는 점이다.
“일단… 당분간 폐하의 주위에 궁정 마법사들을 주야로 배치해 놓겠습니다.”
“알겠다.”
어떻게 보면 이건 의미 없는 일일수도 있었다. 상대가 정말로 스스로를 신이라 칭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강대한 마법사라면, 궁정 마법사가 몇 명 정도 곁에 붙어 있다한들 큰 도움은 되지 않을 테니까.
신하들도 이런 상황은 잘 알고 있었다. 비록 물 밑에서는 치열하게 권력 다툼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더라도, 그런 것이 가능하려면 먼저 현재 제위에 올라있는 황제의 안전이 확보되어야만 한다. 그러니, 신하들로서는 자신들의 지위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좀 더 강력한 특단의 대책을 내놓아야만 한다.
“그리고, 바한 백작을 불러들이도록 하겠습니다.”
“바한 백작을?”
바한 백작은 명실공히 아운 제국 최고의 마법사라고 일컬어지는 인물이다. 젊었을 때는 마법 전단에 소속되어 전장을 누빈 영웅이었고, 나이가 들어서는 마법을 통한 기술 개발에 매진하여 제국의 군사력을 발전시키는데 이바지 하고 있었다. 실제로, 아운 제국이 보유한 철갑선의 대부분은 그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기도 하다.
지금도 바한 백작은 왕립 병기창에서 새로운 무기를 만들기 위한 연구에 매진하고 있는 중이다. 어떻게 보면 제국 입장에서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인재인 셈이다.
소년 황제 라만은 신하들의 말에 얼굴을 찌푸렸다.
“바한 백작이 젊었을 때 사신이라 칭해지던 전쟁 영웅이라는 것은 나 역시 익히 잘 알고 있는 얘기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개인적인 무력보다도 지닌 바 지식과 경험이 더 소중한 인재. 아무리 지금 나의 처지가 위험하다 할지라도, 그런 이를 불러다 고작 호위 따위를 맡기는 건 제국으로서는 큰 손실이 아닐까.”
돌려 말하긴 했지만 결국 이런 뜻이다.
나이 먹어서 골골 거리는 노인을 데려다 놔봐야 도움이 되겠는가. 괜히 설치다가 다치거나 죽기라도 하면 누가 책임질 거냐고 라만은 묻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다. 그런 입지전적인 경력을 가지고 있는 인물인 만큼 바한 백작은 자존심도 장난이 아니었다. 황제가 위급한 상황에 처했다고 불러도 순순히 올까 싶은 느낌이 들 정도로. 부른다고 후딱 달려올 인물이 아니란 얘기다.
라만의 말에 신하들은 얼른 고개를 조아리며 답했다.
“물론 바한 백작은 우리 제국의 소중한 인재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인재라 해도 결국은 황제 폐하의 신민. 어찌 폐하의 위급을 못 본 척 할 수 있겠습니까. 그는 이미 병기창을 출발해 황성으로 향하고 있는 중입니다.”
“…”
빠르다. 어느 틈에 연락을 취했단 말인가.
하지만 사실 이건 신하들이 바한 백작을 불러올린 것이 아니다. 그저 말 몇 마디로 자신들이 급히 불러들인 것처럼 포장했을 뿐.
형진이 라만의 이마에서 뽑아낸 은빛의 물체는 곧바로 궁정 마법사들에게 전달되었고, 그들은 그것의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 애를 썼다. 하지만 나름 제국에서 제일가는 마법사들이라고 자부하는 그들로서도 그 물질이 무엇인지 밝혀낼 수 없었다. 효과는커녕, 무슨 성분으로 이루어진 것인지 조차 확인할 수 없었던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궁정 마법사들은 연금술 쪽에 조예가 깊은 이들이 많이 모여있는 병기창에 그 물질을 보내어 분석을 의뢰했다. 당연히 그것은 병기창의 마법사들 가운데 실질적인 최고 책임자라 할 수 있는 바한 백작에게 건네졌다. 바한 백작은 그것을 받아들자 마자 크게 놀라며 자신의 제자 세 명을 이끌고 급거 황성으로 올라오는 중이다.
하지만 그런 소식을 들었음에도 라만의 표정은 그리 밝지 못했다. 번지르르하게 포장하긴 했어도, 결국 바한 백작이 당도할 때까지는 뾰족하게 다른 수가 없다는 얘기나 마찬가지니까.
“알겠다. 피곤하군. 난 이만 가서 쉬도록 하겠다.”
“그리 하시옵소서. 폐하.”
회의실을 빠져 나온 라만은 마법 갑옷으로 중무장한 호위병과 궁정 마법사 수십 명의 호위를 받으며 새로운 거처로 향했다. 안전을 위해 시종과 시녀의 숫자 역시 최측근이라 할 수 있는 몇 명만을 남겨둔 상태이고, 나머지는 현재도 근위대의 조사를 받고 있는 중이다.
설령 문제가 확인되지 않더라도, 그들 대부분은 라만을 모시는 일이 아닌 다른 부서로 발령이 나거나 그대로 일을 그만두게 될지도 모른다. 다시는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만에 하나라도 가능성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다.
털썩 소파에 주저앉는다. 그러자 그의 주위로 네 명의 병사가 등을 돌린 채 섰다. 예쁜 여자애들이 그러고 있어도 귀찮은 상황에 우락부락한 남자들이 마법 갑옷을 입은 채 그러고 있는 꼴이 보기 좋을 리 없다.
“후우우…”
문득 어제 나눴던 대화들이 떠오른다. 그 중에서도 그가 했던 제안들이.
생각해 보면 그의 제안은 좀 특이한 면이 있었다. 어른의 몸을 주겠다고 했던가. 어른이 되도록 해주겠다는 식이 아니라.
그게 그거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엄연히 다른 말이다. 귀족들의 틈바구니에서 방금 전까지도 그들의 대화를 듣고 온 라만은 그 차이를 명백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단순히 자신의 몸을 성장시켜 주겠다든가, 그냥 자신을 어른의 모습으로 만들어 주겠다든가 하는 식이 아니라, 어른의 몸을 주겠다고 했다.
제안 자체는 매우 매력적이다. 하지만 그래서 라만은 그를 의심했다. 그런 매력적인 제안들을 늘어놓고 고작 별궁을 하나 달라니. 그런 능력이 있다면, 별궁이든 별장이든 얼마든지 구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지나놓고 생각해 보니, 그는 어쩌면 자신과 거래를 했다는 사실 자체를 원했던 것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정말로 그가 신인지는 아직 믿기 어려운 일이지만, 다른 곳에서 온 존재가 맞다면 앙그릴에서의 기반을 닦기 위해 아운 제국의 황제 자리에 있는 자신과의 유대를 필요로 했을지도 모르니까.
제국 동부에서 일어난 이상 현상과 관계가 있다든가, 다른 세계의 존재라든가 하는 식의 내용을 신하들에게 말하지 않은 이유는 그래서이다. 만에 하나라도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것은 제국을 넘어 세계 전체와 관련이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역시… 좀 더 자세히 얘기를 들어 볼 걸 그랬다. 설령 신이 아니다라도, 그러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의 힘을 지닌 존재라면 이런 상황에서도 신하들에게 싫은 소리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하는 자신에게 큰 힘이 되어 주었을 테니까.
어떻게, 다시 만나 대화를 나눌 방법이 없을까. 거래 까지는 아니더라도.
[별로 어려울 것 없는 일이지.]“헉!”
라만은 기겁을 하고 놀라버렸다. 어찌나 크게 놀랐는지 기대 앉아 있던 소파에서 굴러 떨어졌을 정도다.
“폐하!”
“무슨 일이십니까!”
“그, 그게…”
그렇지 않아도 잔뜩 긴장한 채 주위에 늘어서 있던 호위병들과 좀 더 멀리 떨어져 있던 시종과 시녀. 그리고 창문과 문 근처에 버티고 서 있던 마법사들이 득달같이 그를 에워싸고 삼엄한 경계를 펼친다. 혹시라도 또다시 누군가가 나타났나 싶어서다.
하지만 그들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라만은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을 그들이 볼 수 없다는 사실에 더욱더 크게 놀라고 있었다.
도대체 이게 뭐지?
그런 생각을 떠올리자, 다시금 눈앞에 처음 보는 문자가 나타났다. 분명 처음 보는 문자인데, 글자 하나조차 읽을 수 없는데 의미는 전달이 된다. 이걸 도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이건 메시지라고 부르는 의사소통 수단이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쪽지 같은 걸 전해 상대에게 전하는 방법이지. 불행히도 나는 네가 사용하는 문자를 모르지만, 어차피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 목적이니까 눈앞에 무슨 문자가 보이든 신경 쓰지마. 이곳의 문자에 맞게 시스템을 변경할 틈이 없었거든. 앞서 말했듯이 내가 이쪽 문자를 모르는 것도 사실이고.]무슨 소린지 모르겠다. 메시지니 시스템이니 하는 단어는 들어본 적도 없는 것이고. 문제는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것의 의미가 명확하게 위화감 없이 전해진다는 점이다.
[원래 생명체와의 의사소통은 모든 신이 지닌 공통된 능력이야. 그런 것이 없었다면, 내가 앞서 너와 그런 식으로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진 못했겠지.]“폐하, 괜찮으십니까.”
메시지와 걱정스런 표정을 짓고 있는 시종의 얼굴이 겹쳐 보인다. 마법사들도 눈치를 채지 못하는 걸 보니, 공연히 자신이 겪고 있는 이 현상을 설명하려고 했다가는 미친놈 취급 당할지도 모르겠다. 뭐라 해도, 자신이 지금 보고 있는 것을 저들에게 증명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괜찮아. 아무래도 피곤했던 모양이다. 침대로 가서 쉬어야겠다.”
“알겠습니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곧바로 시종과 시녀들이 침구를 정리한다고 수선을 피운다. 라만은 천천히 일어나 침대에 누웠다. 물론 이번에도 침대의 네 귀퉁이에 마법 갑옷을 입은 호위병들이 자리 잡고, 시종과 시녀들이 방안에 시립했으며, 마법사들은 창문을 비롯한 외부와 연결된 공간에 섰다. 솔직히 말해서 이렇게 버티고 서 있으면 오던 잠도 달아날 것 같다.
“후…”
라만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는 메시지를 잠시 바라보다가 가만히 정신을 집중했다. 단순히 생각을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눈앞에 나타난 메시지와 같은 형태로 글을 써서 나타낸다는 느낌으로.
그러자, 새로운 메시지가 나타났다.
[도대체…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겁니까.]신기하게도 그가 전하고자 했던 의사가 아운 제국의 문자로 적혀서 눈앞에 나타났고, 바로 대답이 돌아왔다.
[제법인 걸? 이렇게 간단하게 사용법을 깨우치다니.] [물었지 않습니까.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냐고.] [궁금해?] [네.] [그럼 눈을 감아봐.] […]이건 또 무슨 꿍꿍이일까. 하지만 상대가 뭔가 자신의 몸에 수작을 부려놓은 것이 분명한 이상 확인을 해야만 한다,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러자 마치 세상과 단절된 것처럼 감각은 조용히 새카만 어둠 속으로 녹아들었고, 하염없이 어딘가로 빠져드는 듯한 기분에 화들짝 놀라는 순간, 어느 틈엔가 라만은 그가 알지 못하는 전혀 다른 공간에 서 있었다.
그곳은 새하얀 빛으로 가득 채워진 그런 장소였다. 하늘도 땅도 바닥도 벽도 없이, 기이하게도 전혀 눈이 부시지 않은 새하얀 빛으로 가득한 그런 공간.
“조금 놀랐을지도 모르겠군. 하지만 안심해. 잠시 아바타 설정을 만지느라 중간 과정을 거치는 것 뿐이니까.”
“헛!”
갑자기 스르르 모습을 드러낸 형진의 모습에 라만은 다시금 기겁을 하고 놀랐다. 아무 기척도 없이 갑자기 유령처럼 모습을 드러내니 그렇지 않아도 쪼그라 들었던 심장이 쿡쿡 쑤시는 느낌마저 들 정도다.
당했다. 뭔지는 몰라도 완전히 당해버렸다. 순순히 눈을 감아버리다니. 이 얼마나 멍청한 행동이란 말인가. 눈앞에 뭐가 보이든 그냥 무시해 버렸어야 했는데!
하지만 형진은 앞서 마주 보고 대화를 나누었을 때와는 달리, 명백하게 겁을 먹은 표정의 라만을 보며 피식 웃더니 조금 장난스러운 모습으로 말했다.
“환영한다. 아운 제국의 황제 라만이여. 너는 앙그릴에 사는 인간들 가운데 최초로 거짓된 천국에 초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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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
수고하셨습니다.
진짜… 날씨 한 번 끝내주는군요. 꼼짝도 못하고 늘어져 있었음.